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거절할 수 없는 제안(3) >
[사람을 불러놓고 이렇게 사라지는건 예의가 아니잖아!]
“사라지다뇨. 그저 조금 바쁜 일이 있어서 답이 늦었을 뿐이죠. 그리고 저라고 알렉스가 이렇게 곧바로 답장할거라고 예상했겠어요? 그동안 알렉스의 회신률이 어땠는지 다시 상기시켜줘요?”
앤소폴로스는 전화가 아닌 메시지는 곧바로 답장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정말 급하다면 전화하겠지.”
라는 생각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보통은 항상 메시지에 대한 답을 후순위로 미뤄두곤 했다. 그래서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빠르면 30분, 늦으면 두어시간까지도 걸리곤 했다.
[크흠······. 그건 내가 미안하게 생각······. 근데 다운 자네는 나한테 메시지 잘 안보내잖아?]
“보내긴 하죠. 찔러보는 건은 대부분 메시지로 보내잖아요. 양키스에 있을때 워낙에 당해가지고 정말 급한건 전화하지만요.”
어찌됐건 앤소폴로스의 잘못 누적 비율이 더 크다. 그걸 아는지 그는 목소리 볼륨을 살짝 줄였다.
“근데 록하트 관심도 없지 않았어요?”
다 알고 있지만, 다운은 한 번 의뭉을 떨어봤다.
[선수끼리 왜 이러실까? 이미 알고온거 아냐?]
“자세한 건 모르죠.”
[어디까지 아는데?]
“디에고 카브레라의 부상. 하지만 정도는 몰라요. 그래서 대충 찔러보는 메시지 넣은거고요.”
[거의 다 아네.]
“부상 정도가 가장 중요한것 같은데요? 뭐 반응을 보니까 시즌 아웃 이상인 것 같긴 하지만.”
손과 얼굴피부가 부벼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오늘 부상 오피셜 뜰거고, 내일이면 부상정도에 대한 기사들이 뜰거야.]
“어느정돈데요? 강도놈들이 차로 들이받았다는건 들었는데.”
[그 개자식들이 하필이면 운전석을 들이 받았어. 웃긴게 뭔지알아? 디에고가 직접 운전할거라고 생각을 안했던거야. 돈이 많으니까 베네수엘라에 와서는 기사를 쓸 줄 알았던거지.]
애석하게도 디에고 카브레라는 운전 광이었다. 슈퍼카부터 올드카까지 이런저런 차를 모으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사전조사도 안했나보네요.”
[그러게나말이다. 그래서 기사가 도망갈수도 있다는 생각에 운전석을 들이받았대. 그래서 디에고를 병원에 데려간 것도 그 강도놈들이란다. 참 나 기가차서 정말!]
정말 다이나믹한 나라다.
[그쪽 병원에서 긴급조치만 취하고, 미국에 다시 건너와서 검사하고 수술받을 예정이긴 해.]
“그래서 구단 오피셜이 늦는거네요.”
[베네수엘라 병원보다는 우리 협력병원이 훨씬 믿을만하니까. 지금까지 듣기로는 왼쪽 골반이랑 대퇴골 일부 골절이라는데······.]
“심각하네요.”
골반은 물론이고, 대퇴골 골절이라면 잘못 부러졌으면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할 수도 있는 부위였다.
“부러진 부위는 어떻대요?”
저럴때는 깔끔하게 똑 하고 부러지는게 선수생활 연장 가능성이 높았다. 조각조각나면 회복도, 복귀 가능성도 줄어들게 될것이다. 특히나 카브레라는 나이도 있으니까 더더욱 그럴 것이었다.
[다행히 반으로 똑 부러졌어. 하지만 이번 시즌은 완전히 아웃이야.]
어쩌면 다음 시즌까지도 아웃일 수 있다. 복귀를 하더라도 예전의 우리가 알던 그 카브레라는 아닐 확률이 높았다.
“좋아요. 그럼 대가는요?”
브레이브스는 우승을 노리려는 팀이다.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해놓고 양키스에게 패한 입장이니, 딱 한 걸음만 더 가면 될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저런 악재가 터져나온거다.
[우리도 큰 대가는 못 줘. 알지? 우리 팜 거덜난거?]
“카를로스 앙헬 주니어 데려올 때 팜 거덜낸거 모르는 단장이 어디있어요?”
[그래서 적당히 제안할게. 알렉스 스프라우트에 라일리 그레거슨.]
“잠깐만요. 알렉스 스프라우트를 준다고요?”
알렉스 스프라우트는 3년차 외야수로 1년차에 0.285의 타율에 22홈런, ops 0.953을 기록하며 신인왕 2위, MVP 5위에 올랐던 적이 있는 선수다.
하지만 2년차인 지난 시즌, 데뷔 시즌때의 센세이셔널한 모습은 사라졌다.
2할 중반의 타율에 14홈런.
이 기록까지만 봤을때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떨어진 그의 ops였다.
첫 시즌에 전형적인 ops형 타자의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두 번째 시즌 장점이던 선구안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ops가 고작 0.754에 불과할만큼 엄청나게 떨어진 것이다. 드링크워터의 경우였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타격의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선구안이고 뭐고 다 사라진 드링크워터와는 다르게, 스프라우트의 스윙이나 타격 밸런스는 건재했다.
문제는 사라져버린 선구안과 그에 따른 출루율 저하였다. 그것이 생긴 이유도 간단했다.
바로 갑작스러운 성장.
스프라우트는 착화신장이 175cm에 불과할 정도로 단신이면서도 꽤 괜찮은 펀치력을 갖춘 ops히터였다. 하지만 첫 번째 시즌이 끝난 뒤 급작스럽게 키가 커져버렸다.
한 번의 겨울을 보내고 온 뒤 그의 키는 184cm가 되어있었다. 심지어 신발을 벗은 상태에서 말이다!
[그 나이에 클줄 누가 알았겠어?]
“20살 시즌이면 클만도 하죠. 남자는 20대 중반까지도 큰다고 하잖아요.”
어찌됐든 순식간에 10cm가량 커져버린 키는 스프라우트에게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스트라이크 존이 미친듯이 넒어졌음은 물론이고, 타구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시작해서 모든게 바뀌었으니, 혼란이 오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출루율이 2할 가량 떨어지긴 했지만, 그 상황에서도 2할 중반, 10홈런 이상을 때린건 칭찬해줘야 마땅한 일이였다.
문제는 이 방황이 더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키는 계속해서 커서 이제 192cm에 이르렀다.
올 시즌 스프라우트의 타율은 0.237. 키와 몸집이 커진만큼 홈런은 벌써 14개를 때려내긴 했지만, 삼진는 그만큼 늘었고, 출루율 역시 0.329에 불과했다.
2년 전만해도 브레이브스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거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던 유망주가 키크는 것 한 방으로 인해서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6월 들어서는 감을 잡았는지 솔리드 히트의 비율이라던가, 볼넷이 점점 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는 매 해 새로운 선수가 어디선가 튀어나온다. 브레이브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프라우트가 멈칫거리는 사이, 25살의 노망주 고든 블랙이 그 자리를 꿰찬 것이었다. 확 잘하는 느낌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의 스프라우트보다는 잘하고 있었다. 그리고 브레이브스에는 지금 당장 잘해줄 선수가 필요했다.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크겠지. 그런 재능을 가진 놈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알렉스를 기다려줄 시간이 없어.]
브레이브스에게 남은 시간은 최대 2년. 연장계약들이 쏟아지지 않는 이상, 이번 시즌 후에는 3명, 다음 시즌 종료 후에는 5명의 FA가 예정되어있다. 좋든 싫든 그 뒤에는 다시 리빌딩, 혹은 리툴링에 들어가야한다.
그래서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사는 것이었다.
게다가 추가로 제안된 라일리 그레거슨은 현재 브레이브스 팜 1위이자, 카를로스 앙헬 주니어가 오기 전까지는 팜 3위였던 우완투수. 이번 시즌 트리플 A에서 2점대 자책점을 유지하면서 고질적인 문제였던 제구를 잡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 이런 제안은 없을거야.]
안정된 이후가 기대되는 외야수와 현재 팜 내 1위에 랭크된 곧 메이저리그에 올릴 수 있을 투수 유망주까지. 오리올스의 제안만큼이나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생각 좀 해봐도 되나요?”
[이왕이면 빨리 해줬으면 좋겠네.]
“서부 시간으로 자정 전에 연락드릴게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좋은 소식 기다리지.]
앤소폴로스와의 전화를 끊은 다운은 슬쩍 옆을 바라봤다. 아직 스테이시는 업무전화를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다운은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리올스
메이슨 스탠하우스+애드리안 카스트로+원하는 지명권 2개
브레이브스
알렉스 스프라우트+라일리 그레거슨
현재 빅리그 중에서 3루수를 가장 원하는 두 팀의 제안들이다. 이보다 더 좋은 제안을 날릴 수 있는 구단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팽팽해.’
오리올스가 제안한 스탠하우스는 제대로만 커준다면 외야의 핵심이 될거다. 어쩌면 드레이크와 함께 글라이드 파크 시대의 포문을 여는 슈퍼스타가 될지도 모른다.
카스트로의 파워는 야구를 모르는 사람도 돌아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고, 오리올스 팜 내에서 40인 밖이라면 누구나 2명을 더 지명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마음에 들었다.
오리올스가 양이라면 브레이브스의 제안은 질적으로 우수하다.
스탠하우스의 장래성을 의심하는건 아니지만,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선수는 아니다. 그에 비해 스프라우트는 메이저리그라는 정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면서 자신의 바뀐 환경에 적응하고, 더 나아가서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외야 수비는 원래 잘하던 선수고, 이제 체격이 커지면서 조금 더 파워를 기대할 수 있는 선수가 되었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만, 자리를 잡기만 한다면 브래넌이나 마이어의 뒤를 이을만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메이저리그 콜업 준비가 거의 완료되었다는 라일리 그레거슨은 평균 92마일, 최대 96마일의 패스트볼을 뿌릴 수 있는 투수로 빠르면 이번 시즌부터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길게 봤을때는 더지의 빈 자리를 채워줄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오리올스 60,브레이브스 40정도인데······.’
마음은 이미 오리올스로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브레이브스가 제시한 스프라우트라는 선수 또한 매력있었다.
‘둘 다 얻을 방법은 없나?’
사실 다운은 브레이브스를 부추겨서 오리올스와 불을 붙여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리올스는 물론이고 브레이브스 역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제안을 해냈다.
이 이상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다운도 추가적인 대가를 지불해야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더 내놓기는 싫어.’
어디까지나 지금 트레이드는 ‘원하는 걸 얻는’ 트레이드가 아니다. ‘팀에서 보내야하는 선수를 보내기 위한’ 트레이드라는걸 잊으면 안된다.
‘그 선을 지키면서 최대한의 이득을 빨아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다운의 귀에 스테이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리한테 한 번 맡겨봐. 이미 거기서 안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어서 신뢰가 안간다고? 그래도 한 번 기회를 줘 봐. 해리도 그 자리 원했던거 아냐? 그래서 내가 알기로 엄청 공부도 많이하고 노력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치? 한 번 더 기회를 줘보자. 그러고도 안된다면 다음에는 기회를 안 주면 되는거야. 일단은 맡은 일도 잘 하고 있고, 그 일도 원하니까 기회 딱 한 번 만 더 주는 걸로 하자. 그래.”
스테이시의 말에 뭔가가 다운의 뇌리에 팍 하고 꽂혔다!
딱!
“그러면 되겠다!”
< 135화 - 거절할 수 없는 제안(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