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29화 (129/268)

< 129화 - 숙성된 와인은 비싸다 >

드래프트가 끝나고 2주 뒤.

모든 드래프티들과의 계약이 끝났다.

“고생많았다.”

글라이드의 말에 다운은 고개를 저었다.

“고생은 무슨. 저보다는 현장에 간 어스틴이 고생했죠.”

“그래도 대부분 우리가 원하는 선수들 데려왔잖냐.”

파란만장했던 1라운드를 제외한 나머지 라운드에서는 원하는 선수들을 대부분 대려올 수 있었다.

“스탠하우스만 데려왔으면 완벽했는데······.”

아쉽긴하지만 앞선 지명권을 사용해 오리올스가 뽑아버렸는데,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100% 원하는대로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냐?”

“나중에 각이 나오면 꼭 데려와야겠어요.”

오리올스가 과연 그런 각을 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비어만까지도 풀었던 적이 있는 존 앙헬로스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1라운드 상위권의 실력을 평가받는 래리 코튼과 기대를 걸어볼만한 슈퍼 유망주인 채드 벨링엄을 얻어으니, 그걸로 만족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래리가 빠르게 외야수를 포기해서 다행 아니냐?”

글라이드의 말에 다운은 그 사건이 생각났는지 피식 웃었다.

“진짜 그놈은······.”

***

드래프티들 중에서 가장 먼저 계약한 것이 바로 래리 코튼이었다. 무조건 계약하겠다는 에이전트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코튼은 정확히 1라운더에게 주어진 슬롯머니에 계약을 했다.

그리고 난 다음 홈 경기. 그는 1라운더의 자격으로 시구에 참가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시구하는 방법이나 이런저런 것들을 하면서 가르쳐줘야한다. 하지만 이미 투수인 그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법을 배울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코튼은 거스가 말한대로 시구 연습 대신, 타격 연습과 펑고에 참가했다.

“헤이 키드. 외야수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며? 너도 한 번 참가해볼래?”

다운의 밀명을 받은 캐시의 말에 코튼은 미끼를 덥썩 물었다.

“메이저리거 급 타구로도 가능한가요?”

“물론 가능하기야 하지. 하지만 괜찮겠어? 타구의 질이 다를텐데?”

걱정하는 듯한 캐시의 말에도 코튼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능력을 보여드리죠!”

그렇게 마이어, 페리시치, 브래넌, 드링크워터, 비어스와 함께 외야로 나간 코튼이 다시 홈플레이트로 돌아오는데까지는 정확히 10분이 걸렸다.

“펑고가 아니라 타구를 날리면 되는거죠?”

오늘의 펑고맨은 다운의 부탁을 받은 서머스.

“살살해라. 애 운다.”

“에이 제가 뭘 세게 하겠어요. 그냥 적당한 타구만 날릴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머스는 새 장난감을 받아든 아이와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시작은 중견수인 마이어.

따아아악!

그냥 감이나 잡으라고 보내는 공이 아니라 실전과 같은 타구가 쏜살같이 날아갔다.

‘이런 미친······.’

고등학교때 받아본 펑고볼이나 타구를 상대하면서 무섭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저 타구는 달랐다.

‘공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마운드에서 막아야하는 공이 더 무섭지 않냐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운드에서 막는 공은 변화가 크지 않다.

자신의 운동신경과 반사신경이라면 피할 자신도, 잡아낼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예상보다 훨씬 많이 움직이는 타구는 본적이 없었다.

‘애들이 치는 타구랑은 급이 다르구나!’

학생들이 치는 타구는 볼 끝에 힘이 서서히 빠지며 가라앉는 느낌이었지만, 지금 서머스가 치는 저 펑고 타구는 쭉쭉 뻗어나가는 느낌이었다. 만약 자신이 저기 서있었다면 뒤로 뛰어가다가 무조건 만세를 불렀을 그런 타구였다.

그런데 마이어는 타구음이 들리자마자 설렁설렁 뒤를 향하더니 아무렇지 않게 얼굴 옆에 글러브를 가져다대고 타구를 잡아냈다.

“나이스 캐치.”

“오늘 타구 좀 약한데?”

“몸풀기인데 빡셀 필요 없잖아요. 적당히 잡고 경기 들어가죠.”

자신이 보기에는 급이 다른 타구였는데, 메이저리거급 외야수들에게는 쉬운 타구라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따아아악!

심지어는 수비를 못한다고 생각했던 브래넌까지 퉁퉁 뛰어가더니 타구를 잡아버리는게 아닌가!

“알! 힘든타구 보낼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브래넌은 숨을 헐떡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주 안정적으로 가슴께에서 포구하는데 성공했다.

“자 꼬맹아! 네 차례다!”

브래넌이 엉덩이를 툭 치며 코튼을 앞으로 밀었다.

“할 수 있어 래리.”

그렇게 자기세뇌를 하며 타구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따아아악!

나무배트가 내는 청량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뒤!’

지금까지 타구들이 쭉쭉 뻗어나갔던 것을 생각해서 일단 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쭉쭉 뻗어오던 타구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날아오던 궤도를 꺾어서 휘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어?”

뒤로 걸음을 옮기던 코튼은 앞으로 빠르게 다시 뛰어나갔다.

타다다다다!

빠르게 앞으로 대쉬를 했지만, 앞서 수비를 했던 선수들처럼 완벽하게 캐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이빙이라도!’

타앗!

적어도 멋진 트라이는 보여주자는 생각에 버튼은 몸을 날렸다.

하지만 언제나 인생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었다.

툭!

땅에 한 번 튄 공은

퍽!

그대로 버튼의 눈두덩이를 강타했다.

“악!”

1라운더가 내지른 짧은 비명에 선수들은 물론이고 코칭스태프, 의료진까지 모두 달려나왔다.

“괜찮아?”

“크게 안다쳤어?”

“저거 잘못하면 찢어졌을수도 있는데.”

“그건 아닐거야. 다행히 땅에 한 번 바운드 됐어.”

그렇게 순식간에 선수들의 중심에 서게 된 코튼은 거기서 선언했다.

“감독님.”

“어?”

“하나만 열심히 해도 메이저리거되기 힘들겠죠?”

“아마도?”

“앞으로 레이스 역사상 최고의 에이스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

“껄껄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저도요. 거스가 말했던대로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었죠.”

만약 거기서도 또 눈이 훼까닥 돌아서

‘저런 타구도 잡는 외야수가 될거에요!’

라고 했다면 일이 복잡하게 돌아갈뻔 했다. 하지만 거스가 말했던대로 코튼이 외야수를 포기하는 바람에 1라운드 상위권의 투수 유망주 하나를 얻게 되었다.

“나중에 타격이라도 하겠다고 덤벼대는거 아냐?”

“농담으로라도 그런 이야기 하지마세요. 소름 돋으니까요.”

다운은 몸을 부르르 떨며 손을 저었다.

“그나저나 오늘 무슨 일이야.”

오늘의 면담은 다운이 요청했다.

다운은 진지한 표정으로 글라이드의 앞에 섰다.

“이번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은 힘들지도 모를 것 같다는 말을 하려고요.”

“벌써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아?”

여기서 잠깐 동부지구 순위를 보고가자.

1위 - 뉴욕 양키스 - 0

2위 - 탬파베이 레이스 - 3.5

3위 - 볼티모어 - 4.0

4위 - 보스턴 레드삭스 - 4.5

5위 - 토론토 블루제이스 - 7.0

양키스와 함께 1위를 다투던 팀 순위는 어느덧 3.5경기 차가 난다. 그리고 하위권에 쳐져있던 오리올스가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 바로 아래에는 레드삭스가, 블루제이스는 아래에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 2주만 지나면 올스타 주간이에요.”

올스타 주간을 전후로 전반기와 후반기가 나뉜다. 그리고 올스타 주간이 끝나고 열흘 정도만 지나가면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다가온다.

그 말은 곧 몇몇 선수들을 처리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지금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선수들 중 최소한 두 명은 처리해야한다.

“포기하는 것 까지는 아니어도, 멜튼이랑 코디는 보내야해요.”

록하트는 올 시즌 0.315의 타율에 전반기에만 벌써 23홈런을 때려냈다. 이제는 정말로 리그 최고의 3루수라고 불러도 되는 클라스에 안착한 모습이었다.

드링크워터는 MVP시즌의 그 모습을 되찾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데뷔 첫 시즌때의 센세이셔널하고 강렬한 스윙은 되찾았다. 0.278의 타율에 17홈런, 거기에 원래부터 좋았던 중견수 수비까지. 마이어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 활약을 하는 중이었다.

중요한 건 두 사람 모두 각자의 포지션에서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투표 1위에 올라있다는 것이었다.

“둘 다 그냥 쓰면 안되나?”

“안돼요.”

록하트의 경우는 이제 FA까지 1년 반 남았다.

“퀄리파잉 오퍼나 보상 지명권이 사라졌다면 모를까, 샌드위치픽으로 보상 지명권을 주는 현행규정상 지금이 록하트의 가치가 가장 높을때에요.”

퀄리파잉 오퍼는 최소 팀에 한 시즌을 머물러 있었던 선수에게만 제안할 수 있다.

드링크워터 역시 지금이 판매 적기다.

지금 상태라면 드링크워터와의 연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다저스와의 만남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시즌이 끝나기 전에 팔아서 이득을 얻어야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최적의 시기에요.”

“겨울에 처분해도 되잖아?”

“대신 그때의 갑은 우리가 아니죠.”

시즌 중반에 록하트나 드링크워터와 같은 선수를 영입하는 팀의 목적은 하나다.

더 좋은 선수를 영입해서 우리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더 확고히 하는 것

생각보다 해당 포지션의 선수의 활약이 좋지 않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더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시기의 판매자는, 특히나 록하트나 드링크워터처럼 상위권 매물을 가진 판매자라면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왜?

저런 활약을 해줄 수 있는 선수의 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니까.

“둘 다 나가게되면 출혈이 크긴 할거에요. 시즌 마지막까지 노력을 하긴 하겠다만, 어쩌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할지도 몰라요. 아까울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 계획을 다시 떠올려봐요 어스틴. 우리 계획은 내년에 있을 신 구장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거에요. 이딴 낡은 구장에서가 아니라.”

원래 계획은 그게 맞았다. 그렇기에 글라이드도 ‘난 성적같은건 신경 안써! 그러니 최선을 다해주기만 해!’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고.

하지만 글라이드도 사람이고, 레이스의 광팬이다. 포스트시즌이 눈앞에 보이는데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 두 명의 선수를 내보내야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일단 말이 그렇다는거죠. 절대 시즌을 포기하겠다는건 아니에요. 이미 두 사람이 떠나고 난 상황도 상정해놨으니까요. 알버트가 꽤 자리를 잡은데다가 외야 쪽이야 뭐 탄탄하잖아요? 코디 몸값 올린다고 계속해서 선발로 출장시켜준거지, 원래 그 자리의 주인은 마이어니까요. 마이어니까 참아주고 있는거지, 다른 선수였으면 언해피 떴을지도 몰라요.”

“제안은 좀 들어오고 있나?”

“들어오고 있죠. 이번 트레이드 매물 중에서 가장 뜨거운 매물 두 명인데, 제안이 없을리가요. 매일 아침마다 안부인사 겸 찔러보는 제안들이 넘쳐나요. 요즘 알람이 필요없을 정도라니까요?”

“그 중에서 정말 괜찮은 제안은?”

“아직은 없어요. 다들 찔러보는 식이라. 하지만 점점 좋은 제안들이 들어오겠죠. 특히 올스타 주간에는 더더욱 말이죠. 지금은 그저 기다리면 됩니다.”

다운이 여유롭게 몸을 뒤로 뉘였다.

“와인을 숙성시키는 것처럼 우리 선수들의 가격이 숙성되기만을 기다리면 돼요. 쿡쿡!”

< 129화 - 숙성된 와인은 비싸다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