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리빙 레전드 쟁탈전 >
“페레리코 로드리게스, 29세, 포지션은 1루와 좌익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우타 빅뱃입니다.”
1루수 자리에는 덕 흘로첵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그는 충격적이던 데뷔시즌의 모습을 보여주질 못했다. 이리 헤집고, 저리 헤집으면서 낱낱이 분석당한 흘로첵은 시즌 내내 타석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수비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긴 했다만, 1루수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가공할 공격력이지 수비가 아니다. 비록 흘로첵이 22홈런을 때리며 좋은 파워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0.238의 타율과 0.346에 불과한 출루율에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22홈런 중에서 2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완투수를 상대로 나왔다. 그만큼 흘로첵은 메이저리그 급 좌완들에게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덕이 반등할 확률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올 시즌 덕이 고전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하이 패스트볼과 몸 쪽 공들이었습니다.”
극단적인 어퍼스윙을 하는 흘로첵이 때려내기에는 상당히 힘든 코스의 공들이다.
“그런데 시즌 후반에는 이 공들에 대한 대응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어설픈 레벨스윙에다가 솔리드 히트는 전혀 없고, 빗맞은 안타 하나에 불과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시즌 초반에 그쪽으로 오는 공을 손도 대지 못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발전이라고 볼 수 있죠.”
“그 페이스대로라면 다음 시즌 초반이면 해결책을 들고올수도 있겠는데?”
“그럴지도 모르죠. 덕의 힘과 배트스피드라면 그 코스의 공으로 안타만 만들어준다면, 상대하는 투수에게는 악몽과도 같을걸요?”
“하지만 좌완 상대로는 답이 없을 것 같은데.”
“올 겨울에 리키, 에디와 함께 훈련을 할 예정이더라고요.”
둘 다 메이저리그 평균 이상의 좌완선발. 그 두 사람을 데리고 뭔가 훈련을 할 생각인 모양이다.
“데이튼은 어떻게 생각해요?”
데이튼 레이몬드는 시즌 막판에 올라와 흘로첵과 1루에서 플래툰으로 출장하던 선수.
“이제 첫 발을 뗀 애송이치고는 꽤 괜찮았죠. 스위치 히터라는 장점도 잘 활용했고, 수비도 좋았고요.”
“근데 데이튼을 1루에 박아놓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을까?”
로벨의 말에 미키가 격하게 동의했다.
“같은 생각입니다. 데이튼의 핸들링이나 수비센스는 1루수로 박아놓고 쓰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어깨도 강한 편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우드먼보다는 데이튼을 장기적으로 2루수로 써봤으면 좋겠는데.”
“그럼 우타 플래툰을 영입하는걸로 하고 로드리게스에게서는 관심 접을까?”
다운의 말에 다들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죠.”
“잡을 수만 있다면 잡아야죠.”
저들이 저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19세부터 29세 시즌까지 필리스에서 10년간(19세는 데뷔시즌 3경기 출장) 풀타임을 뛰며 2215안타와 1436타점, 422홈런을 때려낸 전설적인 1루수가 바로 로드리게스였다.
평균치만 따져도 연 221.5안타, 143.6타점, 42.2홈런을 때려냈다는 말이다. 강력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는 전설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1루수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심지어 글라이드조차도 두 선수의 이름을 듣고는 곧바로
“당연히 F-Rod지! 그걸 말이라고 해?”
라며 소리를 질렀을 정도였다.
“만약 F-Rod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향후 5년간은 1루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겁니다.”
“그것만이 아니지. 유니폼 판매량은 물론이고 관중 특수까지 기대해볼 수 있을걸?”
“게다가 인성도 알아주잖아? 배리에 이어서 많은 루키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그런 롤모델이 되어줄 수 있을 겁니다.”
흥분한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확인한 다운이 그럴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반대는 없는거네요?”
“반대할리가요! 당장 우리 타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선수인데요!”
“대신 수비력이 조금 떨어지잖아요?”
“범위가 좁긴 하지만, 자신의 범위에 오는 타구는 다 잡아내는 선수잖아요. 크게 문제될 것 없을겁니다.”
그들의 반응을 보며 다운이 피식 웃었다.
“두 선수에게 모두 연락을 돌려봤습니다.”
정규시즌이 끝나자마자 단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FA가 되는 선수들의 에이전시에게 직접 전화를 돌리는 것이었다. 당장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에 ‘죄송하지만 당장 어느 정도를 원한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겠네요.’라면서 빼는 에이전시도 있었다.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으로 몸값을 더 높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선수들조차도 어느정도 원한다는 가이드라인은 존재했다. 어떤 팀은 싫다, 몇 년 이상을 원한다, 얼마 이상이었으면 좋겠다와 같은 가이드라인 말이다.
“우선 로드리고.”
로키스 같은 경우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NL 서부 4위를 하면서 일치감치 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서는 일찍 답을 들을 수 있었다.
“8년 2억 달러 이상.”
조건을 듣자마자 파트장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말도 안돼!”
“미쳤답니까?”
특히나 단장 보좌인 프레슬리의 반응이 가장 불같았다.
“2억 달러가 뉘 집 개 이름인줄 아나.”
역대 2루수 최고액이 지난 시즌 마르쿠스 힐리가 메츠와 맺은 7년 1억 7500만 달러의 계약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간 8년 2억 달러의 계약?
물론 힐리와 상당히 사정이 다르긴 하다. 힐리의 경우 잘했던 시즌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항상 평균치 정도의 공격력과 수비력을 보이다가, FA를 앞두고 대폭발했다.
그리고 시장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저 플루크 시즌이었을 것이다.”
30세 시즌을 끝낸 2루수에게 들어왔던 가장 좋은 제안은 4년 7500만 달러. 힐리는 자이언츠와 1년 15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은 뒤 재수를 택했다. 그리고 22시즌 그는 2할 후반에 38홈런을 때리고, 2루수 골드글러브까지 차지한 뒤에서야 메츠와 1억 75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딱 두 시즌 잘했던(물론 이번 시즌에도 힐리는 좋은 성적을 냈다.) 선수의 FA 금액은 꾸준히 잘했던 선수의 금액보다는 낮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쪽이 왜 2억 달러를 요구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로드리고는 힐리보다 젊고, 딱 한 시즌을 망쳤을 뿐이니까.
하지만 시장 논리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잘했던 시즌들을 떠올리며 추억한다. 하지만 거기에 돈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가장 최근의 기록부터 찾곤 한다. 가장 최근의 시즌을 망친 로드리고는 아주 불리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시장 상황 역시 그에게 좋지 않았다. 로드리고가 이번 FA 시장에서 최고의 2루수라는건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눈을 한 단계만 낮춘다면 데려갈 수 있는 괜찮은 2루수가 그 말고도 셋이나 더 있었다.
게다가 아직까지 포스트시즌을 치르고 있는 팀 중에서 카디널스의 브렛 람보가 옵트아웃을 선언하고 나온다면 그와 동급의 2루수 한 명이 더 시장에 풀리게 된다.
“일단은 가이드라인이 그 정도라는거니까 그렇게 열 올릴 필요 없어요.”
아직 포스트시즌도 끝나기 전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조건에 하나하나 열 올리다가는 제 명에 못 산다.
“F-Rod 쪽은 얼마를 원한답니까?”
“그쪽은 필리스랑 재계약 안한답니까?”
로드리게스는 필리스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다. 그런만큼 필리스에서는 무조건 잡고싶다는 마인드일 것이다.
“이번에는 안 남을 것 같더라고요. 조건이 너무 별로인 것 같더라고요.”
로드리게스는 4년차 시즌을 마치고 FA이후 4년을 더 연장하는 6년 1억 2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이미 한 번 맺은 적이 있었다. 연 평균 2000만 달러짜리 계약은 당시에 헐값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로드리게스는
“필리스는 내 집이나 마찬가지고, 필리스 팬들은 내 가족과 다름없다. 물론 조금만 잘못하면 사갈같이 물어뜯는 팬들이지만, 가족도 그렇지 않나?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런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결정이 어렵지 않았다.”
라는 인터뷰를 하면서 만족감을 표했었다.
“게다가 팬들도 마음에 안들테고요.”
다운의 말에 다들 잊고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 맞다! 그 일이 있었지.”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하네요.”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20년 5월.
당시 로드리게스는 커리어 내내 없었던 시즌 초반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었다. 당시 개막 이후 30경기에서 안타가 고작 8개에 불과했다. 문제는 어디 하나 아픈데 없는 최상의 컨디션의 몸에, 타격폼도 지난 시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데뷔 이후 처음 겪는 부진에 힘들어하고 있을 무렵, 당시 쇼핑을 하고 있던 로드리게스의 가족들이 극성 필리건들에게
“네 남편은 야구도 못하고 있는데, 넌 우리가 벌어다준 돈으로 쇼핑을 하고 있냐! 당장 꺼져라!”
라는 악담과 함께 위협을 당했다고 한다.
“가족들이 뉴욕으로 간 이유?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만약 필라델피아가 조금 더 안전한 도시였다면, 나는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틈만나면 필리건들을 향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곤 했다.
“하긴. 그런 일을 당했으니 어떻게 필리스를 좋아할 수 있겠어요?”
“나라도 싫겠다.”
“남은 기간을 채운 것도 대단하지. 나였으면 무조건 트레이드 시켜달라고 했을텐데.”
“실제로 트레이드를 알아보기도 했대. 그런데 그 조건이 필리스 마음에는 안들었던 것 뿐이지.”
“저 정도의 타자를 2000만 달러에 쓸 수 있는데, 얼마나 비쌌겠어. 못데려갈만도 했네.”
뭐 어찌됐건 그가 필리스를 떠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래서 그쪽은 얼마를 불렀는데요?”
“10년 2억 7000만 달러.”
가격을 들은 파트장들은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비싼 금액은 아닌데······.”
“애매하게 비싸네요······.”
그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활약만 본다면 2700만 달러는 비싼 금액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의 나이다. 내년부터 30세 시즌을 시작하는 로드리게스가 과연 이후 10년동안에도 그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까? 2700만 달러의 연봉에 걸맞는 활약을?
“우리는 이미 알버트 푸홀스라는 실패 사례를 봐버렸죠.”
10년을 잘하다가, 남은 10년간 앞서 쌓아놓은 커리어를 갉아먹는 모습을 이미 한 번 목격한 바 있었다. 그러다보니 2700만 달러가 더 비싸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F-Rod는 괜찮지 않을까요? 푸홀스는 나이 이슈가 있었는데, F-Rod는 그런 문제는 없으니까요.”
푸홀스 같은 경우는 그가 나이를 속였다는 말이 항상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붙었다. 하지만 로드리게스는 미국의 한 병원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나이를 속일래야 속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후 이슈도 생각해야합니다. 저희 팀의 레전드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누가 있습니까? 해봤자 배리잖아요. 그런데 F-Rod만 영입하면 우리 팀에서 3000안타와 600홈런을 동시에 달성하는 선수가 나오는겁니다. 다름아닌 우리 팀에서요! 필리스를 극도로 싫어하는 그의 성향을 본다면 레이스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으로 갈 수도 있는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무조건 영입전에 참전하셔야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다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번 스토브리그 최우선 영입타겟은 F-Rod인걸로 하죠. 분석팀과 스카우트 팀은 포스트시즌에서 그의 모습을 낱낱이 분석해서 가져오세요. 운영팀은 가족들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게 없도록 만들어주고요.”
“넵!”
< 159화 - 리빙 레전드 쟁탈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