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4) >
- 오늘의 주인공인 라일리 제이콥스가 마운드에 올라섭니다. 라커룸에서는 너클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하죠?
- 라일리 그레거슨과 이름이 같아서 별명을 붙였다고 하더군요. 올 시즌 성적을 한 번 볼까요?
- 더블 A에서 18경기 선발로 나와서 3.8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이네요. 그런데 최근 다섯 경기에서의 성적으로 보면 굉장합니다. 다섯 경기에서 38.2이닝 동안 4점밖에 내주질 않았습니다!
- 그래서 레이스도 이 선수를 올릴 수 있었던거죠. 80마일에 형성되는 패스트볼에다가 60마일 중반대의 슬로우 커브까지 완벽하게 장착하게 되면서 굉장히 안정적인 투수가 되었습니다.
- 너클볼은 어느정도에 형성이 되는거죠?
- 70마일 정도에 형성된다고 들었습니다.
- 디키에게 배웠다고 하던데, 비슷한 고속 너클볼을 던지지는 않나보네요.
- 모든 투수들이 패스트볼을 던질 수는 있지만, 그들이 던지는 패스트볼이 모두 같지는 않죠. 그런 것 처럼 너클볼 역시 모두 다른겁니다. 너클즈가 던지는 너클볼을 보면 디키의 공보다는 느리지만, 상당히 변화가 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다른 너클볼들보다 좌우 움직임이 심한 것 역시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아래로 떨어지는 움직임이 보통은 많잖습니까?
- 그렇죠. 그런데 제가 더블 A 영상들을 확인해본 결과로는 아래로 떨어지는 무브먼트보다는 좌우로 흔들리는 무브먼트가 더 심했습니다. 아마 구속이나 특유의 그립법 때문이 아닐까 싶긴한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네요. 하지만 대강 짐작이 가는 바는 있습니다.
- 어떤 이유일까요?
- 제이콥스의 키는 공식적으로 201cm입니다. 착화신장은 더 크겠죠. 거기에다가 저 팔 길이 보세요. 100cm미터는 될겁니다. 2미터의 키에다가 약간은 오버핸드로 던지는 제이콥스의 투구 폼을 생각해본다면 너클볼은 약 2미터 50cm정도 되는 위치에서 던져지게 되겠죠.
- 이미 던져지는 순간부터 수직적인 무브먼트는 갖춰진거군요.
- 맞습니다. 다른 너클볼러들은 저런 키를 갖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포물선이 그려지곤했죠. 하지만 제이콥스는 이미 시작점 자체가 높기 때문에 다른 너클볼러들처럼 공을 띄웠다가 떨굴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특이하게도 좌우 무브먼트가 강한 너클볼을 던지게 된 것이고요.
- 너클볼은 변화를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말이죠.
- 결국 실밥과 공기역학적인 환경에 따라 확률적으로 변화하는 공 아니겠습니까? 최대한 아래로 떨어지는 무브먼트가 적은 그립이나 투구법을 찾은게 아닌가 싶네요. 여하튼 다른 너클볼과는 또 다른 움직임을 가지는 제이콥스의 너클볼이라면 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하지만 에인절스의 타선이라면 또 모르죠. 지난 시즌 투타에서 메이저리그에서 다시없을 기록을 뽑아낸 MVP 호시노 쇼헤이를 시작으로, 살아있는 전설이나 다름없는 마이크 토켈슨, 브래드 앤더슨, 혜성처럼 나타나 에인절스의 우익수를 책임지고 있는 조 에드먼드까지. 그리고 남은 하위 타선도 다들 타격에서 뛰어난 면을 보이는 선수들 뿐이죠. 어떤 공이든 때려낼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생각해봤을때,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힘이 들어가서도 안되죠. 너클볼은 회전이 들어가는 순간 끝나는 공이니까요.
- 방심하지 않으면서도 힘을 주면 안된다라······. 루키에게는 힘든 주문이네요.
- 빅리그에 올라온 투수라면 거쳐야하는 관문이기도 하죠.
- 자! 첫 번째 타자로 호시노 쇼헤이가 올라옵니다. 경기 보시죠!
***
팍팍!
자신이 좋아하는 바로 그 정도의 단단함으로 정비된 마운드의 느낌이 좋다. 게다가 돔구장이라 그런지, 바람에 신경써야 했던 수많은 마이너리그 시설들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바람 역시 없었다. 너클볼을 던지기에는 정말 완벽한 환경이다.
톰슨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첫 공은 역시나 너클볼이다. 고개를 끄덕인 너클즈가 자세를 잡았따.
“후우우우우······.”
길게 숨을 뱉은 뒤 숨을 들이마시면서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탁!
슈어홀츠가 했던 말이 있다.
“첫 공이 손을 떠나는 그 짧은 순간. 그때 지금까지 내가 메이저리그에 오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더라니까?”
그 순간에 수많은 기억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는건 개소리였다.
슈우웅!
잘 던진 너클볼이 기묘하게 변화하면서 미트를 향해날아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기억들이 스쳐지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제발 맞지 마라! 맞더라도 수비 정면!’
온통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팡!
다행히 첫 번째 공은 지켜보기로 했는지, 쇼헤이가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너울너울 날아가던 너클볼은 톰슨의 미트 속에 사뿐히 안착했다.
“스트라잌!”
오늘 심판은 목청이 아주 좋았다. 마이너에서 만난 심판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호시노가 뭔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뭘 알겠다는거지? 왜 고개를 끄덕인거지?’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순식간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까 진짜 잘 들어갔는데, 그 공을 또 던질 수 있을까?’
‘너클볼마저 스트라이크로 못 넣게 되면 난 어떻게 되는거지?’
갖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자기주장을 펼치려고 하는 찰나에 큰 소리가 들렸다.
“헤이 너클즈으으으!”
우렁찬 톰슨의 소리가 홈플레이트에서부터 퍼져나왔다. 그리고 그는 다른 건 필요없다는 듯 태연히 너클볼 사인을 낸 채 헬멧을 두들겼다.
그런 그를 보자 잡생각들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했을 말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분명히 내 머리통을 깬다는 생각만 하고 던지라고 했겠지.’
마누라가 원한다면 일단은 해주는게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다. 너클즈는 머리에 멤도는 생각들을 모두 지운 채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완벽하게 회전을 죽인 너클볼이 오른손을 떠나갔다.
슈우웅!
다른 투수들이 던지는 패스트볼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속도를 가진 너클볼이 나풀나풀거리며 홈플레이트로 날아들었다.
나비처럼 날아드는 공을 단죄하기 위해서 호시노는 강력한 스윙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후우우웅!
힘없이 날아가던 너클볼이 배트에 닿으려던 찰나 호시노의 몸쪽으로 급격하게 꺾여들어갔다.
팡!
그 결과는
“스트라잌!”
결과는 좋았지만, 너클즈의 가슴은 쿵쾅대고 있었다.
‘바, 방금 안꺾였으면 홈런이었어!’
저 무시무시한 스윙에 아쉬워하는 표정을 봐라. 100퍼센트, 무조건 홈런이었을거다.
톰슨 역시 식겁했는지, 괴물을 쳐다보는 듯한 표정으로 호시노를 흘긋거렸다. 그리고 난 뒤 사인을 냈다.
‘패스트볼.’
그것도 아웃하이로 나가는 패스트볼을 요구했다.
사인을 본 순간 너클즈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맞아! 무조건 맞아!’
가끔 사람은 초인적인 촉이 올때가 있었다. 그리고 너클즈의 촉은 너클볼이 아닌 다른 공을 던지면 무조건 맞는다는 촉을 울려대고 있었다.
‘슬로우커브?’
다음 사인에도 고개를 흔들었다. 남은건 너클볼 하나 뿐.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톰슨이 자세를 잡았다.
“후우우우우!”
깊게 숨을 내쉰 너클즈가 세 번째 너클볼을 던졌다.
‘제발!’
간절한 마음이 가득 담긴 세 번째 너클볼은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오른쪽으로 꺾여나갔다.
이미 출발해버린 호시노의 배트는 변화무쌍한 너클볼이 그린 잔상을 지나갈 수 밖에 없었다.
후우우웅!
“스트라이크 아웃!”
첫 타자, 그것도 전 시즌 MVP를 잡아냈다! 순간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너클즈는 그런 것을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
“예에에에에에!”
지난 시즌 MVP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랜디 존슨이 다시 돌아오더라도 자신의 공에 대한 자신감이 뿜뿜 올라갈만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내 공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하는 걸지······.’
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고 있는 사이 타석에 들어선 다음 타자와 눈을 마주쳤다.
에인절스의 터줏대감.
올스타 10회, 실버슬러거 10회, MVP 3회에 빛나는 살아있는 전설.
마이크 토켈슨과 눈이 마주쳤다.
씨익
어느 누구에게는 매력적인 웃음으로 보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너클즈에게는 저승사자가 이리오라고 미소짓는 것만 같았다.
‘제에에에엔자아아아앙!’
***
첫 삼진을 잡고 포효하는 너클즈를 보며 에인절스의 단장인 미나시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저 친구가 지난 시즌 드래프티라고요?”
“맞아.”
이번 시즌부터 에인절스의 단장이 된 페리 미나시안은 다운이 양키스 단장이 되었던 첫 시즌와 두 번째 시즌까지 같이 일했던 적 있는 직원이었다. 그것도 운영팀 부팀장이라는 꽤 높은 직책에 있었던 직원이었기에 꽤나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 꽤나 편해보였다.
“대체 다운은 어디서 저런 친구들을 찾아내는겁니까? 방금 저 깡 보셨어요? 너클볼 말고 다른 것도 던질 수 있었을텐데, 고개를 흔들고 ‘내 너클볼이 최고다!’라면서 꽂아대는 루키라니! 저 자신감 넘치는 표정 보세요. 크게 되겠어요 아주.”
지금 마운드에 올라가 있는 너클즈가 들었다면 ‘그런 생각 한 적 없다고오오오오!’라고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상황을 모르는 다운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너클볼러니까 자신도 어떤 공이 들어갈지를 모르잖아? 그래서 이미 맞을 각오를 하고 있는거지. 우리도 그래서 올린거고. 멘탈만 좋으면 너클볼러는 어디서든 평균이상 해줄 수 있을테니까.”
다운의 말에 미나시안이 입술을 핥았다.
“우리도 너클볼러나 키워볼까요?”
“아서라 아서. 레드삭스 봐봐. 너클볼러 키우는 시설까지 있는데도 몇 년동안 제대로 된 너클볼러 하나 올리지도 못했잖아. 너클볼러는 키운다고 해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본인이 되고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거야.”
“하긴. 저 친구 과거사 보니까 그럴만도 하더구만요. 뇌진탕으로 선수생활 접게 만들었는데, 다음 경기에서 또 머리쪽으로 공을 날리다니······.”
“아직 말은 안했는데, 오늘 그 친구들 초대했어.”
미나시안이 눈을 좁히며 흘겼다.
“이거이거, 그렇게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없애고 제대로 된 투수로 써먹으려는 심산 아닙니까?”
다운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하여간 여우야 여우.”
고개를 좌우로 흔든 미나시안이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그래서 더지 좀 파세요. 네?”
“안 판다니까? 너희 팜 망했잖아!”
방금까지 평화롭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말싸움으로 변했다.
“남의 팜 보고 망했다는게 어디있어요?”
“망한걸 망했다고 했는데 문제있어? 리키 데려갈거면 에드먼드 내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네?”
“너야 말로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잖아!”
“아 저기 괜찮은 투수도 생겼는데 좀 파세요! 지금 팔라는 것도 아니고, 시즌 끝나고 파는건데!”
“그럼 그때 가서 이야기하던가! 당장은 절대 생각없어! 그리고 네 팜이라면 더더욱!”
완강한 다운의 거절에 미나시안이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 정말! 진짜 이렇게 나오시면 저도 방법이 있습니다. 그 해 겨울 롱비치에서 있었던 일을······.”
“카드만 맞다면 에인절스도 염두에 둘 수 있지. 암! 그렇고 말고.”
“끝까지 보내준다는 말은 안하시네.”
“너 같으면 보내주겠냐?”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1회 초, 1회 말, 2회초, 2회말, 3회 초까지 흘러갔다.
“아까는 반 농담으로 했는데 저 친구 진짜 괜찮네요.”
미나시안이 가리킨 선수는 마운드에서 환히 웃으며 내려오는 너클즈였다.
너클즈는 3회까지 43개의 공을 던지며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성장해가는게 눈에 보여서 더 탐나네요.”
1회에 호시노와 토켈슨은 잡아낸 뒤 흐름을 탄 너클즈는 내로라하는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70마일짜리 너클볼을 자신있게 뿌렸다.
2회에 득점권에 주자가 들어가는 위기도 있었지만, 수비의 도움으로 결국에 무실점으로 극복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찾아온 3회. 다시 돌아온 호시노를 또 다시 범타처리하면서 이닝을 끝내는데 성공해버렸다. 아직 한 경기도 다 끝내지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만 봤을때는 콜업을 한 결정이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저 친구는 좀 어때요?”
미나시안이 지목한 선수는 톰슨.
“수비는 괜찮던데요.”
톰슨은 저 변화가 심한 너클볼을 단 한 번도 뒤로 흘리지 않았다.
“타격은 어때요?”
“빅리그에 올라온 순간 마이너에서의 기록은 다 잊어야 한다는거 알고 있잖아.”
“잘 모른다는 말이네요.”
“지금부터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지.”
너클즈, 아니 제이콥스는 자신의 포텐셜을, 쓰임새를 증명하고 있었다.
함께 올라온 친구가 좋은 활약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와 함께 나온 저 자신감 부족한 포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증명해봐.’
과연 다음 시즌까지 데려가도 될 놈인지, 아니면 너클즈에게 새로운 파트너를 만들어줘야 할지. 이 모든 것은 톰슨의 활약에 달려있었다.
< 146화 -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