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마지막 인사(3) >
- 안녕하십니까 메이저리그, 그리고 레이스와 오리올스 팬 여러분! 축제와도 같았던 미드 서머 클래식이 끝나고, 다시 메이저리그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 오늘 경기는 양 팀 모두에게 중요하죠.
- 그렇습니다. 오리올스는 2위를 확고히 하면서 1위인 양키스를 쫓아가야 하는 상황이고, 레이스는 어떻게든 레드삭스를 뿌리치고 2위인 오리올스를 쫓아가야하죠.
- 달아나야하는 오리올스와 쫓아가야하는 레이스의 싸움이군요.
- 그렇습니다. 레드삭스의 경기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번 3연전을 통해서 레이스는 오리올스와의 승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도, 엄청나가 차이가 벌어질수도 있는겁니다.
- 그것말고도 오늘 경기가 정말로 특별한 이유가 있죠?
TV 화면과 전광판 가득 몰려드는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록하트의 모습이 비쳤다.
- 그렇습니다. 바로 이 선수의 레이스 마지막 경기가 있죠! 멜튼 록하트! 2017년 1라운드 18순위로 레이스에 지명되어서 19년에 1군 데뷔, 그 뒤로 쭈욱 레이스의 주전 3루수를 맡아온 선수입니다. 수비를 중시하는 레이스의 주전 3루수다운 수비력, 매 시즌 2할 후반, 30홈런 이상을 때려낼 수 있는 타격까지. 현대 야구가 요구하는 3루수의 조건들을 모조리 갖추고 있는 선수가 바로 록하트입니다. 이를테면 레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 수 있죠. 레이스 입장에서는 잡고 싶었을겁니다.
- 레이스가 예전처럼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록하트를 잡지 않았던 이유가 있을까요?
- 공식적으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이유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 어떤 이유인가요?
- 록하트는 3000만 달러라는 S급 선수의 커트라인 이상의 금액을 원했답니다. 하지만 레이스에서는 그 금액을 들어줄 수가 없었죠.
- 그야 플로리다 주의 주세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겠죠. 실수령액을 따지면 결코 그 정도의 금액을 줄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 그것도 그렇지만, 팀 내 최고 코어 유망주로 대우를 해주고 있는 드레이크라던가 비어만보다 더 높은 금액을 줄 수가 없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레이스는 팀의 오랜 기둥이 될 두 선수보다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할 수 없었을테죠. 그 결과 최대한 많은 대가를 얻어낼 수 있는 지금 이 시기에 트레이드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 어찌됐든간에 이런 식으로 트레이드 예고를 해놓고 마지막 경기를 홍보했던 경우가 있었나 싶네요.
- 제 기억 속에서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도 멋진 일 같네요. 록하트가 마지막 경기를 뛸 수 있게 배려해준 오리올스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 맞습니다. 비록 수비 한 이닝과 한 타석이라고는 하지만, 앞서 말했던 두 팀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오리올스도 쉽사리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을거거든요.
- 그런 결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타순은 상당히 특이합니다.
1번 타자 - 3B - 멜튼 록하트
2번 타자 - SS - 네이선 드레이크
3번 타자 - RF - 패트릭 비어스
4번 타자 - DH - 배리 브래넌
5번 타자 - 1B - 덕 흘로첵
6번 타자 - C - 사무엘 비어만
7번 타자 - 2B - 세드릭 우드먼
8번 타자 - LF - 브라이언 앤더슨
9번 타자 - CF - 케빈 마이어
선발 투수 - 조나 파인트
- 기존에는 3번 혹은 5번을 쳤던 록하트가 1번으로 전진배치 되었습니다.
- 한 타석이라도 출루를 하면 곧바로 바꿀 예정이기 때문에 이렇게 짜인 것 같네요. 록하트와 교체되어 들어갈 서머스가 발이 그렇게 느린 선수는 또 아니거든요.
- 이후 상황까지 모두 고려해서 라인업을 짠것이로군요.
- 그렇죠. 그리고 페어웰 게임의 주인공이 가장 먼저 나와야 그림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
- 때마침 경기가 시작하네요!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 가장 앞서서 나옵니다.
***
‘이제 이쪽 더그아웃에서 이렇게 뛰어들어오는 일도 없겠지?’
이제는 원정 더그아웃이 그의 자리가 될 것이다. 홈 더그아웃에서 그라운드를 향해 뛰어가는 것마저 느낌이 이상하다.
“헤이 멜튼!”
반 쯤 넋이 나가있는 록하트의 귀에 파인트의 외침이 들이박혔다.
“마지막 이닝이라고 대충 수비하는거 아니지?”
그러면서 파인트가 손가락을 들어 동그랗게 돌렸다.
“관중들 꽉 찬 거 보이지?”
“보이죠.”
“만약 네가 오늘 실책하면 잘 보냈다고 박수쳐줄 사람들이거든?”
“에이~ 설마요.”
“궁금하면 실책 한 번 해보시던가?”
파인트의 농담에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는 느낌이다.
팡! 팡!
“궁금하긴 한데, 볼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아시겠지만 제가 또 수비가 워낙에 좋아서 말이죠.”
파인트는 씨익 웃으며 이제 좀 눈빛이 돌아온 록하트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1회에는 네쪽으로 공이 많이 갈 것 같으니까 한 번 해보시던가.”
“맡겨두세요.”
그렇게 말한 록하트의 정신은 상대 타자가 들어오자 또 아련하게 떠나가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저 팀에서 같이 동료로 뛰겠구나.’
군청색의 레이스 유니폼이 아니라 주황색의 오리올스 유니폼을 입고 말이다.
야구란 놈은 이상하다. 꼭 무슨 일이 있거나, 주목해야할 만한 선수, 혹은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선수 쪽으로 공이 간다. 상대가 노리고 친 것도 아니고 공에 생각이 있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따악!
록하트가 다른 생각을 하는 잠깐의 순간에 울리는 타격음. 상대 1번 타자가 친 타구가 빠르게 3루를 향해 날아왔다.
원래라면 순식간에 반응했을 타구였지만. 잠깐 새 딴 생각을 한 것 때문에 반응이 살짝 늦어버리고 말았다.
타닷!
공을 제대로 잡았지만, 상대 1번 타자는 상당한 준족이다.
‘빨리 던져야······.’
반응이 늦어 수비가 어설퍼진 것 때문에 발이 꼬였다. 그래서인지 송구 역시 생각보다 훨씬 낮게 날아갔다.
슈우우웅!
평소라면 흘로첵의 가슴팍으로 갔을 송구였지만, 이번만큼은 1루수가 팔을 쭉 뻗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위치로, 그것도 애매하게 한 번 바운드 될 위치로 던져졌다.
“덕!”
제발 잡아주길 바라는 간절한 외침이 닿아서일까?
“Got ya!”
흘로첵은 다리를 쭉 뻗어서 이상하게 바운드 된 공을 미트로 낚아채는데 성공했다.
“나이스 캐치 덕!”
흘로첵의 저 수비가 아니었다면 1회 첫 타자부터 실책을 할 뻔했다. 그래서인지 나이스 콜을 외치는 록하트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덕분에 한 숨을 돌리면서 집중력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후! 경기만 생각하자 경기만!’
파인트와 비어만이 그렇게 만든건지, 상대 타자들이 이쪽만 노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물같은 야구공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3루를 향해 날아왔다.
- 록하트 다이빙! 캐치! 잡아냅니다! 그리고 앉은 상태 그대로 1루로! 1루로! 아웃입니다! 록하트가 세 개의 아웃카운트를 모두 잡아내는데 성공합니다!
뒤이은 슈퍼캐치 두 번 덕분에 록하트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더그아웃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봤죠 조나?”
파인트가 웃는 동안 옆에 있던 드레이크가 낄낄거리며 붙었다.
“봤죠 조나? 첫 번째 타구때 팔 절다가 급하게 던지고 식겁하는 모습?”
칭찬해줄까 하던 파인트도 록하트를 놀리고 싶었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동참했다.
“봤지. 엄청 애처롭게 ‘더어어억~!’이라고 외치는 것 까지 들었지.”
“아니 제가 언제······.”
어느새 들어온 마이어도 한 마디 보탰다.
“외야에서도 들리더라.”
“외야만이겠어? 더그아웃에서도 잘 들리더라. 아마 오리올스 더그아웃에서도 듣지 않았을까?”
브래넌까지도 낄낄웃으며 한 마디를 보탰다.
“이닝 첫 타자이자 레이스에서 마지막 타석을 나서는 저를 위해줄 사람은 없나요?”
록하트가 애처롭게 주변을 돌아봤다. 하지만 다들 웃으며 쳐다볼 뿐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단 한 사람. 더지만이 록하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에게 헬멧을 건네주었다.
“역시 리키 너밖에······.”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는 언제나 가장 큰 적인 법.
“멜튼. 닥치고 어서 치고 들어와.”
“······ 빌어먹을 새끼.”
더지의 열렬한 응원(?)을 받은 록하트가 더그아웃을 나섰다.
[1번 타자! 3루수! 멜트으은! 록하트!]
레이스의 목소리인 모건 브래넌의 우렁찬 목소리가 타이밍에 맞춰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휘익! 멜튼! 저기가서 너무 잘하지 마! 적당히만 잘해야 돼!”
“록하트 최고!”
“멜튼 고마웠어어어!”
중간중간 귀로 파고드는 팬들의 외침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멍청아! 멍하게 있지말고, 손이나 흔들어.”
2번 타자로 대기타석에 나가있던 드레이크의 조언에 따라 헬멧을 들어올려 주변을 향해 흔들었다. 그러자 박수와 함성소리가 더 커졌다.
이런 상황.
어디선가 겪어본 적이 있었다. 록하트는 곧 이런 상황을 언제 겪어봤는지를 깨달았다.
‘데뷔전 같다.’
데뷔전이 딱 이랬다.
3루에서 죽을 쑤고 있던 전임 3루수가 팀을 떠나고, 시범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인 자신이 개막전 선발 3루수로 들어갔을 때. 바로 그 때도 이런 상황이었다.
데뷔 전부터 팬들이 따라붙던 자신이 데뷔 첫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뒤 타석에 있던 마이어가 ‘멍청아! 관중들한테 인사하지 말고 타석에 들어가!’라고 했던 것까지도 기억난다.
그리고 그때처럼 지금도 굉장히 붕 뜬 기분이 든다. 마치 내가 타석에 서있는건지 아닌지 모르겠는 그런 붕 뜬 기분.
그때와 다른거라고는 약간은 답답하고 먹먹한 가슴밖에는 없었다.
“헤이. 너무 잘 치지마요. 적당히 쳐요 알겠죠?”
내일부터 같은 팀원이 될 상대 포수의 농담도차도 귀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그때 어떤 공이 왔더라?’
5년전 데뷔전 타석.
파아아앙!
몸 쪽 살짝 높은 곳을 향해 98마일짜리 패스트볼이 미트에 정확히 꽂혔다.
“스트으으으라잌!”
맞다. 그 타석에서의 첫 공은 패스트볼이었다.
‘너따위 애송이가 내 전력을 담은 패스트볼을 칠 수 있겠어?’라는 의미가 가득 담긴 100마일짜리 패스트볼이 한가운데로 들어왔었다.
그 당시의 결과는 삼진.
첫 공을 놓쳐버린 애송이에게 다음으로 들어오는 메이저리그 급 변화구는 넘기 힘든 산이었다.
하지만 4년 반이 지난 지금은
슈우우웅!
이런 가운데 몰린 슬라이더는
따아아아악!
타이밍만 맞는다면 언제든지 때려낼 수 있는 공에 불과했다.
타구가 점점 멀어짐에 따라 관중들의 환호성은 점점 커졌다.
와아아아아!
그리고 완벽히 공이 넘어간 순간 록하트가 레이스 타자로의 마지막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1루
2루
3루
그리고 홈플레이트
마지막 질주가 끝나고 돌아온 록하트의 앞에는 드레이크부터 레이스의 모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줄을지어 서 있었다.
“고생했다.”
드레이크를 시작으로 한 사람씩 다가와서 힘차게 포옹했다.
“가서 너무 잘하지 말자.”
“좋은 계약할때까지는 그래도 잘해야지. 건강하게 야구 잘하자 멜튼!”
“우승만 우리보다 먼저하지 마.”
“맞아 우승은 우리가 먼저 해야지.”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내는 팀원들을 보며 록하트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 팀에 다시 돌아와 뛰고 싶다.’
그때에도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140화 - 마지막 인사(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