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3) - 수정완료 >
새로운 너클볼러의 탄생을 앞둔 레이스 프런트는 바쁘기 그지없었다.
선발투수 발표 전, 목요일 홈 경기에서 예매된 좌석은 2만 석이 약간 모자라는 수준이었다. 평균적인 평일 관객 수였지만, 파인트의 등판이 있는 오늘, 수요일의 예매 좌석 수가 2만 2000석에 달한다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예매수가 적은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목요일에 선발투수가 신인 너클볼러라는 것이 발표되자마자 예매율이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드라마틱하게 오르는 수준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보러오지는 않네요.”
“너클볼은 TV로 봐야 제맛이죠.”
하긴 너클볼의 그 무브먼트는 직접 보러 가봤자 보이지도 않는다. 정말로 너클볼러의 진가를 보기 위해서는 투수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중계화면을 봐야한다.
“그 기능 푸는건 어떻습니까?”
클라인의 말에 다운의 눈썹이 씰룩였다.
“그 기능이 벌써 연동 완료 됐대요?”
여기서 그 기능이란, 레이스 앱에서 예매한 관중들은, 따로 뭔가를 하지 않아도 앱을 통해서 공짜로 해당 경기를 폭스 스포츠에서 제공하는 중계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다운의 눈빛을 받은 크로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미 개발 완료 됐다고 합니다.”
“내년부터 시행한다면서?”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아시다시피 내년보다는 지금 당장의 관객들이 훨씬 필요한 기능이잖아요.”
내년에는 외야 좌측과 우측에 가로63m, 세로 18m로 총 2580인치짜리의 전광판이 두 개 들어간다. 그리고 외야 관중들 역시 편하게 볼 수 있도록 1루와 3루 위에도 외야석 만큼은 아니지만, 트로피카나 필드 외야 에 있는 메인 전광판보다도 훨씬 큰 보조 전광판들을 설치했다. 최대한 내야와 외야에 있는 관중들이 모두 쾌적하게 전광판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놨다. 게다가 vip 석이나 테이블 석에는 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광판에서 나오는 화면과 같은 화면을 보여주는 작은 디스플레이 역시 달아놨다.
구장에 오는 관중들을 최대한 만족시키겠다는 글라이드의 의지가 잔뜩 들어가 있는 새로운 구장과는 다르게, 트로피카나 필드의 전광판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구장에 비해서는 빈약한걸로 모자라 없는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홈 경기를 보러오는 팬들 대부분은 폰으로 폭스 스포츠를 통해 중계화면을 보곤 했다. 그런 팬들을 위해 레이스에서 해줄 수 있는건 트로피카다 필드 곳곳에 와이파이 공유기를 빵빵하게 깔아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폭스 쪽에서 다음 시즌을 위한 테스트도 할 겸, 미리 풀어도 좋을 것 같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우리가 한다고 하면 바로 되는거야?”
“네. 베타 업데이트로 연동되는거 확인 끝내놨고, 업데이트만 풀면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풀자고. 굳이 너클즈 경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관중들한테 필요한 기능이잖아.”
“알겠습니다. 바로 업데이트하라고 하겠습니다.”
크로포드가 글라이드 파크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동안, 다운은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경기장 안을 바라봤다.
- 지난 이닝 2사 만루 상황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토머슨이 9회에도 레이스 마운드를 지키기 위해 올라옵니다!
- 정말 토머슨이 없었다면 레이스 마운드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 그러게말입니다. 7회까지 파인트가 무실점으로 막아주고 내려갈때까지만해도 이렇게 경기가 쫄깃해질줄은 상상도 못했죠.
- 그만큼 에인절스 타선이 무시무시하다는거겠죠. 8회 투 아웃을 잡는 동안 4점이나 내줘버렸으니까요.
에인절스의 올 시즌 타선은 무시무시하다.
부상만 아니라면 메이저리그 최강을 다퉈볼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타선이 올 시즌에는 대부분 건강한 상태로 시즌을 치르고 있었으니까 무시무시할만도 했다.
오늘도 파인트였기에 7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을 수 있었던거지, 만약 다른 투수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었다. 아무리 불펜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8회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는 동안 투수 둘을 소모해서 4점을 내주고 아웃카운트 두 개를 받아낼 정도로 강력한 타선이다.
딱!
- 토머슨이 땅볼을 유도해냅니다!
- 영리하죠. 아주 영리해요! 몸 쪽을 저렇게 강력한 공으로 찌른 뒤,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공이라니! 어떤 타자도 저 타이밍, 저 변화를 따라갈 수 없을겁니다!
파인트와 토머슨. 두 실력파 베테랑이 막아낸 타선을 과연 애송이 너클즈가 막아낼 수 있을까?
***
“아 오늘은 좀 잘 쳐보자 얘들아 어?”
“어제는 손목이 좀 안좋아서 못쳤던 것 뿐이라니까요? 자꾸 그렇게 압박하면 저 안참아오 배리?”
“덕 너 손목 아파? 내가 나가야하는거 아냐?”
“입닥쳐 데이튼. 오늘은 우투수라고.”
“나도 좌타석에서 칠 수 있는데?”
“계속 그렇게 내 자리 노리면, 네 게임속 아이템을 다 팔아버리는 수가 있어?”
“그랬다가는 이승을 하직하는 수가 있다?”
오늘도 화기애애한 레이스 라커룸 사이에서 두 사람 만큼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있었다.
“야.”
“왜.”
“나만 떨리는거 아니지?”
“아마 그럴걸?”
“미친 놈아 네 무릎 덜덜 떨리는 거나 멈추고 말해.”
“아?”
바보같은 톰슨의 표정을 본 너클즈가 피식 웃었다.
“킥!”
평소에는 불안해하는 너클즈를 톰슨이 어르고 달래주는 식의 사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게 반대로 된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잘할 수 있을까?”
“그거 내 대사 같은데?”
“오늘 같은 날은 내가 뺏어서 해도 돼.”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긴장을 풀고 있는 두 사람 사이로 누군가가 비집고 들어왔다.
“여기에 계란 네 알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음흉한 표정을 한 브래넌이다.
“그거 성희롱이에요 배리.”
톰슨의 말에 브래넌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희 눈알 네 개를 표현한건데?”
“보통 그걸 계란이라고 하나요?”
“눈알도 완벽한 구는 아니니까?”
쓸데없이 논리적인 말로 톰슨의 입을 닫은 브래넌이 두 사람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떨리지?”
물음이면서도 물음이 아니었다. 브래넌은 두 사람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았으니까.
“떨릴거야. 여기 있는 놈들도 다 떨었거든. 저기 네이트 저 자식은 데뷔전에서 1루 관중석에다가 송구를 했어.”
“배리!”
자신의 치부에 부끄러웠는지 드레이크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한 브래넌이 아니었다.
“뭐 이 자식아!”
일갈을 한 브래넌이 선수단을 하나하나 짚었다.
“리키 저 놈은 두 타자 연속 볼넷을 넣었어. 세 번째 타자가 만약에 이상한 공에 배트가 나가지 않았더라면 3연속 볼넷이었을거야.”
더지의 반응은 드레이크와는 조금 달랐다.
“아······. 진짜 그날만 생각하면 에휴. 아직까지도 생각난다니까요? 그때 만약 플래허티가 땅볼을 안쳤잖아요? 그러면 정신 못차리고 계속 있었을걸요? 그때 플래허티를 땅볼로 잡고나니까 ‘내 공으로도 메이저리거들을 땅볼처리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팍팍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4이닝만에 방전되어서 내려왔지.”
“다 경험이죠 경험.”
달관한 표정으로 웃고있는 더지의 반응이 재미없었는지, 브래넌이 곧바로 다음 타겟들을 찾아댔다.
“사무엘 저 놈은······.”
“덕 저 놈도 웃고 있지? 마찬가지야.”
자신이 지켜본 데뷔전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낸 브래넌이 두 사람에게 다시 초점을 맞췄다.
“데뷔전에 잘하는 선수는 없어.”
“그렇다기에는 잘하는 선수들도 있잖아요?”
“잘하는 것과 결과가 좋은 건 다르지. 걔네는 운이 좋아서 결과가 좋았을 뿐이야. 너희도 분명히 못할거야. 왜냐고? 다들 못했거든. 그러니 떨지 마 애송이들아.”
브래넌은 가볍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들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실수? 할 수 있어. 이닝? 못 먹을 수도 있어. 점수? 내줄수도 있지. 블로킹? 난 한 번도 잘한 적 없어. 데뷔전에는 더 못했지. 분명 너희는 나중에 돌아봤을때 민망할 정도로 못할거야.”
‘이 정도면 저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 쯤 브래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하려고 하지마. 아무도 너희가 잘할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 그냥 저기 나가서 해야할 일만 딱 하고 내려와. 프로답게.”
두 사람은 브래넌의 말을 따라 읊었다.
“프로답게······.”
“너클즈 너는 프로답게 너클볼을 던져. 그리고 제시는 그 너클볼을 받는거야. 그것 뿐이야.”
돌아서는 브래넌의 뒤로 레이스 선수들이 늘어섰다.
“잘하는건 우리가 할테니까. 너희는 다른 생각 하지 마.”
방금까지 장난스럽게 보이던 선수들의 얼굴이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Boys!”
때마침 캐시 감독이 선수들을 부르며 나타났다.
“It’s show time.”
“가자!”
***
홈경기는 선 수비 후 공격으로 진행된다.
두 사람이 시작부터 주인공으로 올라가야한다는 말이다.
레이스 이겨라!
오늘 잘해야돼!
루키 힘내라!
2만 명이 넘는 관중들이 각자 내는 소리가 웅웅거리며 구장 안을 멤돌았다. 환호성을 질러대는 관중들 사이로 드레이크가 나아가서 시크하게 손을 흔들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중견수로 선발출장한 마이어가 외야로 나가기 전 슬며시 다가와 말했다.
“어떻게 저렇게 태연한가 싶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이어가 씨익 웃었다.
“쟤가 이상한 놈이니까 신경쓰지마. 우리도 매 경기마다 긴장되고 힘든건 똑같거든. 아까 우리 대장이 하는 소리 들었지? 잘하는건 우리 몫이야. 그러니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마. 그냥 즐겨. 그리고 긴장한 마음은 연습구 던지면 좀 괜찮아질거야. 투수는 던지고, 포수는 받아야지 긴장이 좀 풀리는 법이야.”
“너클즈! 제시! 준비됐어?”
어느덧 다가온 투수코치가 두 사람을 불렀다.
“더그아웃 잘 보고. 사인은 더그아웃에서 낼거야. 알겠지?”
“네.”
사실 너클볼러에게 무슨 사인이 필요하겠나. 하지만 캐시가 이런 결정은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얻어맞으면 그건 벤치에서 사인이 잘못된 것 때문이니까 크게 신경쓰지 마.”
“네!”
“너클즈 우리는 오늘 네가 5이닝, 혹은 100구를 채울때까지는 마운드에서 내릴 생각이 없어. 그러니 얼마든지 네가 원하는만큼 던지고 와. 제시도 너무 부담갖지 말고.”
“알겠습니다!”
이제 톰슨은 홈플레이트로 가서 연습구를 받아줘야 한다. 홈플레이트로 두 걸음정도 옮기던 톰슨이 돌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너클즈에게 다가왔다.
“내가 등판때마다 항상 하던 말 기억하지?”
대학 시절 라이벌 학교의 포수였던 톰슨이 팀메이트가 된 뒤로 항상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있었다.
“절대로 네 공이 내 뒤로 빠지게 만들지 않을거야. 그러니 대학 내내 널 괴롭히던 라이벌 대가리를 깬다는 생각으로 던져.”
그 말과 함께 톰슨이 발발 떨리는 미트를 들어올렸다.
‘나 떨린다. 너도 떨리지? 그러니 빨리 하이파이브 해!’
라고 말하는 듯하는 눈빛을 보며 너클즈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 항상 답하던대로 입을 열었다.
“하여간 허세는 더럽게 떨어요. 무릎 안나가게 보호대 제대로 차라.”
너클즈 역시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미트를 쳤다. 그러자 안심이 되는 듯 톰슨이 슬쩍 미소지으며 홈플레이트로 내려갔다.
잠시 후,
에인절스의 첫 타자 호시노 쇼헤이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심판이 큰 소리로 외쳤다.
“플레이 볼!”
심판의 큰 소리와 함께 라일리 제이콥스와 제시 톰슨의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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