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1라운드 27번 >
실력만으로는 탑 5안에 무조건 드는 래리 코튼. 그가 27순위까지 밀린 이유 중 가장 큰 것. 그건 바로 그의 정신세계 때문이었다.
올해 초에 일어난 일이다.
“혹시 98마일을 매번 던질 내구성이 없는게 아닐까?”
라는 말을 스카우트가 한 적이 있었다. 매 번 90마일 초반을 던지다가 필요할때만 기어를 높이는 식의 투구는 아마추어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가질 수 있는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문제는 이 말이 하필이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래리 코튼의 귀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아저씨 혹시 구단 어디에요?”
“매리너스에서 왔는데······.”
“제가 어떤 놈인지 보여드리죠. 똑똑히 보세요.”
매리너스스 스카우트에게 당돌한 말을 던진 코튼은 4월에 선발로 나선 한 경기에서는 96마일 이상의 패스트볼로만 경기를 진행하는 미친 짓을 선보였다.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되었던 매리너스의 스카우트 역시 눈에 하트를 그리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경기를 지켜봤다. 패스트볼만으로도 저런 경기력을 보일 수 있는 코튼의 실력에 매료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경기 후 코튼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있는 스카우트에게 다가갔다.
“만족하셨나요?”
“아주! 만약 우리에게 기회가 온다면 우리 구단에 오지 않을래?”
그런데 그에 대한 답이 가관이었다. 코튼은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뇨. 절대 안갈겁니다.”
“응?”
“매리너스에서 절 지명하면, 바로 대학 진학할겁니다.”
“아, 아니 왜?”
“그야 절 못믿었잖아요? 이런 사소한 것 하나도 못 믿는데 제가 매리너스에게 묶이게 되면 얼마나 더 못믿겠어요? 안 그래요?”
여기까지만 하면 신인의 패기라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범상치 않은 드래프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코튼은 무려 세 경기를 연속으로 패스트볼만 던져댔다.
여기서부터 많은 팀들이 떨어져나갔다.
“팀은 상관하지 않는 건 좀······.”
야구는 누가 뭐래도 팀 스포츠다. 투수가 맞아도 수비수들이 실책을 지워줄 수 있으며 야수들이 점수를 내면 이기는 게임.
반대로 야수가 점수를 못내고 있더라도 투수가 막으면 어떻게든 끌고나갈 수 있는 게임이 야구다.
그렇기 때문에 투수는 야수를 신뢰해야하고, 야수는 투수를 신뢰해야한다. 그래야지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코튼은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한채 자신이 원하는 공만을 던져댔다. 세 경기 내내 말이다. 팀원들, 혹은 감독과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건 그냥 어린 유망주의 고집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혹시 우리 구단에 와서도 이런다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
그것도 아주 큰 문제가 있다.
“저는 중견수를 할겁니다.”
바로 저 미친 놈이 중견수를 하고싶다며 외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투타겸업?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전같았으면 당연히 무시했을거다. 하지만 일본에서 날아온 괴물, 스즈키 쇼헤이가 투타겸업을 성공적으로 해냄으로서 구단들도 어느 정도는 납득 할 수 있는 여건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신세계가 독특한 우리 코튼은 이해할 수 없는 선언을 했다.
“프로에 가서 중견수만 할겁니다.”
실제로 4월에 있었던 충격의 3연투 이후 그는 중견수로만 출장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는 정말로 드래프트에 중견수로만 이름을 올리려고 했다고 한다. 가족들이 설득했는지, 감독이 어떻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등록은 투수와 외야수로 했다.
문제는 타격을 더럽게 못한다는 것이었다. 수비는 그나마 봐줄만했다. 그러니 감독도 그에게 중견수를 맡길 수 있었던 것이고. 하지만 방망이는 정말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중견수를 저렇게 노리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갈 수 밖에.
이렇게 커다란 두 사건이 그가 얼마나 독특한 인간인지를 알리는 사례가 되었다.
그래서 구단들은 저 또라이를 기피하게 된 것이고 말이다.
“하아······.”
다운은 지끈거리는 골을 눌렀다.
03:42
시간은 이미 흐르기 시작했다.
“진짜 저 놈을 뽑아야하나?”
다운의 말에 양쪽에서 의견이 터져나왔다.
“일단 뽑죠. 이번 시즌 저희 전략이 가장 좋은 선수를 뽑는거였잖습니까. 일단 뽑아야합니다.”
거스의 말에 클라인이 곧바로 반박했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모든 유망주에게는 잘못될 리스크가 존재하지. 하지만 저 놈이 가진 재능을 봐. 모두 망할 리스크가 존재한다면 저 친구는 리턴이 가장 크다고.”
맞는 말이다.
어떤 유망주던, 실패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가장 적은, 그리고 리턴이 큰 선수를 뽑는 것이 바로 드래프트다.
“하지만 우리 팀이랑은 안맞는다는 생각 안들어? 우리가 어떤 팀이야? 팀워크와 수비로 일을 내는 팀이잖아. 그런데 저런 이레귤러가 팀에 들어오게되면 팀 케미스트리가 망가질 위험이 있다고!”
저것도 맞는 말이다.
다운이 자세하게 내부사정까지 알던 팀은 양키스와 레이스, 두 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의 레이스가 다른 어떤 구단보다 팀 케미스트리가 좋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좋은 케미스트리가 수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아니지. 오히려 투수라서 저런 점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어. 투수들의 정신세계가 조금 남다르다는건 다들 아는 이야기잖아? 지금 저 모습을 봐! 자기는 안 불리고 있는데도 폰을 보는 저 대담함을!”
가로로 돌린채로 열심히 뭔가를 누르는 걸로 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생각해봐 거스. 저놈을 뽑으면 네 앞에서 저러고 있는 모습을 봐야한다니까?”
클라인의 말에 살짝 몸을 움찔한 거스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야구에 있어서는 굉장히 진지한 놈이야.”
“그 진지한 놈이 잘하는 투수를 버리고 외야수를 하겠다고 하냐고!”
“나야 모르지! 하지만 방법이 있어.”
“뭔데.”
“저 놈이 저렇게 중견수를 놓지 않는건 분명히 수비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내가 보기에 저 놈 수비는 좋게 쳐줘봐야 40점 정도가 한계거든.”
“그게 답니까?”
다운의 말에 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답니다. 타구판단이 너무 안좋아요. 고등학교까지는 좋지 않은 타구판단을 어떻게든 스피드로 커버칠 수 있었죠. 거기다 어깨도 좀 좋습니까? 어지간한 놈들은 뛰지도 못했을겁니다. 하지만 프로에서 저정도 타구판단으로 중견수? 우리 팀에서 제일 수비 못하는 놈이 배리잖습니까? 그놈도 제가 평가하기로는 좌익수에서 50점은 됩니다. 그런데 코튼? 제가 장담컨대 오자마자 경기 전에 훈련에서 펑고 한 번 받게 하잖아요? 바로 포기할겁니다.”
거스의 말이 일리가 있었는지 클라인이 조용히 결정권자인 다운에게 고개를 돌렸다.
02:13
이제 남은 여유시간은 1분 30초 가량
“벨링엄은 샌드위치로 뽑을겁니다.”
다운의 확정적인 말에 현장에 있던 글라이드가 물었다.
[만약 코튼이 아니라면 누굴 뽑을거지?]
“자레드 워스를 뽑아야죠.”
워스는 외야수로, 조니가 60점 정도로 평가할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순도높은 파워로 매 년 30홈런 이상은 때려줄 수 있는 선수가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컨택적인 측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중견수로의 수비력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조니와 스카우트 팀이 평가하기에는 50점의 수비와 60점을 받는 어깨를 가지고 있어, 후에 코너 외야로 전업했을 때를 생각한다면 꽤 괜찮은 자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워스보다는 키어런 패럿이 낫지 않을까요?”
패럿은 워스의 내야수 버전이라고 보면 정확했다. 수비는 약간 떨어지지만 강한 어깨와 파워를 갖춘, 코너 내야수가 될 자질이 있는 선수.
“그렇게 되면 벨링엄이랑 겹치잖아.”
“유망주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잖아. 게다가 벨링엄은 야구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기본기부터 흔들릴 수 있는 선수라고. 그리고 지금 뽑을 수 있는 내야수 중에서는 저 친구가 제일 나아.”
결국 투수는 래리 코튼, 외야수는 자레드 워스, 내야수는 키어런 패럿이다.
다운의 두 손이 포개지고 그 위에 턱이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시간이 흘러가도 다운의 입은 꾹 닫혀서 열리지 않았다.
[단장님.]
이제는 정말로 골라야 할 때다.
01:00
정확히 1분이 남았을 때, 다운의 입이 열렸다.
“어스틴. 듣고 있어요?”
[당연히 네 선택을 그대로 이행할 준비를 하고 있지..]
어떤 선택을 하던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담겨있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려왔다.
“한 사람의 팬으로서 가장 보고 싶은 1라운더의 이름을 적어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세 명의 장단점이 너무 명확했다. 사실상 1라운더로 생각하고 있는 벨링엄이 있으니, 1라운더로는 열렬한 레이스 팬이. 바로 저기 있는 글라이드가 가장 보고싶어하는 선수를 뽑는게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분명 글라이드라면 마음에 담고있는 선수가 있을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라져 댓.]
예상대로 글라이드는 거침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적어내려갔다.
[래리 코튼.]
미키가 그의 이름을 읊었다.
[구단주님. 확실하신거죠?]
[그래. 단장님이 지시하신대로 레이스의 광팬인 내가 가장 보고싶은 선수를 뽑았네. 그리고 후회는 없어.]
00:48
글라이드의 선택에 다운은 곧바로 리타에게 말했다.
“에이전트.”
개떡같이 말했지만 리타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오 마이 갓! 다운!]
코튼의 에이전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저희 래리를 지명할거라고, 사인할지를 물어보는거라고 제발 말해주실래요?]
에이전트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것도 까먹은 것을 보면, 앞선 팀들이 계속해서 코튼을 지명하지 않아서 속이 꽤나 타들어갔던 모양이다.
“우리가 지명하면 사인합니까?”
다운의 말에 그는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조건 합니다. 1라운드 안에만 지명되면 무조건 프로 직행한다고 했거든요.]
“오케이. 조금 이따 다시 봐요. 미키!”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름과 주, 고등학교까지 체크를 한 미키는 접힌 종이를 스탭에게 건넸다.
곧이어 맨프레드가 접혀있는 종이를 손에 쥐고 단상으로 걸어나왔다. 목을 한 번 가다듬은 그가 마이크를 켰다.
- 1라운드 27번째 지명권으로 탬파베이 레이스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오렌지버그 윌킨스 하이스쿨의 좌완 투수. 래리 코튼을 지명했습니다. 다음 차례는 LA 다저스입니다.
“하아······.”
“그래! 팬이라면 코튼만큼 기대되는 선수는 없지!”
“하지만 성격을 생각하면······.”
“저 성격이면 재미있는 컨텐츠가 꽤 나올 것 같은데요?”
“맞아. 분명 팬들도 많이 끌어모을 수 있을거야. 요즘 놈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저런 특이한 성격을 좋아하거든.”
“문제는 야구가 요즘 놈들이 보는 스포츠가 아니잖아.”
“우리 팬층은 그래도 요즘 사람들이 많은 편이니까. 안그래 카를?”
“다른 구단들에 비하면 확실히 젊긴 하죠. 저도 저런 성격 좋아해요. 쿨하고 멋져 보이잖아요. 분명 저희 팬들도 좋아할거에요. 물론 야구를 잘해야겠지만.”
글라이드의 선택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다운은 조용히 화면 속의 코튼을 주시하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나가지 않지만, 스튜디오에서 각 구단 회의실에만 제공해주는 화면에서의 코튼을 말이다.
코튼은 맨프레드가 나올때에도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에도 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글라이드가 그와 인사하고 유니폼을 건네주기 위해 다가간 순간, 글라이드의 마이크를 타고 그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Fuck! 또 죽었네! 어? 저 뽑혔어요? 레이스? 외야수 시켜주실거죠?”
아무래도 상상 이상의 또라이가 레이스에 발을 들인 것 같다.
< 128화 - 1라운드 27번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