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Plan B >
“그래도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놨네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긴 하다. 하지만
“중간에 있는 선수들을 트레이드 카드로 쓰고, 새로 지명한 트위니를 다음 세대를 위해 키울 예정입니다!”
라고 해버리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더 좋아질 수 있는 플랜이 있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니면 크레이그 라이스나 파블로 곤잘레스와 또 다툼이 있나?”
몽포트의 종교권유가 너무 심하다보니 선수들 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있다가 좀 잘되고 나서 그걸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콜업이 안된다는데 어떤 선수가 대놓고 거부하겠는가.
일단은 숨기고 있다가 팀에서 자신을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원래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크레이그 라이스가 요즘 언해피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던데요.”
야구계에서 잔뼈가 굵은 클라인이 하는 소리다.
“이유는요?”
“분명 재계약할때만 하더라도 몽포트 형제가 우승을 위한 투자를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FA 선언 대신에 팀에 남은 것이고요.”
“알만하네요.”
라이스와 로키스가 계약을 맺은건 2년 전이다. 하지만 그 2년간 로키스가 투자를 했냐?
전혀 하지 않았다.
그들이 FA 시장에서 데려온 선수라고는 어중간한 갭 플레이어들 밖에는 없었으니까.
그럼 트레이드로 우승경쟁을 위한 엄청난 선수를 데려왔냐?
그것도 아니다.
결국 로키스는 2년간 우승권은 커녕 포스트시즌조차 나가지 못했다. 몽포트 형제가 투자할것이라는 것만 믿고 10년짜리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던 라이스로는 뒤통수를 씨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면 아예 라이스부터 시작해서 물갈이를 할 수도 있겠는데요?”
라이스의 뒤를 이어 코어로 키울 수 있는 파블로 곤잘레스라는 신성이 있는만큼 라이스를 내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키.”
[네.]
“드래프트 이후에 라이스에게 눈 하나 붙여둬. 그리고 프레드는 장단점이 있는지에 대한 영상분석 해주고요.”
지시를 마친 다운이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저렇게 되면 매리너스는 고민이겠네.”
매리너스의 테이블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별다른 고민없이 닉 데이비슨을 뽑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스틴 칼슨이 풀렸다.
“랜디 존슨의 재림이라는 소리를 듣는 친구를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랜디 존슨은 미완의 대기라는 소리를 듣다가 매리너스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리너스를 떠난 뒤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좌완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 랜디 존슨을 터지고 나서야 조금 쓰고 보낸 것이다. 매리너스 팬들이 가지는 아쉬움은 이루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 줄 수 있는 픽. 그게 바로 저스틴 칼슨이다.
“제 생각에도 칼슨을 뽑을 것 같습니다. 닉 데이비슨이 대학 최고의 포수라는 소리는 듣고 있지만, 그게 빅리그에서도 이어질지는 알 수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같은 리스크라면 리턴이 더 높은 좌완 선발을 택할 것 같습니다.”
거스의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 1라운드 2번째 지명권으로 시애틀 매리너스는 조지아 주, 프랭클린 하이스쿨의 좌완 투수. 저스틴 칼슨을 지명했습니다. 다음 차례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입니다.
이제 디백스의 차례다.
그리고 다운이 작업을 시작할 차례이기도 했다.
Plan A
브롱코, 혹은 브롱코 다음으로 매력적인 선수를 제안한다.
다운은 폰을 들어 패닝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To. 스칼렛
- 브롱코, 데이비슨, 팔카, 폰타나, 벨링엄.
디백스가 뽑을만한 다섯 명의 이름을 적어 보냈다. 순식간에 1표시가 사라지고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이에요 스칼렛?”
다운은 의뭉을 떨면서 시계를 바라봤다.
03:12
디백스는 주어진 4분 중에서 이미 1분 정도를 소비했다. 지명자를 확정하고 크로스체크하는 시간 30초를 제외한다면, 패닝턴이 다운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은 2분 30초 정도가 최대다.
그 안에 작업을 쳐야한다.
[빨리 말해요.]
짜증이 올라와 있는 목소리다.
“뭘 말하라는거죠?”
[다운. 정말 이럴거에요? 알고 있는게 있으니까 이렇게 찔러본거잖아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다음에 볼때 엉덩이를 걷어찰거에요. 그러니 빨리 아는게 있다고 말해요.]
“어차피 디백스는 브롱코 뽑을 거 아니었습니까?”
[천하의 정다운이 추천하는 선수가 있으면 고민이 되지 않겠어요?]
“절 믿을 수 있겠어요?”
[믿어서 손해본 사람은 여태 없었으니까 믿기야 하겠죠? 그래서 누구에요. 지금 저한테 2분 밖에 남지 않았거든요?]
“원래 제가 추천하는건 대가가 있어야 하는데······.”
[대가로 원하시는게 뭐죠?]
“이번에는 안받을게요. 조엘 브롱코. 제가 아니어도 뽑았을 그 선수요. 뽑지 않을 이유가 없거든요.”
여기서 브롱코보다 더 좋은 선수라며 추천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디백스에게, 그리고 다운에게도 좋은 선택이 아니다.
브롱코를 거른다고해서 2라운드까지 그가 남아있지는 않을거다. 분명 다른 팀이 그를 뽑아 갈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투수니까.
그럴 바에는 플랜 C를 위해서 브롱코의 가치를 확인시켜주면서 신뢰도를 주는게 더 나았다.
[더 좋은 선수가 있다거나 일부러 브롱코 뽑게 만드는거 아니죠?]
스탠하우스라는, 다운이 보기에는 더 좋은 선수는 있다. 하지만 그를 모르는 상황에서 다운이 3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브롱코를 뽑았을 것이다.
“그럴리가요. 브롱코 좋은 선수입니다. 고민하시는건 데이비슨과의 비교겠죠?”
[네. 저한테 확신을 좀 주세요.]
“닉 데이비슨은 좋은 선수지만, 좋은 포수는 아닐겁니다. 여기까지면 충분하죠?”
잠시 조용하던 그녀는
[고마워요. 도움이 됐어요.]
라는 말과 함께 돌아왔다. 잠시 후 화면에선
- 1라운드 3번째 지명권으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애리조나 주, 미드레이크 하이스쿨의 우완 투수. 조엘 브롱코를 지명했습니다. 다음 차례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입니다.
브롱코의 지명이 울려퍼졌다.
[이제 잘 안되면 다운 탓이었다고 책임을 넘길 수 있겠네요.]
패닝턴은 긴장이 풀렸는지 농담섞인 말을 던졌다.
“하하! 양키스 팬들에 이어서 디백스 팬들의 적까지 되고싶지는 않은데요?”
[장난이에요. 그냥 제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고싶었을 뿐이에요. 스카우트 팀에서는 50:50으로 데이비슨을 영입하자고 했거든요.
“스칼렛은 브롱코였고요?”
[네. 아무리봐도 브롱코가 저희 팀에는 더 맞는 선택일 것 같았거든요. 다운이 저와 같은 선택을 해준 덕분에 부담이 줄었어요. 다음에 제가 밥 한 번 살게요.]
“비싼거 얻어먹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대신 또 한 번 조언 구해도 되는거죠?]
원하던 바다.
“한 번 쯤은 더 해드릴 수 있죠. 다만 다음에는 대가 제대로 받을겁니다.”
[좋아요. 조금 있다 보자고요.]
이 정도면 플랜 C를 위한 밑밥으로 충분하다.
[원하시는 선수가 남아있기를 바랄게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전화를 끊은 다운은 이어지는 지명들을 유심히 살폈다.
드래프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꽤 다양했다. 그들의 드래프트 전략에 따라서 구단이 숨기고 있는, 혹은 내부 사정을 더 알 수 있는 것이다.
방금 지명을 완료한 레드삭스를 예로 들어보자.
- 1라운드 17번째 지명권으로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캘리포니아 주, 레이크사이드 하이스쿨의 중견수. 타일러 제이콥슨을 지명했습니다. 다음 차례는 보스턴 레드삭스입니다.
화이트삭스는 중견수인 타일러 제이콥슨을 선택했다. 제이콥슨은 좌투좌타의 중견수로 수비가 출중한 선수다. 하지만 이미 화이트삭스 팜 내에서는 꽤 유용한, 그리고 좋은 외야수들이 많았다.
그래서 다운을 비롯한 스카우트 팀은 드래프트 전 예상으로 화이트삭스는 내야수를 뽑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제프 브랜디치를 1루로 쓴다는게 사실인 모양인 것 같은데?”
“근데 저러면 내야수가 너무 부족하지 않나?”
“남은 순위에서 내야수를 뽑는다고 하더라도 부족할 것 같아. 남은 내야수들은 대부분 하위권이니까.”
그리고 지금 저 화이트삭스가 다운이 생각하는 플랜 B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구단이었다.
Plan B
샌드위치 픽을 얻어내라.
이번 노사협정의 곁다리 항목에 있었던 내용으로 이제 정규 지명권이 아닌 샌드위치 픽, 그리고 6라운드 이하의 픽은 공식적으로 트레이드가 가능해졌다.
여기서 샌드위치 픽은 퀄리파잉 오퍼의 부산물이다. 이번 노사협정에서 퀄리파잉 오퍼가 사라지지 않은 대신, 영입하는 구단은 지명권을 잃지 않게 되었다. 대신 선수를 잃는 구단은 샌드위치 픽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영입하는 팀은 지명권을 지킬 수 있고, 퀄리파잉 오퍼를 제안하고도 선수를 빼앗긴 팀은 그대로 지명권 한 장을 더 받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다운이 노려야 할 것은 바로 저 샌드위치 픽이었다.
이번 시즌 샌드위치 픽을 가진 구단은 화이트삭스, 가디언스, 필리스, 자이언츠, 브레이브스까지 총 다섯 개 구단이다. 이 중에서 지난 시즌 최선을 다해 달렸던 화이트삭스는 총 두 장의 샌드위치 픽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다. 다운은 그 중 하나를 노리고 있었다.
“윌리엄스 사장한테 연결해줘.”
이번 시즌 화이트삭스는 릭 한 단장의 사임으로 인해서 사장이었던 케니 윌리엄스가 단장직까지 겸하고 있었다.
[오우 다운! 무슨 일이야?]
“케니. 저희가 뽑으려던 선수를 그렇게 채가시면 어떡해요?”
다운의 말에 윌리엄스가 말도 안된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하! 무슨 소리야 다운? 너라면 27순위까지 제이콥슨이 돌아가지 않을거라고 예상했을거잖아? 만약 정말로 뽑을 생각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너라면 플랜 Z까지 생각해놨을거야. 너는 그럴 능력이 되는 놈이니까.]
고위층에 오래 있던 사람이다보니 아는게 너무 많다.
[그래도 네가 노리던 선수를 뽑았다니 기분은 좋네. 그 정다운이 노리던 선수라! 흐흐!]
한참을 웃음소리를 흘리던 그는 어느 순간 웃음을 멈췄다.
[원하는게 뭐야.]
그를 모르던 누군가가 들었다면 다른 사람인줄 알았을거다.
“제가 원하는 것보다는 케니가 원하는게 뭔지가 중요한게 아니겠어요?”
[내가 원하는게 뭐지?]
“내야수. 당장에 써먹을 수 있는 내야수면 더 좋겠죠.”
비록 이번 겨울 두 명의 선수가 떠나갔지만, 화이트삭스는 여전히 지구우승과 함께 월드시리즈를 노리고 있었다. 그건 지금 그들이 가디언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필립 스노우. 어떻습니까?”
지금 시점에서 내야진에 부상자가 생긴다면 콜업 1순위인 스노우는 디백스와의 딜에서 데려온 선수로, 이번 시즌 트리플 A에서 시작해 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였다.
만약 레이스의 내야진이 두텁지만 않았더라면, 다운은 주저하지 않고 그에게 빅리그 기회를 줬을 것이었다.
[원하는건?]
“샌드위치 픽 하나와 유망주 하나. 나쁘지 않죠?”
< 126화 - Plan B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