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47화 (147/268)

< 147화 -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5) >

“잘 하려고 하지 마! 네가 할 수 있는 것만 해.”

응원인지 뭔지 모를 말을 뒤로하고 타석에 들어선 톰슨은 마운드에 올라와 있는 호시노 쇼헤이를 응시했다.

‘MVP의 공······.’

데뷔시즌때처럼 100마일의 공을 뿌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원한다면 100마일의 공을 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투수.

일본인 특유의 마구인 고속 스플리터를 구사하는 투수. 거기에다가 커터와 비슷한 슬라이더와, 커브까지 구사한다.

네 가지 구종 중에서 커브를 빼고는 모두 플러스 급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바로 호시노다.

‘어떤 공이 먼저 올까?’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톰슨은 타석에서 한 쪽 발을 빼냈다.

“타임.”

“타아아임!”

아직 와인드업조차 들어가지 않았기에 심판은 순순히 타임을 받아들였다.

“후우우우우!”

숨을 길게 내뱉은 톰슨은 배트로 자신의 머리를 퉁쳤다.

‘생각하지말자 생각하지 마!’

타석에 들어서면 생각이 너무 많아진다는 것이 톰슨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포수이다보니 계속해서 상대 배터리를 읽으려던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러다보니 언제나 배트를 내는 타이밍이 늦어진다는 것이었다.

‘생각했다간 이 공은 못쳐.’

마이너에도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는 널려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누구도 MVP를 따내지는 못했다.

지금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공은 지난 시즌 MVP의 공이다.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다른 생각이라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치자!’

마음을 다잡은 톰슨이 다시 타석에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호시노를 노려봤다. 호시노는 자신을 노려보는 루키를 눌러버리기 위해서 첫 공을 던졌다.

슈우우우웅!

너클즈의 공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공기를 가르는 무시무시한 굉음이 공에서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0.1초가 흐르는 동안 톰슨의 뇌가 반응을 보였다.

‘미들하이 패스트볼.’

그와 동시에 톰슨의 배트도 움직임을 보였다.

0.25초 뒤

후우우웅!

서로를 마주하며 움직이던 공과 배트가 톰슨의 왼 발 살짝 앞, 홈플레이트 즈음에서 극적으로 만났다.

따아아아악!

스위트 스팟에 완벽하게 맞는 소리가 났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타구의 각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아쉬움이다. 톰슨은 그런 아쉬움조차 느낄 새가 없었다.

타구가 인필드 방향으로 들어간 것을 인지한 타자가 해야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

바로 1루를 향해 전력으로 뛰는 것 밖에는.

‘뛰어어어어어어!’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수비하는 포수만이 가지고 있는 넓은 시야?

그런거 없다.

톰슨의 눈에는 오직 1루 베이스만이 보일 뿐이었다.

톰슨은 세상 이렇게 열심히 달린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 그러다가 1루 베이스를 밟고 결승점을 지나치는 육상선수들처럼 서서히 속도를 줄여나갔다. 그때까지 1루로 들어오는 공은 없었다.

‘안탄가?’

그제서야 좁아졌던 시야가 다시 넓어지고,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들어온건 웃으면서 화를 내고 있는 1루 베이스 코치였다.

“멍청한 놈아! 2루로 뛰라니까!”

“아?”

톰슨이 멍청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1루 코치가 피식거리면서 좌중간을 가리켰다.

“타구가 좌중간을 갈라서 네 스피드라면 2루까지 뛸 수 있었어!”

“정말요?”

“그래! 네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뛰지 않았더라면 2루타가 될 수도 있었는데!”

이런 멍청이! 데뷔 첫 타석에서 장타를 뽑아낼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걸 놓쳐버렸다!

베이스코치는 자책하며 걸어오는 톰슨을 보더니 갑자기 달려들었다.

“제시! 어디 다쳤어?”

“네? 아뇨?”

“근데 왜 다리를 절어?”

“제가요?”

코치의 말에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왼쪽 다리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늦게 온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 코치? 저 햄스트링 올라온 것 같······. 아! 아!”

한 번 아픔을 인지한 순간부터 통증의 강도가 강해졌다.

“미친 망아지처럼 뛸때 알아봤다! 트레이너! 트레이너!”

***

다운은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생각을 많이 지운 모양인데?’

톰슨이 타석에서 겪고 있는 문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이유 역시 말이다.

“저 놈은 그냥 보고 공을 때려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놈이죠. 그런데 머리에서 어설프게 생각을 하는게 문제입니다. 머리에서 예상했던 공이 들어오면 몸이 쉬이 반응을 하는데, 예상치 못한 공이 들어오면 당황해버리는거죠. 그런데 몸은 이미 그 공에 대응하기 위해 출발해버렸고. 그런 몸을 의식적으로 늦추다보니······.”

“몸과 생각에 부조화가 일어난거네요.”

“맞습니다. 굳이 안걸어도 될 브레이크를 생각이 계속해서 거는거죠. 그러다보니 계속해서 타이밍이 늦어지는거고요.”

“그러면 그런 부조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되지 않을까요?”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생각을 지워야한다는 생각조차 타석에서는 잡생각이 될뿐이니까요. 저런 선수들을 몇 명 만나본 입장에서, 저런 놈들은 그냥 알아서 깨닫게 놔둬야합니다. 본인이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몸이 알아서 타구를 보고 때릴 수 있다는 것만 인식하면 되거든요. 그것만 딱 터지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놈이 될겁니다.”

그리고 첫 타석에서 톰슨은 그 알을 깨고 나온 것 같았다.

‘패스트볼을 노렸다기에는 배트가 나오는게 빨랐어.’

노리는 공이 오더라도 살짝 늦은 타이밍에 배트를 휘두르던게 바로 톰슨이었다. 그래서 그의 타구 대부분은 그라운드 우측을 향해 가곤 했다.

하지만 오늘의 저 타구는 좌중간을 깔끔하게 꿰뚫는 안타. 평소의 타이밍보다 빠르게 나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재미있어지겠는걸?’

괜찮은 포수는 언제나 부족하다. 그런데 레이스에는 그 괜찮은 포수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저 친구는 안파실거죠?”

냄새를 맡은 미나시안이 슬쩍 찔러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에드먼드 아니면 호시노.”

“······ 말을 맙시다.”

인상을 팍 쓰는 미나시안을 보며 다운이 슬쩍 웃었다. 물론 다운의 입가에 머물던 흐뭇한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부상······ 당한 것 같은데요?”

“하아······.”

멍청하게 1루를 향해 전력질주하던 걸 봤을때 알아봤어야하는데!

“햄스트링이나 엉덩이 쪽 부상 같은데요.”

“내 생각도 같아. 최소 2주는 아웃이네.”

“똑똑한 앤줄 알았더니 맹한 애였네요.”

안타깝게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대신할 포수는 있어요?”

“당연히 있지.”

아마 윌슨이 나올것이다. 브래넌에게 들은것도 있었고, 최근 윌슨이 너클즈와 톰슨과 함께 다니며 엄청나게 훈련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했다.

“하긴 다운이 어떤 사람인데 서브 포수도 준비안해놨겠어요.”

한차례 너스레를 떤 미나시안이 슬그머니 운을 띄웠다.

“그나저나 다운.”

그의 눈은 너클볼을 안정적으로 잡아내고 있는 윌슨에게 꽂혀있었다.

“윌슨은 안팝니까?”

“내가 말했지? 에드먼드······.”

“드리죠.”

“뭐?”

에인절스 외야의 미래라고 불리는 조 에드먼드를 준다는 미친 말을 하는 미나시안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미쳤어?”

“제가요? 설마요. 에드먼드를 투자하는만큼 뽑아낼겁니다.”

꽤나 진지해 보이는 미나시안의 말에 다운 역시 장난기를 걷어냈다.

“누굴 원하는데?”

“알렉스 윌슨에 애드리안 카스트로. 이 둘을 줘요.”

에인절스는 굉장한 전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딱 세 가지 약점이 있었다.

첫째. 선발진

둘째. 내야진의 수비

셋째. 포수

그리고 수많은 욕을 들어먹으면서도 에인절스 팜이 정말 잘 키워내는 포지션이 하나 있었다.

바로 외야수다.

조 에드먼드가 정말 괜찮은 선수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에드먼드는 어디까지나 지금 팜에 있는 카이 브로소가 올라오기 앞서 잠시 시간을 벌기 위한 선수에 불과했다.

브로소는 에인절스 역대 최고의 유망주이자, 리빙 레전드의 토켈슨의 어린 시절에 비견되는 선수였다. 드래프트 된 이후부터 BA 3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을 정도로 굉장한 평가를 받는 유망주이기에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팬들이 수도 없이 많을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가 에드먼드가 메이저리그에 콜업되고 나서부터 잘하니까 브로소의 거취가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브로소 쪽에서 언해피가 뜨고있나보네.”

토켈슨은 아직 중견수 자리를 놓치지 않고싶어하고, 좌익수 자리에는 아직 3100만 달러짜리 계약이 3년이나 남아있는 미겔 에르난데스가 있다.

그렇다고 지명타자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그 자리는 호시노의 것이었으니까.

결국 역대급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는 브로소를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한 자리를 비워내야만한다.

“가장 좋은건 에르난데스를 덜어내는 것이겠지만······.”

“인기가 없었겠지.”

5년 전만 하더라도 에르난데스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였다. 지금은 마이크 토켈슨, 앤드류 켈리를 최고의 타자로 인정해주지만, 그 당시까지만해도 최고의 타자는 누가 뭐래도 미겔 에르난데스였다.

19세 시즌 레이스에서 데뷔를 해 24세 시즌까지 매 년 평균 0.348의 타율, 0.463의 출루율, 30홈런 이상의 시즌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ops가 1을 넘지 못했던 시즌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생각보다 부족한 수비력은 이 대단한 공격력에 가려 약점이라는 평가조차 받지 못했다.

그렇게 5년 반 동안 엄청난 활약을 하고 레인저스로 넘어간 그는 시즌 후 에인절스와 대박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에인절스와 계약을 한 이후부터 에르난데스는 서서히 내리막을 탔고, 지금은 그야말로 계륵이었다.

31세 시즌을 보내고 있는 지금. 아직까지 반등의 여지는 남아있다고 평가는 항상 받고 있다. 아직도 매 년 20홈런 이상을 때려주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의 타율과 출루율, 그리고 연봉이었다. 20홈런을 친다고는 하지만, 2할 초중반의 타율에 3할 중반의 출루율을 기록하는, 수비도 그다지 좋지 못한 타자를 써먹자고 3100만 달러라는 연봉을 주는 건 아니었으니까.

“샐덤 할만한 팀은 없겠죠?”

“에드먼드 정도는 줘야 샐덤을 받아들일걸?”

“빌어먹을······. 결국 에드먼드나 내놓으라는 소리잖아요?”

“3100만 달러는 너무 큰 지출이니까, 그 정도 대가가 아니라면 혹하지도 않는다는거지.”

“에드먼드로도 안 혹한다고요?”

“적어도 거기에 2000만 달러정도의 연봉보조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빌어먹을 빌리!”

엿같은 계약을 맺었던 전임단장을 향해 욕지꺼리를 뱉어낸 미나시안이 다운에게 눈을 돌렸다.

“그래서 윌슨은 어떻게 할거에요? 콜? 패스?”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던 다운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보류. 시즌이 끝나고 다시 생각해 보는걸로 하자고.”

“그 말 기억해둘겁니다.”

“그러던가 말던가. 우리 너클즈 공이나 지켜봐.”

< 147화 -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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