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69화 (169/268)

< 169화 - 개막전 장소는 어디?(2) >

단장 회의를 위해 들어간 회의실은 여느때와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로 웅성거렸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건 역시나 약 두 시간 전에 폭로된 F-Rod의 약물 건이었다.

“F-Rod가 약을 했다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나도. 그렇게 인성도 좋고 평가도 좋던 선수가······. 심지어 판매도 했다던데.”

떠들어대는 단장들 사이로 넋이 나가있는 필리스 단장인 샘 펄드가 보였다.

“불쌍한 샘.”

“팜 전체를 한 번 뒤집어야겠지?”

“팜뿐만이겠어? 빅리그까지 다 뒤집어 엎어야지. 그 중에서 다섯 명만 걸려도 어유······. 끔찍하다 끔찍해.”

“저렇게 되면 강제로 리빌딩 들어가야겠네. 샘은 리툴링을 생각하고 있던데.”

“그건 도핑에 걸리는 선수가 얼마나 되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데. 내가 봤을 때 리툴링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저 약 하루만에 없어진다며. 지금 도핑 테스트 해봤자 아무 흔적도 없을거고, 시즌에 들어가야 알 수 있을테니 당장은 괜찮겠지.”

“흐음······. 그렇단 말이지? 싸게싸게 선수 빼올 수도 있겠는데?”

“나도 그 생각 중이었어. 안그래도 필리스에 점찍어둔 놈이 있었는데 조금만 흔들어주면 싸게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아.”

승냥이 같은 단장들에게 쥐어뜯길 펄드에게 심심한 위로를 마음속으로 건넨 다운이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자리에 앉았다.

“다운.”

옆자리에 있던 앙헬로스가 친근하게 손을 흔들었다.

“존.”

악수를 한 앙헬로스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다운에게 물었다.

“오늘 폭로한 친구 꽤 낯이 익던데.”

이럴땐 부인하는게 더 이상하다. 다운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정보를 빼낸 그 친구 맞아요.”

“네가 세팅한거야?”

“제가요? 굳이 제가 데려올 선수도 아닌데 그렇게 세팅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누가봐도 레이스가 군침흘릴만한 선수였는데?”

“아쉽게도 저희 1루는 꽉 차서요. 알렉스가 1루로 컨버팅하기로 이미 이야기가 됐었거든요.”

“아. 그러면 자리가 없긴 했겠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저희도 영입전에 참가했을테니 어찌보면 정말 다행이긴 하죠.”

“샘만 불쌍하게 됐어. 분명 똥은 그 전 단장들이 다 싸놨을텐데 말이야.”

“그것까지 감당해야하는게 단장이니까요. 샘이 흔들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

“흔들리면 좋은거 아냐?”

“필리스가 브레이브스랑 메츠를 견제해줘야 편하니까요.”

현재 NL 동부에서 달리는 팀은 브레이브스, 메츠 그리고 필리스다. 이번 시즌 4명이 FA로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강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필리스였다. 그런 필리스가 레이스에서 이탈해버리면 브레이브스와 메츠가 너무 편하게 시즌 운용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시즌 끝났는데 벌써부터 포스트시즌 생각하는거야?”

“지금부터 생각해놔야지 어떤 상황이든 대응할 수 있죠.”

“하여간 그 준비성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어느덧 30석에 달하는 자리가 꽉 찼다. 그리고 맨프레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단상에 섰다.

“2024시즌 윈터미팅 단장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의례적인 말을 한 맨프레드는 반질반질한 머리를 손수건으로 한 번 닦은 뒤 말을 이었다.

“원래는 다음 시즌 개막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다른 안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네요.”

들으나마나 F-Rod의 약물 파동이다.

“오늘 아침에 폭로된 뒤로 사무국에서도 빠르게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다행히 폭로를 한 분이 증언을 해주기로 한 선수들 다수와 연결을 해주는 덕분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는 수월했습니다.”

“진짜였습니까?”

어떤 단장의 질문에 맨프레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게도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F-Rod는 본인이 약물을 하기도 했고, 에이전트와 함께 약물을 판매해 수익을 챙기기도 했습니다. 증언을 위해 나선 선수들만 34명이고, 공범자들은 100여 명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마이너리그 시절을 합해서 10년 정도를 필리스에서 있었던 F-Rod가 과연 몇 명을 타락시켰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100명 정도는 공범으로 만들었을거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이번 스캔들은 바이오제네시스 스캔들 이래 최대의 위기입니다. 22시즌 대비해서 팬들의 관심이 8%나 증가했습니다. 다시 일어서는 와중에 이런 사안에 대한 대응이 느리면 팬들은 우릴 떠날겁니다. 그래서 저희 사무국은 이번 일에 대한 대응을 빠르고 강력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의 가장 큰 피해자인 펄드가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필리스에 등록된 모든 선수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필리스에서는 이 비용을 절반 부담해야할겁니다.”

왜 그래야하는지에 대한 반발은 나오지 않았다. 필리스는 이 자리에서 메이저리그의 평판을 하락시킨 죄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선수협 대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선수협에서도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F-Rod가 쓴 약물은 지금 당장 검출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전수조사를 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하지만 팬들은 그런걸 신경쓰지 않을겁니다. 우선 보여주기 식으로라도 전수조사를 할겁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약물을 하는 선수도 검출해낼 수 있겠죠.”

사람이라면 자신만 손해보는 상황을 쉽사리 견디지 못한다. 주변의 많은 선수들이 약물을 하는데 자신만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을 터. 다른 방법을 강구했던 선수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는 도핑 검사 횟수를 3배로 늘리겠습니다. 이에 반대하시는 분들 계십니까?”

다들 이 상황이 메이저리그 전체의 흥행에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반대는 한 표도 없었다.

“약물 선수들에 대한 징계는 그대로 갈겁니까?”

다운의 질문에 맨프레드가 고개를 저었다.

“이 부분도 고칠 생각입니다. 현 규정에서 1단계를 없앨겁니다.”

1단계를 없앤다면 반 시즌 정지를 없앤다는 말. 그렇다면 첫 번째 적발 시 1시즌 출장정지, 그리고 두 번째 적발 시 영구제명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영구제명을 하는건 어떻습니까?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으니까 다들 안일하게 약물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가 않아서요. 특히나 이번처럼 저녁에는 적발되지 않지만 효과는 그보다 길게가는 식의 약물이 더 개발되어서 나올겁니다. 이런 약물들은 사용의도가 극도로 불량하죠. 그렇기에 무조건적으로 퇴출시키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운의 말에 저 멀리 있던 프리드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찬성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 메이저리그는 이미 두 번의 큰 약물 파동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A-Rod의 약물 파동은 세 번째죠. 리그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는 이런 파동이 세 번이나 지속되었는데도 징계는 솜방망입니다. 다운의 말처럼 그러니 선수들이 약을 하는거죠. 정말로 팬들에게 ‘메이저리그는 바뀌겠습니다!’라는걸 보여주려면 이번 기회에 약물을 한 선수는 아예 퇴출시키는 쪽으로 규정을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운에 이어 프리드먼까지 이 사항에 동의하자 여기저기서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해왔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더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선수협도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맨프레드가 난색을 표하며 손을 흔들었다. 징계를 강화하는 것과 곧바로 영구제명을 시키는 것은 그 무게감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만에하나라도 이번 일이 모함으로 돌아간다면(그럴 일은 없어보이지만) 성급한 결정을 한 커미셔너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래서 맨프레드는 약물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지었다.

“우선은 사법기관에 의뢰를 넣었으니 그들에게서 나오는 결과를 보고 결정하도록 하죠. 이 안건에 대해서는 징계를 한 단계 강화하고, 필리스 선수단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안건인데······.”

맨프레드가 준비된 화면을 스크린에 띄웠다.

“다음 시즌 개막 시리즈 일정입니다.”

15개의 매치가 화면에 펼쳐졌다.

다저스 vs 자이언츠

양키스 vs 레드삭스

역시나 많은 팬들을 모을 수 있는 라이벌리의 매치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터리그 매치업은 포함되지 않는겁니까?”

인터리그에도 흥미로운 라이벌리 매치업들이 많았다. 양키스와 메츠의 서브웨이 시리즈라던가, 컵스와 화이트삭스의 윈디시티 시리즈, 오리올스와 내셔널스의 벨트웨이 시리즈, 레이스와 말린스의 듣보잡······ 아니 시트러스 시리즈 처럼 말이다.

“인터리그와 같은 경우는 원정에서 하는 것 보다는 각자의 라이벌리 지역에서 하는 것이 관중들을 모으기에는 훨씬 좋다고 생각해서 제외했습니다.”

원정지에 있는 야구 팬들은 라이벌리 시리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라이벌리는 그 지역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원정지에서 느끼기에는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라이벌리가 아니라면 어떤 경기가 오더라도 상관없을 것이었다.

“어디보자 우리 매치업은······.”

레이스의 이번 개막 시리즈 상대는 애스트로스였다. 애스트로스 단장인 클릭과 다운의 눈이 마주쳤다. 다운은 그에게 윙크를 해준 뒤 단상에 있는 맨프레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 사실 저런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다들 매치업보다는 개막전을 하는 개최지에 관심이 있지 않습니까?”

개최지에서 얻는 수익은 어차피 다 합해서 균등하게 분배된다. 그럼에도 그들이 개최지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인지도 때문이었다.

‘야구에 관심이 많은 도시가 걸릴수록 우리 구단에 대한 해외 인지도가 늘어난다!’

인지도가 늘어나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면 굿즈와 같은 상품을 더 구매할것이다. 어쩌면 해외 중계권을 팔아치울수도 있다. 그건 곧 구단의 수익으로 이어진다.

단장들의 시선이 한데 모이는 것을 확인한 맨프레드가 통에 손을 넣었다.

“원래는 뽑기 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메이저리그는 세계화에 힘써야할 단계이지, 축구처럼 무작위로 개최지를 선정해서는 수익성 측면에서 상당한 리스크를 진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구가 정착되어 있는 곳 위주로 10곳을 더 선정했습니다.”

영국(런던 - 웸블리)

한국(서울 - 잠실야구장)

한국(부산 - 사직야구장)

호주(시드니 - 블랙타운 베이스볼 스타디움)

멕시코(멕시코시티 - 에스타디오 알프레도 아르프 엘루)

일본(도쿄 - 도쿄돔)

일본(효고 - 고시엔)

일본(후쿠오카 - 페이페이돔)

중국(상하이 - 푸동 스타디움)

중국(베이징 - 노동자 경기장)

중국(광저우 - 황춘 훈련기지 봉구장)

중국(톈진 - 톈진체육학원 다저 봉구장)

대만(타이난 - 아태 국제 야구장)

독일(뮌헨 - 알리안츠 아레나)

베네수엘라(카라카스 - 에스타디오 우니베르시타리오 데 카라카스)

중국의 자본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데다가 최근 가장 활발하게 야구 저변을 넓혀나가고 있다보니 그쪽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독일 같은 경우에는 유럽 중부에 위치해서 유럽 다른 지역에서 오기 어렵지 않은데다가 세미프로 리그가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에서 가산점이 붙은 듯 했다.

‘뭐 어찌됐건 우리는 멕시코 시티 걸리면 좋겠는데······.’

만약 수익이 균등분배되지 않는다면 다른 곳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를 가던지 어차피 수익은 똑같이 나온다. 그렇다면 가장 선수들에게 영향을 덜 줄 수 있는 멕시코시티로 가는 것이 좋았다.

“그럼 지금부터 15개 도시에 대한 뽑기를 진행하겠습니다!”

< 169화 - 개막전 장소는 어디?(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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