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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MLB 단장-156화 (156/268)

< 156화 - 치킨파이트 >

치킨을 한 조각씩 가져와서 입에 넣어본 심슨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애초에 이건 게임이 안되는 매치였네요.”

“그러게말이야.”

솔직히 후라이드의 맛만 따지자면 미국 브랜드도 크게 뒤떨어지는 맛이라고 할 수 없었다. 다들 바삭했고, 큼지막한 살코기가 맥주를 부르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나머지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 브랜드들에 비해서 너무 뒤떨어졌다.

우선 첫 번째.

앞서 말했듯이 큼지막하다는게 문제다.

취향에 따라 큼지막한 치킨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매장이 있는 위치였다. 큼지막하고 뼈가 있는 치킨은 먹음직스럽게 보이기는 그지없지만, 손으로 집어먹어야한다는 단점과 뒤처리할 쓰레기가 남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브랜드들은 전부 순살메뉴를 들고왔다. 그것도 한입으로 먹기 딱 좋은 크기로 해서 말이다.

“그나마 KFC에서도 순살메뉴를 들고오긴 했는데······.”

“크기가 차이가 많이 나죠.”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면서 한 입에 쏙 넣을 수 있는 크기의 치킨과, 손으로 튀김옷을 집어서 뜯어먹어야하는 치킨. 과연 둘 중 어떤걸 고르겠는가?

아마 10명 중에서 9명은 전자를 고르지 않을까?

두 번째.

다양한 맛과 종류다.

후라이드는 솔직히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차이를 줄 수 있는 것은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소스들이다.

허니 머스타드와 스파이스 소스밖에 없는 미국 브랜드의 치킨과는 다르게 한국 치킨들은 매운맛을 다르게 한 양념부터 시작해서, 커리소스, 갈릭소스, 간장소스, 허니소스, 민초소스에 커피소스까지. 소스뿐만 아니라 가루를 뿌려놓은 치킨도 존재했다.

게다가 조리법 역시 기름에 튀기는 것 말고도 다양했다. 치즈를 입혀 오븐에 쪄서 오븐 스파게티처럼 만든 치킨도 있었고, 오븐에 구워 추수감사절 칠면조와 비슷하게 요리한 치킨도 있었다. 게다가 튀김가루에 특정 곡물을 넣어서 엄청나게 바삭하게 만든 치킨도 있었고, 여성층을 겨냥한것 같은 치킨 샐러드까지. 말도 안될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치킨을 들고나왔다.

미국 브랜드 세 개가 테이블 한 개를 차지하는 반면, 한국 브랜드는 각각 두 개씩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는 치킨을 이렇게 다양한 맛과 종류로 낼 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습니다.”

심슨의 말에 다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렇게 많은 종류의 치킨이 있는줄은 몰랐어요. 어떻게 이렇게 많지?”

다운도 이렇게 한국식 치킨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한 조각, 한 조각이 새로웠다.

“한국은 정말 치킨에 진심인 나라인 것 같네요. 오우! 이 파우더치킨 내 스타일인데? 브래드 먹어봐!”

“아까 먹어봤어. 나한테는 좀 짜더라.”

“이 정도로 짠 맛이 있어야지 맥주가 땡기는거지.”

“저도 개인적으로 이 파우더보다는 다른 치킨이 좋네요.”

어느정도 배가 불러오고 세 사람은 각자 괜찮았던 치킨에 체크를 한 뒤 투표함에 넣었다.

“투표 종료까지 15분 가량 남았네요. 여기서 기다렸다가 개표하고 갈까요?”

“그러시죠.”

“저는 담배 한 대 태우고 오겠습니다.”

“끊는건 어때요 피트?”

다운의 말에 피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술도 줄이고 다이어트도 했는데 담배까지 뺏어가려고요?”

“덕분에 많이 건강해졌잖아요. 이왕이면 담배까지 끊는게 어떨까 싶어서 해본 이야기죠.”

“하하! 생각해보도록 하죠!”

클라인이 식후땡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은 리타가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평가를 이어나갔다.

“미국 브랜드는 일단 빼고 생각하죠.”

솔직히 이 정도로 차이날 줄은 몰랐다. 심지어 그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인지, 미국 브랜드에서 온 직원들은 낭패한 표정이 역력했다.

“저도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저 치들은 입점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 브랜드들은 간절함이 다르더군요.”

그러면서 심슨이 슬며시 계약서 세 개를 내밀었다. 슬쩍 확인해보니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한국 치킨 브랜드인 치킨 인 더 오븐, 시링 인 더 닭, 치킨헤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새 조건을 건 계약서인가요?”

“네. 처음에는 저희가 비공개로 입점입찰을 진행했잖습니까? 그래서 저희 측 조건만 듣고 콜을 외쳤던거죠.”

“그런데 막상 메뉴를 먹어보겠다는 이야기도 있고, 같은 한국 브랜드들이 들어오는걸 보니까 절대 놓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거네요.”

심슨은 악역마냥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경쟁입찰이 되어버린거죠. 잠깐 밥먹으면서 살펴봤는데, 세 브랜드 중에서 시링 인 더 닭하고 치킨헤븐은 미국에 이미 들어와 있는 브랜드들이더군요.”

“다들 LA에 있겠네요?”

“네. 코리안 타운에 들어가서 서부지역에는 이미 꽤 유명한 치킨들이더라고요. 그리고 치킨 인 더 오븐은 이번에 미국에 새로 런칭할 생각을 하고 있는 브랜드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걸 생각하시고 계약 조건들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이 내건 계약조건들을 요약해보자면 아래와 같았다.

시링 인 더 닭

계약기간 : 5년

매출 퍼센트 : 37%

조건 : 계약기간 동안 외야에 광고 간판(연 500만 달러)

치킨헤븐

계약기간 : 3년

매출 퍼센트 : 37%

조건 : 계약기간 동안 외야에 광고 간판(연 450만 달러), 계약기간 동안 헬멧에 패치부착(연 450만 달러)

이 두 브랜드의 의도는 원하는바가 뚜렷했다.

“동부에도 진출하고 싶다는거네요.”

두 브랜드는 모두 미국 내 서부에 거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부에는 거점이 없다. 그래서 그 거점으로 글라이드 파크의 푸드코트를 택한 것이었다.

“맛을 알리기도 쉽고, 간판을 따낼 수 있을지도 모르죠. 굳이 광고계약을 따내지 못하더라도 글라이드 파크와 이버몰을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브랜드 홍보도 굉장히 잘 될거고요. 이를 바탕으로 탬파와 동부지역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도 늘릴 수 있겠죠.”

앞선 두 브랜드와 비교하자면 치킨 인 더 오븐은 도전자와 다름없었다.

“치킨 인 더 오븐은 한국 내에서 꽤 인지도가 있는 편이지만, 미국에는 매장이 없습니다.”

“아예 해외진출이 처음인가요?”

“네. 그래서 조건이 이렇게 좋은겁니다.”

치킨 인 더 오븐

계약기간 : 5년

매출 퍼센트 : 40%

조건 : 계약기간 동안 외야에 광고 간판(연 500만 달러), 계약기간 동안 헬멧에 패치부착(연 500만 달러), 레이스 구단이 원하는 종류의 메뉴 협력 개발, 구단이 시행하는 이벤트 적극 지원, 글라이드 파크 매장 한정 구단과 계약한 음료업체로 계약

저들이 내건 퍼센트와 조건만봐도 얼마나 간절한지를 알 수 있었다. 무려 40%나 되는 매출을 구단에 내는 조건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이벤트에, 구단이 필요한 메뉴까지 계약한다는 조건이었다.

심지어

“치킨 인 더 오븐이 계약한 업체가 펩시인가봐요?”

“미국 매장이 없어서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구글링 해본 결과 펩시콜라가 옆에 있더라고요.”

“미국 내에서는 어떤 업체와 계약할지 아직은 모르지만, 적어도 글라이드 파크 내에서는 코카콜라와 협력하겠다는거네요?”

“아마 조건만 좋으면 미국 한정으로 계약 업체를 코카콜라로 할 지도 모르죠.”

어찌됐건 당장에는 계약을 하기 전이니 글라이드 파크 내에서는 코카콜라와 함께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넣을 수 있다는 말이다.

“조건만 보면 치킨 인 더 오븐이 좋긴 하네요. 메뉴에도 별 문제는 없고.”

솔직히 파우더를 뿌리는 치킨은 다운의 취향이 전혀 아니었다. 기름기를 쫙 뺀 오븐 치킨이 입맛에는 훨씬 들어맞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존재했다.

“문제는 치킨 인 더 오븐에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정통 후라이드가 없다는거죠.”

오븐 베이크 치킨의 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것. 그건 바로 기름에 튀긴 그 바삭하면서도 기름기가 좔좔흐르는, 맥주를 부르는 그 치킨이 없다는 것이다.

“후! 무슨 이야기 중이셨습니까?”

식후땡을 한 뒤 양치까지 하고 왔는지, 클라인이 상큼한 민트향을 뿌리며 다가왔다.

“어떤 치킨이 가장 좋았는지 이야기하고 있었죠. 피트도 왔으니까 개표부터 해볼까요?”

"그러시죠.”

개표결과는 압도적이었다.

투표를 한 직원들이 총 35명(대부분의 부서는 새로운 구장에 가있다).

브랜드에 투표하는게 아니라 메뉴별로 중복투표가 가능했던 이번 투표에서 미국브랜드가 가져간 표는 총 21표. 선방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나마 미국인들의 대중적인 입맛에 가장 잘 맞는다는 KFC의 후라이드 치킨에만 표가 돌아갔다.

그에 비해

시링 인 더 닭 - 103표

치킨 인 더 오븐 - 115표

치킨 헤븐 - 111표

한국 브랜드들은 각자 100표가 넘을 정도로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파우더 치킨은 혁명이었는데!”

파우더 치킨을 주력으로 한 시링 인 더 닭이 가장 적은 표를 받자 클라인이 충격을 받는 해프닝이 있긴 했다면 다운과 심슨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게 내가 파우더는 별로라고 했잖아.”

“너무 짜요.”

클라인을 한 대씩 때려준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킨 인 더 오븐에서 오신 분 회의실로 불러주세요.”

“다른 두 팀 연락처도 받아놓겠습니다.”

협상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 다른 두 브랜드의 연락처 역시 알아놓는게 좋았다.

“그렇게 하세요. 가능성이 많지는 않다는걸 알려주는것도 잊지 말고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다운은 치킨 인 더 오븐에서 나온 최고 담당자와 만날 수 있었다.

“치킨 인 더 오븐에서 사장을 맡고 있는 대건 박입니다.”

일단 첫 마디와 인상은 합격이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사장이 직접 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그의 태도는 더 놀라웠다.

분명 다운이 나이도 어리고, 한국계 미국인이라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걸 알고 있을거다. 막 양키스 단장이 되었을때 수많은 한국 언론들과 한국어로 인터뷰도 했었으니까.

“한국어로 하셔도 됩니다.”

“하하! 그래도 되겠습니까?”

“저도 한국어를 할 줄아니까요.”

그리고 다운은 그들과 수도 없이 만나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한국인들은 같은 한국인이라는 동질감이 들고난 이후에는 일단 나이가 어리면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모두가 그렇다는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운이 만났던 한국인 기자들, 특히나 나이가 있는 한국인 기자들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뭔가 흘러가지 않았을 때

“어린 놈이 단장 자리에 올랐다고 건방지게!”

“네가 뭐라고 된 줄 알아?”

“머리에 피도 안마른게!”

라는 폭언을 하곤 했다.

그럼에도 박대건은 결코 다운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자신을 낮추지도, 다운을 심하게 낮추지도 않았다. 앞으로 함께할 파트너를 다해는 정도. 딱 그 정도의 태도를 유지했다.

그 다음의 행동 역시 마음에 쏙 들었다.

“우선 협상을 이어나가기에 앞서 하나만 말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아까 보니까 KFC의 후라이드 치킨과 시링 인 더 닭의 치킨 샐러드가 상당히 많은 표를 받았더군요. 그 메뉴 두 개만큼은 저희가 입점 전에 확실히 개발해가지고 들어오겠습니다.”

어쩐지 대화도 잘 풀릴 것 같다.

< 156화 - 치킨파이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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