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이 친구 한 번 써보시죠(2) >
이런 상황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지난 시즌이었다.
지난 포스트시즌 발목부상을 당한 뒤부터 페리시치가 틈만나면 발목부상을 당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발목에 무리가 가기 시작하면 또 뭐가 따라오냐?
발목을 삐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 때문에 전반적인 하체 전체에 부하가 걸리게 된다. 그렇게 올 시즌 페리시치가 결장한 경기가 지금까지 40%정도 된다.
부상이 오면 경기를 못뛰고, 경기를 못뛰면 폼도 떨어지고 성장세도 멈춘다. 그렇게 되니 결국 내외야가 전부 가능한 자원인 앤더슨이 좌익수로 출장하는 상황까지 와버린 것이었다.
“루카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의 루카스는 아무 특색이 없는 인저리프론 선수일 뿐입니다.”
줄부상을 당하면서도 돌아만 오면 좋은 활약을 해주면서 희망고문을 놓치지 않았던 서머스와는 다르다. 페리시치는 그 부상 덕에 스피드도 떨어지고, 수비범위가 줄어들고, 타격에서의 힘이 떨어졌다.
“지금도 본인은 부인하고 있는데, 엉덩이쪽 부상이 살짝 있는 것 같다는 트레이너의 소견이 있었습니다.”
“흐음······.”
다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리죠.”
지금까지는 부상에서 곧 회복되어 강해져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버려뒀다. 하지만 부상을 숨기면서까지 남아있으려고 한다? 그건 팀에도, 본인에게도 좋지않다.
물론 페리시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었다.
레이스 팜에는 프레드 올라루스라는 외야 유망주가 있다. 게다가 포수부터 내야수, 외야수까지 전부 커버가 가능한 조 블랜튼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 브레이브스에서 애지중지 키웠던 알렉스 스프라우트까지 들어왔다.
어떻게든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두고볼 수 없다.
“더블 A정도까지 내려서 확실히 회복될 때까지는 경기에 내보내지 말고, 회복된 뒤에 올리는걸로 합시다.”
“거스. 이번에도 자네 추천을 좀 받아보자고.”
“아무래도 셋 중에서는 알렉스 스프라우트가 가장 좋긴 하지. 수비 괜찮고, 어깨 강하고, 파워도 좋아. 문제는 존 설정이지.”
하지만 앞서 데이튼 레이몬드를 추천할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걸리는거라도 있어?”
“마이너에서 존 설정을 완벽하게 하고 왔으면 좋겠어.”
“그 의견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마이너에서 스윙도 조금 간결하게 바꾸고, 존 설정도 제대로 하는게 나을 것 같네요.”
메이저리그 급 투수들의 공은 대응하기에도 급급할 수 밖에 없다. 그것보다는 조금 쉬운 아래 레벨에 내려가서 편하게 존 설정에만 집중하는것이 그의 커리어를 위해 좋을 것이다.
선수 본인의 의지가 필요하긴 하지만 파워가 붙으면서 스윙을 조금 더 간결하게 바꾸는 것도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봤다. 그래야 내년에 써먹을 수 있을테니까.
“개인적으로는 조를 한 번 써봤으면 좋겠습니다.”
조 블랜튼
애슬레틱스와의 딜에서 데려온 친구다. 포수부터 내외야가 모두 커버 가능한 수비력을 자랑하는 선수로 빠른발, 강견, 좋은 글러브질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꼭 이런 선수들이 가진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타격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최근 타격 성적이 조금 괜찮아졌던데요?”
5월까지만해도 1할타율을 벗어나질 못했다. 하지만 6월부터는 2할 초반을 치기 시작하더니, 7월부터는 2할 중반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이어진 두 번의 시리즈에서 그는 6경기에서 8안타를 기록했다.
“타격에서 꽤 진전이 있었습니다. 타석에서의 접근법 역시 달라졌고요. 그래서인지 최근 안타를 잘 뽑아내더군요. 수비에서의 활용도도 뛰어나고, 대주자로 활용도 가능합니다. 한 번 정도는 기회를 줘봐도 될 것 같습니다.”
“좋아요. 그럼 블랜튼에게 한 자리를 투자해보죠.”
페리시치를 내릴 예정이기 때문에 블랜튼을 콜업한다고 하더라도 한 자리가 남는다.
“남은 한 자리에는 에스코바에게 기회를 줘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프란시스 에스코바는 블랜튼과 함께 애슬레틱스에서 넘어온 선수다. 애슬레틱스 당시 팜 1위에 있는데다가 타격 포텐이 터져서 당장에라도 메이저리그에 올릴 수 있을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손에 사구를 맞는 바람에 골절상을 당하는 바람에 그 기세가 시들해졌다.
“에스코바도 최근에 타격이 꽤 올라왔습니다.”
“부상 여파를 완전히 지워냈나봐요?”
생전 처음 당해보는 사구로 인한 골절상은 어린 에스코바에게는 꽤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평소에는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하던 에스코바는 복귀 이후에도 몸 쪽 공을 상당히 어려워했다. 이로 인해서 타격이 제대로 돌아가질 못했고, 그래서 내야 콜업 1순위 역시 레이몬드에게 밀리게 된 것이다.
“이틀 전에는 몸 쪽 공을 때려 홈런까지 만들어냈습니다. 1루 수비만 됐다면 데이튼보다 먼저 추천했을겁니다.”
“그러면 브라이언을 일단 외야로만 쓰는걸로 하고 에스코바를 한 번 올려봅시다. 어때요 케빈?”
다운의 말에 캐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앤더슨을 주전 좌익수로 쓰고, 블랜튼을 외야 서브로, 정말 필요할때는 브래넌이나 흘로첵을 좌익수에 쓰면 된다.
“그럼 일단락 된겁니까?”
“대충은 끝난 것 같네요.”
자리를 정리하려고 하는 찰나 거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선발 있잖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거스에게로 돌아갔다.
“추천해볼만한 놈이 하나 있긴합니다.”
“그래요?”
다운이 알기로 당장 트리플 A에서 바로 선발로 올려 쓸만한 선수는 없었다.
왜?
필승조의 부상으로 인해 쓸만한 투수들은 이미 한 차례 끌어서 쓰고 있었으니까.
그런 다운이 모르는 쓸만한 선수가 있다?
“누군데요?”
“라일리 제이콥스입니다.”
“라일리 제이콥스라면······.”
지난 해 드래프트에서 뽑은 2미터 넘는 키를 가진 좌완투수다. 정확히는 204cm라고 알고 있었다.
“그 친구가 트리플 A까지 올라왔었어요?”
다운이 알기로 제이콥스는 더블 A에 있었다.
“아뇨. 아직 더블 A에 있습니다.”
“그럼 트리플 A에 올리는게 맞는 순서이지 않을까요?”
레이스의 팜 시스템은 철저히 모든 레벨을 거치도록 되어있었다. 그걸 팜 디렉터인 거스가 모를 리 없었다.
“제이콥스는 조금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왜죠?”
“그가 너클볼러이기 때문이죠.”
제이콥스는 흔치 않은 너클볼러, 그것도 좌완 너클볼러다.
원래는 99마일짜리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추어 시절 헤드샷으로 뇌진탕을 일으키고, 다음 경기에서 바로 또 어깨를 맞춘 뒤, 존에 아예 공을 넣지 못하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걸려버린 비운의 너클볼러였다.
“이미 너클볼은 꽤 완성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트리플 A에서 시험을 해보지 그랬어요?”
“그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다른 구종을 존으로 던지지 못한다는 것.”
너클볼러라고해서 모든 공을 너클볼로만 던지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급의 타자들은 회전이 조금 덜 걸리는 공, 혹은 너클볼이더라도 타이밍만 잘 맞는다면 언제든지 안타를 때려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타격은 타이밍이다. 너클볼이 제아무리 매번 다른 변화를 가지고 들어오는 공이라고 할지라도 일정한 속도와 타이밍을 가지고 들어오는 너클볼 하나만으로는 절대 빅리그에 올라올 수 없었다.
다른 타이밍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너클볼러는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할 수 있는 구종 두 개 정도는 꼭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있었다는건 해결을 했다는 말이겠죠?”
“그렇습니다. 원래 던지던 정도는 아니지만, 80마일대의 패스트볼과 66마일 정도에서 형성되는 슬로우 커브는 존에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이콥스의 너클볼은 70마일 초중반에 형성된다. 여기에 저 두 가지의 구종이 추가된다면 65마일, 70마일, 80마일의 세 가지 타이밍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완벽하게 제구가 되는 수준은 아닙니다. 그냥 경기 중에 존에 넣을 수 있다 정도일 뿐입니다.”
“그 정도만 해도 괜찮죠.”
너클볼은 어디로 향할 지 알 수 없는 공. 스트라이크가 될지, 볼이 될지도 투수가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너클볼러들은 ‘어느정도 제구는 할 수 있다’라고 하긴 하지만, 그것도 확신할 수는 없는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존에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갈 수 있는, 너클볼과는 다른 타이밍의 구종’을 두 가지나 얻었다는건 확실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전담 포수인 톰슨 때문입니다.”
너클볼에 익숙하지 못한 포수는 제아무리 수비가 좋다고 하더라도 곤욕을 치르게된다. 따라서 너클볼러는 필연적으로 전담포수가 따라붙는다. 전담포수는 일반적인 미트보다 훨씬 큰 미트를 이용해서 어떤 변화의 너클볼이 오든 쫓아가 잡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물론 비어만과 윌슨의 수비력은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고작 며칠 같이 훈련하는 것만으로 너클볼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너클볼을 드럽게 변화가 심한 공이었으니까.
따라서 만약 제이콥스를 정말로 빅리그에서 쓸 생각이 있다면, 그의 전담포수인 제시 톰슨까지도 메이저리그에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톰슨의 타격이었다.
“톰슨 타율이 어떻게 되죠?”
“0.211입니다.”
메이저리그가 아니다. 트리플 A도 아니다. 고작해야 더블 A에서 2할 초반을 치고 있는 포수다.
물론 톰슨은 수비력을 보고 데려온 포수이긴 했다. 그리고 그는 그에 걸맞는 수비 지표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블 A라고는 하지만, 도루저지 시도 33번에 성공 32번은 말도 안되는 수치었으니까. 게다가 현대 포수에게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레이밍과 블로킹까지도 메이저리그 기준 55점을 부여하는 코치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운이 보기에 이는 아무런 가산점도 줄 수 없는 항목들이었다.
왜냐?
아직까지는 출장시간이 더 많은 알렉스 윌슨은 메이저리그에서 블로킹 3위, 프레이밍 1위, 도루저지 2위에 랭크되어있는 최상급의 수비력을 가진 포수다.
게다가 그에게 맨투맨 레슨을 받고 있는 사무엘 비어만 역시 블로킹 8위, 프레이밍 5위, 도루저지 5위에 올라올 정도의 수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출장기록이 있는 포수들을 모두 집계한 결과, 수비력만큼은 최상위권에 랭크되어있는게 두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타석에서까지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수비력만 좋고 타격은 바닥이나 다름없는 톰슨이 어떻게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캐시의 생각은 다른 듯 했다.
“톰슨 그 친구는 너클볼 잘 잡아?”
“너클볼도 프레이밍 한다는 평가가 있어.”
“푸하하! 그게 뭐야? 너클볼도 프레이밍한다고?”
“자기가 당장 살 길이 그것밖에 없다는걸 아는거지.”
“재밌네.”
캐시가 씨익 웃으며 다운에게 고개를 돌렸다.
“단장님.”
무슨 말을 할 지 알 것 같다.
“정말 그래야겠어요 케빈?”
“생각해보시죠 단장님. 너클볼러에게 가장 필요한게 뭡니까? 바람과 수비 아닙니까? 그 점에 있어서 우리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트로피카나 필드는 폐쇄형 돔 구장. 바람으로 인한 변수가 가장 적다고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레이스의 수비력은 메이저리그 최고라고 자부할 정도로 뛰어나다.
어찌보면 현재 너클볼러가 뛰기 가장 좋은 팀이 아닐까?
“한 번 만 써보시죠 단장님.”
“흠······.”
다운은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그를 올렸을때의 장단점을 계산했다.
“톰슨까지 같이올려야 할텐데요?”
“에스코바를 다음번에 콜업하는걸로 하죠.”
“좋아요. 그런 생각이라면야······. 거스 제이콥스 최근 등판일이 언제죠?”
“3일 전이었을겁니다.”
“그럼 오늘 바로 트리플 A로 콜업시키세요. 톰슨과 함께 거기서 한 경기 뛰게 만든 다음에 빅리그에 콜업하는걸로 하죠.”
“알겠습니다.”
< 142화 - 이 친구 한 번 써보시죠(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