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 후회는 안하게 해드릴게(2) >
‘블러핑인가?’
F-Rod도, 잭 클레버도, 크게는 릭 엘링턴까지도 레이스가 노릴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의심을 심어서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할 것이라는 생각이 스칼렛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대런은 일말의 의심도 하지않고 물었다.
“다운. 제가 이런저런 정보 많이 드린거 아시죠?”
대런은 어떻게든 대가를 깎아보려고 예전의 일을 들먹였다. 하지만 다운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말이다.
“그걸로 우리 사이의 앙금을 처리한걸로 아는데, 아니었어? 그리고 이번 건은 정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너한테, 특히 양키스에게는 도움이 될거다.”
자신보다 다운을 더 잘 아는 대런이 저런 태도를 보이자 스칼렛 역시 머릿속에서 들었던 의심을 지우고는 물었다.
“만약 저희가 생각했을 때 그 정도의 가치가 없는 정보라면요?”
이번엔 스칼렛의 질문. 다운의 눈은 스칼렛이 아닌 대런에게 향했다.
“대런. 내가 지금까지 정보가지고 장난친 적 있어?”
다운의 말에 대런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이야 많이 치죠.”
예상치도 못했던 대답에 다운의 이마에 힘줄이 올라왔다.
“왜요? 장난 많이 치시잖아요. 지금도 정보가지고 장난치는거지 이게 그럼 뭐겠어요?”
뭐 저렇게 말하면 할 말 없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다운이 ‘거짓된 정보’라던가 사전에 말했던 것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정보’를 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죠.”
대런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이 고민에 잠겼다. 한동안 방 안에는 다운이 위스키를 홀짝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대런이었다.
“좋아요. 저는 정보 들을게요.”
“대가가 세도 괜찮겠어?”
“어쩔 수 없죠 뭐. 다운이 저렇게 확정적으로 말한 건 이 번이 두 번째거든요.”
“첫 번째는 언제였는데?”
“앤드류 켈리한테 13만 7492달러를 줘야한다고 저희 아버지에게 달려들어서 요구했을 때.“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앤드류 켈리라는 24라운더에게 13만 7492달러(대부분의 24라운더들은 1만 달러조차 받지 못한다.)를 지급해야한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때, 다운은 지금과 같이 확신을 가지고 말을 했었다. 대런은 그때와 정확히 같은 확신에 찬 표정을 가지고 있는 다운을 믿어보기로 했다.
“스칼렛 넌?”
“조금만 더요.”
스칼렛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에 대런이 옆으로 다가와 다운을 끌어당겼다.
“먼저 말해줘요.”
장난기를 머금은 웃음이 번지는 걸 보니, 다운에게서 먼저 정보를 들은 뒤 스칼렛을 놀리고 싶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스칼렛 역시 그걸 눈치챘는지 대런에게 경고했다.
“어어? 그거 안돼요. 말할거면 같이 말해줘요.”
“어차피 들을거면 그냥 마음편히 거래하겠다고 말해. 버티면 머리만 더 아파진다고.”
결국 스칼렛은 두 손을 들었다.
“좋아요.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들을게요. 대신 대가 먼저 말해줘요.”
디백스는 리빌딩 중이다.
그런 팀에게서도 얻어올 선수는 있다.
“찰리 제프리스 NFS 명단에서 풀어줘.”
다운의 말에 스칼렛이 두 눈을 감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아시는거죠?”
찰리 제프리스는 24살의 풀타임 2년차 좌완 불펜이다.
2021 - 4.48, 2승 3패 3홀드
2022 - 2.44, 4승 2패 2홀드 19세이브
2023 - 1.39, 5승 0패 25세이브
성적에서도 보여지지만 데뷔 시즌에는 택시 스쿼드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왔다갔다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불펜으로 완전히 정착한 2022시즌부터 제프리스는 완벽하게 빅리그에 정착하는데 성공했다. 2023시즌에는 팀이 디백스만 아니었다면 40세이브 이상도 가능했을거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무엇보다 그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한 25번의 상황에 더해서, 이닝을 확실히 끊어주기 위해서 등판한 모든 경기에서 패배, 혹은 블론세이브가 없다는 점이었다.
지명타자가 도입되면서 타자들의 공격력이 한 층 올라갔다는 평가를 듣는 내셔널리그, 그것도 다저스, 자이언츠, 파드레스와 같은 컨텐딩 팀들, 그리고 쿠어스필드를 홈으로 쓰는(쿠어스 필드 등판도 두 차례 있었다.)로키스와 자주만나는 NL 서부에서 이뤄낸 성과라는 점이 더더욱 그의 가치를 올려주었다.
그렇기에 스칼렛은 제프리스를 NFS(Not For Sale) 명단에 올려두고는 모든 트레이드를 거절하고 있었다. 아무리 경기 초반 좋은 성적을 내더라도, 확실한 마무리가 없이는 승리를 챙기기 요원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당장 너희 팀에 필요한 선수는 아니잖아.”
“알아요. 아는데······.”
“오리올스와 같은 일이 일어날거라고 생각하는건 아니지?”
리빌딩 하는 팀에서 가장 필요없는 선수가 바로 뛰어난 마무리다. 원래 스칼렛도 지난 시즌 전만 하더라도 제프리스를 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리빌딩 중이던 오리올스의 대폭발을 직접 보고 나서는 그 마음이 바뀐 것이다. ‘어쩌면 우리 디백스도 저렇게 터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오리올스와 디백스의 상황은 많이 달라. 오리올스는 이미 리빌딩의 끝자락이고, 너희 디백스는 이제 막 본격적인 리빌딩을 시작한 참이잖아.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그냥 포기하고 넘겨.”
대런의 말에 약이 오른 스칼렛이 삐죽거렸다.
“넘겨도 내가 넘기는건데 넌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내가 레이스에 제프리스 넘기면, 너희가 상대해야하는데 그렇게 말해도 되는거야?”
그건 생각도 못했는지 대런이 아차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만. 다시 생각하니까 안파는게 좋을 것 같아.”
“됐네요. 값은 제대로 쳐줄거죠?”
어린 3년차 마무리.
평소였다면 엄청나게 비쌌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급 마무리가 무려 다섯 명이나 풀려있는 이번 FA 시장의 상황이 다운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런만큼 엄청난 지출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당연하지. 마음에 들때까지 거절해.”
정말로 그대로 하면 끝까지 트레이드가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운은 스칼렛이 그렇게까지 진흙탕 싸움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좋아요. 그럼 녹음기나 빨리 켜요.”
다운은 폰을 꺼내 녹음어플을 실행시켰다.
“나 스칼렛 패닝턴은 다운에게 정보를 얻는 대가로 NFS 명단에서 찰리 제프리스를 빼서 트레이드 제안을 듣는다.”
“나도 스칼렛 패닝턴에게 내가 아는 정보를 가감없이 거짓없이 알려줄 것이다.”
“나는 뭐라고 말할까요?”
양키스에는 당장 얻을게 생각나지도 않는다. 이미 필요한 유망주는 잘 데려왔고, 즉전감은 저쪽에서 주지 않을 것이다. 디백스에게 한 것 처럼 NFS을 풀어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미 생각하고 있는 선수들이 있었다. 그들에 더해서 양키스에서까지 선수를 데려오기에는 핵심 카드가 모자랐다.
“일단 넌 킵하자.”
“아······. 그게 더 불안한데······. 알겠어요 그러죠 뭐.”
대런까지 녹음을 끝낸 다운이 폰을 넣었다. 그리고 위스키를 한 모금 홀짝이며 말했다.
“윈터미팅 첫 날 F-Rod의 약물 폭로가 있을거야.”
다운의 폭탄발언에 그를 따라 위스키를 홀짝이려던 두 사람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경악한 얼굴로 다운에게 고개를 돌렸다.
“미친······.”
“그, 그게 진짜에요?”
“내가 그런걸로 거짓말해서 뭐하겠어. 우리도 F-Rod를 영입할 생각이 있었거든.”
그 정도는 두 사람도 예상했을거다. 레이스에게 F-Rod는 거금을 투자하기 최적의 조건을 가진 선수였으니까.
“그래서 이래저래 정보를 모으던 중에, 우리한테 해고당한 직원이 윈터미팅 첫 날에 그런 폭로를 할거라는 걸 알아냈지.”
다운의 말에 구단 역대 최고액을 지불하고 F-Rod를 영입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스칼렛이 충격에 휩싸였다. 스칼렛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동안 대런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엘링턴을 언급한걸로 봐서는 F-Rod만 약물을 한 건 아니라는거죠?”
다운의 앞에서는 나사가 빠진 것 같이 행동하긴 하지만, 대런은 벌써부터 양키스 사상 가장 성공적인 단장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만큼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만약 그랬다면 너에게까지 대가를 받으며 정보를 팔진 않았겠지.”
“적어도 우리가 영입하려고 했던 릭 엘링턴은 포함되어 있을거고······.”
“필리스 출신 FA 네 명은 다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돼. 그리고 그 주동자가 바로 F-Rod야.”
“그 정보까지도 다 교차검증을 한거죠?”
“F-Rod가 주동했다는건 윌슨한테 들었어.”
“아, 윌슨도 필리스 출신이었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다운은 윌슨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주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두 사람은 소름이 돋는듯 연신 팔을 비볐다.
“그래놓고 이미지 관리를 그렇게 한거야? 와······. 저 지금 소름 돋았어요.”
“메이저리거들 사이에서 형님이 아니라 약장사 하는 범죄자들의 형님이었잖아?”
“어때? 정보 듣길 잘했지?”
“당연하죠! 저희는 레이스를 포함해서 세 팀 정도가 F-Rod에게 관심이 있을 것 같다는 분석을 바탕으로해서 10년 3억 5000만 달러짜리 타임딜을 걸 생각이었다고요!”
타임 딜이라면 윈터미팅 전까지 유효하는 제안이었을 확률이 높다. 1루수 역대 최고액인 3억 5000만 달러짜리의 제안이라면 상황을 지켜보려고 생각중이던 F-Rod일지라도 뛰어나왔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아마 디백스는 약쟁이들이 판치는 팀이 됐겠지.
격한 스칼렛의 반응에 이어 대런이 마른세수를 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너희는 그래도 낫지. 우리는 이미 제안 넣어뒀어.”
“엘링턴한테?”
“어. 6년 1억 달러짜리로 넣어뒀어.”
선발투수 FA 중에서는 6위지만, 좌완한정으로 하면 올 시즌 그보다 좋은 활약을 한 FA 좌완은 없었다. 그래서 좌완 선발이 부족한 양키스에서 그에게 제안을 넣어둔 것이었다.
“다행인건 저쪽이 원하는 조건이랑 격차가 커서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는거야.”
“8년 1억 8000만 달러 정도는 원했을 것 같은데.”
“8년 2억 달러 이상을 원하더라고요. 뭐 실제로 협상을 이어나갔으면 1억 8000만 달러 선에서 협상이 이루어졌겠죠. 만약 그게 윈터미팅 전에 이루어졌다면······.”
양키스는 A-Rod의 약물 파동, 멜키 카브레라와 로빈슨 카노(둘 다 팀을 떠난 이후에 적발되긴 했지만, 이 시기에도 약물을 했을 것이라는 의심은 꾸준히 있었다) 이후로 또 한 번의 약물 파동을 겪게 되었을거다.
그랬다면 잘 나가던 양키스의 브랜드 이미지에 금이 가는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어쩌면 유망주들에게가지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어때? 대가가 비싸다고 느껴지지는 않지?”
“그럼요!”
“당연하죠.”
“그럼 마음편히 카드를 내밀어도 되겠구만?”
다운의 입가에 퍼지는 미소를 본 스칼렛이 흠칫했다.
“대런.”
“응?”
“나 네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다운의 표정을 확인한 대런이 다정하게 스칼렛의 어깨를 토닥였다.
“고생해라.”
< 166화 - 후회는 안하게 해드릴게(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