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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MLB 단장-131화 (131/268)

< 131화 - 올스타 위크(2) >

방에 돌아온 다운은 지친 몸을 침대에 던졌다.

풀썩

평소였다면 기분좋을 정도의 취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다운의 머리는 그런 기분좋음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기만 했다.

“후우······.”

다운을 이렇게 괴롭히는건 몇 시간 전 대런과 스칼렛이 한 말이었다..

***

“그 자리 단장들 오는거 아니에요.”

“음? 너도 가고 스칼렛도 간다며.”

“우리는 구단주 직계 가족이잖아요. 차기 구단주로 점찍혀있는 사람들이기도하고. 우리 빼고는 오리올스밖에 안와요. 그런데 그런 자리에 다운을 데려간다라······. 아무리 생각해도 차기 구단주로 다운을 밀겠다는 뜻으로 밖에는 안보이는데요?”

대런의 말에 다운이 손사래를 쳤다.

“에헤이! 내가 무슨 차기 구단주야? 그냥 어스틴하고 동행할 가족이 없어서 나 부른 것 뿐일거야. 알다시피 자녀도 없고, 아내분과 사별하시고 나서는 쭉 혼자시니까.”

“제가 딱 이번 일만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하는건 아니에요.”

“그럼?”

“지금까지 구단주 및 직계가족 모임이 몇 번이나 있었을거라고 생각해요?”

“글쎄? 한 열 대여섯 번 정도 아닐까? 아니지. 사무국의 공식적인 자리는 제외해야하니까, 인수부터 지금까지만 따지면 열 번 안되려나?”

다운의 말에 대런이 검지손가락을 들고 좌우로 까딱거렸다.

“놉.”

그리고 검지손가락을 꼿꼿하게 유지한 채 재차 입을 움직였다.

“달에 한 번 이상은 무조건 모임이 있어요.”

“한 번 이상이나?”

“당연하죠. 전 세계에서 30개 밖에 없는 구단의 소유주들이 모이는거에요. 우리끼리 친목을 다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어요. 물론 모든 회원들이 매 번 오지는 않아요. 다저스처럼 지분구조가 복잡한 곳도 있고, 회사에서 구단을 소유한 경우도 있으니까요. 뭐 그런 경우라도 대부분 참가는 해요. 구단주들 사이의 의견이라던가 친분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어야하니까요. 아, 몽포트 구단주 형제들은 잘 참가 안해요. 이단이 있는 곳에는 발을 들이지 않겠다나 뭐라나.”

“하여간 특이한 분들이라니까.”

“그럴 땐 특이한 자식들이라고 하는거야 스칼렛.”

“나한테는 얼마 안되는 자신감을 얻게 해주는 고마운 희생양들이라서.”

어깨를 한 번 으쓱해 준 패닝턴이 다운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 어찌됐건간에 다운에 대한건 대런의 말이 맞아요. 제가 보기에도 다운을 차기 구단주로 점찍으신 것 같거든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 자리에 다운을 데려갈 이유가 없어요.”

“하지만 회사 고위직들도 참가한다던데······.”

다운의 말에 대런이 픽 웃었다.

“참가 하기는 하죠. 그런데 그 회사들이 어딘지 알아요?”

스칼렛이 곧바로 대런의 말을 이어받았다.

“아디다스, 나이키, 롤링스, 루이빌슬러거, 언더아머, T-모바일, 오라클, 펩시, 코카콜라, 아메리칸 패밀리······.”

야구 용품 및 스포츠 용품업체들, 스포츠 음료를 제공하는 업체들, 그리고 구장 명명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까지. 모두 익숙한 회사 명들이었다.

“딱 이름만 들어도 어떤 곳인지 알겠죠? 메이저리그의 최상층, 최심부. 그곳으로 오는 티켓을 글라이드씨가 주려는거에요. 물론 거기서 여자를 만나지 못하는건 아니죠. 제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렇지 꽤 예쁜 여자도 많거든요.”

“네 스타일이 특이한거야.”

“존중 좀 해줄래 스칼렛? 나한테 거절당했다고 이런 식으로 질척대는건 아닌 것 같은데.”

“뭔 소리야? 맞을래? 나 이래뵈도 인기 많은 여자야!”

“그럼 저기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계신 남자 좀 꼬셔봐. 레이스 때문에 양키스가 잘나가도 잘나가는 것 같지가 않다고.”

“됐어. 나한테 관심도 없는 것 같던데.”

“아~ 이미 한 번 차였구나?”

“야아아아아!”

***

패닝턴의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아직도 고막에 멤도는 듯한 느낌에 정신이 들었다.

“어스틴은 무슨 생각일까?”

옆집에 살면서 마치 자식처럼 말동무가 되어주었다는 것 빼고는 자신이 그에게 해준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그의 전 재산이 들어간 구단을 물려주려고 한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현실적이었다.

문득 대런이 마지막에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궁금하면 직접 전화해서 물어봐요. 괜히 이것저것 고민하고 예측해보지 말고요.”

저 말이 맞다.

괜히 혼자서 궁상떨거나,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을 들이키기 시작하는 것 보다는, 사실관계를 확실하게 해놓는 것이 마음편했다.

통화연결음이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글라이드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그의 갈라진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운은 시계를 확인했다.

Am 1:32

그가 있는 탬파는 여기보다 세 시간 빠르다. 고로 탬파는 지금 새벽 4시 반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멍청이!’

다운과 전화하는 상대방은 대부분 시간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전화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단장들과 에이전트들하고만 연락을 하다보니 이런 실수를 한 것이었다.

“아, 죄송해요. 자고 있었어요?”

[지금 몇 시지?]

“네시 반 일거에요.”

[괜찮아. 이제 곧 일어나려고 했어.]

“뭘 벌써 일어나요. 제가 깨운거면 어서 다시 자요.”

[네가 깨운건 맞고, 곧 일어나야하는것도 맞아. 아침 비행기 잡아놨거든. 아침 9시 비행기로 넘어갈 예정이다.]

“그런데 벌써 일어나요? 다섯 시간이나 남았잖아요.”

[다섯 시 기상 예정이었어. 어제 일부러 일찍 잤거든. 열 시 쯤 잤나?]

“엄청 일찍 주무셨네요?”

보통 글라이드는 경기 끝나는걸 보고 1시에서 2시 사이에 잠에 든다. 그래서 다운이 너무 일찍 깨웠다고 생각한 것이고. 그런데 열 시 쯤 잤다니. 살짝 죄책감이 사라졌다.

[공식석상에서 우리 선수들 만나야하는데 씻고 바버샵도 갔다오고, 가게에도 갔다와야하거든. 시간이 빠듯해.]

팬 기념 이벤트 1위 겸, 올스타에 선정된 선수들에게 줄 2023 레이스 올스타가 한데 모인 피규어를 찾으러 갈 모양이다.

[그래서 할 이야기가 뭐야? 이 시간에 전화를 한 거면 이유가 있을거 아냐?]

우우우웅!

카가가각!

옆에서 글라이드 집의 커피머신이 원두를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봐서 이제 정말 일어난 모양이다.

“오늘 대런, 스칼렛하고 한 잔 했는데 거기서 이상한 말을 들었거든요.”

거기까지 말했지만, 글라이드는 다운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눈치챘다.

[구단주 직계가족 이야기 하든?]

역시나 알고 있었다.

“네.”

[그럼 차기 구단주로 생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왔겠네.]

“맞아요. 그래서 전화한거에요. 대강 예측하고 계셨던 것 같으니까 편하게 물어볼게요. 걔들이 말하기를, 거긴 구단주 직계가 아니면 참가를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릴때부터 친구처럼 말동무를 해준 것 말고는 제가 어스틴에게 해준게 없거든요? 그런데도 정말로 저를 차기 구단주로 내세울 생각, 아니지 정말로 저한테 구단 소유권을 넘길 생각이에요?”

다운의 질문에 대한 답은 곧바로 오지 않았다.

쪼르르륵!

후르릅!

커피가 잔에 따라지는 소리, 그리고 한 모금 마시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글라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반이야.]

다시 커피 한 모금을 충전한 글라이드가 말을 이었다.

[네가 해준게 없다고는 말했지만, 사실 우리 부부에게 항상 네 가족은 그 이상이었어. 제니의 얼굴을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준 이웃은 너희가 처음이었으니까. 특히나 너는 기억할지 모르겠다만, 제니의 얼굴을 보고도 울지 않은 유일한 아기가 바로 너였어.]

“아.”

제니퍼 글라이드는 얼굴에 화상자국이 있었다. 글라이드와 결혼한지 3년차 때 집에 불이났는데, 목숨은 건졌지만, 얼굴의 반을 덮는 흉터만큼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게 바로 제니퍼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음에도 입양을 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애들이 엄마 얼굴만 보면 무섭다고 울어대는데 어떻게 입양을 하겠는가.제니퍼는 그걸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찾아온 사람들이 바로 다운의 가족이었다.

[산책을 하던 도중 아이를 봐도 되겠냐고 물어보던 제니에게 환하게 웃으며 얼마든지 그러라고 했던 너희 부모님. 그리고 그런 제니를 보고 방긋 웃으며 들고 있던 꽃을 내밀었던 너. 제니가 꽃꽂이를 시작한 것도 네가 건네준 꽃 때문이었어.]

“정말요?”

[그래. 제니는 화재 이후에 꽃은 쳐다보지도 않았어. 자신하고 너무 비교되는 것 같다고 말이야.]

그때의 생각이 나는지 잠깐 글라이드가 추억의 저편으로 넘어갔다. 다운은 그런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려줬다.

[그 날부터 넌 이미 우리에게 아들이 되어있었지. 네가 생각하기에 넌 우리에게 해준게 별로 없겠지만, 우리에게는 아니었던거야. 특히 제니에게는 모든걸 해준 것이나 다름없었어. 그리고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걸 바라지 않아. 그저 있어주는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거지. 제니에게 웃으며 다가와줘서 너무 고마운 아이. 아이를 입양할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들어준 아이. 매일같이 우리 집에 찾아와 제니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아이. 학교 다녀와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제니에게 털어놓으며 자식을 키우는 재미를 알게 해준 아이. 우리한테 너는 신이 내린 선물같은 존재였어.]

글라이드의 칭찬에 다운의 얼굴은 달아올랐다.

어린 시절 자신이 매일같이 저 집에 갔던 이유는 엄마는 주지 않는 맛있는 것들을 많이 줘서였다. 단 것을 꽁꽁 숨겨두던 엄마에 비해 제니퍼는 찾아만 가면 라이스 크리스피라던가 브라우니를 만들어주곤 했다. 그러니 발걸음이 절로 그쪽으로 갔던 것이다.

제니퍼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건 바빴던 엄마에 비해서 제니퍼는 항상 자신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줬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비밀도 잘 지켜줬다! 그 나이의 다운에게는 그만한 상담사도 없었다.

모두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행했던 일들을 가지고 신이 내린 선물같은 존재였다고 하니 부끄러워질 수 밖에.

“전 그런 존재가······.”

[네가 너 자신에게 하는 생각따윈 아무 상관없어. 우리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거지.]

“어스틴······.”

촉촉해진 다운의 목소리에 글라이드의 목소리가 갑자기 확 변했다.

[그리고 자식도 없는 내가 전 재산을 부은 구단을 어디에 써먹겠냐? 죽기 전에 팔아먹을까? 그 돈은 어디다 쓰고? 사회에 환원? 내가 미쳤어? 그럴바에는 그나마 자식같던 너한테 물려주는게 낫지. 안그래?]

방금까지 살짝 뭉클했던 마음이 뭔가 살짝 깎여나가는 것 같다.

[왜? 구단 받기 싫어?]

“아뇨? 너무 좋죠.”

다른 것도 아니고 메이저리그 구단이다. 그걸 준다는데 거부감이 든다는 놈은 미친놈일거다.

[근데 무조건 준다는건 아냐. 내가 아까 했던 말 기억하지? 반반이라고 했던거?]

“네.”

[자식이라고해도 능력이 없으면 난 안 줄거야. 다른 구단들 봐. 능력있는 놈들한테만 물려주잖아. 물론 네 능력 잘 알지. 다른 구단들도 탐내는 단장감인거 잘 알아. 하지만 구단을 물려받으려면 그게 끝이어서는 안돼. 그러니 계약기간 안에 월드시리즈 우승 한 번 가져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죽을때까지는 종신 단장하고, 유언장에 구단을 물려준다는 이야기를 쓸거니까. 우승 못하면 얄짤없이 연장은 안할거야.]

괜스레 부끄러워하는게 느껴졌다.

“알겠어요. 동기부여 확실히 되네요. 무조건 우승 갑니다.”

[그래. 잘해보자.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긴데, 우리가 네 덕분에 자식 키워보는 기분은 느껴봤는데 손주 안는 기분까지는 못 느껴봤······.]

“내일 봐요.”

< 131화 - 올스타 위크(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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