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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MLB 단장-162화 (162/268)

< 162화 - 리빙 레전드 쟁탈전 이었던 것(2) >

예상치도 못한 브래넌의 외침에 회의실에 있던 파트장들의 얼굴에 일제히 물음표가 올라왔다.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나하고 F-Rod 사이에서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었냐고? 차라리 그랬으면 내가 반대는 하지 않았겠지. 나도 은퇴 전에 월드시리즈 우승은 하고 싶은 놈이야. 그놈 실력이라면 우리 팀에 도움이 된다는걸 왜 모르겠어? 아마 내가 먼저 숙이고라도 들어갔을거야.]

그렇다면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럼 자선 골프대회 이후로 친하다는건 뭔데?”

[친했지. 알렉스한테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멀어졌지만.]

“이유가 뭔데? 우리 귀는 열려있어.”

[솔직히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직접적인 이유는 없어.]

“그럼?”

[알렉스한테 들은거야.]

“알렉스? 알렉스 윌슨?]

[어. 알렉스가 마이너시절에 필리스에 있었잖아.]

그러고보니 윌슨도 마이너시절에 필리스에서 1라운드 2번째로 뽑혔던 특급 포수 유망주다.

[알렉스가 프로에 오고 한창 힘들었잖아.]

“그랬지.”

당시 아마추어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드 스파이크 어워드를 2년 연속 수상했던 윌슨에 대한 기대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 당시 윌슨은 그런 필리스 팬들의 어마무시한 관심과 기대를 견뎌낼 정도로 단단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는 마이너에서도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 다가온게 F-Rod라고 하더라고. 자세한 사정을 알기는 하는데, 내가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알렉스한테 한 번 물어봐봐.]

“오케이. 고마워 배리. 재활 잘 하고, 추천할만한 선수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고.”

[좌익수 빼고 추천해도 되냐?]

“네가 그렇게 말해도 넌 이제 지명타자 빼고 뛸 일 없으니까 꿈 깨시지.”

[제엔장. 끊는다!]

브래넌과의 전화를 끊은 다운은 곧바로 윌슨에게 전화를 했다. 원래라면 메시지를 보낸 다음에 전화를 했을테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곧바로 전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윌슨은 다운의 전화를 곧바로 받았다.

[여보세요?]

뭔가 불안한 듯한 윌슨의 목소리. 그리고 그 옆으로 아이들이 떠드는 목소리가 새어들어왔다.

“알렉스. 통화가능해? 긴히 할 말이 있는데.”

[잠시만요.]

어디론가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한층 차분해진, 비장한 목소리로 윌슨이 물었다.

[후······. 준비됐어요. 트레이드인가요?]

때아닌 윌슨의 비장한 말에 파트장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풉!”

“하핫!”

“피식.”

“큭큭!”

다운도 예외는 아니었다.

“풉! 아니 알렉스.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거야?”

결국에 회의실에는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윌슨은 긴장이 탁 풀렸는지 할 말을 잃었다.

“아, 아니······.”

얼마전 윌슨에게 에이전트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윌슨에게 말했다.

“알렉스.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 같아.”

“무슨 마음의 준비?”

“트레이드.”

“어? 내가 트레이드 되는거야? 우리 1000만 달러짜리 바이아웃 있잖아.”

윌슨을 트레이드 시키는 바로 그 순간 레이스는 윌슨에게 1000만 달러를 지급해야한다.

“레이스가 가난하던 시절에야 그 조항이 위력적일거라고 예상했지, 하지만 이제 레이스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부유해졌어. 1년에 1000만 달러는 아무것도 아닌 팀이 된거지. 게다가 단장이 다운이야. 필요하다면 1000만 달러라는 금액은 트레이드 시키는 팀에 넘겨버릴 능력도 있는 사람이야.”

생각해보니 그럴듯했다. 다운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비어만을 봐. 네가 없었다면 MVP레이스에도 뛰어들 수 있는 유망주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잖아. 팀 입장에서는 앞길이 창창한 유망주에게 걸림돌이 될 선수를 치우고 싶을거야.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해.”

에이전트에게 이런 말을 들은것이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윌슨이 이렇게 불안해하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거 아니니까 전혀 걱정할 필요없어 알렉스. 우리가 널 왜 버려? 그냥 물어볼게 있어서 전화한거야.”

[그럼 진지하게 할 이야기라는건······.]

“우리 팀이 F-Rod 영입전에 뛰어들 생각이었거든.”

[아······.]

목소리에서 순간 적개심이 느껴졌다.

“배리가 친하다고해서 배리에게 어떤 놈인지 물어봤지.”

[배리가 저에게 이야기를 들으면 될거라고 한 모양이네요.]

“맞아. 자세한 사정은 너에게 들으라고 하더라고. 혹시 이야기해줄 수 있겠어? 만약에 F-Rod가 정말 영입해서는 안될 선수라면 우리 측에서는 곧바로 다른 대안을 찾아야하거든.”

[잠깐만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앉아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그 정도 기다려줄 시간은 있지.”

잠시 후 윌슨이 입을 열었다.

[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네가 엄청난 기대를 받고 들어와서 마이너에서 한창 힘들어할 시절 F-Rod가 왔다고.”

[그럼 이야기하기 편하겠네요. 그 당시에 저는······.]

***

22살의 나이로 1라운드 2번째로 뽑혔던 윌슨은 엄청난 기대를 받고 마이너 생활을 시작했다. 실력에 자신이 있었던 윌슨은 프로생활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루키리그 까지만해도 그의 자신감은 지속되었다. 하지만 싱글 A에 들어간 순간부터 그의 자신감은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저런 사람이 왜 여기 있는거지?’

아무리봐도 자신보다 야구를 백 배는 잘하는 것 같은 선수들이 고작해야 싱글 A에 박혀있었다.

심지어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던 선수 중 하나는 얼마 뒤 라인업에서 사라졌다. 콜업된줄만 알았는데, 얼마 뒤.

“아, 알렉스. 네가 시킨거였어?”

피자 배달을 온 그와 마주치면서 콜업이 아니라 방출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5월에 말이다!

그걸 목격한 순간부터 윌슨은 굳게 마음먹었다.

“누가 뭐래도 포수는 수비다! 수비 하나만 잘해도 나는 절대 저렇게 방출되지 않을거야.”

그렇게 수비를 갈고 닦기 시작했지만, 높디높은 프로의 벽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낮아지지 않았다.

프로에 온지 3년이 지났을 때, 윌슨은 싱글 A를 지나 더블 A에 자리잡은 포수가 되어있었다.

그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다들 예상했겠지만, 바로 타격 때문이었다.

“알렉스 저 놈은 수비는 정말 괜찮은데 타격이 너무 부실해.”

“가진 힘은 좋은데, 공을 맞추는 능력이 너무 떨어진단 말이야.”

“선구안도 그렇게 좋은 것 같지를 않은데······.”

아무리 수비가 좋아도, 아무리 포수의 최고 덕목이 수비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공격력은 필요했다. 하지만 더블 A에서도 2할 초반을 때리고 있는 윌슨은 그 이상의 공격력을 기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이 시절 윌슨은 범생이 같던 자신의 성향을 버리고는 술도 많이 마시고, 세상을 한탄하기도 하고, 몸에 수많은 타투를 했다. 만약 지금 옆에 있는 아내가 없었더라면, 마약에까지 손을 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 때, F-Rod가 다가왔다.

시작은 리햅(재활)경기였다.

F-Rod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4주 가량을 이탈해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복귀하기 전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일주일 간 더블 A를 찾았다.

얼핏 본 그는 완벽한 사람처럼 보였다.

“사, 사인부탁해도 될까요?”

“하하! 얼마든지!”

선수들이 들러붙어 사인을 요구해도 웃으며 대해주고

“방금 내가 봤는데 말이야. 너 타격할 때, 중심이동이······.”

선수들이 훈련하는 것을 지켜본 뒤에도 피드백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어이! 다들 경기 끝나고 어디 가지 마! 오늘 내가 쏘는거다!”

심지어 매 경기 마치고 선수단에게 저녁을 대접하기도 했다.

‘저런 선수가 되고 싶다······.’

누구나 닮고 싶은 선수.

F-Rod가 바로 그런 선수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리햅 경기의 마지막 날이었다.

5경기 연속 선발 마스크를 쓰다가 주어진 휴식일. 윌슨은 더그아웃 구석탱이에 틀어박혀 해바라기 씨를 씹어대며 자신이 들어섰던 타석을 되돌려보고 있었다. 그런 윌슨의 옆으로 막 대수비와 교체된 F-Rod가 엉덩이를 붙였다.

“헤이.”

“헤이.”

윌슨의 인사를 받은 F-Rod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구석탱이에 있으면 뭐가 보여?”

“아뇨. 그래서 여기 있는건데요.”

팬들도 안보이고, 경기장도 잘 안보인다. 자신을 비난할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구석자리. 그래서 윌슨이 이곳에 자리잡은 것이었다.

“팬들이 싫고 무섭지?”

윌슨은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F-Rod는 알아먹었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특히 필리스 팬 놈들은 말이야. 쓸데없이 야구에 진심이야. 야구에 진심인게 아니지. 미친 놈들이지. 적당히 즐기면 되는데, 선수들을 비판하고 공격하는게 자신들의 권리인줄 아는 놈들이란 말이지. 난 그래서 이 빌어먹을 필리스가 싫어.”

필리스를 대표하는 스타의 필리스 비하 발언에 윌슨의 눈이 동그래졌다.(이때는 가족 비판 사건이 있기 전이었다)

“필리건 놈들을 누르고 그 입을 닫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게 뭔지 알아?”

“뭔데요?”

드디어 열린 윌슨의 입에 F-Rod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바로 실력. 누구든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는 실력이지. 그리고 내가 봤을 때 너는 싹수가 보여.”

F-Rod는 나가있는 선수들을 쭉 훑었다.

“저기 저 놈들? 내가 봤을 땐 가능성 없어. 그나마 여기서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싹수가 있어보이는 놈은 너 하나밖에는 없어. 너처럼 매 순간 실력향상을 위해 고민하면서도, 파워 포텐셜이 있는 놈이 가능성이 있는 놈들이지. 그리고 난 그 가능성을 더 빠르게 틔워줄 수 있는 방법을 알지.”

“어떻게 하는데요?”

“알고싶으면 오늘 경기 마치고 내 차로 찾아와.”

경기가 마치자마자 윌슨은 숙소로 향하는 대신 F-Rod의 차를 찾았다. 그는 윌슨이 찾아올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조수석에 그를 앉혔다.

“글로브 박스 열어봐.”

글로브 박스를 열자, 약이 가득 들어있는 통이 있었다.

“이건······.”

누가봐도 경기력 향상 약물이다.

“안전하니까 걱정 마.”

클리셰와 같은 말 뒤로 악마와 같은 그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NFL 놈들이 쓰는 건데, 먹고 8시간 정도 지나면 싹 빠져. 흔적도 안 남지. 그에 비하면 효과는 14시간 지속되고. 확실히 그쪽은 도핑에 관대해서 새 약이 개발되는게 빠르다니까. 아침 8시에 일어나서 한 알 먹으면 저녁 10시까지 효과가 있는거지. 우리가 도핑검사를 하는 시간이 보통 경기 시작 전이랑 경기 이후잖아? 복용시간만 맞추면 절대 안걸려.”

약이 들어있는 통을 바라보는 윌슨의 동공에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솔직히 저 말에 혹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것도 3년 내내 마이너에서 고생하고 있던 윌슨같은 사람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윌슨은 눈 딱 감고 약이 든 통을 다시 글로브박스에 넣고 닫았다.

“죄송합니다만 거절할게요. 약은······ 아닌 것 같네요.”

“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보같기는······.”

F-Rod는 혀를 끌끌 찼다.

“가봐.”

축객령을 내리는 그에게 윌슨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혹시 당신도 이걸 먹었나요?”

윌슨의 말에 F-Rod가 악마처럼 웃었다.

“어땠을 것 같아?”

그 답은 듣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162화 - 리빙 레전드 쟁탈전 이었던 것(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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