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마지막 인사(2) >
오리올스에서 데려올 유망주는 홀드시키는 것으로 방향이 잡아졌다.
“조엘 엘링턴. 아무리 생각해도 이 친구 순위 떨어지는 건 부상 때문인 것 같아. 올 시즌에 오리올스 로스터에 진입할 가능성이 보이니까 계속해서 무리를 하고 있는 것 같거든.”
‘오리올스에서도 알고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은근히 이런 사실은 구단 내부에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트리플 A에 속해있는 선수라면 말이다.
조금만 더 하면 콜업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로스터에 들 수 있을 것 같은 그 타이밍에 부상이라니.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구단과 협의도 필요하고, 커리어도 중단된다.
게다가 조엘 엘링턴은 급격한 구속 성장으로 이제 막 자신의 실링을 보여주기 시작한 선수.
여기서 팔꿈치 수술?
‘저 문제 있을지도 몰라요!’라고 홍보하는 것이나 다름없을거다. 그러니 선수는 기를 쓰고 숨기면서 경기에 나가려고 하는거고.
“큰 수술은 아니고?”
“그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냥 뼛조각 청소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딱 뼛조각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피칭폼 달라지는 그 타입에 해당하는 것 같아.”
“오케이. 그럼 떨어지기까지 기다리자. 계속 주시해.”
“퇴근할때 집까지 몇 발자국 걷는지까지 다 조사해놓을테니까 걱정하지 마.”
오리올스 지명 건을 마무리했으니, 이제는 록하트의 마지막 경기를 준비할 차례다.
올스타 게임이 마무리 된 뒤, 록하트는 다운을 찾아왔다.
“마지막 한 경기. 뛰고 가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경기를 뛰겠다는 그의 표정을 밝아보였다.
‘안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할 때의 그 표정으로 봤을 때, 록하트는 마지막 경기를 뛰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봤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일은 아니지.’
록하트의 마지막 경기는 감성과 이성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경기다.
시작은 기사였다.
- 오리올스, 멜튼 록하트와 선수 넷을 맞바꾸는 메가 딜 성사!
- 같은 지구 라이벌로 가게 될 록하트! 레이스의 미래는?
- 다운 “록하트와의 이별은 아쉽지만 예견되었던 미래. 서머스의 활약 기대해.”
- 앙헬로스 “록하트의 트레이드는 연장계약까지 염두에 둔 것. 연장계약에 최선을 다할 것.”
가뜩이나 하루 전날에 드링크워터의 트레이드 기사가 나간 마당이다. 그런 상황에서 연타로 록하트의 트레이드 기사는 레이스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 나갈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입맛이 쓰네······.
- 동감이야. 그래도 멜튼이 있는 동안 3루는 걱정한 적 한 번도 없었는데.
- 친구들 힘내자고. 우린 다른 팀도 아니고 레이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이잖아? 아프지만 견뎌야 해.
- 서머스하고 연장계약 맺을 때부터 예견된 미래였지. 그래도 서머스가 꽤 잘해줘서 나는 만족해.
- 나는 여전히 불안해. 서머스가 언제 또 부상당할지 몰라서 불안해.
- 부상만 아니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맞는 말이지.
- 그나저나 아쉽다. 지난 홈경기가 멜튼 마지막 경기인줄 알았으면 가는건데······.
- 나는 그래도 올스타전 갔었어. 그게 아마 레이스 유니폼을 입고 뛴 마지막 경기 아니었을까?
이미 [유망주 -> 잘 키운다 -> 연장계약 실패 -> FA가 되기 전에 가격 높을 때 판매]라는 사이클을 수도 없이 겪어본 레이스 팬들은 순식간에 올스타 선수 두 명이 이탈했다고 할지라도 그저 잔잔하게 안타까움을 표할 뿐,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다운은 그 사이에 불을 지를 생각이었다.
“브래드. 멜튼 마지막 경기라고 쫙 뿌려줘요.”
“아이아이 캡틴!”
심슨의 손짓에 홍보팀 직원들이 하나같이 전화기를 잡았다.
“홀드해놨던 그거 이제 올려도 돼.”
“어. 지금 바로 올려줘.”
“네네. 감사합니다.”
전화하는 태도만봐도 경력을 짐작할 수 잇을 것 같다.
“오자마자 일을 늘려주시는군요.”
시즌 초반 넘쳐나던 관중들은 서서히 줄어들어, 이제는 평균 2만 명 정도의 관중들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레이스에게는 많은 관중이긴 했다. 하지만 시즌 초반의 그 관중 뽕을 맛봤던 프런트 입장에서는 아쉽기만 한 숫자였다. 그래서 계획한 것이 바로 마지막 경기 홍보였다.
누군가는 감성팔이라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상술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단은 사업체다. 스포츠에는 로망과 낭만이 있지만, 그 아래에는 자본이 깔려있다. 그리고 이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생각이 없었다.
“멜튼의 마지막 경기라고 하면 분명 팬들이 많이 올거야.”
그도 그럴만한 것이 록하트는 드래프트 된 직후부터 유명했다. 잘생긴 외모의 백인 1라운더. 거기에다가 수비와 타격까지 좋다. 게다가 배리의 아이들 아니랄까봐 팬서비스 역시 아주 좋았다. 그러다보니 팬들도 저렇게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고.(실제로 드링크워터가 떠났다는 기사에는 그냥 가서도 잘해라 라는 글 밖에는 없었다.)
지난 홈 경기가 그의 마지막 레이스 경기가 될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팬들의 아쉬움을 긁어주면 분명 팬들이 간만에 구장으로 몰려올 것이다. 그리고 떨어진 평균 관중 수를 채워주겠지. 어쩌면 만원관중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
“팬들은 멜튼의 마지막 경기를 볼 수 있고, 멜튼은 만원관중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는 만원관중으로 돈을 벌고. 윈윈윈이지.”
그것뿐만 아니다.
록하트는 한 경기를 뛴 뒤, 다음경기부터 상대팀인 오리올스 소속으로 경기를 치르게된다.
이 흔치 않은 광경을 보러올 사람 역시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어쩌면 초심을 잃은 시즌패스 소유자들이 다시 한 번 부스팅 될 수 있는 힘을 줄지도 모른다.
물론 순기능만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예상했던 댓글이 달리네요. 무슨 레전드도 아닌데 작별경기냐고요.”
“꼭 저렇게 태클을 거는 놈들이 있어요.”
“내가 장담하건데 저 놈은 다른 팀 팬이다. 우리 팀 팬이라면 아이를 보내는 심정으로 바라보겠지. 멜튼이 사고를 친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아니나다를까 그 댓글은 수많은 레이스 팬들의 댓글공격을 받고 사라졌다.
“반응 보니 내일부터는 아주 끝내주게 바쁘겠네요.”
심슨이 몸을 쭉 펴면서 죽상을 지었다. 다운은 그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푹 쉬고 왔으면서 왜 그래요? 저는 쉬지도 못하고 올스타전 갔다왔다고요.”
그러자 저 옆에 있던 클라인이 입을 씰룩거리면서 다가왔다.
“쉬지도 못했다고요 단장님? 제가 듣기로는 그게 아니던데?”
다운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클라인의 동선으로 보아하니 그가 나온 방향은 구단주실 쪽. 아마도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체스를 뒀을거다. 글라이드가 출근하는 날은 식사 후에 꼭 체스를 한 판씩 두곤 했으니까.
클라인의 ‘나는 다 안다는 표정’에서 유추해보건대, 분명 거기서 뭔 말이 나왔을거다. 두 사람이 체스를 좋아하긴 하지만, 입을 쉬게 두면서 진중하게 체스를 두는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자신의 이야기가 나왔을거다.
아마도 스테이시와의 그 날 밤 이야기가 말이다.
“잠까······읍읍으브븝!”
클라인의 입을 닫게 만들려던 다운의 입은 솥뚜껑같은 케이지의 손에 막혔다.
“읍으으브븝!(평소에는 분석실에서 나오지도 않는 사람이!)”
다운이 소리쳐봤지만, 완력으로는 구단의 어떤 선수도 이길 수 없는 케이지의 우람한 품에서 벗어나는건 불가능했다.
“단장님 거 조용히 좀 해보십쇼. 그래서 피트. 마저 이야기해봐요.”
순식간에 파트장들이 한데 모였다. 심지어는 직원들마저도 귀를 쫑긋하는게 보였다.
“그게 말이지······. 이번에 단장님이 올스타전가서 아주 뜨거운 밤을 보내셨다던데요? 흐흐흐!”
“이야! 드디어 단장님도!”
“크! 다행이구만! 동네에서 틈만나면 만나는데 단 한 번도 여자를 데리고 있는 걸 본적이 없어! 그래서 나는 두 개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 단장님이 게이이거나 고자일거라고 말이야.”
“브래드가 저렇게 생각할 정도라니 .단장님 대체 어떤 삶을 사신겁니까?”
케이지가 질문을 하며 손에 힘을 풀었다.
“하······. 정말 어스틴······. 어디까지 말했어요?”
“웬 미녀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것 정도? 그 뒤로는 별 일 없었습니다. 마치 어릴 적 자신을 보는 것 같다면서 본인 이야기로 넘어가셨죠.”
“이미 그 말을 한 것 부터가 별 일인 것 같은데······.”
골아프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다운에게 클라인이 스윽 다가왔다.
“그래도 이제 연애할 여유까지 생기셨네요. 단장님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
클라인이 말을 잇지 못하자 러셀이 말을 받았다.
“날이 서 있었지.”
“맞아. 딱 그 표현이 맞는 것 같아. 열정은 넘치지만 날이 서 있었지.”
“닐도 곧바로 쳐내시고.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감이 있으신 것 같았어.”
그들의 말에 다운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 물었다.
“제가요?”
다운이 회상하기로는 그 당시에는 새로 팀을 맡아서 이 팀을 어떻게 개편할까에 대한 생각이 넘치던 그런 시기였다.
날카로운 느낌?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열정은 열정인데 뭔가 그 헤까닥 한 사람의 열정인 것 같은 느낌이었죠. 최근까지도 단장님은 집에 있는 시간보다도 구단에 있는 시간이 길잖아요? 그래서 단장님 건강을 걱정하던 직원들도 한둘이 아니었어요.”
“직원들이 걱정을 해요?”
“그럼요. 저희끼리 부서별로 단장님 감시······ 라고 하긴 뭐하고 케어하던 당번도 있었는걸요.”
“에? 진짜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단장님 야근하실때마다 직원들 마주치지 않았어요?”
“어······.”
그러고보니 지난 해 야근할때 유독 직원들을 많이 마주치곤 했다.
“아하하! 할 일이 남아서······.”
“집에 돌아가면 애를 봐야하거든요. 당연히 자고 있죠. 하지만 제가 들어가면 무조건 깰걸요? 그럴 바에는 구단 휴게실에서 플스게임을 좀 더 하는게······.”
“저요? 차가 퍼져서 하하······. 태워주신다고요? 괜찮습니다! 저기 저 친구 야근이 끝나면 차 얻어타기로 했거든요. 그나저나 커피 한 잔 하시겠습니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다들 자신이 퇴근하는 그 시간까지도 퇴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리타를 제외하고는 게임하고 가거나 운전하기 귀찮다고 수면실에서 자는 직원들 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게 다 당번이었어요?”
“처음에는 그랬죠. 새로운 구단주님과 단장님이 오셔서 불안해하는 직원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겪어보니 단장님은 아주 좋은 분이었고, 구단의 방향성에 대한 확실한 비전도 있는 분이었죠. 이제 막 희망을 갖게 되었는데 선장이 쓰러지면 안되잖습니까? 그래서 자발적으로 보살폈죠. 제가 알기로 커피에 영양제 같은 것도 많이 탔을걸요?”
“어쩐지 맛이 쓰더라니······.”
블랙이라서 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랬는데 지금은 한층 마음의 여유가 생기신 것 같아서 정말 보기 좋습니다. 하하!”
예기치 않게 걱정을 끼친 모양이다. 다운은 민망함에 뒷통수를 긁적였다.
“지금은 그 당번 사라진 거 맞죠?”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아마 그 때 한 한 달 정도 하고 그만뒀을겁니다. 그 뒤로는 자발적으로 남았었죠.”
“앞으로도 제발 그런거 하지 마세요. 정말로요.”
“알겠습니다. 하하!”
내일 록하트도 부디 프런트 직원들, 코칭 스태프, 선수단, 그리고 팬들에게 이런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139화 - 마지막 인사(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