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네가 점점 좋아져 >
채드 벨링엄
애리조나 해밀턴 고교 출신의 미드필더. 아니, 3루수로 영국 출신의 선수다.
이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냐고?
‘코디네 고등학교 후배잖아!’
드링크워터를 보러 갈 당시 로벨이 ‘우리가 26라운드에 뽑을 친구야.’라는 말을 했던 친구다. 야구를 시작한지 고작 두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거기에 가디언스의 주전 유격수와 이름과 성이 같다는 사실 역시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 친구 하위 라운드에 뽑으려고 하지 않았나?”
“그러려고 했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여기서 생길 문제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구단에서 찾아왔어?”
미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디백스야?”
해밀턴 고교는 디백스의 권역인 애리조나에 있다. 누군가의 정보망에 걸렸다면, 그들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네.”
“정확히 어떻게 된거야? 얘가 그 정도는 아니잖아?”
그가 야구를 시작한 건 지난 겨울. 대회를 뛸 수 있었던 시기라고 해봤자 고작 이번 봄 한 번이 전부였다. 봄 대회에서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디백스의 손이 뻗칠걸 예상해서 1라운드까지 추천이 올라올 이유가 없었다.
“전 타석 출루라도 한거야 뭐야?”
그러지 않는 이상은 그가 여기 올라올 수 있는 방법이······.
“했습니다.”
“응?”
다운을 비롯한 파트장들이 귀를 의심했다.
“전 타석 출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활약을 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여덟 번 출장해서 39번 타석에 들어갔습니다. 그 중에서 안타가 31개, 희생타점이 3개, 볼넷이 2개입니다.”
아무리 고등학교 아마추어 경기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투수들이 90마일 이상을 던지고, 하나 이상의 자신있는 변화구 정도는 가지고 있는 프로 지망생들이 그 상대였을 것이다. 이 시기에 경기에 주로 뛰는 놈들은 대부분 야구를 업으로 삼으려는 놈들일테니까.
근데 그런 놈들을 39번을 상대해서 세 차례 빼고 전부 출루?
“행운의 안타는?”
“전혀요. 모두 클린히트였답니다. 31개의 안타 중에서 장타는 22개, 홈런은 10개를 기록했습니다.”
비현실적인 기록이다.
“혹시 스카우트가 눈이 삐었다거나 쟤랑 커넥션이 있는게 아닐까?”
글라이드마저 그의 비현실적인 성적에 저런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거기서 숙식하면서 스카우팅을 책임진게 조니거든요.”
조니는 선수를 깎아내릴지언정 절대 과대평가하거나 거짓을 말할 놈은 아니었다.
결국 그게 의미하는건 하나였다.
“미친놈인가······.”
극찬을 보내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삼진은?”
“세 번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출루를 못했던 세 번이 모두 삼진이었네. 상대는 누구였어?”
“세 번 다 조엘 브롱코한테 당했어요.”
“올 시즌 최대어 중 하나네.”
조엘 브롱코는 애리조나 지역 최대어로 198cm의 신장에 97kg의 단단한 체구를 가진 우완투수로 애리조나 투수 유망주가 세운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것으로 유명한 선수였다.
“브롱코가 없었다면 절대 우리에게까지 픽이 안왔을겁니다.”
디백스의 지명순위는 전체 3순위.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로키스는 올 시즌 최대어이자 랜디 존슨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저스틴 칼슨을 뽑을거다.
2미터가 넘는 키에 좌완. 최대 102마일을 뿌릴 수 있는 강속구에, 타자의 발목을 부러트리는 슬라이더까지.
만약 레이스 팜에 투수가 충분하지 않고, 레이스의 지명순위가 전체 1순위였다면, 다운은 스탠하우스와 함께 그를 뽑을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전체 2순위 지명권을 가진 팀은 매리너스. 로키스만큼 확신할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들이 뽑을 선수는 닉 데이비슨일 것이다. 데이비슨은 이번 시즌 대학 최고의 포수라는 평가를 받고있는 선수로, 입학이후 내내 주전 마스크를 쓰면서 대학리그 통산 0.354의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매력적인 타격실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현재 확실한 주전 포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팜에도 뛰어난 포수 유망주가 없는 매리너스 입장에서는 군침이 흐르는 선수일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디백스에 앞서있는 두 팀은 조엘 브롱코보다 좋은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다. 그래서 디백스의 손에 브롱코가 돌아갈 수 있는 것이고.
“이거 순위가 밀린 다섯 개 팀에게 절이라도 해야하나?”
만약 앞선 다섯 개의 팀들이 페널티를 받아 밀리지 않았다면, 디백스의 지명순위는 전체 8순위가 됐을거다. 그리고 그때까지 브롱코가 남아있을 가능성은 없다시피했다.
물론 그 정도에도 괜찮은 선수가 남아있을테니 그를 먼저 뽑을 확률이 더 높긴 했다. 디백스에서도 ‘우리 팀 빼고는 아무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을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을테니까.
하지만 인지도가 떨어지는 선수에게 1라운드 픽을 준 뒤, 아낀 돈으로 2라운드 아래의 선수에게 투자하는 전략으로 나올수도 있었다. 이번 시즌 애리조나에는 보라스의 고객 중 하나로 대학진학을 선택할거라고 알려진 호머 페이튼도 있었으니까.
1라운드에서 벨링엄을 뽑고, 2라운드에서 페이튼을 뽑은 뒤, 슬롯머니를 합쳐서 페이튼과 보라스가 원하는 돈을 안겨주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디백스 입장에서는 미래가 기대되는 최상급의 유망주를 둘이나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 친구가 그렇게 유망해?”
글라이드의 말에 다운이 미키에게 고개를 돌렸다.
“경기 영상 좀 틀어봐.”
짧고 강렬한 그의 경기영상을 본 글라이드가 혀를 내둘렀다.
“깔끔한데?”
다운도 그의 경기영상을 본 건 오랜만이다. 지난 시즌이었다면 이미 보고도 남았겠지만, 올 시즌은 구장이전부터 시작해서 신경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에 스카우트 쪽에는 미키와 조니에게 대부분을 맡기고 신경을 덜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봤을때보다 확실히 괜찮아졌네.”
스윙은 비슷했지만, 스타일이 조금 더 확고하게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배드볼 히터 느낌이 조금 있는 것 같긴한데······.’
배드볼히터가 마냥 나쁜건 아니었다. 투구를 따라갈 수 있는 동체시력, 그에 반응해줄 수 있는 신체, 뇌가 원하는대로 스윙을 제대로 해줄 수 있는 반응속도와 미세한 스윙 조정능력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는 말이니까. 저기에 존 설정 능력만 갖춘다면 정말 야구계에 다시 없을 타격괴물이 나올지도 모른다.
“수비 영상도 있지?”
“네.”
미키는 곧바로 수비영상을 틀었다. 그와 함께 설명을 덧붙였다.
“저번에는 3루만 맡았었는데, 이번에 정규시즌에 들어가면서 외야로 전환했습니다.”
“괜찮은 선택이네.”
야구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런 선수에게 바운드는 물론이고, 송구에, 커버플레이, 번트수비까지 생각해야하는 3루는 힘들다.
그럴바에는 외야수비가 훨씬 편했다. 낙구지점 포착과 송구만 신경쓰면 되니까. 커버 역시 내야에 비하면 단순하다. 벨링엄의 타격 재능을 살리기에는 외야가 제격이었다.
“내야수비는 별로였나봐?”
글라이드의 질문에 다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야구 지난 겨울에 시작한 놈입니다.”
“뭐라고?”
“그래서 저희가 뺏길까봐 걱정하는거죠. 다른 구단에 주기에는 너무 아까운 재능이잖아요.”
글라이드가 혀를 낼름거리며 물었다.
“차라리 저 친구를 1라운드에서 뽑는건 어때?”
그가 보기에도 벨링엄은 매우 탐나는 재능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다운의 생각은 달랐다.
“아뇨. 아까 제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스탠하우스를 뽑을거라고 했었잖아요. 그 마음은 그대롭니다.”
야구는 재능이 전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재능이 다가 아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다 피우지 못하는 놈도 있고, 재능이 없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재능이 있는 놈보다 더 좋은 커리어를 만드는 선수도 있다.
재능을 가지고 노력하는 선수?
부상만 아니라면 좋은 선수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스탠하우스는 재능이 있다. 그와 동시에 노력해야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 선수다. 성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는 선수는 길을 잘못 들지만 않게 해준다면, 어떻게든 평타 이상은 쳐줄 확률이 높았다.
그에 비해 벨링엄은?
갑자기 야구가 좋아져서 평생 하지도 않던 야구를 시작한 친구다. 그만큼 야구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지만, 저 열정이 순식간에 꺼져서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다.
그 해 농사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1라운더가 저런 친구여서는 곤란했다.
“디백스가 2라운드에서 벨링엄을 흘릴 가능성은?”
“50대 50정도라고 봅니다.”
“뽑거나 안뽑거나네.”
패닝턴의 머리를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2라운드에 그들이 벨링엄을 뽑을지 안뽑을지를 알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3라운드 이하로 내려갈 것 같지는 않아요. 벨링엄이 야구에 엄청난 흥미를 느끼고 있는만큼 하위라운드에 지명되면 차라리 대학에서 더 몸 값을 높이는게 나을거라는 이야기를 했대요.”
“애초에 우리가 26라운드 쯤에서 뽑을 수 있는 놈이 아니었네.”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으니까 저희가 원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걸요?”
“바보가 아닌 이상 주변에서 뭔가를 주워들었겠지. 교우관계라던가 성격은 어때?”
차라리 여기서 뭔가 좀 하자가 있으면 갖고싶은 마음이 줄어들 것 같았다.
“활발한 성격에 지고는 못사는 엄청난 승부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구로 진로를 확실히 정한 것 역시 조엘 브롱코에게 삼진을 당한 뒤니까요.”
“그게 언젠데?”
“4월 중순의 경기였네요.”
“그럼 리그 중반 아니야? 그 전까지는?”
“그 전까지는 야구가 너무 쉬운 것 같아서 취미로 즐길 생각이었대요.”
사실 저 성적이면 그렇게 생각해볼만도 하다. 너무 시시해서 취미로도 즐길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지 않은게 다행일거다.
“그런데 조엘 브롱코의 차원이 다른 공에 삼진을 세 번 당하더니 마음이 바뀌었대요.”
아까 지고는 못사는 엄청난 승부욕을 가지고 있다더니, 그게 발동한 모양이다.
“축구에서는 한 번 정도 맞대결에서 지더라도 결국 골을 넣고, 키패스를 하고 경기를 이기면 끝나잖아요. 그런데 야구는 기본적으로 투수와 타자의 싸움이죠. 그게 모여서 경기의 승패가 결정되는거고요. 그 날 이후로 분해서 이틀은 잠을 못잤답니다.”
아까 했던 말은 취소다.
벨링엄은 최고가 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승부욕을 가지고 있다. 매 번 이길 수 없는 야구. 열 번 중 세 번만 이겨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야구의 구조는, 그의 승부욕을 끊임없이 자극할거다. 그렇게 자극을 받은 벨링엄은 매일, 매 타석 발전할테고.
‘큰일났다.’
점점 벨링엄을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124화 - 네가 점점 좋아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