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네가 왜 여기서 나와? >
4월과 5월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어느새 6월이 찾아왔다.
“진짜 덥다, 너무 더워!”
프런트 사무실에 있는 천장형 에어컨들이 모두 고장나버리면서 그나마 멀쩡한 회의실이 이제는 업무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다운은 단장실을 회의실로 제공해야만 했다.
“댄! 자료 가져가요!”
“알겠습니다!”
“저쪽 프린터기에 복사 걸어놨던거 다 들고 오고요!”
“넵!”
리타는 이제 일한지 일주일이 된 댄을 아주 잘 교육하는 중이었다.
“저 친구 일은 좀 잘합니까?”
거스의 질문에 다운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냥저냥 하는 편이죠. 적당히 판 볼줄도 아는 것 같고, 경호도 되니까 한 번 지켜보려고요. 무엇보다 댄이 자리잡으면 리타가 해야할 일도 줄잖아요?”
지금 리타는 업무가 너무 많다. 기본적으로 다운이 하는 모든 업무를 알고 있어야 하면서도, 손님응대, 원정동행 등 모든 일들을 도맡아서 처리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댄이 그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다면 다운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맞습니다. 저러다가 진짜 쓰러지는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직 휴가도 제대로 간 적 없지 않나요?”
다운이 알기로 리타는 휴가를 제대로 즐긴 적도 없다. 그녀가 쉴 수 있는 기간은 오직 다운이 쉴 때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다른 직원들이 다 가는 여름휴가조차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안그래도 댄의 업무가 좀 익숙해지면 휴가 좀 보내주려고요. 한 5일정도?”
“그런다고 쟤가 갈까요?”
“안가겠죠. 그래서 미리 생각해놓은게 있죠.”
다운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구단주님은요?”
다운이 말하기 무섭게 글라이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왔다.”
“호랑이세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해하지 못했다는 눈빛을 보내며 자리에 앉았다.
다운은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는 그에게 얼음이 동동 띄워진 주스를 내밀었다.
“사무용 기구들은 다 들어왔어요?”
에어컨이 고장난 것을 확인하자마자 글라이드는 새로운 구장의 프런트 사무실로의 이전을 준비했다. 에어컨을 고치는 것보다는 새로운 구장으로 이전을 하는게 훨씬 싸게 먹힐테니까.
“오늘 대부분 다 설치했다.”
“그러게 여기 있는거 가져가자니까요.”
다운은 쓸만한 집기류나 사무용품들, 가구들은 모두 가져가자고 했다. 하지만 글라이드는 돈이 더 드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용품들을 새로 구매하자고 했다.
“새로운 곳에 갈때는 새로운 물품들로 채워야 돼. 그래야 사람이 의욕도 생기고, 기분전환도 되는 법이거든.”
글라이드의 강력한 주장에 힘입어 입주는 일주일이 더 미뤄졌다.
“내일 컴퓨터만 옮기면 바로 쓸 수 있을거다.”
“오늘 경기 끝나고 새벽에 클러비들이랑 구단버스 이용해서 옮겨버리죠? 그게 차도 덜막히고 좋을 것 같은데.”
“그러지. 옮길 부서는 다 정했어?”
“네. 당장 경기 운영에 도움을 줘야하는 운영팀 빼고는 전부 가기로 했어요.”
“스카우트팀도 남긴다며?”
“그러려고 생각하긴 했죠.”
6월 17일에는 드래프트가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날은 원정이 있는 날이다.
“제가 원정에 동행을 하면, 스카우트 팀이 어디있든 상관이 없겠죠. 만약 제가 동행을 하지 않게 된다면 제가 글라이드 파크 사무실로 가면 되고요.”
다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글라이드가 몸을 쭉 뻗었다.
“벌써 드래프트가 코앞이구만.”
6월에 있는 가장 큰 행사는 누가 뭐래도 드래프트다. 특히나 이번 시즌은 과도한 탱킹에 대한 규제가 이루어진 첫 번째 시즌이었다.
95패 이상 팀 드래프트 7순위 하락
100패 이상 팀 드래프트 20순위 하락
의도적인 탱킹을 하던 팀들은 엄청난 타격이, 그리고 그들로 인해 어중간하게 중위권에 있었던 팀들은 더 높은 순위의 픽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우리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밑에서 7번째는 물론이거나위 20번째에 들어가지도 않는 레이스는 이 혜택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번 시즌에도 양키스에 이어 굳건하게 2위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양키스와의 경기차는 0.5 경기.
아직 시즌 초반이라 3위인 레드삭스와의 경기차는 그렇게 많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2.5경기라는 꽤 유의미한 차이가 나고 있기에 나쁘지 않은 전반기를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중간에 꽤 많은 팀들이 기뻐하겠네요.”
지난 시즌 100패 이상을 한 팀은 신시내티 레즈와 볼티모어 오리올스 두 팀이 있었고, 95패 이상을 기록한 팀은 말린스와 파이어리츠, 그리고 타이거스까지 총 세 팀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원래라면 6순위 픽을 가져갔을 로키스가 순식간에 전체 1순위 픽을 가져가게 되었다.
“로키스는 좋겠네.”
“저는 그래도 로키스처럼 하위권에 자리하는 것 보다는 상위권에 랭크되는게 낫다고 생각해요.”
“카를 네 말이 맞다. 우리가 성적까지 안좋았어봐. 그럼 관중들은 물론이고 팬들까지 토막났을게다. 그랬으면 앤디가 저렇게 좋은 표정으로 있는 것도 볼 수 없었겠지.”
글라이드와 다운, 파트장들이 떠들고 있는 와중 댄이 자료들을 뽑아서 들고왔다. 가장 위에 적혀있는 글씨는 ‘2023 Drafty Report’.
“드디어 보는구만!”
글라이드는 언제나 팬의 마음으로 구단의 일을 처리하고 싶다며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받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크리스마스 날 아침, 트리 아래에 있는 선물을 뜯는 아이와 같은 해맑은 얼굴로 표지를 넘겼다.
“우리 1픽이 누군지 확인을 해볼까나?”
가장 위에 올라와 있는 이름은 메이슨 스탠하우스.
“이 친구가 그렇게 노래를 불러대던 우리의 원픽인가?”
글라이드도 대략적으로 ‘1픽으로 꼭 뽑아야만하는 선수 하나가 있다.’ 정도의 정보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름 : 메이슨 스탠하우스
신체 : 194cm/93kg
투타 : 우투우타
포지션 : 외야수
CON - 65
POW - 70
SPD - 80
ARM - 75
FLD - 80
“단단한 체구에 스펙도 좋구만. 영상은?”
구단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유망주들을 발굴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글라이드는 스카우트 팀에서 준비한 스탠하우스의 영상을 즐거운 표정으로 감상했다.
“크고 빠르고 타격도 나쁘지 않네. 근데 상대하는 투수들 수준이 영 떨어져 보이는데?”
역시 야구를 오래 본 사람답다.
“북동부 출신이거든요.”
그제서야 아래에 있는 그의 인적사항을 확인한 글라이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전체적인 선수들의 실력이 떨어지겠구만. 그럼에도 이 친구를 뽑아야 하는 이유가 있나?”
글라이드의 말에 미키는 확신에 가득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뽑을 수 있는 최선의 선수라서 뽑는게 아닙니다. 저와 스카우트 팀이 생각했을 때, 올 시즌 최고의 드래프티가 바로 스탠하우스이기 때문에 뽑으려는겁니다.”
“우리가 전체 1픽을 가지고 있었다면 저 친구를 뽑았을건가?”
“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미키의 답에 글라이드가 물었다.
“너도 보고 왔다며. 같은 생각이냐?”
다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뽑을겁니다.”
“너까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른 팀들이 저 친구를 데려가지 않을까?”
“일단 북동부라는 점 때문에 다른 구단에게는 크게 어필이 되지 않았을겁니다. 몇 년 동안 북동부 유망주에 속은 팀들이 꽤 되니까요.”
다른 구단주들이라면 여기서
‘우리는 속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라며 일갈했을 것이다.
하지만 글라이드는 그러지 않았다.
선수보는 눈이 리그에서 손꼽히게 좋다는 스카우트 팀이 며칠 밤낮을 새운 결과 리포트 가장 위에 올려둔 선수다. 쓸데없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걱정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미키가 다운의 말을 받았다.
“저희 스카우트 팀에서는 최대한 다른 구단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 유명 스카우트들 대신 신입들, 혹은 위장을 철저히 한 스카우트들을 파견해서 스탠하우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했습니다. 그런데 약 두 달 전 부터, 양키스와 오리올스의 스카우트들이 지속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기서 양키스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어차피 그들은 레이스보다 지명순위가 낮았으니까.
신경써야 할 대상은 오리올스다.
이번 시즌 오리올스의 지명순위는 페널티까지 받아서 21위다. 전체 27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는 레이스보다 6순위나 앞에 있는 것이다.
“오리올스가 하이재킹을 할 가능성도 있구만.”
“심지어는 단장까지 다녀갔으니까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단장이 다녀간 것은 단 한 번. 그나마도 그 경기에서 스탠하우스는 출루를 한 번도 하지 못했죠.”
“그나마 다행이구만.”
“그를 단장에게 추천한 스카우트가 얼마나 힘을 가졌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스탠하우스를 손에 넣지 못했을 때도 대비해둬야했다.
“대안은?”
“두 명 정도를 고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 시즌 드래프트 풀의 특징은 부익부 빈익빈.
정말 괜찮은 선수가 10명 정도 되고, 나머지는 고만고만하다. 그러다보니 레이스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좌완투수 크리스 팔머. 2미터가 조금 넘는 엄청난 키에 92kg의 단단한 체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100마일에 가까운 공을 뿌리는 파이어볼러죠.”
미키의 말에 글라이드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뽑을 가능성이 있다고?”
“제구가 안됩니다.”
“얼마나?”
“전혀요. 스카우팅 리포트 상으로 따지면 20일겁니다.”
20이면 최하수준도 아니고 최하다. 그냥 최하.
“그런데도 팔머를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에게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팔머는 대학 2학년까지만 하더라도 그저그런 불펜투수였습니다. 키가 고작 180cm밖에 안되고, 구속도 간신히 90마일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작년에 22cm가 컸습니다. 그러면서 구속이 엄청나게 올라갔다더군요.”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투수란 종족은 섬세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공을 던지는 시야, 팔의 각도, 길이, 스트라이드, 던질 수 있는 구속까지.
같은거라고는 왼손으로 던진다는 것 하나 말고는 없었다. 당연히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선수 본인도 지금 당장 드래프트 되는건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을 노리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지명이 된다면 계약할 의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미 확인해본건가?”
“네. 지금 당장은 20점이지만, 밸런스만 잡힌다면 충분히 안정적인 제구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키가 크기 이전에는 좋은 제구를 보여줬었거든요. 브레이킹볼을 익힐 수 있는 손재주 역시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다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페이지를 넘겼다.
“충분히 긁어볼만한 복권이네. 다른 선수는?”
3장에 있는 선수의 이름을 확인한 다운의 눈이 커졌다.
채드 벨링엄
“저 친구 이름이 왜 여기 있어?"
< 123화 - 네가 왜 여기서 나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