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후회는 안하게 해드릴게 >
외통수에 박혀버린 헤네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다운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넌 그냥 야구계에 환멸을 느끼고 다 폭로하고 떠나는거야. 그 과정에서 우리 구단의 이름이 나오면······.”
“절대 나오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래. 구단주님의 변호사단이 네가, 그리고 네 자식들이 죽는 그 날까지 고소하는 상황을 보고 싶지 않으면 그러는게 좋을거야.”
다운의 말이 상상이 되는지 몸을 부르르 떤 헤네시가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곧바로 할까요?”
“아니.”
저런건 극적인 무대가 필요한 법이다.
“윈터미팅 때 터트려.”
윈터미팅은 메이저리그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다. 자연스레 기자들의 이목역시 집중된다. 굳이 나서서 모으지 않아도 기자들이 미친듯이 몰려올거다.
“잘 해보자 알겠지?”
“네, 네.”
헤네시에게 필요한 자료들은 모아 넘긴 다운은 글라이드를 찾아갔다. 다운은 손에 낀 라텍스 장갑을 쓰레기통에 던져넣고는 소파에 앉았다.
그런 다운에게 글라이드는 심통이 잔뜩 난 얼굴로 물었다.
“그 놈은?”
헤네시의 인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고소할거라고 했던 것이 장난이 아니었는지, 글라이드의 눈에서는 살기가 비쳤다.
“갔죠.”
“에잉! 그런 놈은 작살을 냈어야하는데.”
“덕분에 야구계의 암을 치웠잖아요. 거기에 썼다고 생각하고 넘겨요 그냥.”
다운의 말에 불만인듯 틱틱대던 글라이드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웨인 그 자식이 폭로하면 우리 구단에게 불똥 튀는건 아니겠지?”
“의심의 눈초리는 있을거에요. 하지만 증거가 없잖아요.”
어깨를 으쓱한 다운이 씨익 웃었다.
“필리스가 모르고 있었다고 하면, 우리도 그 쪽 내부사정을 폭로할줄은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죠. 만약 필리스가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절대 우리 탓은 못할걸요?”
탓을 하는 순간부터 다운은 ‘그럼 알고도 말리지 않았던거냐?’라면서 역공을 가하면 그만이다. 결국 헤네시가 레이스와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실토하지 않는 이상은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은 있었다.
“만약 헤네시가 우리와의 관계까지 폭로하면?”
“그럴 깜냥도 안되는 놈이란거 알잖아요.”
“그래도 안전장치는 해놔야지. 정보유출로 500만 달러짜리 소송 하나 걸어놓는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우리랑 관계가 드러날거에요. 우리가 원하는대로 해주는 순간 고소를 취하하거나 합의해줘야 하니까요. 그래도 믿을건 있어요. 그 놈은 우리랑 연관되었다는 증거를 절대 못대거든요.”
다운은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소파에 기댔다.
“일단 단장실에 들어오기 전에 녹음기는 물론이고 핸드폰까지도 다 못들고 오도록 만들었죠. 그리고 자료 역시 동네 인쇄소에 찾아가서 뽑은 뒤, 아무런 무늬도 없는 봉투에다가 넣었죠. 마무리로 그 놈한테 넘기는 순간까지도 아까 저기 쓰레기통에 있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있었죠.”
다운은 자신이 상식선에서 알고 있는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그에게 건넨 자료에서 레이스를 지웠다.
“그런데도 레이스를 걸고 넘어진다? 그때는 명예훼손까지 걸어서 소송 걸죠.”
다운의 사악한 계획이 마음에 들었는지 글라이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그래서 이제 어떨 생각이냐?”
“글쎄요······. 아직 생각 중이에요.”
이번 이슈가 터지면 F-Rod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FA 시장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필리스 소속 FA
F-Rod - 1루 최대어
조엘 프렐라 - 좌익수 FA 4위
릭 엘링턴 - 선발 FA 6위
잭 클레버 - 마무리 FA 3위
FA시장에서 무려 네 명의 선수들이 필리스 소속이었다.
“저 중에서 잭 클레버는 빼도 되지 않을까?”
클레버는 3년 전 필리스와 2+1년 5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었던 선발이다. 그런데 불펜으로 가더니 대폭발을 해서 마무리 FA 3위까지 올라간 투수였다.
“안되죠. 불펜으로 가서 잘된건지 약을 써서 잘된건지 알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아까 찾아봤는데 F-Rod랑도 상당히 친하네요. 개인적으로 만났던 사진들도 있어요.”
“연관됐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거네.”
결국 네 명 다 나가리다.
“중요한건 이 정보를 알고 있는게 우리밖에 없다는거죠.”
정보는 곧 힘이고, 돈이다. 이 바닥은 특히 더 그렇다.
“디백스에는 안 알려줘도 되나?”
다운이 최근 대런과 스칼렛 두 사람과 꽤나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건 글라이드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공짜로 주는 일은 없을거에요.”
“또 얼마나 뜯어내려고?”
“글쎄요. 그건 내일이 되어봐야 알 것 같은데요.”
“내일 뭐 있어?”
“셋이서 오프시즌 기념으로 술 한 잔 하기로 했죠.”
“또 한사발 뜯어오겠구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글라이드는 전시되어있는 위스키 중에서 고가의 위스키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다운에게 건네주었다.
“속 쓰릴텐데 좋은거라도 좀 멕여라.”
“그럴게요 흐흐!”
***
다음 날 저녁.
스칼렛과 대런이 탬파를 찾아왔다. 이들은 새로 개장한 글라이드 파크를 돌아보며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구장 진짜 좋네.”
“우리 홈 구장도 진짜 좋다고 생각했는데, 글라이드 파크 보니까 그 생각이 쏙 들어가네.”
“양키 스타디움 정도면 좋은 편이지. 우리 체이스 필드는 98년 개장한 구장이라고.”
하지만 이 주제는 곧 바뀌었다.
“푸드코트는 어디있어요? 좀 잘 돼요? 그걸로 돈 더 번다면서요?”
단장 셋이 모이니 주요 주제는 구단 운영에 관한 것이 되었다.
“다음 시즌은 되어봐야 알 것 같은데. 일단 지금은 잘 되는 편이야. 오프시즌에 돈 벌이가 없는 기간에도 꾸준히 돈이 들어오니까 기분은 좋더라.”
“우리도 오프시즌이라던가 홈 경기가 없는 날 돈 벌 건덕지를 좀 만들어야 하는데······.”
“양키스는 괜찮은 편이지. 그래도 뉴욕시티 FC 경기가 있잖아.”
양키스와 맨체스터 시티가 공동출자해서 만든 뉴욕시티 FC는 새로운 구장이 완공될때까지 양키스의 홈 경기가 없을 때에 양키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덕분에 양키스는 디백스에 비해서는 홈 경기가 없는 기간에도 수입원이 있는 편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좀 수익 올릴 방법 없나?”
“푸드코트 잘된다잖아. 너희 쪽에서도 해봐.”
“우리도 체이스 필드하고 연계된 몰 하나 옆에 지을까?”
“길 건너에 있는 주차타워 거기 밀고 몰 하나 지어. 어차피 그 땅도 패닝턴 가문 꺼 아냐?”
“맞아. 체이스 필드 서브 주차공간으로 쓰고 있었지.”
역시 있는 집안 놈들이 하는 대화는 클라스가 다르다.
“그거 밀고 지하 4층, 지상 5층 정도 몰 하나 지으면 되지. 3층 정도에는 체이스 필드랑 이은 다음에 글라이드 파크처럼 꾸미면 괜찮지 않을까?”
“다운이 그렇게 말하니까 괜찮은 것 같네요.”
“대신 그렇게 하려면 우리처럼 E-티켓 도입해야할거야. 그렇게 안하면 너무 관리가 힘들어져.”
“안 그래도 다음 시즌에 E-티켓 100% 도입 생각중이에요. 이번 시즌에 시즌권자들에게 한정해서 도입해봤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래? 우리도 다음 시즌 시즌권 홀더들한테 도입해볼까 하는데 어떤 점이 만족스러웠대?”
“빠르게 입장할 수 있는 것이 제일 좋았다던데. 저기 저 출입문 정보 좀 알 수 있을까요 다운?”
“우리 구단에 맞춰서 주문제작한거야. 업체정보는 메일로 보내줄게.”
“고마워요.”
별다른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덧 해가 머리 위에서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푸드코트에서 안주거리를 사서 구장이 내려다보이는 단장실에 들어가서 술자리를 열었다.
비밀이 보장된 공간에서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자 외부인이 들을 수도 있는 공간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 메인 주제는 역시나 FA에 관한 이야기다.
“다운. 다운이 보기에는 이번에 FA 시장에서 제일 괜찮은 선수가 누구인 것 같아요?”
“그래도 F-Rod가 아닐까? 만약 우리한테 1루 자리가 남아있었다면 무조건 영입했을거야.”
“네 생각을 물은게 아니야 대런.”
“다운도 어차피 똑같은 답 할걸? 디백스에서 노리고 있다고해서 그렇게 아닌 척 할 필요 없잖아.”
“다운의 생각은 다를수도 있지. 안그래요 다운?”
“같을거라니까?”
두 사람의 눈이 다운에게로 돌아갔다.
‘굳이 판을 깔 필요도 없었네.’
안그래도 제멋대로 날뛰는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분위기를 몰아가야하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알아서 분위기를 만들어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어어? 저거 안좋은데.”
다운의 표정을 확인한 대런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안좋아?”
“다운이 지금 짓는 저 표정 있잖아.”
“표정이 안좋아?”
“저 표정 볼 때마다 뭔가 굉장히 손해보는 일이 생겼거든.”
하여간 눈치는 빠르다.
“크흠! 괜한 소리 하지말고. 내 생각이 궁금하다고?”
다운은 헛기침을 하며 빠르게 주제를 돌렸다.
“실력적인 면으로 따지자면 F-Rod가 최고지.”
다운은 일부러 그들의 말에 동의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대런은 그런 다운의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뭔가 있는데······.”
대런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만약 다운이 정말로 F-Rod가 최고라고 생각했다면 그냥 담백하게 최고라고 말했겠지, ‘실력적인 면’이라는 수식어 따위는 붙이지 않았을거야.”
대런은 마치 셜록 홈즈에 나오는 오이형처럼 추리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F-Rod는 누가봐도 최고의 픽이란 말이지. 실력적인 면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인성도 좋아. 게다가 필리스를 싫어하는걸 봐서 영입하면 명예의 전당도 앞으로 갈 팀의 모자를 쓰고 갈 확률이 높아. 그런 선수를 보고 ‘실력적인 면’에서는 최고라는 평가에 그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돼. 내 경험에 따르면 F-Rod에게는 분명히 어떤 문제가 있는거야.”
날카로운 대런의 추리에 F-Rod를 영입할 생각이 있었던 스칼렛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말이 진짜에요 다운?”
이미 대런이 다 말한 입장에서 숨길 이유는 없다. 다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외부에는 풀리지 않은 비밀 정보가 있어.”
F-Rod를 영입할 생각이 있었던 스칼렛은 다운을 보며 애처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무슨 정보인지 저한테만 사알짝 말해줄 수 있어요? 네?”
그리고 대런은 자신의 추리가 맞았다는 생각에 실실 웃고 있었다.
또 그런 꼴은 못보는게 다운이다.
“대런. 너희 릭 엘링턴 영입할 생각 아니야?”
다운의 말에 생글거리던 대런의 얼굴이 싸악 굳었다.
“설마······.”
두 사람의 표정이 모두 굳는 것을 확인한 다운이 그제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영어 속담 중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속담이 있는데 뭔지 궁금하지 않아?”
대런과 스칼렛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안궁금한데요.”
“몰라도 될 것 같아요.”
다운은 그들의 의견따위는 묵살하고 말을 이었다.
“No pain. No gain.”
다운의 왼쪽 입꼬리가 광대를 향해 휘어졌다.
“알고 싶으면 대가를 제시해. 후회는 안하게 해드릴게.”
< 165화 - 후회는 안하게 해드릴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