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리빙 레전드 쟁탈전 이었던 것(3) >
[뭐 그 뒤에는 다들 아는 이야기죠. 그때 F-Rod가 힘을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한 달도 안돼서 트레이드 되었거든요.]
윌슨의 폭로에 회의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허! F-Rod가 약쟁이었다고?”
“말도 안돼!”
그 와중에 클라인이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무릎을 탁 쳤다.
“그러고보니 한 번 그런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습니다. F-Rod가 약을 한다고요.”
“그런데 그게 왜 공론화가 안됐죠?”
“그야 폭로한 사람이 마이너리거였으니까요. 성적도 좋지 않은, 나이도 어느정도 찬, 마이너리거가 하는 폭로. 사람들이 어떻게 봤을 것 같습니까?”
“시기와 질투.”
“맞습니다. 당시에는 시기와 질투 때문에 F-Rod를 공격하는 그런 사람 취급을 받았죠. 워낙에 F-Rod가 평소에 이미지도 좋고, 신사 같은 느낌이잖아요. 그래서 더 보호를 받았던 것도 있죠.”
[저도 그래서 폭로하지 못했죠. 제가 그런말을 한다고해서 사람들이 믿어줄 리가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다.
“말을 들어보면 근육촉진보다는 각성제 종류인 것 같지?”
“그런 것 같군요. 더 잡아내기 힘들겠네요.”
약을 복용하는 주기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근육촉진이 아닌 각성제류는 ‘어느정도 실력이 있는 선수’가 먹어야지 큰 효과를 발휘한다. 이미 기본기가 튼튼한 F-Rods는 약을 먹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성적이 보장된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원한다면 매일 먹을 수도 있는 것이고, 적당히 성적 관리가 필요할때만 먹을수도 있다.
“아마 성적관리가 필요할때만 몇 알 먹고 마는 식으로 했겠지.”
도핑테스트는 무작위, 불시검문이 원칙이다. 원칙적으로는 밤에 잠을 자는 와중에도 도핑테스트를 하는 사람이 와서 검사를 요청하면 받아들여야하는게 메이저리거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거도 사람이고, 도핑 테스트를 하는 사람도 사람이다. 그렇다보니 시즌 중에는 대부분의 검사가 경기 전후로 이루어진다. 아침에 먹으면 도핑 테스트를 하기 전에 이미 몸에서 사라지고 없는 약을 어떻게 잡아내겠는가.
“최근 10년간 필리스 도핑 적발건수가 몇 건이죠?”
다운의 질문에 클라인이 손가락을 빠르게 놀려 자료를 찾았다.
“지난 10년간 총 153건 적발됐네요.”
“우리 구단은요?”
“54건입니다.”
단순 수치로만 따져도 2배 이상 차이난다. 게다가 레이스는 다운이 온 뒤로 구단 내부 도핑테스트도 추가했다. 그럼에도 최근 2년간의 적발건수는 단 7건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필리스는 햇수로 따지자면 연간 15.3건. 도핑 테스트가 불시에 무작위로 시행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저것보다 더 많은 선수들이 약물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성적이 좋지 못한, 나이가 꽤 있는 유망주들이겠지?”
“네.”
아주 악질이다.
일부러 자신과 이미지가 완벽히 대조되는 선수들만을 골라서 약을 제공했다. 그들에게서 어떤 말이 나오더라도 시기와 질투 때문에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는구만.”
F-Rod가 F-Roid일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모든 내막을 알게된 다운은 일초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
“거르죠.”
금덩어리가 아니라, 도금된 똥덩어리였다. 하마터면 레이스 전체에 똥이 묻을 뻔 했다.
“이렇게되면 결국 덕을 믿고 한 시즌을 더 맡겨보는 수 밖에 없겠네요.”
“거스. 코너는 이번 시즌 어땠어요?”
코너 재머는 22년 드래프트 때 추후 트레이드로 말린스에서 데려온 대학 최고의 1루수 중 하나라는 평가가 자자했던 유망주.
“타격능력은 좋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좌투수를 상대로는 영 타격이 좋질 못합니다.”
“결국 덕의 파트너로는 무리라는 말이네요.”
결국 외부에서 1루수를 수혈해오는게 최선이다. 하지만 최상급의 1루수는 약쟁이었고, 다른 구단에서 트레이드 매물로 내놓은 1루수들은 1루수라는 포지션의 가치에 비해 너무 비싼 값이 붙어있었다.
다운의 미간에 있는 골이 깊어지고 있을 때, 스피커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저······.]
생각해보니 아직 윌슨과의 통화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 미안, 알렉스. 힘든 이야기였을텐데, 우리에게 말해줘서 고마워.”
[아, 그건 당연히 해야할 일이죠. 우리 모두 레이스에 속한 가족이잖아요.]
윌슨의 말에 다들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남은 휴가 잘 보내고, 필요한 일 있으면 얼마든지 전화해.”
그럼 스프링 트레이닝때 보자고 말을 하려는 순간 윌슨이 황급히 다운을 불렀다.
[저 다운! 그렇지 않아도 물어볼게 있었는데요.]
“혹시 혼자 들어야 하는 이야긴가? 그러면 회의 끝나고 나서 다시 전화하거나 아니면 잠깐 나가야하니까.”
[어차피 프런트 파트장들만 있는거 아닌가요?]
“맞아.”
[그러면 상관없을 것 같아요.]
“그럼 편하게 물어봐.”
[다름이 아니라, 다음 시즌에 대한 이야긴데요······. 제 출장시간은 다음 시즌에 더 줄어들겠죠?]
아마 그럴거다.
비어만은 이제 더이상 출장시간 분배가 필요한 애송이 포수가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더 많은 포수 출장이다. 따라서 윌슨의 출장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건 윌슨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 결정된 건 없어 알렉스. 그건 스프링 트레이닝에 들어가봐야······.”
하지만 윌슨은 자신의 상황을 모르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확실히 말해줘요.]
“······ 줄어들거야. 물론 조나는 네가 마스크를 쓰는걸 더 선호하기 때문에 조나의 선발경기나, 너클즈의 선발경기때는 네가 출장할수도 있지.”
[이번 겨울에 샘이 너클즈하고 함께 합숙훈련한다던데요?]
“······ 그럼 파인트의 경기를 제외하고는 네 출장이 줄어들 확률이 높아. 샘의 체력안배를 위해서 출장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야.”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다운.]
윌슨은 아직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포수다. 그의 타격능력은 아직 멀쩡하고, 수비만큼은 그 어떤 구단을 가도 주전 마스크를 쓸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밀려오는 새로운 파도를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게 되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런 그에게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
하지만 윌슨은 그저 멈춰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럼 저에게 한 번만 기회를 줄 수 있을까요?]
“기회?”
[지금 1루수 영입한다면서요? 그것도 우타 빅뱃이 필요한거 아니에요? 덕이랑 짝을 이룰 수 있는 그런 빅뱃?]
“맞아 찾고 있는, 설마······.”
[우타 플래툰 1루수 제가 맡아봐도 될까요?]
윌슨의 1루 전환. 다운을 비롯한 프런트에서 이걸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우타로 한방과 선구안이 출중한 윌슨이라면 1루로 전향해도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거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만약 윌슨이 1루로 가준다면, 포수 출장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서브 포수로 톰슨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고, 우타 1루수를 영입할 필요없이 윌슨이라는 백업포수 겸 1루수를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야말로 1타 3피.
그럼에도 다운이 그의 전향을 배제한것은 브래넌과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윌슨이 가지고 있는 포수로서의 고민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선수 본인의 의지를 꺾고 포지션 변경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야.’
그것도 포수로 끝까지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윌슨에게 말이다.
물론 다운의 제안은 ‘제안’으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그 제안을 받아야하는 윌슨의 입장에서는 강요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아니, 상황상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비어만의 출장을 보장해주려면 네 출장은 줄어들거다. 출장을 보장받고 싶으면 1루수로 가라!’처럼 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다운은 윌슨에게 그런 제안을 건네지 않았다. 그건 노력하는 선수에 대한 기만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선수가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해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운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최대한 아래로 눌렀다.
“괜찮겠어?”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다.
이렇게 한 번 포수자리에서 밀려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 것이다. 시즌 초반에는 모르겠지만, 중반부에 접어들면 1루수와 포수를 번갈아 출장하는 윌슨에게도 분명 부하가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톰슨을 콜업해야하는데, 톰슨이 콜업되는 순간부터 윌슨의 포지션은 ‘백업 포수 겸, 우타 1루 플래툰’이 아니라 ‘우타 1루 플래툰 겸, 3번째 포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밀려버리면, 누군가가 부상당하기 전까지 포수 자리에 돌아오는 건 힘들어질거다.
그렇다고 1루로 전향한다고해서 출장이 드라마틱하게 많아지냐? 그것도 아니었다. 우타 1루 플래툰의 목표는 상대방의 좌완 투수, 그것도 좌완 선발을 잡는 것이다. 리그 전체 선발의 25%정도가 좌완이다. 그 말은 곧 아무리 그가 1루로 전향한다 하더라도, 당장에 출장기회는 흘로첵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1루는 포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포지션이다. 많은 포수들이 커리어의 후반기, 혹은 체력을 관리하기 위해서 1루로 출장하곤 한다. 하지만 그게 1루 수비가 쉬운 이유는 되지 않는다. 수비 할 때, 바라보는 방향부터, 강습타구와 땅볼, 송구를 잡는 그 모든 것에 새롭게 익숙해져야한다. 레이스의 1루수를 맡으려면 그것도 아주 잘 해야만 한다.
다운의 말은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1루로 가도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괜찮아요.]
윌슨의 입에서는 곧바로 답에 나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빠른 대답이 오히려 다운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I’m Ok.
생각이 많은 윌슨이 이 짧은 문장을 곧바로 말할 수 있게 될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보답은 해줘야지.’
다운이 해줄 수 있는건 많지 않았다.
“좋아. 그럼 4월까지 너에게 기회를 줄게. 특수한 상황이 생기지 않는 이상 우리 레이스는 외부에서 1루수를 보강하는건 하지 않을거야. 대신 네가 적응하지 못한다면······.”
[트레이드 될 가능성도 있겠죠. 에이전트가 다운이라면 얼마든지 저에게 줄 1000만 달러까지 다른 구단에서 뜯어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부인할수가 없네.”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다운이 다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단장이야. 구단에 이익이 되는 최선의 선택을 항상 해야만 하는 그런 자리지. 구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네가 가장 가치가 높을 때 널 팔아치울 수 밖에 없어. 만약 네가 1루로 가면 그렇다는 말이야.”
[감수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좋아. 그럼 1루 수비 준비해. 그렇다고 포수 훈련을 멈추는건 안돼. 필요하면 피트한테 말해. 네가 1루 수비훈련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테니까.”
[휴가 갔다와서 바로 연락할게요.]
“그때면 나도 휴가 갈거야 이놈아!”
클라인의 농담에 다들 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 알렉스.”
전화를 끊은 다운은 화이트보드에 적혀있는 ‘1루 보강’에 줄을 그었다.
“1루는 해결됐는데······.”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F-Rod에게 엿을 먹이고 싶기도 하고, 그를 대신할만한 슈퍼스타를 영입하면서 팬들을 광분시킬만한 뉴스도 필요했다.
“어떡한담······.”
< 163화 - 리빙 레전드 쟁탈전 이었던 것(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