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Thank you for your service(3) >
크리스틴의 말을 끝으로 전광판에는 울고있는 댄의 모습이 나왔다.
“크리스틴 넌 정말······.”
“알아 네 인생 최고의 여자라는거.”
댄은 말을 잇지 못하고 크리스틴을 끌어안았다. 크리스틴은 울먹이며 자신을 끌어안는 댄의 등을 토닥였다.
서로를 끌어안는 예쁜 그림에 관중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휘이익~!”
“힘내라!”
“Thank you Dan!”
이제 진정이 좀 되었는지 눈물을 닦던 댄이 손을 흔들며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다운은 그를 그대로 놔둘 생각이 없었다. 어느새 바로 관중석 앞까지 달려나온 다운이 그에게 손짓했다.
[댄 프레슬리님 나와주세요.]
장내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다운의 목소리에 댄이 자신을 가리켰다.
“저요?”
[네. 어서 나와주세요. 거기서만 응원받을거 아니잖아요? 나와서 시구도 하셔야죠?]
다운은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 다운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마운드에는 오늘 선발인 리키 더지와 포수인 윌슨이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브래넌까지도 마운드 옆에 와 있었다.
“넌 왜 왔어? 오늘 지명타자 아냐?”
“우리 팬님이자 관중께서 시구하시는데, 글러브가 없으시잖냐? 너희 글러브를 드릴순 없으니 내가 가져왔지.”
“아, 그 생각을 못했네.”
생각해보니 어제와 그제 행사에서는 시구자들이 몰래카메라를 하기 전에 미리 와서 글러브도 받고, 원포인트 시구 레슨도 받았었다.
하지만 오늘의 시구자는 몰래카메라를 당하는 당사자였다. 그러다보니 미리 준비를 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근데 글러브는 왜 두 개야?”
“왼손잡이용, 오른손잡이용. 오른손잡이 용은 내 글러브고, 왼손잡이용은 덕꺼야.”
“준비성 철저하네.”
“제꺼 써도 되는데.”
“리키 넌 오늘 선발이잖아.”
“예비 글러브 가방 안에 있어요. 덕꺼는 미트 아니에요?”
“내가 그런것도 신경 안썼겠냐? 덕이 외야 나갈때 쓰는 외야 글러브로 들고왔어.”
옆에서 직접 선수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현실같이 느껴지질 않았다.
“헤이 댄.”
브래넌이 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금 배리 브래넌이 나한테 말을 걸었어! 말을 걸었다고!’
미쳐 날뛰는 심장과 마음과는 다르게 몸과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래서인지 브래넌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 친구?”
가까스로 정신줄을 잡은 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네! 괜찮습니다!”
“왼손잡이야, 오른손잡이야?”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지만 ‘우완용 글러브는 브래넌이 쓰는 것.’이라는 것 하나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른손잡이입니다!”
오늘만큼 오른손잡이였던게 다행이었던 적이 없었다. 아니지, 아마 왼손잡이였어도 똑같이 오른손잡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브래넌은 자신의 글러브를 내밀었다.
“잘 써. 돌려줄 필요는 없어.”
브래넌이 쓰던 글러브라니!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한거야. 허 참······.”
“공은 좀 던져본 적 있으신가요?”
다운의 말에 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대에서 야구를 해서요.”
“그럼 마운드 바로 앞. 이 지점에서 던지도록 하죠.”
야구를 해봤으면 마운드에서 던질 수도 있을거다. 하지만 오늘의 마운드는 구장관리인이 더지가 좋아하는 컨디션으로 고생해서 만들어놓은 마운드다. 더지가 곧 던져야하는 마운드에 누군가의 발을 들이밀어놓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다.
야구를 해봤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댄은 다운이 지정해준 위치에 서서 선수들 부럽지 않은 깔끔한 폼으로 공을 던졌다.
“휘이익~!”
“멋지다 댄!”
“잘하네!”
환호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댄. 지금 저 사람들의 응원이 들리죠?]
다운이 그의 대답이 관중들에게 들어갈 수 있도록 마이크를 가져다 대줬다.
[네, 네.]
[오늘 여기 와주신 28,216명의 팬분들, 그리고 양 팀의 선수와 코칭스태프. 레이스의 직원들의 모든 응원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서 이제 걸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속삭이는 듯 입을 가리며 말했다.
[그리고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저기 있는 저 여자 분 놓치지 마시고요.]
장난스럽게 말한 다운이 마치 몰랐다는 듯 이마를 탁 쳤다.
[아차! 마이크가 켜져있었네. 하하! 자, 그럼 이제 경기를 위해 비켜줍시다!]
다운은 댄의 손을 이끌어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어······ 저 여기로 오는게 아닌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여기로 오신 김에 선수들이랑 인사도 한 번 하시죠.”
다운의 말에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이 손을 내밀며 그에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내 용기 받아가.”
“여기 내 용기도 있다.”
“응원합니다!”
쏟아지는 응원을 정신없이 받아낸 댄은 다운을 따라 더그아웃 뒤의 통로로 나갔다.
- 레이스의 좌완 에이스! 리키이이이이 더지이이이이!
오늘 선발로 출장한 선수들의 이름이 웅웅거리며 울려 들렸다. 복도를 지나 일반인이라면 올 수 없는 ‘게스트룸’이라고 적힌 방까지 이르렀다.
“저희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부르게 되어서 미리 선물을 못챙겨드렸네요. 리타?”
다운의 옆에 있던 미인이 레이스 스토어에서 가져온 듯한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었다.
“혹시 이 유니폼도······.”
“네. 유니폼도 준비해드렸죠.”
어쩐지 빨리 나온다 싶었다.
“그리고 어플을 보면 모두 해드릴 순 없지만, 당신하고 크리스틴의 어플 아이디에 하프시즌권을 넣어드렸습니다. 그러니 경기를 보러 오고 싶으시면 얼마든지 오시면 됩니다.”
댄은 다운의 마음이 바뀔새라 넙죽 고개를 숙였다.
“감사히 쓰겠습니다.”
“별것도 아닌데요 뭐.”
손을 내저은 다운이 물흐르듯 말을 이어나갔다.
“개인적으로 궁금한게 있어서 그런데 조금만 더 시간 괜찮으십니까?”
좌석에서 크리스틴이 기다리고 있을거고, 경기는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이 좋아하는 브래넌이 나오지도 않은 1회 초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끝내드리겠습니다. 우선······.”
순간 다운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근에 있었던 리키 더지의 계약 불발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까까지는 팬을 친근하게 대하는 단장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뭔가
‘면접관 느낌인데?’
작전에 나가는 지원자를 받는 자신의 상관이 저런 분위기를 풍겼던 것 같다.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댄은 입을 열었다.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더지는 돈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프로고, 구단은 3000만 달러라는 돈을 지불할 정도로 그를 잡아야만 하는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저희 팜에는 좋은 투수들이 많으니까요.”
“그렇다면 앞으로 더지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트레이드 제안이 들어오면 보낼까요? 아니면 FA가 될때까지 쭈욱 잡고있는게 좋을까요? 아니면 저희가 원래 하던대로 5년차까지 써먹고 보내는게 좋을까요?”
사실 이건 답이 정해져있는 내용이다. 스몰마켓 입장에서는 5년차까지 써먹고 트레이드로 파는게 국룰이니까.
하지만 다운은 그런 답을 원하는게 아니다. 그리고 현재 바뀐 상황상 댄은 그것이 옳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단장님 앞에서 제 보잘것 없는 의견을 말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전혀 보잘것 없지 않아요. 그런 의견이 때로는 저에게 해결책이나 돌파구가 되어줄 수도 있으니까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만약 제가 결정권이 있다면 6년차까지 뽕을 뽑아 써먹거나, 3~4년차에 팔아버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나올만한 답이 아닌 다른 답이 나오자 다운의 눈빛이 바뀌었다.
“왜죠?”
“그건 레이스가 우승에 도전할 전력이기 때문이죠. 거기에다가 자본력까지 갖추게 되었고요.”
밖을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던 길고 긴 시간 동안 댄은 이런저런 일들에 대한 예측을 해보곤 했다. 마치 자신이 단장이 된 것처럼 말이다. 수 년 간 이어져온 버릇은 지금까지도 지속되어왔다.
‘더지의 계약건이 터졌을 때도 나라면 이럴거라고 생각했던게 있었는데······.’
댄은 그 당시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말로 풀어냈다.
“제가 봤을 때 지금 레이스는 새로운 구장으로 이전한 그 해, 혹은 그 다음해 우승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매 년 우승을 노리고는 있지만, 이왕이면 내년에 우승을 하면 좋긴 하죠.”
“그 전제를 두었을 때, 레이스는 더지를 월드시리즈 우승을 할 때까지 데리고 있거나, 그와 버금가는 전력을 가진 선수를 영입하는 카드로 써야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요?”
“더지의 포스트시즌 전적은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죠. 아직까지는 포스트시즌이라는 큰 무대에서 제 역할을 한다는 느낌까지는 주질 않아요. 그래서 그 자리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선발. 예를 들면 휴고 그랜트 같은 선수를 영입하는 카드로 쓰는거죠.”
휴고 그랜트는 애스트로스의 2선발로 정규시즌에는 2점 후반에서 3점 초반의 자책점을 기록하는, 평범한 우완투수다. 구속 역시 그렇게 빠르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은 평균 92마일이었으니,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투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가을만 되면 사람이 달라졌다. 그랜트는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이 6경기 44.1이닝 8실점에 불과했다. 게다가 가장 많은 실점을 한 경기가 2실점이었다.
평균적으로 7.4이닝을 던지면서 최대 실점은 2실점.
그야말로 가을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더지가 가을에도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면 레이스가 우승을 할 때까지 끝까지 쥐고 있는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그의 의견에 다운이 흥미롭다는 듯이 웃었다.
“의견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크리스틴이 말해준 바에 따르면 네이비에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네.”
“그럼 혹시 경호에도 좀 일가견이 있으신가요?”
“어······ 물론이죠?”
요인 경호와 같은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으니까 일가견이 있다고 말해도 무방했다.
“좋네요. 그럼 개인적으로 제안하고 싶은게 하나 있는데요.”
“제안이요?”
“네. 지금 하시는 일이 없는 걸로 아는데, 구단에서 일해보는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갑작스러운 다운의 제안에 댄이 벙쪘다.
“어······ 그러니까 직업을 제안하시는건가요?”
“네. 타이밍이 이래서 그렇지, 절대 당신이 불쌍해서 제안하는게 아니라는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정말 동정심에 일자리를 줬으면 클러비 자리 하나 내주는 정도로도 충분하거든요.”
“그럼 클러비보다는 좋은 직책을 제안하신다는거네요?”
“네. 정확한 직책은 단장보좌입니다. 제가 시킨 일을 하면되고, 지금처럼 옆에서 의견을 내주시는 그런 역할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경호도 좀 해주시고 그러는거죠. 아, 물론 당장 결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잘 생각해보시고 여기 제 명함에 있는 번호 있죠? 여기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리타가 아리따운 목소리로 반겨줄겁니다. 그럼 시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네요.”
다운은 아직까지도 벙쪄있는 댄을 직원에게 맡겼다. 그가 나가자마자 옆에 있던 리타가 평소와는 다른, 불만스럽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겨댔다.
“단장님. 너무 아무 생각없이 구한거 아닙니까?”
리타의 말에 다운이 웃었다.
“하하! 리타. 정말 내가 아무 생각없이 정한 것 같아?”
“지금까지 겪어온 단장님이 생각없이 일을 저지르지는 않으셨을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단장보좌로 정하시는건 성급한 것 같습니다. 차라리 운영팀으로 조금 쓰다가 올려보는건 어떠신가요?”
“애초에 단장보좌를 뽑으라고 어스틴하고 손잡고 노래를 불렀던건 너 아니였어?”
“그랬죠.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닙니다.”
“근데 어쩌겠어. 생각이 나랑 같은걸.”
더지를 처리하는 시기에서부터,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던 선수까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같았다.
“저 정도면 건설적인 조언을 옆에서 해줄 정도는 될 것 같아.”
조언도 되고 경호도 가능하다. 자신을 대신해서 원정까지 보낼 수 있다. 거기에 나중에 쓸 언론용 미담까지. 완벽하다.
“단장님.”
“응?”
“방금 표정 엄청 쓰레기 같았어요.”
“······ 미안.”
다만 리타는 조금 더 까칠해진 것 같다.
< 122화 - Thank you for your service(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