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후회는 안하게 해드릴게(3) >
다음날 스칼렛은 곧바로 다운과의 미팅을 잡았다. 다운은 어쩐지 퀭해보이는 그녀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주었다.
“딜은 돌아간 뒤에 해도 괜찮은데.”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찰리를 대신해서 올만한 선수가 정해져야 우리도 다음 시즌 구상을 할 수 있으니까요. 뭐 어쩌면 장기협상으로 갈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고요.”
“우리 선수단 잘 모를텐데 괜찮겠어?”
“어제 밤새 레이스 팜 뒤져놨어요.”
“독하다 독해······. 어쩐지 퀭하다 싶었다.”
“상대가 다운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죠.”
어깨를 으쓱인 스칼렛이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따지듯 물었다.
“찰리 대신에 누구 줄거에요?”
스칼렛에게 이야기를 꺼낸 그 순간부터 다운은 이미 누구를 줄지 생각을 마친 상태다.
“루카스 페리시치를 메인 코어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때?”
“페리시치라······. 생각보다 별론데요? 이번 시즌 완전 망쳤잖아요.”
“하지만 아직 어리고 가능성이 남아있는 친구지. 기회만 준다면 2021시즌의 모습을 되찾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갈 수 있는 친구라는거 알잖아.”
“만약 정말로 가능성이 있었다면 다운이 그 기회를 줬을 것 같은데요?”
쓸데없이 날카롭기는. 하지만 이미 저런 말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래라면 줬겠지. 하지만 레이스의 다음 시즌은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 아니야. 지금까지 기회를 받았던 선수들이 날뛰는 장이 되어야 하거든. 그런 면에서 우리 외야는 이미 꽉 찼지. 마이어, 비어스, 스프라우트가 각각 한 자리를 꿰찰테고, 앤더슨이 백업을 맡겠지.”
“원래 다운이라면 그 백업 자리에 페리시치를 썼을 것 같은데요.”
“브래넌의 복귀도 생각해야하니까.”
“좌익수로 쓰게요?”
“물론 의사의 권고는 은퇴였지. 그런데 본인이 그걸 들어먹겠어? 수술 후 경과가 좋아서 재활하고 몸만 제대로 만든다면 뛸 수 없는건 아니라더라.”
“그래서 페리시치의 자리가 없다?”
“억지로라도 데리고 있을수야 있지. 하지만 그것보다는 필요한 곳에 쓰는게 낫잖아?”
다운의 철벽방어에 스칼렛이 혀를 찼다.
“쳇! 끝까지 방어하시네.”
“네가 좀 집요하냐? 조심할 수 있을때 조심해야지.”
“아직까지 성장할 여지가 남았다는거죠?”
“성장세가 주춤한건 사실이야. 하지만 성장할 여지는 확실히 남아있어. 그에 비해서 너희 팀 외야는 특출난 친구는 안보이고 있잖아.”
디백스의 팜에는 괜찮은 선수들이 있다. 하지만 현재 빅리그 외야에는 특출난 선수가 없었다.
“2년 연속 페널티 안 먹으려면 괜찮은 선수 하나 쯤은 있는게 좋을 것 같은데. 아냐?”
지난 시즌 디백스는 95패를 했다.
그 말은 디백스가 드래프트에서 7계단 하락이라는 패널티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흐음······.”
스칼렛은 태블릿을 이래저래 훑어보며 머리를 굴렸다.
‘이번 시즌에도 5위는 따놓은 당상 같은데······.’
지난 시즌 2선발을 맡았던 존스는 5월, 4선발이었던 잭슨은 6월 마지막 등판에서 토미존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이미 수술하고 재활 중에 있다.
‘지난 시즌 두 사람만 있었더라도 95패는 당하지 않았텐데······.’
적어도 두 사람은 1승 이상은 더 올려줬을테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다음 시즌이 아닌 2025시즌에 복귀한다. 다음 시즌도 두 사람 없이 치뤄야하는 상황.
‘페리시치가 기본은 해줄 수 있는 선수라고 했지?’
다운에게는 별로라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페리시치는 어젯밤 회의에서도 나온 이름이었다.
“부상으로 성장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발목을 크게 접질렀을 뿐이니까요. 부상을 당한 선수들이 몸을 사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페리시치도 그런 경우였다고 생각합니다. 뭐 십자인대나 토미존 같은 큰 부상은 아니니까요. 물론 발목부위가 한 번 부상당하면 지속적으로 부상을 당한다는 말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시즌 막판에 발목까지 잡아주는 스파이크를 가져오는 등 본인도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분명 데려오면 잘할 선수입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이번 시즌을 경험한 애송이들이 다음 시즌에 어떤 성적을 낼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본은 해줄 수 있는 페리시치의 가세는 확실한 도움이 될겁니다.”
그들의 말을 되짚어본 스칼렛은 웃음을 감추며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두 번째는 제가 원하는 선수를 주세요.”
“누군데?”
“제시 톰슨요. 어차피 레이스에는 포수 두 자리가 확정적이잖아요.”
디백스의 포수 자리에는 이제 4년차 시즌을 마친 베이커와 14년차 베테랑인 멜루가 맡고 있었다.
몰리나 같은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은 이 조합을 가진 구단들은 다음 시즌에는 젊은 선수를 메인으로 쓰고, 경험 많은 노장 포수를 백업으로 쓰곤했다.
하지만 디백스는 그럴 수가 없었다. 베이커는 공격력이 처참한 수준이고, 수비력은 평범했다. 멜루는 공격력이 베이커보다는 나았고, 수비력은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21시즌에 수술을 받은 어깨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1루에서 2루로 뛰는 주자는 거의 잡지 못하는 포수를 주전으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힘들겠는데. 차라리 다른 포수를 골라. 제시는 우리가 쓸 계획이라서.”
“두 자리가 다 찼는데도요?”
“다음 시즌에 윌슨이 1루와 포수를 번갈아가며 나올 예정이거든. 그리고 그게 잘 되면, 외야도 시켜볼 생각이 있고. 그래서 더더욱 페리시치의 자리가 없는거지.”
“그럼 백업포수 자리로는······.”
“톰슨이 가겠지. 그래서 못주는거야.”
이러면 생각해왔던게 꼬인다.
즉전감 하나에 톰슨. 그리고 추가로 한 두명의 유망주를 데려올 수 있다면 최고였을텐데.
이렇게 된 이상 플랜 B로 전환해야한다.
“좋아요. 그럼 비니 맥그리프는요?”
“비니는 아직 서비스타임 1년도 채우지 않은 유망한 선발이야. 내부적으로는 리키가 떠났을 경우를 대비한 대안으로도 생각되고 있고. 뭐 그렇다고 못보낼 건 아니지만······.”
비니 맥그리프는 현 상황 레이스의 비상 선발 1순위였다. 만약 선발진에 구멍이 나면 곧바로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선수로 그만한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아예 못보낼 정도는 아니었다.
팜에는 라일리 그레거슨과 더블 A에서 시즌을 마친 투수 랭킹 1위 알렉스 알마다가 있었다. 거기에 다운은 다가오는 시즌의 트레이드 마감일 전에 큰 경기에 강한 선발 하나를 보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까지 감안한다면 맥그리프는 충분히 보낼 수 있는 카드였다. 그래서 다운은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더 줘봐 그러면 내줄수도 있는데?’
그 의미를 알아먹은 스칼렛이 샐쭉한 눈으로 다운을 야렸다.
“됐네요. 안주겠다는거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만족할만한 카드가 디백스에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트레이드 가능카드라고 알려준 것은, 다른 구단과의 삼각트레이드가 혹시나 이루어지면 맥그리프는 적당한 대가가 있으면 팔 수 있으니 생각해보라는 말이였다. 그러면 다운으로서는 굳이 입아프게 나다니지 않아도 세일즈를 할 수 있다.
“약았어 하여간······.”
삐죽대는 스칼렛에게 다운은 역제안을 했다.
“개럿 핀토는 어때?”
“핀토면······.”
팜 내 4순위 포수로 톰슨보다 2년 먼저인 20년 드래프트에서 뽑힌 선수다. 하지만 타격 센스는 꽤 있는데 반해, 레이스에서 요구하는 수비력을 충족하지 못해서 트리플 A에서 더는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선수였다. 가장 비슷한 선수로는 포수 수절의 브래넌을 꼽을 수 있었다. 뭐 그 정도로 막장 수비를 하는건 아니지만.
“좋아요.”
스칼렛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핀토의 수비력이 떨어진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개럿 핀토. 이 놈은 아마 레이스에서 안줄겁니다. 메이저에 올리면 2할 중반 정도에 20홈런 이상은 올릴 수 있는 놈입니다. 타격에만 집중한다면 출루율도 꽤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저라면 무조건 포지션을 변경시킬겁니다.”
“선구안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95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에 대한 반응은 물론이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타격하는 것만큼은 타고났더군요. 포수라는 포지션에서 수비도 동물적으로 해서 문제지만······.”
“그래도 우리 팀에 있는 어떤 포수보다 유망한 선수가 될겁니다. 만약에 레이스가 풀어오면 무조건 데려와야합니다.”
그런 그녀의 답을 들은 다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대! 신!”
다운의 말에 스칼렛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뭘 또 요구하려고요!”
“하하! 너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잖아. 처음에는 잘 생각하는 척 하더니. 편해졌다고 너무 풀어지면 안되지. 이번 기회에 한 수 배웠다고 생각하고 4라운드 픽 하나 줘.”
“4라운드요? 벼룩의 간을 빼먹지! 안그래도 페널티로 순위도 밀렸는데 4라운드 픽까지 가져가고 싶어요?”
심통난 스칼렛의 말에 다운이 미소를 잃지 않고 제안했다.
“스탄 플로이드까지 줄게.”
플로이드는 지난 시즌 55경기에서 2.58을 기록한 좌완 불펜요원이다. 최대 구속은 92마일로, 공은 빠르다고 할 수 없지만 정교한 제구와 다양한 구종을 구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선수였다.
꽤나 쓸모 있는 선수지만, 선발 로테이션이 꽉 차면서 오프너로 활약하던 미치 베이커와 자비어 에르난데스가 불펜으로 돌아오게 된 상황이다. 게다가 제프리스까지 합류하면 불펜은 또다시 포화상태가 된다. 그렇기에 다운은 2년 300만 달러라는 싼 값으로 쓸 수 있는 든든한 좌완 불펜인 그를 제안한 것이었다.
“원래는 3라운드 이상으로 요구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네가 날 찢어버리려고 할 것 같아서.”
“5라운드.”
“응?”
“4라운드까지는 지키려고요. 5라운드 지명권이면 딜할게요.”
잠깐 생각해보던 다운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5라운드 픽으로 하자고.”
“구단에 연락해서 딜 완료했다고 할게요.”
1점대 방어율에 무패.
극강의 모습을 자랑하던 찰리 제프리스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점은 속이 쓰렸다. 게다가 생각보다 많이 뜯겼다는 점 또한 위장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미래를 기대할 수 있으면서도 당장에 즉전으로 쓸 수 있을만한 루카스 페리시치, 개럿 핀토. 제프리스가 빠진 자리에 싼 값에 2년간 써먹을 수 있는 좌완 스탄 플로이드까지 얻었다. 원래 즉전감에 가까운 유망주일수록 가치가 높다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디백스는 꽤나 이득을 봤다고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좋은 딜 했네. 하하!”
그 상대가 눈 앞에서 웃고있는 다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다운. 진짜 걔네 상태 괜찮은 것 맞죠?”
“아 진짜 괜찮다니까? 속고만 살았나?”
뭔가 사기당한 기분이 드는건 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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