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날이면 날마다 열리는 장이 아니야(2) >
[니콜라 터너? 그 친구 시범경기랑 시즌 초에 죽쑤던 오리올스 친구 아닌가?]
워낙에 임팩트가 커서 그런지 앤소폴로스도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맞아요. 3루에서 관중석까지 직행으로 송구 날린 적도 있고, 어이없이 펌블하면서 실점한 적도 있는 친구죠.”
[그런 친구를 우리한테 더해주면서 대안이라고 제시하는건가?]
살짝 노기가 섞인 목소리. 하지만 다운은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답했다.
“만약 터너가 그때와 같은 선수라면 제가 이런 제안은 안했겠죠.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선수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지?]
“멜튼의 대체자로 쓸만할 것 같아서 트리플 A에서도 눈을 붙여놨었거든요. 아, 물론 조니도 동의했어요.”
이 업계에서 ‘스카우트 by 다운&조니’ 마크가 붙었다는건 재능은 인정받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그래?]
앤소폴로스의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그저그런 모습을 보이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만약 그걸 견디고 더 좋아지면, 빠른 시일 내에 트레이드 해오려고 생각했던 선수였거든요. 그리고 그 선수가 지금 저희 손에 있죠. 그게 뭘 뜻하겠어요?”
[괜찮아졌다?]
“많이 괜찮아졌어요. 아직 빅리그에서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트리플 A에서 보여주는 모습만 봐서는 트라우마가 생겼다거나, 입스가 오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예전에는 수비를 설렁설렁 했었는데, 이제는 하나하나 집중해서 하더군요. 아주 긍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죠. 물론 타격에서는 아직 완숙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올 시즌부터 기회를 주면서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누굴 키우기에는······.]
“알아요. 키울 시간 없죠.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저 친구는 즉전감이에요. 몇 경기만 딱 기회를 주면 해낼 놈이라니까요? 스프라우트처럼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어요. 그냥 딱 넣으면 돼요. 제가 그 친구를 주시하고 있다가 데려온 이유가 뭐겠어요? 멜튼이 나가고 만약 서머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부상을 당했을 때는 대비한거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겠어요? 저희 팀에 남아있었어도 곧바로 빅리그에 박고 썼을 놈이라는 말이에요 알렉스.”
다운과 조니가 보증하고, 이번 시즌에 바로 쓰려고 했다는 말은 앤소폴로스에게는 크나큰 유혹이었다. 그리고 앤소폴로스는 그 유혹을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인내심이 강하지는 않았다.
[OK.]
앤소폴로스가 두 단어를 내뱉자 다운은 속으로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됐다!’
드링크워터라는 올스타 급 1루/외야수 자원이 빠지는건 안타깝다. 하지만 그와의 계약은 어차피 반년 남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라도 이득을 볼 수 있다면 무조건 팔아치워야한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손해보는 딜 같은데······. 그레거슨은 다른 카드로 바꾸면 안될까?]
“드링크워터요 알렉스. 돌아온 코디 드링크워터를 두 명으로 바꾸는거에요. 만약 그레거슨이 아니었다면 스프라우트? 어림도 없죠. 팜에 남아있는 선수들 중 최소 셋은 더 털었을겁니다.”
[쩝. 그럴 놈이긴 하지.]
다운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며 입을 열었다.
“잘 생각하신겁니다 알렉스.”
[이번 딜이 실패로 돌아가면 자네 눈에 문제가 생긴걸로 알거야.]
“그건 오히려 제가 할 말 같은데요? 그렇게 자기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없습니까?”
한 방 먹은 앤소폴로스가 고개를 흔드는 것이 눈에 선하다.
[하여간 말은······. 사무국으로 공문 보낼테니 서류들 보내.]
“서류는 늦을거에요. 다 휴가인거 아시죠?”
[빠졌구만. 우리 구단은 휴가따위 없는데.]
“그러다 직원들이 욕해요.”
[월드시리즈까지 나가서 상여금 나눠받으니까 말 싹 사라지더만. 올해도 받으려면 열심히 일해야지 않겠어?]
“무서운 상사네요.”
[아주 이상적인 상사지. 휴가 끝나자마자 보내.]
“알겠어요.”
전화를 끊은 다운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티니 한 잔 부탁해요.”
앞의 바텐더에게 주문을 넘긴 다운은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냈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꼭 뽑고 싶었던 메이슨 스탠하우스.
파워가 매력적인 우타 1루수 애드리안 카스트로.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파워를 가진 외야수 알렉스 스프라우트.
브레이브스 팜 내 1위이자 불펜에서 곧바로 써먹을 수 있을것이라 예상되는 라일리 그레거슨.
거기다 비옥한 오리올스 팜에서 15순위 밖에 랭크된 유망주까지.
이 다섯 명의 선수를 1년 반 남은 록하트와 반 년 남은 드링크워터를 주고 얻어냈다.
이 정도면 축배를 들 자격이 있었다.
“아차!”
물론 한 가지 더 마무리를 하고 말이다. 다운은 아직도 손에 쥐고 있던 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삐~ 조니 로벨입니다. 지금은 휴가 중이니······.]
“지······.”
랄 말고 전화 받으라는 말을 하려던 다운은 옆에 스테이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가까스로 새어나가는 단어를 붙잡았다.
“······오니. 휴가 중에 미안한데 곧바로 체크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야. 지금 막 오리올스, 브레이브스랑 딜을 했거든? 거기서 데려온게 누구게?”
[······스탠하우스?]
스탠하우스를 놓치고 아쉬움에 며칠을 끙끙앓던 로벨이다. 그래서인지 단번에 정답을 맞췄다.
“정답.”
[홀리 퍼킹 쉣! 다운 넌 정말 미친놈이야! 그걸 어떻게 데려왔어? 젠장할! 오리올스가, 아니 앙헬로스가 메이슨은 그냥 내줬어?]
소란스러운 로벨의 반응에 미키가 소환되었는지, 미키의 목소리도 들렸다.
[단장님? 무슨 일인데?]
[아니 미키! 다운이 스탠하우스를 데려왔다잖아!]
[뭐? 홀리 퍼킹 쉣!]
미키는 저런 상스러운 말은 안했던걸로 기억하는데, 로벨에게서 옮은 모양이다.
[대체 어떻게 된거야?]
“멜튼을 보냈어.”
[받은건?]
“애드리안 카스트로하고 15순위 밖의 픽. 그리고 니콜라 터너.”
[잠깐. 아까 브레이브스하고도 딜했다며?]
“코디를 보냈어. 그리고 아쉽게도 터너는 우리와 한 경기도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지.”
[거기서는 뭐 받았는데?]
“알렉스 스프라우트랑 라일리 그레거슨.”
[오! 마이! 갓! 다운 넌 오늘부터 그냥 신이야 신! 젠장할! 알렉스 스프라우트라니! 그 놈 키 큰거 봤어? 예전에 쓰던 파워풀한 스윙만 간결하게 바꾸면 부상 위험도 낮추고 미친 놈이 될 수 있는 놈이라고!]
[아니지 조니! 스프라우트는 감을 못 잡을수도 있잖아. 그것보다는 최근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그레거슨에 더 기뻐해야하는거 아냐?]
누가 스카우트 커플 아니랄까봐 이상한걸로 싸움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프로였다.
[15순위 픽. 그거 당장 해야하는거야?]
“아니. 메이슨이 우리한테 올때까지로 추후지명으로 미뤄도 돼.”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리올스 팜 뒤지는거네.]
“정확해.”
오리올스 팜 전체를 뒤지는 것이 바로 1순위로 할 일이었다.
다운이 가진 것은 40인 밖, 그것도 랭킹 15위 밖의 유망주 중 하나다. 그럼에도 모든 팜을 뒤지는 것은 랭킹의 유동성 때문이었다.
지금은 1위를 하고 있는 유망주가, 시즌 종료 후에는 15위 밖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15위 밖의 선수지만 시즌 종료 후에는 1위가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유망주 시장이다.
그렇다면 일단 저평가되어있는 유망주를 고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당장에 순위가 하락중인 유망주라고 해도, 로벨이, 그리고 미키가 ‘얘는 곧 반등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판단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따지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오리올스 팜을 뒤지기 시작해야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로벨과 미키는 이게 시간싸움이라는걸 알아차렸다.
[바로 시작해야겠네요.]
[미키! 내 맥북도 들고와줘! 3차 정리에 크로스체크까지 해서 의견서 보내줄게. 시간은······.]
“서부시간으로 내일 오전 10시까지만 보내줘.”
[밤새 일하라는거야?]
“어차피 안 잘거잖아.”
저 유망주 변태들이 남의 팜에서 보석을 찾는 일을 두고 잠에 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릴 너무 잘 알아.]
“그럴만도 하잖아? 메일 보내고 메시지 남겨줘.”
[Yes sir!]
우렁찬 구호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에너지 넘치는 친구네요.”
일이 모두 끝났는지 스테이시가 매력적인 미소와 함께 얼굴을 들이밀었다.
“맡은 일에 대한 힘이 넘치는 친구죠. 일은 끝났어요?”
“네. 덕분에 편하게 일 끝냈죠. 다운은요?”
“저도 덕분에 잘 끝냈어요.”
일도 모두 끝낸 마당에 오늘 밤 남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제 방에 보니까 꽤 비싸고 좋은 술이 있던데, 그거나 마시면서 서로 알아가보는게 어때요?”
스테이시의 도발적인 제안에 다운이 입꼬리를 올렸다.
“좋은 생각이네요. 안그래도 여긴 너무 시끄럽다고 생각했거든요.”
뜻이 맞았다는걸 확인한 스테이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쪽지를 내밀었다.
“제 방 번호에요.”
“말로 하셔도 되는데.”
“까먹고 다른 방으로 가면 어떡해요.”
“그런건 또 안 까먹는 편이거든요.”
“아, 이런 일 많이 겪어보셨다?”
“저한테 중요한 건 절대 안까먹는 편이라는 말이죠.”
능구렁이 같은 다운의 말에 스테이시가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한 업무 보고해야해서 아버지와 이야기 잠시 나누고 올라갈 것 같아요. 방 앞에서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저도 마침 방금 벌인 일을 구단주님께 이야기를 해야하거든요.”
“저보다 먼저 도착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요. 그럼 조금 이따 봐요.”
스테이시는 윙크를 날리며 사라졌다.
바텐더가 준 마티니를 마시고 잔을 탁 내려놓은 다운은 방금 있었던 일들을 글라이드에게도 말하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꾸욱!
······기도 전에 어깨에 익숙한 손이 올라온 것을 깨달았다.
“어스틴?”
글라이드였다.
“안그래도 할 말이······.”
“스테이시 로저스. 로저스 커뮤니케이션스의 재무팀장으로 재색을 겸비했다는 소문이 자자하지. 구단주인 모건 놈이 엄청나게 아끼는 손녀이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에 들디?”
“아니 어스틴. 지금 그게······.”
“둘이 계속해서 붙어있던데. 말은 많이 했고?”
“아니······.”
“서로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던데, 마음에 드는거 맞지? 모건 그 자식이 반대를 해도 내가 어떻게든 성사시킬테니까 너는 그냥 아무 걱정하지 말고 하면 된다. 알겠지?”
“아니 대체 뭘······.”
마치 다 안다는 듯이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글라이드.
“아까 받은거 방 번호 아니냐?”
“아니 그건 또 언제······.”
“내 소싯적에 많이 받아봤지. 물론 제니를 향한 마음 때문에 단 한 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이건 믿어주는게 남자의 도리인 것 같다.
“알겠어요 어스틴. 근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트······.”
“쉿!”
다운의 입은 글라이드의 검지에 틀어막혔다.
“내일 이야기 해. 지금 가장 중요한건 저 여자야 다운.”
글라이드는 아주 진지한 표정과 눈빛으로 비장하게 말했다.
“장갑은 빼고 해도 된다. 뒤는 내가 책임지마.”
오 글라이드 제발!
< 137화 - 날이면 날마다 열리는 장이 아니야(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