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막판 스퍼트(2) >
“제시를 내리시려는거군요.”
캐시는 다운이 질문한 의도를 곧바로 파악했다.
“맞아요.”
“제시에게 조금 더 기회를 줘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만.”
첫 경기에서 멍청한 부상을 당한 톰슨은 돌아와서는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듯이 신중하게 경험치를 쌓아나갔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첫 타석에서 뭔가 감을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더블 A에서도 바닥을 기던 타격감을 메이저리그에서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표본이 될 수 있는 타석 수는 적다. 하지만 무려 0.241까지 끌어올린 타율은, 그가 타석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시를 내리려는거에요. 제시에게는 지금 메이저리그 경험이 필요한게 아니에요. 자신의 타격을 정립할 시간, 그리고 출장시간이 필요해요.”
메이저리그에 남아있으면 톰슨이 얻을 수 있는 출장 기회는 주에 한 번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이너로 내려가면 달랐다. 이제 포스트시즌에 돌입하는 트리플 A나 더블 A로 내려간다면, 매 경기 선발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뛸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너클즈에게도 다른 포수들과 함께하는 경험이 필요하고요. 언제까지나 제시와 함께할 수 없잖아요?”
톰슨의 타격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다운이나 레이스도 굳이 포수 세 명을 로스터에 넣으면서까지 톰슨을 잡고있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레이스에는 이미 주전급 포수가 두 명이나 로스터에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데뷔전때처럼 톰슨이 불의의 부상을 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말이다.
너클즈도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팀을 위해서라도 이 둘에게 적응을 해줘야한다.
“아쉽기는 하지만······.”
톰슨은 매 경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와일드카드 티켓 경쟁을 하는 레이스에게는 매 경기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보다는, 필요한 곳에서 활약을 해줄 선수가 필요했다.
“매 번 두 루키의 등판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말이죠.”
“팬들도 분명 좋아했을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우리는 브라이언이 내야로 와줘야하는 상황이잖아요.”
브라이언 앤더슨이 당장에 좌익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의 역할은 언제까지나 팀이 유연하게 굴러가게 해주는 윤활유같은 존재다. 어느 포지션에서나 평균 이상의 수비를 해주고, 적당한 타격능력과 좋은 작전수행능력을 가진 그런 역할 말이다. 오히려 저런 선수는 한 포지션에 묶어두는 순간부터 가치가 떨어진다. 이제는 그를 자유롭게 만들어줄 때가 되었다.
“누굴 올리실겁니까?”
“알렉스 스프라우트.”
다운의 말에 캐시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스프라우트를 올린다고 말씀을 먼저 하셨어야죠!”
주춤대고는 있지만, 한때 메이저리그를 뜨겁게 달궜던 천재타자다. 그런 타자를 다운이 직접 올린다고 했다. 그렇다는건 그가 준비되어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준비는 됐답니까?
기대가 가득 담긴 캐시의 말에 다운이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천재는 천재더군요.”
원래 다운이 생각했던 스프라우트의 콜업 시기는 다음 시즌 초반이었다.
브레이브스에서 있을때만해도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여전히 갈피를 잡아나가는 중이었다. 그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기에 다운도 그를 내년부터 쓸 생각을 했던 것이고.
하지만 레이스에 온 그는 완전히 달라졌다.
브레이브스가 그를 버린 것이 충격적이었던건지, 레이스가 그를 곧바로 트리플 A로 내렸던 것이 충격적이었던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은 확실했다.
“타격폼을 순식간에 바꿨어요.”
스프라우트는 원래 조금씩 조정하고 있었던 타격폼을 확 바꿨다. 현재의 타격폼에서 이상적인 타격 폼으로 조금씩 바꿔가고 있던 접근법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타격폼으로 확 바꾼 뒤, 거기서부터 조정해나가는 방식으로 바꿔버린 것이었다.
전자에 비해서는 후자의 방법이 확실히 위험한 방법이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타격폼이, 그에게는 맞지 않는 타격폼일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격폼과 선수와의 싱크로율만 맞는다면, 목표를 잡아놓고 거기에서 수정하는것이 훨씬 빠르게 가는 방법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스프라우트가 왜 천재인지가 나왔다.
“타격폼 바꾸고 난 뒤 12경기에서 27안타 7홈런을 때렸어요. 이 중에서 장타는 15개고요.”
트리플 A라고는 하지만, 엄청난 성적이 아닐수가 없었다. 40인 로스터 밖에 있는 선수도 아니고, 팀에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저런 무력시위를 하는 선수를 올려주지 않는다는건 단장으로서 실격이다.
“마이어에 이은 중견수가 되주겠군요!”
스프라우트의 수비는 마이어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이어가 비정상적으로 수비를 잘할 뿐이지, 스프라우트가 못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스프라우트는 다운 기준으로 70점의 메이저리그 정상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수비력을 가지고 있었다.(마이어는80+)
“물론 추후에는 그럴수도 있겠지만, 당장에는 좌익수에서만 출장시켜주세요. 지금은 수비보다 타격에 조금 더 집중을 해야할 시기이니까요.”
중견수보다 수비에 부담이 훨씬 덜한 좌익수에서 현재 자신의 바뀐 타격폼을 확실히 체화할 필요가 있었다.
“흐흐 알겠습니다! 그 정도쯤이야!”
스프라우트 정도의 타자라면 빈약해져버린 지금의 타선에 굉장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와일드카드 순위를 지킬 수도 있을 것이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봅시다!”
“두말하면 잔소리죠!”
***
스프라우트의 가세는 레이스에게는 확실한 도움이 되었다. 그가 가세한 이후 치뤄진 원정 6연전에서 레이스는 5승 1패의 질주를 했다.
더더욱 엄청났던 것은 콜업된 이후 스프라우트의 성적이다.
6경기 23타수 15안타 5홈런 2볼넷 1삼진
흔들린다는 평가를 받는 스트라이크 존 설정 문제를 확실히 해결한 건 물론이고 타격감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스프라우트의 활약이 어찌나 뛰어났는지, 앤소폴로스에가 전화를 걸어
[다운. 우리 트레이드 다시 한 번 하는게 어때? 대가로는 알렉스를 다시 데려오고 싶은데······.]
라고 했을 정도였다.
물론 다운이 대가리에 총을 맞았다거나, 앤소폴로스에게 약점을 잡힌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예정이었다.
스프라우트가 살아나다보니 홀로 고군분투하던 브래넌, 그리고 부담이 심했던 다른 타자들도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내고 페이스를 찾아나갈 수 있었다.
이제 시즌 종료까지 남은 경기는 15경기.
하지만 여전히 레이스는 남은 경기에서 방심할 수가 없었다. 로열스와 매리너스가 여전히 0.5경기, 1경기 차이로 와일드카드 경쟁을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순위가 뒤집힐 터. 그걸 아는지 홈에 돌아온 선수단은 단단히 뭉친 모습이었다.
“오늘은 이기는거다아아아!”
“우오오오오오!”
“박살내버려 블루제이스 놈들!”
“보약 먹고 가자!”
“크아아아아!”
지구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 블루제이스라는 보약을 먹으면서 마지막 스퍼트를 내보자는 생각으로 의욕이 가득했다.
“의욕이 올라와있는건 좋지만, 다들 부상을 당하지 않는게 더 중요해. 알지?”
“넵!”
다운이 한 번 찬물을 끼얹어주고 나왔다. 하지만 이로인해 식은 분위기는 캐시와 브래넌이 다시 적당한 온도로 끌어올려줄거다.
라커룸을 나온 다운은 곧바로 러셀, 심슨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선수들이 자신의 일을 할 때, 자신 역시 단장의 일을 해야했다.
오늘 회의의 주제는 다시 푸드코트에 들어올 매장에 관련된 것이었다. 당장 다음 시즌부터 개장할 구장이다. 9월 안에 선정을 완료해야지 10월부터는 매장 공사를 시작할 수 있고, 또 그래야 적어도 12월부터는 푸드코트로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올해 6월에 먼저 오픈한 이버 몰에 푸드코트가 들어서지 않는 대신에 올해 안에 푸드코트를 개장하기로 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선정을 해야했다.
“우선 외야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설 곳부터 확인하죠.”
글라이드 파크의 좌중간과 우중간 외야에는 약 20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는, 말 그대로 매장이 존재했다.
푸드코트가 홈플레이트 뒤쪽에 있다 보니, 외야를 이용하는 관중들을 위해 설치된 매장이 바로 두 매장이었다. 이곳은 푸드코트와는 다르게 경기가 없는 날 이용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선정하는 것이 오히려 쉬웠다.
누구나 아는 맛
그리고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음식
다운이 선택한 것은 프랜차이즈 매장들이었다.
“저희가 원하는대로 로열티만 지불하고 운영은 아예 구장에서 하는 것을 대부분 수락했습니다.”
365일 24시간 운영할 수 없는 구장 내 매장이기 때문에, 레이스가 직접 파트타이머들을 고용하고, 홈 경기때만 관리할 수 있도록, 프랜차이즈 점주가 되기로 했다.
“가장 조건이 좋은 곳 두 곳이 어디죠?”
“버거킹과 도미노피잡니다.”
“버거킹. 좋네요.”
글렌이 버거를 시작하겠다고는 했다, 하지만 그가 마약핫도그 만큼이나 성공적인 버거를 만들어낼지는 미지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버거 역시 필요했다.
“버거킹에서는 외야에 입점하는 대가로 버거와 사이드에 필요한 모든 식자재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레이스에서 어떤 이벤트를 하더라도 무상으로 제품 제공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자기네들도 좋은거잖아요.”
제품을 제공하겠다고 했지, ‘어떤 제품’을 제공하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버거킹에서 신제품을 광고 목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버거킹에서 먼저 이벤트를 원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만약 자신들이 있는 레스토랑 근처에 네온 간판을 달아주면, 연 200만 달러의 광고비 역시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좀 당기네요.”
외야는 TV화면은 물론이고, 내야 관중들이 아주 잘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였다. 그 곳에 버거킹의 간판을 세우게 된다면, 어지간한 광고보다 더 큰 효과를 일으킬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저렇게 프랜차이즈에서 알아서 무상으로(사실 광고비나 다름없지만) 지급을 하는 것이다.
“네온은 관중들이 경기를 보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어요. 네온은 힘들 것 같고, 그냥 간판이면 가능할 것 같다고 해주세요.”
“홈런을 때리면 네온이 번쩍이는건 어떻습니까?”
“그것도 괜찮네요. 레이스 선수들이 홈런을 때릴때마다 버거세트 쿠폰을 뿌리는걸로 하죠. 열 개 정도면 되려나?”
홈런을 때릴때마다 버거킹 간판이 번쩍번쩍할거다. 그걸 생각하면 저기서도 거절하지는 않을거다.
“도미노 측에도 같은 제안을 해볼까요?”
“그것도 괜찮겠네요. 센터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가면 버거킹의 간판이, 오른쪽으로 가면 도미노 간판이 번쩍이는거죠.”
“알겠습니다.”
“도미노 조건은 어땠어요?”
“도미노도 비슷했습니다. 모든 제품 재료 제공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재료 제공은 어렵고 대신 비용을 대겠다고 하더군요.”
연간 일정 금액을 내는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그건 레이스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도미노 측에도 저 간판을 제안하고 연 200만 달러의 비용을 낼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알겠습니다.”
외야의 매장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이제 푸드코트에 입점할 매장들을 고를 차례다.
“단장님 혹시 K-푸드에 대해 많이 아십니까?”
“그게 한국 음식인가요?”
“네.”
“엄청나게 많이 안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어느정도는 알지 않을까요?”
그래도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먹고 자랐고, 한국 특유의 매운 음식들을 좋아하는 다운이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인 미국인들보다는 훨씬 많은 한국 음식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새 영국에 한국음식 매장이 생겼는데······.”
세계 마케팅 정세에 빠삭한 심슨이 이야기를 하려고 할때, 밖에서부터 비명과 함께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전해져왔다. 그와 동시에 심슨의 말도 끊어졌다.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
“그러게 말입니다.”
“알아볼까요?”
세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리타가 창백해진 얼굴로 들어왔다.
“단장님. 잠깐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152화 - 막판 스퍼트(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