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
다운을 포함한 직원들이 기를 쓰고 고민을 해봤지만, 결국 디백스가 자신들의 차례를 넘겨야한다는 결론만이 나왔다.
“일단 최선을 다해봅시다.”
그렇게 드래프트 당일 아침 해가 밝았다. 드래프트 날 프런트 사무실은 언제나 시끌시끌했다.
“이야~ 끝내주네요!”
“벽에 방음재 들어간건가?”
“그라운드 내부도 보이네요. 나중에 여기 모여서 경기봐도 되겠는데요?
글라이드 파크에서 드디어 열린 새 대회의실은 계단식 구조로 되어있었다.
“직원들도 레이스 팬이잖아? 경기하는 도중에는 언제든지 와서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줘야지.”
필요할 때는 대회의실로 쓰지만, 평소에는 직원들이 언제든 경기를 보러 올 수 있는 휴식장소로 쓰일 수 있는 곳.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대회의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라운드가 잘 내려다 보이는 아주 큰 창을 중심으로 회의실 같지않게 곳곳에 식물이 있고, 휴게실처럼 인테리어 되어있었다.
“자 암막커튼 치고, 준비하자고.”
감탄하는 것도 잠깐이었다. 대회의실 전면에 있는 창을 암막커튼이 가리고, 그 위를 커다란 스크린이 덮었다.
“스피커폰은 잘 돼?”
“제가 아까 확인해봤을때는 잘 됐었습니다.”
“그럼 한 번 더 테스트 해보자고. 구단주님 연결해줘.”
다운의 말에 리타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스틴 글라이드입니다.]
“다운입니다.”
[뭐야 이 번호는?]
“대회의실 번호에요. 저장해 놓으시죠.”
[라저 댓.]
글라이드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신이 나 있다.
“미키는 옆에 있어요?”
지난 번 드래프트에 이어서 이번 드래프트에도 미키가 레이스의 대표로 스튜디오를 향하게 됐다. 지난 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조니 대신에 글라이드가 그 옆자리를 꿰찼다는 것이었다.
“전체 1순위 지명권을 받은 다음에 우리 선수가 될 친구한테 유니폼을 건네주는게 내 꿈이었어. 그런데 지금 꼴을 보니까 절대 전체 1순위 지명권은 얻지 못할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스튜디오에 가서 1라운더에게 유니폼을 건네주고 싶으시단다.
어차피 대부분의 업무는 옆에 있는 미키가 다 할것이다. 글라이드는 그저 나가서 악수하고 사진찍는 것만 하면 된다. 구단주님이 원하시는데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다운은 흔쾌히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미키한테 지금 전화갈테니까 받으라고 전해주세요.”
[내 전화는?]
“스피커폰 테스트에요.”
곧이어 미키와도 통화연결이 완료되었다는 말이 들렸다.
“이어폰은 받아서 연결하셨죠?”
[미키가 다 해주더구나.]
“귀에서 안떨어지게 조심하시고요. 미키. 현장 분위기는 좀 어때?”
[똑같죠 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에요.]
각 구단들은 드래프트를 앞두고 자신들만의 전략을 가지고 나온다.
팜에 투수 유망주가 부족한 팀은 투수들을, 타자 유망주가 부족한 팀들은 타자들을. 혹은 지난 해의 레이스처럼 지역 프랜차이즈 스타가 필요하다면 스타를 데려온다.
드래프트 전략을 들키면 다른 구단에서 똥을 뿌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다들 쉬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즌 레이스의 드래프트 전략이 무엇이냐를 물어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아있는 선수 중 최고의 선수를 뽑는것.”
그리고 한 가지 전략이 더 있다면 바로 디백스가 2라운드 픽을 행사하기 전에 그들이 혹할만한 미끼를 던져놓는 것이었다.
이미 그러기 위한 밑작업도 다 쳐놨다. 이제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미끼를 던지는 일만 남아있었다.
“단장님! 1분 뒤에 시작한답니다!”
스튜디오와 핫라인을 연결하고 있는 직원이 소리쳤다.
“오케이!”
어차피 27번째 지명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장 급할건 없다. 그저 앞선 지명권을 가진 팀들이 누굴 지명할지만 지켜볼 뿐.
“방송 시작합니다. 소리 켤까요?”
“틀어봐.”
- 지금 보시면 지명순서가 다른 시즌과는 다르죠?
- 그렇습니다. 이번에 합의한 CBA 내용을 제대로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겁니다. 그분들을 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이번 시즌부터 적용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페널티입니다. 100패 이상을 기록한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신시내티 레즈의 지명권이 순식간에 20위 떨어졌죠. 그리고 95패 이상을 기록한 파이어리츠, 타이거스, 말린스가 또 7순위씩 밀려났죠. 그렇게 해서 정해진 지명순서가 바로 여기 나오는 순서입니다.
1 - 로키스
2 - 매리너스
3 - 디백스
4 - 로열스
5 - 메츠
6 - 애슬레틱스
7 - 내셔널스
8 - 파이어리츠
9 - 타이거스
10 - 말린스
11 - 트윈스
12 - 파드레스
13 - 브루어스
14 - 블루제이스
15 - 컵스
16 - 애스트로스
17 - 화이트삭스
18 - 레드삭스
19 - 레인저스
20 - 가디언스
21 - 레즈
22 - 오리올스
23 - 에인절스
24 - 필리스
25 - 자이언츠
26 - 카디널스
27 - 레이스
28 - 다저스
29 - 브레이브스
30 - 양키스
- 앞선 팀들이 페널티를 먹는 바람에 원래는 6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던 로키스가 순식간에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어쩐지 오늘 로키스 대표로 오신 분 표정이 내내 좋더라고요.
- 앞서 있던 구단들이 알아서 미끄러져줬는데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죠. 뒤에 있는 매리너스와 디백스, 7순위 지명권을 가진 내셔널스까지도 기분이 좋을걸요?
- 하하! 맞는 말입니다! 복권이 터진 느낌이 저런 기분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다면 로키스의 선택이 될 수 있는 선수들을 한 번 만나볼까요?
저들이 들고온 세 명은 레이스 프런트도 예측했다시피 저스틴 칼슨, 닉 데이비슨, 조엘 브롱코. 세 명이었다.
이번에도 지명순서가 뒤다보니 레이스의 회의실에서는 또 한 번의 내기판이 열렸다.
“로키스가 누굴 뽑을 것 같아?”
“저스틴 칼슨 아닐까?”
“나 같으면 닉 데이비슨 뽑을 것 같은데.”
“브롱코도 나쁘지 않아.”
“에이. 그래도 브롱코보다는 칼슨이 투수로 한 수 위지. 좌완에 100마일 던지는 투수를 걸러?”
“그래도 완성도는 브롱코가 더 높다는 평가잖아.”
이럴때마다 직원들이 물어보는 대상이 있었다.
“거스는 누가 될 것 같아요?”
지금이야 팜 디렉터로 물러났지만, 스카우트 팀장을 길러낸 전설적인 스카우트가 바로 거스다.
“흐음······ 내 생각에는 그래도 칼슨이 뽑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리고 다음 타자는 선수보는 눈이 좋은 단장. 바로 다운이다.
“단장님은요?”
폴의 질문에 다운이 슬쩍 웃었다.
“나도 거스 의견에 동의해. 내가 로키스 단장이었다면 무조건 칼슨을 뽑았을거야.”
로키스의 홈 구장인 쿠어스 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이다. 툭 갖다대기만해도 타구가 쭉쭉 뻗어나가는 저 구장을 홈 구장으로 쓰고싶은 투수는 아무도 없을거다.
그래서인지 로키스는 FA로 투수를 영입할 수가 없었다.
왜?
다들 기피하니까.
결국 로키스가 투수를 수급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드래프트, 그리고 트레이드 밖에는 없었다.
“로키스가 칼슨을 거른다는건 진짜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
다운의 설명에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럴만도 해.”
“단장님 말 들으니까 칼슨이 될 것 같네.”
카메라가 스튜디오에 나와있는 세 명의 선수들을 3분할로 비췄다.
그들의 얼굴에 긴장이 흐르고 있을 때, 1라운드 1번에게 주어진 4분이 모두 흘렀다.
- 1라운드 1번째 지명권으로 콜로라도 로키스는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의 유격수. 마크 트위니를 지명했습니다. 다음 차례는 시애틀 매리너스입니다.
2023시즌 영광스러운 전체 1번 지명권은 마크 트위니의 차지가 되었다.
생각지도 못하는 지명에 스튜디오는 물론이고 레이스의 대회의실까지 얼어붙었다.
그래도 캐스터들만은 본분을 잊지 않았다.
- 마아아아크! 트위니가 전체 1번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마크 트위니.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의 유격수로 좋은 어깨와 좋은 선수가 많은 캘리포니아 지역 대학리그에서도 눈에 띄는 타격능력을 보여준 선수다. 지금까지 꽤 많은 부상자가 나왔던 빅사이즈 유격수라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3루수로 전환을 시킨다는 전제 하에 결코 나쁜 픽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이번 드래프티 중에서 유격수 1위에 올라와있는 선수이기도 하고.
하지만
‘마크 트위니가 앞선 저스틴 칼슨, 닉 데이비슨, 조엘 브롱코를 거르고 뽑을만한 선수냐?’
를 묻는다면 ‘글쎄?’라는 답이 바로 나올 것이다. 그만큼 앞의 세 명은 나머지 드래프티들과 꽤 차이가 나는 재능들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로키스에는 아직까지 8년이라는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유격수인 크레이그 라이스와, 이제 막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한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 ROY 4위에 랭크된 3루수 파블로 곤잘레스가 있었다.
그게 끝이냐?
그것도 아니었다.
로키스 팜에는 BA 전체 유망주 43위에 올라있는 유격수 조던 마치와 55위에 랭크된 3루수 크리스티안 마치가 콜업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던 마치를 2루에 보내고, 타격에 재능이 있는 크리스티안 마치를 1루로 보낸다고 하더라도 너무 손해 같은데.”
“같은게 아니라 손해입니다.”
거스가 다운의 말에 동의했다.
“지난 시즌 로키스 팜에서 큰 성장세를 보인 선수들 대부분이 내야수들이었죠. 내야수가 이미 포화된 상태인데 여기서 또 내야수를 영입한다? 레이스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지명을 한걸까요?”
다운의 질문에 거스가 턱을 쓸었다.
“짐작가는 바가 없는건 아닌데······.”
다들 숨을 죽이고 거스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댄.”
“넵!”
역시 신입사원이라 그런지 빠릿빠릿하다.
“칼슨, 데이비슨, 브롱코의 종교가 어떻게 되지?”
다운의 거스의 질문에 곧바로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설마. 아닐거에요.”
“정말 아닐까요?”
야구계에서는 정말 유명했던, 이제는 야구 팬들에게도 어느정도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바로 로키스 구단주인 몽포트 형제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것 말이다. 여기까지만 봤을때는 문제가 될만한 게 없었다. 누가 어떤 종교를 믿던, 그건 그들의 자유니까.
하지만 이게 강요로 바뀌는 순간 문제가 된다.
그리고 몽포트 형제는 이 강요를 로키스 전 선수들에게 하고 있었다.
‘라커마다 성경을 비치하고, 예배시간까지 있는건 좀 아니었지······.’
심지어는 정말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가 아닌 이상은 콜업도 늦춘다는 소문도 있었다.
정말 이해심을 넓혀서 여기까지 이해했다고 치자. 그렇다고해서 구단의 미래 기둥이 될 선수들을 뽑는 드래프트에서 종교로 선수를 뽑는다?
프로 구단의 존재 의의는 승리라는 것을 익히 알고있는 다운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칼슨은 유대교 데이비슨과 브롱코는 불교랍니다.”
“트위니는?”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다.
< 125화 -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