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어떤거 고를래? >
일단 직접적으로 찌르는건 불가능하다. 2020년 익명이 철저히 지켜진 메이저리거 사이에서의 통계 조사에서,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 적어도 25% 이상은 약물을 한 번 이상 사용한 전적이 있다고 했다. 익명이라고는 하지만 밝히지 않았던 선수도 있을 것이고, 마이너리거들까지 포함하면 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거다.
이렇게 수많은 약쟁이들이 있는데도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메이저리그는 약물에 관대하니까.
미첼 리포트, 바이오제네시스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금지약물로 인해 엄청난 홍역을 앓아온 메이저리그이기에 검사 자체는 굉장히 까다롭게 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징계는 솜방방이나 다름없었다.
1번째 적발 80경기 정지
2번째 적발 162경기 정지
3번째 적발 영구퇴출
금지약물을 하더라도 무려 세 번의 기회가 있다. 그러다보니 선수들 사이에서도 ‘첫 번째 적발때까지는 약을 사용해서 몸을 키우자’라는 말이 돌기도 한다고 한다. 징계 기간 동안에 구단은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이왕 걸릴거면 주목과 임금을 덜 받는 마이너에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에 걸리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이렇듯 약물을 한 번이라도 접해본 선수가 리그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보니 구단에서 공개적으로 그것도 소속 팀의 선수가 아닌 선수를 저격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남의 구단 선수도 저렇게 저격하는데, 자기 구단 선수라고 지켜주긴 할까?”
라는 이미지가 박혀버리면, 지금까지 선수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갖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운은 한 가지 꾀를 냈다.
“리타.”
“네.”
“웨인 좀 불러줘.”
잠시 후 리타가 웨인 헤네시를 데리고 들어왔다.
“하하 부르셨습니까 단장님?”
웨인 헤네시.
레이스 운영파트에서 일한 지 5년 된 35살의 직원이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얼굴이 꽤나 매력적이어서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기 좋은 얼굴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리올스에게 구단의 드래프트 정보를 팔아넘긴 놈이기도 했다.
“앉아.”
다운은 앞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고는 옆에 있는 냉장고에서 직접 주스를 따라 그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헤네시는 주스를 쭉쭉 잘도 들이켰다. 그게 그가 레이스에서 마실 수 있는 마지막 음료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웨인. 자네 부모님께서 마이애미에서 작은 펍을 운영하신댔지?”
“네.”
“그거 다행이네.”
“혹시 여름에 가실 일 있으신가요? 그럼 제가 미리 말해놓겠습니다! 하하!”
호탕하게 웃는 그를 향해 다운은 마주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다행이라고 한 이유는 앞으로 자네가 여길 나가도 먹고 살 일은 있는 것 같아서 그런거야.”
순간적으로 헤네시가 벙쪘다.
“네?”
“똑똑히 들었으면서 왜 못 들은 척 하고 있어 웨인. 해고라고. 해고.”
사람은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대면했을 때, 처음에는 부정을 한다.
“아니, 제가요? 제가 해고라고요?”
“맞아. 해고야.”
그리고 나서는 분노한다.
“아니 제가 왜 해곱니까? 지난 5년간 제가 운영팀에서 얼마나 굴렀는데! 단장님이 오신 뒤에도 항상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해고라고요?”
“찾는데 정말 힘들었어 웨인.”
다운의 말에 헤네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나서는 뭔가가 떠올랐는지 얼굴에서 붉은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뭔지 짐작한 것 같은데?”
“무, 무슨 말씀이신지······.”
“브루스 찬”
내부자들이 자신의 계좌로 돈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나 헤네시의 경우에는 더더욱 힘들었다.
“설마 사촌 형의 사위의 동생 계좌로 돈을 받을줄이야. 생각도 못했어.”
내부자의 이름과 거래계좌 사이에서의 상관관계를 찾아내는데 거의 한 달은 걸린 것 같다.
“어, 어떻게······.”
“어떻게 알기는, 우리가 정보원이 얼마나 많은데. 사실 알아낸지는 조금 됐어. 8월 말쯤 확실히 알아냈으니까 2개월 정도는 지났지.”
“그······.”
“그런데 왜 지금까지 놔뒀냐고? 그야 당연한거 아냐? 너 같은 쥐새끼들은 꼭 도망갈 구멍을 대여섯개 만들어 놓는 법이거든. 그래서 그 모든 구멍을 차단시키느라 그랬지.”
다운의 표정을 살피던 헤네시는 잽싸게 소파 옆으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다, 단장님 사실 저는 그럴 생각이······.”
“녹음은 왜 너만 했을거라고 생각하지 웨인?”
헤네시의 말문이 턱 막혔다.
“앙헬로스에게 이미 녹음본을 받아놨어. 굳이 그 탓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 네가 먼저 제안했고, 앙헬로스는 그걸 받아들였을 뿐이니까.”
“부모님의 가게가······.”
“아주 잘되더라. 혹시 몰라서 연줄을 통해서 수익을 추산해봤는데, 엄청 버시더라고? 역시 관광지에서 목 좋은데 있는 레스토랑은 달라.”
“건강이······.”
“양친은 물론이고 네 여동생과 그 사위, 그 처가까지도 다 건강하더군. 네 약혼자와 처가도 물론 건강하고. 차라리 도박빚이 있다고 하는게 더 설득력 있겠어 웨인.”
“사실은 제가 정말 도박빚이······.”
“저런. 그러게 적당히 하지 그랬어. 그걸 우리가 갚아줘야 할 이유는 없는거지? 앞으로 도박은 끊도록 해.”
다운은 그가 변명하는 족족 칼같이 차단해버렸다. 결국 그가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돈에 눈이 멀어······.”
“그래. 그 이유 말고 뭐가 있겠어. 네가 10만 달러에 판 정보 덕에 우리 레이스는······.”
고개를 끄덕인 다운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었다.
“누구도 모르던 1라운드 픽을 빼앗겨야했고, 예상했던 것과 다른 1라운더를 뽑아야했고, 덕분에 올 시즌 드래프트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버렸지. 게다가 그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 멜튼까지도 보내야했지.”
“그, 그건 너무 큰 비약이지 않습니까?”
“전혀. 멜튼은 우리와 연장계약 진전이 있었어. 하지만 네가 스탠하우스가 우리가 원하는 패라는 정보를 넘겨줘버리는 바람에 지구 라이벌인 오리올스에 그를 넘겨줘버릴 수 밖에 없었지.”
록하트와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알게 뭔가. 어차피 헤네시는 그런 이야기가 오갔다는 것도 모를텐데 말이다.
“네가 망쳐버린 드래프트와 멜튼의 가치, 스탠하우스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 우리가 줘야했던 선수들까지 다 생각하면 우리 레이스는 적어도 1000만 달러 정도의 손해를 입었어.”
생각지도 못했던 큰 금액에 헤네시는 입을 떡 벌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너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할 생각이야. 1000만 달러짜리로 말이지.”
“다, 단장님! 제 전 재산을 털어도······.”
“알지. 1000만 달러 안되는거. 부모님 가게까지 팔면 가능은 하겠지만, 부모님이 도와주시기나 하겠어? 당연히 1000만 달러를 다 받을거라는 생각은 안해. 잘 해야 100만 달러 받으면 다행이려나?”
“그럼 한 번만 봐주시면······.”
“그건 안되지. 내부 정보를 빼돌린 놈에게는 본때를 보여줘야지 다른 놈들이 같은 선택을 안하지. 안그래?”
“제가 미친놈이라서 그렇지, 정상적인 놈들이라면 절대 그런 생각 안할겁니다!”
“그런 미친놈이 우리 프런트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 참고로 우리 측 변호사는 구단주님이 최고로 붙여주시기로 했어. 내부 정보 유출에, 우리가 입은 손해까지 말하니까 날뛰고 난리도 아니셨지. 네가 지금까지 길에서 쓰레기 버린 것 하나까지도 다 소송걸거라고 하더라고. 그러니 네 남은 인생은 끝났다고 봐도 돼.”
글라이드는 언제나 레이스 경기를 보며 헤실헤실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직원들이 보기에 누구보다 인간적인 구단주였다. 하지만 그가 이런 일에는 누구보다 냉철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저 많은 재산을 축적하지는 못했을테니까. 게다가 레이스에게 손해가 가는 일이라면 불같이 달려드는 성격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다운의 말이 전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털썩
그를 지탱하던 무릎이 옆으로 꺾였다. 그리고 아예 철푸덕 엎드려서는 다운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단장님! 한 번만 살려주십쇼! 단장님 진짜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시면 시키시는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클러비라도 하면서······.”
뭐든지 하겠다는 저 말. 저걸 기다렸다. 다운은 입꼬리를 올리며 상체를 숙였다.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다?”
뭐든지라는 말에 헤네시가 살짝 움찔했다.
“사, 살인이나 테러같은 것만 아니면······.”
“그것만 아니면 다 하겠다는거지?”
“네, 네!”
다운의 마음이 바뀌는 것 처럼 보이자 헤네시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부고발 몇 개만 더하자고.”
“네?”
다운은 책상에 있던 서류 몇 장을 집어 헤네시의 앞에 던졌다. 바로 F-Rod에 얽힌 약물 의혹과, 그에게 약물 권유를 받았던 익명의 선수가 한 인터뷰. 그리고 F-Rod가 약물을 제안했다고 외치다 사라진 마이너리거들의 명단까지.
“이건······.”
헤네시는 야구계에서 도합 11년을 몸담고 있었다. 그런만큼 이 자료가 가져올 파급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FA를 선언하는 F-Rod를 시작으로해서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도핑검사가 대대적으로 들어갈거다. 특히나 그가 머물고 있었던 필리스에 대한 검사는 더더욱 강할 것이다. 필리스 소속의 선수들에게는 ‘약물 구단 소속’이었다는 꼬리표가 붙을수도 있었다.
“이걸 저보고 하라고요?”
“왜? 못하겠어?”
“이거 고발하면 저 다른 야구단에, 아니 아예 야구계에 발도 못붙입니다!”
“웨인, 웨인. 우리 구단 정보를 빼돌린 순간부터 넌 이미 야구계에서, 아니지. 아예 모든 스포츠 계에서 아웃이었어. 왜? 네가 어디에 취직하든 우리 변호사가 찾아가서 네가 한 짓을 알려줄 생각이거든. 생각해보니 스포츠 계 뿐만 아니라 모든 회사에서도 아웃이겠네. 우리 구단주님이 알고 계시는 회사가 정말 많거든. 그 회사들이 아니더라도 내부 정보를 유출한 사람을 좋아하는 회사가 있을까? 생각이란걸 좀 하지 그랬어 웨인.”
그런건 생각도 못했는지 헤네시의 얼굴은 이제 하얀색을 넘어서 푸른 빛으로 보일 정도다. 하긴 그런 생각을 했었으면 저렇게 정보를 빼돌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도 않았겠지.
“그러니 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딱 두 가지야.”
다운은 오른손 검지를 폈다.
“1000만 달러 소송과 함께 평생 취직도 못하면서 구단주님이 보내는 변호사에게 쫓겨서 일생을 살아가던가.”
다운의 중지가 검지 옆에서 기다란 자태를 뽐냈다.
“야구계 때려치면서 약물 선수 대거 폭로하고 마음편히, 빚 없이 부모님 가게에서 일하던가.”
다운은 상큼한, 그러나 헤네시에게는 누구보다 사악해보일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떤거 고를래?”
< 164화 - 어떤거 고를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