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리빙 레전드 쟁탈전 이었던 것 >
“우리 조건은 첫 시즌 뒤에 옵션을 넣는거야.”
“팀 옵션?”
“아니. 그러면 우리 측에 너무 유리하지. 양 측이 모두 동의해야지 남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베스팅 옵션을 생각중이야.”
“그러니까 1년 뒤에 7시즌을 연장할 수 있는 옵션이라는거지?”
“그렇지. 우리 측에서는 로드리고에 대해 알아보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될거고······.”
브랜드가 다운의 말을 받았다.
“우리 측에서도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옵트아웃처럼 더 좋은 계약을 찾아나설 수 있겠네?”
“일종의 옵트아웃이지 뭐.”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안전장치를 잘 마련해놓은 것 같은데?”
옵트아웃은 일방적으로 선수에게 유리한 조항. 하지만 베스팅 옵션이라면 구단 역시 계약 연장을 거부할 수 있다.
“원래는 1년짜리 계약을 넣을까도 했는데, 그런 조건은 거부할거잖아. 안그래?”
“그럼 구단 측 조건에는 성적에 조건이 걸리는건가?”
다운은 살짝 머뭇거렸다.
“음······ 원한다면 넣어줄게.”
브랜드는 다운의 반응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헤이 다운. 원래 그럴 생각이었으면서 무슨 안심쓰는 척 하고 있어?”
“이래서 너무 친하면 안좋다니까.”
“뭔 소리야. 친해서 우리도 지금 손해보고 있는거 안보여? 원래 들어보지도 않았을거야.”
“내가 항상 고마워하는거 알지?”
다운이 징그럽게 들러붙으려고 하자 브랜드가 근육을 바짝 세웠다.
“붙지 마라 진짜.”
날을 세우는 그를 보며 다운이 웃으며 양손을 들었다.
“워워. 진정해.”
“그래서 조건이 뭐야?”
“좀 많은데 괜찮지?”
“우리가 원하는 금액이랑 계약기간을 들어준다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135경기 이상 출장, ops 0.800 이상, 홈런 30개 이상.”
“세 개 중 하나만 달성하면 되는건가?”
“말도 안되는 소리 하면 이번엔 내가 나간다?”
농담을 던진 브랜드가 다운이 내건 조건을 다시 읊었다.
“135경기 이상 출장에 ops 0.800 이상에 홈런 30개? 이 조건이면 다른 곳 가도 되는거 알지?”
“알지. 그래서 이 정도 조건을 건거고.”
1년 짜리 계약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저 정도의 성적을 내주지 않는다면 그 이상의 장기계약을 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저 성적 낼거 아니면 구단에 남을 생각 하지 말라는건가?”
“뭐 그렇게 생각해도 좋고, 최대한 좋은 성적 거둬서, 더 좋은 계약으로 다른 구단에 가는것도 나쁘지 않다는거지. 일종의 옵트아웃이랄까?”
“하여간 말은······.”
브랜드가 옆에 있던 로드리고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 생각은 어때?”
“저야 뭐 팀이 말하시는대로 하죠.”
브랜드가 말하는대로 해서 상황이 나쁘게 흘러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네가 듣고 판단해야지. 나중에 내가 아닌 다른 에이전트를 만나게 되더라도 이런 부분에서는 철저해야 돼.”
“다른 에이전트 안 만나면 되죠.”
로드리고의 말에 기분이 좋은지 브랜드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래도 네가 듣고 판단해. 솔직히 금액적인 부분만 따지자면 레이스의 제안이 나쁘지는 않아. 실 수령액도 어지간한 다른 주에서 2억 달러를 받는 것보다 많고, 2루수 최고 금액을 넘겨줬거든. 하지만 1년이 지나고, 네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 언제든지 구단에서 연장을 거부할 수 있다는건 너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지.”
“다른 구단의 1년 제안이랑 크게 다를바는 없네요.”
로드리고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낚아챘다.
“그렇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어요. 마음 편하게 야구에만 집중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구단은 없을거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로드리고의 눈이 돌아가자 브랜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저 부분에 있어서는 반박할 수가 없네. 내 친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레이스에는 야구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져 있거든. 내 고객 하나도 여기 있고.”
에릭 슈어홀츠가 바로 브랜드의 또 다른 고객이다. 그래서 브랜드는 레이스 내부 사정을 꽤 잘 알고 있었다.
“곧 돌아볼 수 있겠지만, 운동하는 시설도 그렇고, 다 최신식으로 바뀌었어. 그리고 분위기 자체도 굉장히 편하다고 들었고. 그리고 성적에 대한 푸시도 크게 없는 편이야. 다들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라고.”
“그 부분은 조금 수정이 필요할 것 같네. 이번 시즌부터는 성적에 대해 푸시가 조금 있을거거든.”
“네가? 푸시를? 그랬으면 양키스에서 안잘렸겠지. 얘는 절대 푸시 못하는 스타일이야. 환경을 잘 만들어줘서 성적이 나오게 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면 또 모를까. 레이스 감독인 캐시도 성적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주는 편은 절대 아니고. 구단주님은 꽤 푸시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네.”
이 정도면 누가 에이전트고 누가 구단 관계자인지 모를 지경이다.
“팀은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이죠?”
“네가 올해 잘할 자신이 있다? 그러면 괜찮다고 봐. 하지만 네가 잘할 자신이 없다? 그러면 다른 구단의 장기계약 제안을 알아보는게 훨씬 낫지.”
자신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또 다시 로드리고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럼 생각을 좀······.”
“그래. 우린 급할거 없어. 확실히 생각해보고 결정하자 제수스. 다운. 남은 시설도 좀 봐도 될까?”
“얼마든지. 푸드코트도 안내해줄까?”
“아, 거기 괜찮은 음식 많다며?”
“코리안 바베큐가 끝내줘.”
“그래? 가볼까?”
***
로드리고에게 낚싯대를 던져놓은 다운은 F-Rod라는 더 큰 대어를 낚기위해서 다시 움직였다.
이 와중에 다운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그의 성격이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인성이 아닌 실제 인성은 어떻지?”
사람의 본성은 쉽사리 숨길 수 없다. 하지만 아예 숨길 수 없는건 아니었다. 미디어에서, 혹은 밖에서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더라도, 가정에서는 아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사람도 수두룩 빽빽했다.
다운이 오자마자 팀에서 팔려 나간 크리스 다임러를 봐라. 브래넌의 말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다운이 양키스에게 팔아넘긴 뒤 그를 밀고하지 않았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가 집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상습범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다운은 그의 진짜 인성을 알아보기 위해서 백방에 연락했다.
“우선 저희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F-Rod의 성향은 케빈하고 비슷합니다. 마이어 말고 캐시요.”
“형님같은 그런 성격인가?”
“배리하고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냐. 배리하고는 좀 달라. 배리는 앞에 나서서 선수들을 이끄는, 조금 더 리더같은 성격을 가졌지. 그에 비해서 F-Rod는 조금 더 모두를 감싸안는 그런 느낌이야. 앞서는게 아니라 뒤에서 잘 받쳐주는 느낌이 들지.”
“그렇게 말하니까 케빈을 닮았다는게 무슨 말인지 알겠네. 좀 더 뒤에서 백업하는 포지션이라는 말이지?”
“맞아. 그래서 배리하고 기싸움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돼. 내가 알기로 배리하고도 꽤 친분이 있을걸?”
“그래요? 배리랑 친분이 있다고요?”
브래넌은 양키스, 레인저스, 레이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그에 비해 F-Rod는 필리스에서만 선수생활을 해왔다. 두 사람 사이에서의 접점은 전혀 없어보였다.
“자선 골프대회에서 만나서 7년째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가족끼리도 친분이 있겠네요?”
“네. 매 년 만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브래넌의 사람보는 눈은 꽤 정확한 편이다. 특히나 브래넌의 와이프인 릴리의 사람보는 눈은 브래넌 이상으로 좋다. 다임러의 아내가 맞고 사는걸 처음 발견해낸게 바로 릴리였으니까. 그런 릴리가 별말없이 오래 만나는 걸 봐서는 성격적으로도 그렇고 뭔가 숨기는게 있을 확률이 적다는 걸 의미했다.
“일단 배리한테 문제 하나 남겨놔야겠네요.”
지금 시각으로 봤을 때 배리는 재활운동을 하고 있을거다. 그래서 다운은 메시지를 보면 전화달라는 말을 남겨놓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배리 뿐만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 평가도 좋죠. 특히 어린 팬들에게 잘해주잖아요.”
“어린 팬이라고 하니까 그 사건 생각나네요.”
“아 그거?”
F-Rod가 출근길에 필리스 옷을 입고 있는 어린 팬이 길을 잃고 울고 있던걸 보고는 그를 라커룸에 데리고 와서 직접 캐치볼을 해주고 놀아줬다는건 유명한 일화였다.
“지금까지 연락한 팀이 얼마나 되죠?”
F-Rod와 같은 초대형 FA는 절대로 자신에게 어떤 팀이 연락왔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게 알려지는 순간부터 그의 몸값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에게 연락한 팀이 어디어디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존재했다.
우선 1루수만을 소화할 수 있는 한정적인 포지션.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라 오직 1루만을 소화하는 선수이기에 그가 갈 수 있는 팀, 혹은 그를 원하는 팀은 한정되어있었다.
“다음 시즌 1루수 자리가 불안한 팀은, 저희 팀을 제외하고 매리너스, 에인절스, 파드레스, 트윈스, 레드삭스, 디백스. 총 여섯 팀입니다.”
“그 중에서 디백스는 빼도 되지 않을까요?”
미키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디백스도 놔둬야합니다.”
“하지만 디백스는 리빌딩 중이잖아요.”
“그래서 놔둬야하는거죠.”
현재 디백스는 이렇다할만한 리더가 없다. 하지만 인성도, 성격도, 행실도, 실력까지도. 어린 선수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은 F-Rod다.
“마치 브래넌이 우리 팀에 와서 중심을 잡아줬던것처럼, 디백스로 그런 효과를 노리고 F-Rod를 영입할수도 있어요. 오히려 리빌딩 중이기에 가용할 수 있는 페이롤이 많아서 더욱 유리할 수도 있고요.”
어떻게 보면 F-Rod의 영입에 있어서 다른 팀들보다 디백스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컸다.
“오히려 에인절스는 빼도 될 것 같네요.”
이미 토켈슨과의 종신계약과, 브래드 앤더슨과의 10년 계약이 아직 8년이나 남아있다.
게다가 팀의 1선발이자 상위타선의 한 자리를 맡고 있는 호시노 쇼헤이에게 얼마를 퍼부어야할지 감도 안잡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F-Rod를 영입한다?
“호시노 쇼헤이를 포기할게 아니라면 절대 영입 못할겁니다.”
다운이 에인절스 단장이라면 F-Rod쪽은 쳐다도 안볼 것이다.
“매리너스도 빼시죠. 여기도 절대 영입안할겁니다 단장님. 여기 팜에 스펜서 하워드가 있는데 영입할 리가 없죠.”
“오히려 스펜서 하워드를 다른 팀으로 보낼지도 모르죠.”
“매리너스가 시애틀 로컬보이이자 랭킹 4위 유망주를 포기하면서까지 F-Rod를 데려올까?”
“가능하지 않을까요? F-Rod 데려오고, 하워드를 내주면서 약점인 선발 하나를 데려오는거죠.”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다운의 폰이 울렸다.
“잠시만요. 배리한테 전화가 왔네요.”
다운은 웃으며 수화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스피커폰으로 바꾸려던 찰나 예상치 못한 브래넌의 외침이 들렸다.
[F-Rod를 영입한다고? 미쳤어? 절대 안돼!]
< 161화 - 리빙 레전드 쟁탈전 이었던 것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