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
이번 콜업에서 올라올 선수는 제시 톰슨, 조 블랜튼, 데이튼 레이몬드, 라일리 그레거슨, 라일리 제이콥스까지 총 다섯 명.
새로운 얼굴들의 합류로 라커룸에는 활기와 함께 미묘한 긴장감이 멤돌았다.
“애송이들아 왔냐!”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드레이크의 뒤통수를 브래넌이 후려갈겼다.
따악!
“악!”
“애송이는 무슨.”
“아니 저도 이제 3년차인데!”
“3년차면 애송이 딱지는 뗐지만, 쟤들보고 애송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 쯧쯧!”
자신의 자리가 확고한 선수들은 새로운 선수들을 환영해주었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경쟁자가 생긴 선수들은 경계와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이 부분은 포수들 사이에서 심했다.
포수가 라인업에 셋이나 들어가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운과 캐시는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포스트시즌 가면 로스터에 포수 하나는 더 필요해요. 지금부터 경험치를 먹인다고 생각하죠 뭐.”
프런트에서는 잔잔한 물결을 보는 식으로 넘어갔지만, 한 선수에게는 쓰나미와도 같았다.
“알렉스 윌슨!”
“음?”
윌슨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애송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새로운 선순가?”
그러자 그 애송이는 감격한 듯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넵! 이번에 너클볼 전담포수로 콜업된 제시 톰슨입니다! 제 롤모델을 만나게 되어서 너무 떨립니다! 앞으로 많이 가르쳐주세요!”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멧돼지를 보는 듯한 느낌에 윌슨은 뒷걸음질을 쳤다.
“그,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한 명 정도는 그래 괜찮다.
어차피 너클볼러 전담포수니까.
‘너클볼 그 잡기도 힘들고, 블로킹하기도 까다로운거, 내가 하느니 저 친구가 열심히 해주면 좋지.’
이런 생각은 잠깐이었다.
“지금 우리 포수 연습 하는거 아닙니까?”
불펜포수도 아니고 갑자기 포수 훈련하는 곳에 네 명이나 들어찼다. 평소에는 두 명이서 훈련을 했는데 말이다.
“제시가 올라온다는건 들었는데, 포수가 한 명이 더 있었어요?”
톰슨이 올라올것이라는건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났었다. 하지만 또 한 명의 포수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었다.
“아, 이 친구가 포수부터 내야, 외야까지 다 가능하거든. 그래서 미리 포수 연습도 시켜놓으려고.”
이제는 내외야 전부 가능한 유틸리티가 아니라, 포수까지 가능한 선수가 나오고 있다.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이렇게 되면 내 출장시간이 더 줄어들텐데.’
지금은 좌타자에 강한 윌슨이 좌완 선발 시, 혹은 윌슨을 편하게 생각하는 파인트와 더지의 등판일에 선발 마스크를 쓴다. 그리고 사무엘이 남은 경기에서 선발 마스크를 나눠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었다. 더지도 다음 시즌부터는 트레이드 블럭에 올라갈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지금 하위 로테이션에 있는 투수들은 윌슨보다는 비어만과 함께하고 있었고, 비어만이 마스크를 쓰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고 있었다. 더지가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면, 윌슨이 전담으로 맡는 선수는 파인트 하나가 남게 될 것이다.
게다가 비어만은 스위치 히터이면서도 좌우편차가 그다지 크지 않은 타자. 비어만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완전한 주전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었다.
비어만이 주전으로 점점 자리를 잡게 된다면, 자연적으로 윌슨의 출장시간은 줄어들거다. 하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빠르다. 적어도 두 시즌은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비어만의 주전 정착이 최근의 활약으로 인해서 가속화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지! 잘하네 제시!”
“나이스 캐치 톰!”
저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배터리 코치인 빈스가 윌슨의 속도 모르고 툭툭 쳤다.
“캬~ 잘하지 않냐? 네가 팁 몇 개만 알려주면 진짜 잘할 것 같은데?”
“하하······ 진짜 그렇네요.”
“요즘 애들은 진짜 너무 잘하는 것 같아.”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
여기에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값싼 수비형 포수 한 놈에, 포수부터 내외야가 전부 가능한 놈 하나까지?
‘내 자리가 너무 빨리 없어지는데?’
윌슨은 이제 고작 32살이다. 벌써부터 백업포수만으로 커리어를 마감할 생각이 없었다. 포수 자리에서 밀려난다면, 다른 활로를 모색해야한다.
그리고 윌슨은 포수 자리에서 밀려나서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는 선구자 한 명을 잘 알고 있었다.
“배리. 오늘 경기 마치고 한 잔 하실래요? 내일 쉬는 날이잖아요.”
“뭔······.”
시즌 중에 한 잔이야 한잔은?
이라고 말하려던 브래넌은, 윌슨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좋은 곳을 알고 있으니까 거기로 가자.”
“알겠어요.”
경기 종료 후 브래넌이 윌슨을 데리고 향한 곳은 단장실이었다. 오늘은 어찌된 일인지, 다운도 보이질 않았다.
“잠깐 배리. 여기 이렇게 막 들어와도 돼요?”
“돼. 이미 허락 맡았어.”
어쩐지 다운이 안보이더라니, 이미 이야기가 된 모양이다.
“네 표정을 보니까 밖에서 마시는건 안될 것 같더라고. 그리고 어린 놈들 눈에 띄어서 좋을건 없잖아? 이왕이면 프라이빗하고 우리만 있을 수 있는 조용한 장소가 좋지.”
“그렇다고 해서 단장실을······.”
“흔쾌히 빌려주던데? 원래는 같이 마시자고 했는데, 다운이 거절했어. 내가 들어보고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일때는 그때 자신을 찾아오라더라.”
다운이 미리 준비해둔 위스키와 잔 두 개, 그리고 얼음을 꺼내온 브래넌이 각자의 앞에 잔을 놓았다.
꼴꼴꼴
황금빛의 위스키가 잔에 따라졌다. 브래넌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잔을 내밀었다.
쨍!
유리잔이 가볍게 키스한 뒤 황금빛 액체를 두 사람의 목구멍에 흘렸다.
“크~ 이 맛이지!”
“크!”
한 잔을 한 뒤 다시 잔을 채운 브래넌이 물었다.
“뭐 이렇게 또 고민걱정이 많은 얼굴이야?”
“그냥 커리어 고민이죠. 그거 말고 무슨 고민이 있겠어요?”
브래넌은 다시 위스키를 입에 털어넣었다.
“크~ 밀려나는 것 문제인가?”
“네.”
“아직 좀 남지 않았어?”
“지금 사무엘이 하는 것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 그냥 알려주는 족족 흡수해서 이제는 가르칠것도 없다니까요. 거기다 새로 온 애들 수비력 봤어요?”
“봤지. 제시 그 놈은 너클볼 가지고도 프레이밍 하더라.”
나풀거리는 너클볼을 잡는 것도 놀라운데, 톰슨은 그걸 흘리지 않으면서 프레이밍까지 했다. 잡는 것도 어려운 공을 프레이밍이라니!
그걸 눈으로 봤을 때, 윌슨은 톰슨이 미친놈인줄 알았다.
“제이콥스는 살아남겠죠?”
“데뷔전을 어떻게 하냐에 달리긴 했지만, 훈련에서 보여줬던 그 모습 그대로라면 살아남겠지.”
너클볼에 패스트볼, 슬라이더가 있는 투수다. 수비는 어차피 뒤에 있는 야수들이 해줄테니, 본인이 멘탈만 잘 잡는다면 얼마든지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는 놈이 될거다.
“그럼 필연적으로 톰슨은 남을거고.”
제이콥스는 프로에 발을 들인 이후부터 톰슨과 쭈욱 함께해왔다. 그러다보니 비어만과 윌슨, 그리고 블랜튼이 마스크를 쓰자, 눈에띄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세 사람이 너클볼을 잡을 수 있게 되더라도 제이콥스의 등판일에는 톰슨이 무조건 마스크를 써야만 할 것이다.
“톰슨이 서브로 가면, 저는 이제 더 밀리겠죠.”
“그래도 네가 밀리지는 않잖아? 넌 타격도 되고.”
“톰슨이 빅리그에서 어떤 타격을 선보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더블 A에서는 못하다가 메이저리그에서 타격을 잘하는 선수도 존재했다.
“그런 친구들은 적잖아.”
“없지는 않죠. 타격만 어느정도 올라오면 백업포수 자리는 무조건 저 친구가 가져가겠죠.”
“너무 벌써부터 걱정하는거 아냐? 아예 블로킹을 못했던 나랑은 다르게, 넌 수비가 되잖아.”
“그때 가서 걱정하면 늦어요.”
그것도 맞는 말이다. 언제나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이니까.
“그래서. 다른 포지션이라도 해보게?”
“좌익수를 준비해보려고요.”
“좌익수보다는 1루수를 먼저 해봐. 일단 우리 팀에 좌익수를 할 수 있는 선수는 많잖아. 그에 비해 1루는 덕 빼고는 제대로 된 놈이 없어.”
“이번에 데이튼 올라왔잖아요.”
“걔가 메이저리그에서 잘한다고 누가 장담이라도 했어? 그리고 개인적으로 좌익수보다는 1루가 더 쉬워. 팝업으로 뜨는 공의 결도 포수자리에 있을때랑 비슷하고, 내야 땅볼처리만 가능하면 훨씬 쉽게 느껴질거야. 나도 만약 바운드 처리만 더 잘했으면 1루로 갔을거야. 물론 코너 외야 연습 해놓는 것도 나쁘지 않아. 특히 너는 어깨가 아직 쌩쌩하잖아? 우익수 펜스 앞에서 3루까지 송구 가능하지?”
“당연히 가능하죠.”
롱토스를 좋아하는 파인트와 함께 그 정도 거리까지 롱토스 연습도 하곤 했다. 송구와는 결이 다르긴 하지만, 어렵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보단 네 발이 조금 더 빠르니까, 타구에 대한 감각만 좀 익히면, 코너 외야까지 충분히 커버 가능할거야”
거기까지 말한 브래넌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근데 있잖아. 알렉스.”
“네.”
“왜 네가 너클볼러 뺏을 생각은 안해?”
브래넌의 말에 윌슨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커리어를 더 연장하고 싶다면서 왜 뒷방 늙은이처럼 물러설 생각부터 하고 있냔 말이야. 샘이 너무 잘해서 이겨낼 자신이 없어?”
정곡을 찔린 윌슨이 말을 잇지 못했다.
“알아 나도 포수니까 알지. 밀려봤으니까 알아. 나는 무릎도 점점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블로킹 하나하나 쫓아가는게 힘들어지는데, 저기 있는 저 젊고 쌩쌩한 놈은 수비를 잘하지. 거기다 스위치 히터로 타격까지 너무 잘해.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충분히 들 수 있어. 이해해.”
브래넌이 잔을 들고 윌슨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있잖아. 알렉스. 비밀 하나 말해줄까?”
“뭔데요?”
“내년부터는 풀타임 지명타자로 전환할거야.”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윌슨의 눈이 커졌다.
“정말요?”
이번 시즌도 지명타자로 출장하고는 있지만, 매일 캐시에게 달려들어
“케빈 오늘 좌익수 누굽니까?”
“케빈. 오늘 무릎 컨디션 엄청 좋은데요? 수비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케빈! 좌익······.”
저런 식으로 조르는 사람이 바로 브래넌이었다. 그런 그가 내년에는 풀타임을 생각하고 있다니.
“매일 버티고는 있지만, 무릎도 그렇고 허리도 예전같질 않아. 사실 타격만으로도 힘들어.”
“그런데도 좌익수를 고집하는게······.”
“지금 아니면 더 이상 못하니까.”
순간 윌슨의 말문이 막혔다.
“오늘은 수비가 가능하지만, 내일은 수비가 불가능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 내 몸이 허락해주는 한, 하루라도 더 많은 경기에서 수비를 하고싶은거야.”
다시 위스키를 한 잔 더 들이킨 브래넌이 말을 이었다.
“내가 포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제일 후회한게 뭔지 알아?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거야. 커브가 너무 좋은 투수는 내가 블로킹하기 힘드니까, 서브에게 넘겼지. 그러고 나니까 점점 나보다는 서브로 포수를 보던 벅이 투수들 사이에서 더 선호되고 있더라고. 그때부터 다운의 압박도 시작됐지. 그리고 새로운 팀을 갔을때, ‘포수는 보장해줄 수 없다. 하지만 포지션을 옮기면 자리를 보장해주겠다.’는 말을 들었어. 거기서 난 또 한 번 도망쳤지. 무릎도 안좋은데, 수비할 생각을 하니 싫어지더라고. 타격에만 집중하면 양키스에게 복수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도망쳤지.”
“그렇다고 하기에는 잘됐잖아요.”
“능력이 있었으니까. 타격이 되잖아. 그게 문제야. 만약 내가 능력이 없었다면 정말 죽을 각오로 매달렸을텐데. 너도 같은 생각일거야. 공은 더럽기 그지없는데, 블로킹도 자주 준비해야하고, 언제 어떤 공이 올지 몰라서 계속해서 긴장해야하는 공 따위 받기 싫을수도 있어. 게다가 오늘 훈련에서 제이콥스가 톰슨이 앉아있을때를 제외하고는 제구가 불안했다며? 그러니 톰슨이 한 자리 파고드는게 당연해졌겠지. 포지션도 마찬가지야. 타격이 되니까, 다른 포지션을 가더라도 타격은 더 잘할 자신이 있고, 수비도 어느정도 해낼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거야. 근데 너무 이르잖아.”
브래넌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만약 톰슨이 제 역할을 못하고, 제이콥스가 마운드에서 잘한다면? 구단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톰슨을 잡고있는 것보다는 마이너로 내리겠지. 우리 구단에는 메이저리그 최상급의 수비력을 가진 포수가 둘이나 있거든! 내가 아닌 그 누가 와도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지.”
팡!
브래넌의 솥뚜껑같은 손이 윌슨의 등을 때렸다.
“알렉스. 후회하는건 나 혼자로 충분해.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서 부딪혀봐. 벌써부터 밀려날 생각을 하기에는 넌 너무 젊고, 능력있는 포수잖아. 그러니 부딪혀봐.”
< 143화 -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