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심장 멎는줄 알았네 >
“왜? 무슨 일 났어?”
“브래넌이······.”
순간 싸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설마······. 다쳤어?”
리타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문에서 비켜섰다.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운은 한달음에 더그아웃 뒤쪽 통로까지 달려갔다.
“하아! 하아!”
그곳에는 얼굴을 감싸고 있는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이 있었다. 심지어 더지와 비어만 같은 경우는 심한 충격을 받았는지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신이시여······.”
“세상에 이런 일이······.”
“단장님 오셨다. 비켜드려.”
웅성거리는 그들이 비켜서자 보이지 않던 더그아웃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쪽 막아!”
“저쪽에 한 사람 더 들어가!”
밖에서 더그아웃을 볼 수 있는 모든 곳에는 키큰 선수들이 수건이나 유니폼을 들고 가리고 있었다. 심지어는 상대 팀인 블루제이스 선수들까지도 인간 장벽에 합세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리고 있는 그 가운데에는 누워있는 브래넌과
“훅! 훅! 훅! 훅!”
그 위에서 열심히 흉부압박을 하고 있는 트레이너가 눈에 들어왔다.
도저히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지금?”
다운의 말에 대답한건 희게 질린 얼굴의 서머스였다.
“저희도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정말 그냥 갑자기 쓰러졌어요.”
급성 심근경색이든 뭐든 원인은 상관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건 의식이 있냐없냐, 그리고 숨을 쉬는지, 맥박은 뛰는지였다.
“교대! 후욱! 필요! 후욱!”
딱 봐도 위에 올라있는 트레이너는 지쳐보였다. 옆에 있는 다른 트레이너는 말려들어간 혀를 잡고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트레이너 한 사람과 구급대원 두 명은 이미 한 사이클을 돌았는지 상당히 지쳐보였다.
다음으로 CPR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예전이랑은 달라져서 선수들도, 코칭스태프도, 심지어는 구단 직원들까지도 모두 CPR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그 때 배운걸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들 주춤하는 가운데 다운이 자켓을 벗어던졌다.
“비켜. 내가한다.”
무릎을 꿇어 트레이너의 맞은편에 위치한 다운이 널부러져있는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준비되면 말해 빈스.”
고개를 끄덕인 빈스가 거칠게 숨을 뱉었다.
“셋! 둘! 하나!”
빈스가 팔을 치우자마자 반대편에 있던 다운이 곧바로 손을 올려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후욱! 후욱! 후욱!”
다운은 할 수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흉부압박을 진행했다.
“뛰! 어! 숨! 셔!”
광기가 느껴지는 눈빛이 브래넌의 영혼에 닿았기 때문일까?
꿈틀
축 늘어져있던 브래넌의 고개가 흠칫거리듯이 움직였다. 그리고 눈커플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에 다운을 비롯해 주변에서 노심초사하며 바라보던 사람들이 눈을 번쩍 떴다.
“배리! 배리! 정신이들어?”
“야! 일어나!”
“배리! 내가 누구야!”
“아니 아직 눈도 안떴어!”
“뺨 때려야하는거 아냐?”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브래넌이 신음을 뱉었다.
“으으으으······.”
“다 조용해!”
다운의 일갈에 주변이 모두 조용해졌다.
“배리! 배리! 내가 누군지 알겠어? 정신이 들어?”
어깨를 툭툭 치며 계속 브래넌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브래넌이 희미하게 눈을 뜨며 꺼져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으으으으······. 시끄러 이 단장놈아······.”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의식이 확실히 돌아온 것 같았다.
“빌어먹을 자식!”
거칠게 내뱉어지는 말과는 정 반대로 다운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빨리 병원으로 옮깁시다! 어서요!”
다운의 말에 트레이너들과 구급요원들이 들것에 그를 실었다. 그리고 더그아웃 바로 앞에 대기중이던 앰뷸런스로 옮겼다.
“나······ 빠져도 이길 수······ 있지?”
“네 몸이나 신경써.”
불퉁한 다운의 말과 함께 앰뷸런스의 문이 닫겼다.
애애애애애애앵~
앰뷸런스의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갔다······.”
“산거 맞지?”
“눈 떴잖아. 말도 했고. 괜찮을거야.”
숨을 돌리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 사이로 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다운이었다.
“리타! 배리 가족들 오늘 경기장에 왔어?”
“제가 알기로 오늘은 안왔습니다.”
“그럼 당장 연락해서 병원으로······. 아니다 리타 네가 직접 연락해서 집에 모시러 간다고 말해. 배리가 쓰러졌는데 운전을 할 정신도 없을거야. 절대로 네가 갈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해. 알겠지?”
리타의 차는 브래넌의 가족들이 모두 타기에는 너무 좁다. 그걸 기억해낸 다운은 리타에게 자신의 차키를 넘겼다.
“부탁한다.”
고개를 끄덕인 리타가 빠르게 주차장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운이 향한 곳은 블루제이스 선수단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은 일이 터지자마자 반대쪽 더그아웃과 그라운드에서부터 달려와 관중들이 더그아웃 안쪽 상황을 볼 수 없도록 가려주었다. 심지어 방금까지는 몰랐지만, 심폐소생술을 한 트레이너 중 한 명은 블루제이스 소속의 트레이너였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브래넌이 응급처치를 받는 모습은 라이브로 전국, 혹은 전 세계로 중계됐을지도 모른다. 정말 만약의 경우, 그가 죽는 장면까지도 모두 송출되었을수도 있다.
“마이어가 빨리 말하지 않았다면 저희도 몰랐을겁니다.”
블루제이스에서 가장 베테랑인 빅터 누네즈가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손을 저었다.
“마이어가 빠르게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빠르게 실행한 것은 블루제이스 선수단이죠.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운은 고생해준 블루제이스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돌아본 더그아웃. 넋이 반 쯤 나가있는 선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사무실에서 누구하나 저렇게 쓰러지는걸 목격했다면 자신이라도 저렇게 넋이 나가있을테니 이해는 된다.
‘물론 지금도 제정신은 아니지만.’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참은 다운이 옆에 와있던 심판에게 물었다.
“심판. 경기는 어떻게 됩니까?”
“원칙적으로는 재개해야합니다.”
혼이 나가있는 레이스 선수단에게 그런 말을 해야하는 상황이 미안한지, 심판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아니면 몰수패를 당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강우콜드도 아니고, 블루제이스가 지고 있었던 상황도 아니다. 그리고 경기를 진행할 수 없는 이유는 온전히 레이스에게 있었다. 그렇기에 유이한 방법 중 하나가 몰수패인 것이다.
심판의 말에 다운이 선수단을 한 번 둘러봤다. 충격을 받아 울다가 이제서야 진정한 놈. 아직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놈. 멍하니 앰뷸런스가 떠나간 곳을 보고 있는 놈. 괜히 글러브와 공을 매만지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 놈.
그 어떤 놈도 제정신인 놈들이 없었다.
심지어 감독인 캐시조차도 반쯤 넋이 나가서는 선수들을 살필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으니까.
“케빈. 케빈.”
다운이 두어번을 불렀음에도 캐시는 자신을 부른다는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다운이 팔을 툭 치자 그제서야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응했다.
“으응?”
“지금 경기 가능할 것 같습니까?”
자신은 단장이다.
솔직히 이곳에서 자신이 몰수패를 선택한다고해서 뭐라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하나. 구단주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는 감독의 권한이 가장 위에 있었다. 그렇기에 다운은 조용히 그의 의사를 가장 먼저 물었다.
“제가 책임지고 몰수패 시킬테니, 선수들 마음 추스르는걸로 하시죠.”
솔직히 지금 이 상태로 정상적인 경기를 치르는건 힘들 것 같았다. 캐시 역시 이 의견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선수들의 의견은 다른 듯 했다.
“경기. 합시다.”
드레이크다.
“솔직히 혼란스럽고 머리가 띵한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아까 들었잖아요. ‘나 빠져도 이길 수 있지?’ 배리는 우리가 이러고 있는걸 원하지 않을거에요. 그리고 우리를 보러온 팬들도 마찬가지일거고요. 우리는 팬들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그리고 배리를 위해서 남은 경기를 마쳐야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그렇고 다들 제정신은 아닐거에요. 하지만 저기 단장님을 봐요.”
더그아웃에 있는 모든 눈이 다운에게로 쏠렸다.
“누구보다 배리와 친했던 사람이 바로 단장님 아닙니까? 그런 단장님인데 지금까지 당황하거나 넋빠진 기색을 보인적이 있었나요?”
없었다. 다운은 들어오자마자 상황을 파악하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브래넌을 보낸 뒤 다시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드레이크의 말에 선수들이 하나 둘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글러브와 배트를 잡았다.
“크응! 하죠 보스.”
“맞아요. 합시다 경기. 나중에 배리가 돌아와서 이 날 뭐했냐고 잔소리해대는거 들을 생각하니까 해야겠어요.”
“어우! 잔소리라고? 절대 해야지. 오늘 무조건 해야돼!”
선수단의 반응이 이렇게 되자 다운과 캐시로서는 막을 방도가 없었다.
“이렇게 됐네요 단장님.”
하여간 못말리는 놈들이다.
“알지? 최선을 다하되 다치지는 말 것.”
다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거면 됐다. 이제 여기 더그아웃에서 다운이 할 일은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고 라커룸에서 보자 다들.”
다운은 내려올때의 황급했던 발걸음과는 전혀 다른 터덜터덜한 걸음으로 단장실로 돌아왔다.
탁
단장실 문이 닫히는 순간.
풀썩
다리의 힘이 쫙 풀렸다.
“흐어어어어어······.”
침착?
침착은 개뿔
안그래도 어린 선수들이 많다. 만약 거기서 자신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면 선수단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을 것이다. 분위기를 잘 타는 젊은 선수단의 특성상 분명 남은 경기들은 물론이고, 다음 시즌 초반까지도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의 남은 커리어 내내 이 모습이 떠나질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무조건 침착해 보여야만 했다.
“심장 멎는줄 알았네 진짜······.”
진짜로 심장이 멎었던 브래넌이 들었다면 한 소리 했을 말을 내뱉은 다운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세웠다.
아직 다운이 해야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다운은 폰을 들어 리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단장님. 블루투스 이어폰입니다.]
다행이다. 덕분에 편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쯤이야?”
[지금 Mrs.브래넌과 아이들을 태우고 병원으로 가고 있습니다.]
희미하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경기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더라고요.]
“아찔했겠네······.”
누구라도 가족이 그렇게 되는걸 봤다면 아찔했을거다.
“잘 데려다주고, 옆에서 필요한거 있으면 해드리다가 퇴근해. 네 차 키 데스크에 있지?”
[네.]
“오늘 좀 바꿔 타자.”
리타와의 전화를 끊은 다운은 곧바로 병원에 따라간 트레이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리는 좀 어때?”
[지금 다른 손상이 없는지 알아보려고 정밀검사 들어갔습니다.]
“의식은?”
[확실히 차렸고, 말도 또렷하게 합니다. 기억적인 부분에도 문제없고요.]
“필요한건?”
[아, 의사선생님이 쓰러지면서 추가적인 손상을 입었을 수 있다고,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같은걸 좀 볼 수 있겠냐고 했습니다. 당시에 저도 옆에 있긴 했는데, 정확한 상황은 기억이 안나서······.]
“바로 찾아서 보낼게.”
전화를 끊은 다운이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뒤 다시 밖으로 나갔다.
“피트! 프레드!”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곧 그들이 해야할 일을 알려주었다.
“오늘자 라커룸, 더그아웃 cctv 영상 들고 단장실로 오세요.”
< 153화 - 심장 멎는줄 알았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