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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MLB 단장-120화 (120/268)

< 120화 - Thank you for your service >

며칠 뒤, 더지는 결단을 내렸다.

“죄송하지만 연장계약은 우선 보류하겠습니다.”

보류라는 말은 곧 거절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알겠어.”

덤덤한 다운의 말에 더지가 약간은 불안한 눈빛으로 말을 덧붙였다.

“그럼 이제 트레이드 되는건가요?”

다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장 트레이드 하지는 않을거야. 적어도 5년차 시즌까지는 알차게 써먹어야하지 않겠어? 그러니 그때까지는 최대한 열심히 던져. 그리고 리키.”

다운의 손이 더지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네.”

“네 선택은 우리에게는 아쉽지만, 프로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야. 그러니 네가 지금처럼 내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동료들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없어. 그러니 지금처럼 자신감있게, 눈치보지 말고 네 공을 던져. 알겠어?”

더지는 다운의 말에 약간은 졸였던 마음이 놓이는 걸 느꼈다. 단장실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줄곧 불편함이 느껴졌던 그의 얼굴에 살짝은 편안함이 깃들었다. 그걸 확인한 다운이 씨익 웃으며 장난스레 툭 쳤다.

“뭘 또 감동받은 눈치야? 네가 못하면 트레이드로 팔기 어려워지니까 이러는거니까 못하면 진짜 안된다?”

“잘할게요 진짜. 비싸게 팔릴 수 있도록.”

더지의 말에 다운이 그의 머리를 헝크러트렸다.

“그래. 제발 비싸게 팔리도록 열심히 하자. 그래야 네 몸값도 비싸질테니까. 넌 잘 할수 있을거다.”

그를 보낸 다운은 보라스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리키와 대화는 나눴습니까?]

“아주 잘 나눴죠. 비싸게 팔리도록 열심히 하기로 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의도적으로 깎아내리지는 않으시는군요 후후······]

“그건 레이스와 리키 둘 다 죽는 방법이니까요. 그나저나 리키가 흔들리지 않도록 언플은 알아서 해주실거라 믿습니다.”

더지가 레이스의 연장계약을 거절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게되면 일부 극성 팬들은 더지를 ‘돈에 미친 놈’이라며 욕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운은 물론이고 보라스도 자신의 고객이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 흔들리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물론이죠. 제 선수가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게 에이전트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믿겠습니다.”

[얼마든지요.]

***

보라스의 자신감은 거짓이 아니었다.

- 리키 더지 레이스의 연장계약 거절

- 보라스 “더지는 4억 달러짜리 선수.”

- 보라스 “바겐 세일은 없다!”

- “레이스의 짠돌이 정책은 이해할 수 없어”

일 주일 내내 끊임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을 이용해서 보라스는 더지에게로 향할 수도 있는 화살들을 모두 자신에게로 돌렸다.

“진짜 능력 하나만큼은 끝내주네.”

“그러니 수많은 선수들이 그의 밑에 있으려고 하는거겠죠.”

엿 같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실력의 소유자 다웠다.

“더지는 지금처럼 두실겁니까?”

“최대한 키워서 비싸게 팔아먹어야죠. 본인에게도 그렇게 말해놨고, 그게 더 좋을거라는걸 알고 있을겁니다. 동기부여도 제대로 됐을테니까 이제 우리는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할 일을 하면서 말이죠.”

다운이 신호를 주자 크로포드가 튀어나가서 프로젝터를 조작했다. 곧이어 떠오른 PPT의 제목은

[메모리얼 데이 행사]

메모리얼 데이는 미국의 연방 공휴일 중 하나로 전사한 모든 미국 군인들을 기리는 날이다.

이 날은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들이 밀리터리 유니폼을 입고, 군인들을 위한 행사를 열곤 했다.

특히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홈 팀이었다. 원정팀은 그저 밀리터리 유니폼을 입고, 군인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되새기며 경기를 뛰면 그만이다.

하지만 홈 팀은 군인들을 위한 행사를 생각해야했다.

그리고 바로 레이스가 이번 시즌 홈 팀이다.

“작년에는 좋았는데······”

지난 시즌 레이스는 메모리얼 데이인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 끼어있는 시리즈에 원정 일정이 잡혀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여지없지 홈 경기를 하게 되었다.

“근처 부대는 섭외했어요?”

다운의 말에 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와 항상 연계되어있던 부대에 연락을 취해놨습니다. 100명까지는 무료 티켓을 제공하기로 했고, 군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인증절차를 거치면 티켓부터 내부 모든 시설까지 50%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앤디가 허락했어요?”

돈이 더 들어오지도 않고 나가는 일에는 항상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던 러셀이다. 그런 그가 오늘만큼은 조용히 있었다.

“제가 뭐 맨날 아끼자고 하는줄 아십니까? 나라를 지키고 우리를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을 위한 날 아닙니까? 이럴 때를 위해 아껴둔건데 쓸 땐 써야죠.”

간만에 멋진 말을하는 러셀을 향해 “오오오!”와 같은 감탄사가 쏟아졌다. 간만에 환호성을 들은 러셀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씨익 웃었다.

“카를. 네가 적어놓은 기획안에서 50%할인을 하는 군인들을 식별하기 위해서 레이스 어플에서 qr코드 같은거 쓰자고 해놨잖아?”

“네.”

“그러지 말고 목걸이는 어때? qr코드는 또 언제 찍고 구매해. 예전에 관중이 드럽게 적은 우리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못써먹어. 관중들 몰리면 답도 없다?”

러셀의 말이 맞다. 새로운 구장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협소한 매점이나 스토어에서 qr코드를 체크하려는 사람이 몇 명 들어가버린다? 그러면 곧바로 장사진이 이어질거다.

“무조건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돼.”

“그러려면 목걸이가 낫긴 하겠네요. 기자들이 목에 매는 것처럼 제작할까요?”

심슨이 크로포드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목걸이는 분실 가능성도 있고, 추가적으로 일이 필요해. 기본적으로 인쇄한 다음 그걸 일일이 집어넣어야 하잖아?”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팔찌로 하는건 어떻습니까? 저기 놀이동산에 가면 주는 출입 팔찌처럼 말이죠. 그거면 잃어버릴 일도 없고, 곧바로 식별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같이 온 가족들이 뭔가를 사기는 힘들텐데요?”

“추가로 더 뽑으면 되죠. 딱 가족 수에 맞춰서요.”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러셀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나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추가적으로 돈이 들지 않나? 특유의 질긴재질의 팔찌 용지도 사야하고, 프린트 할 수 있는 기기도 사야하잖아? 목걸이는 남아도는데다가 인력을 투입하면 충분히 지금 있는걸로도 커버할 수 있어.”

러셀의 말에 심슨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그런 말 할 줄 예상하고 있었어.”

“그럼 적절한 이유라도 있나?”

“예전 홍보팀이 무슨 일에 써먹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홍보팀에 10000개 정도는 뽑을 수 있는 전용 용지에다가 프린터도 두 개나 있더라고.”

심슨의 말에 러셀이 이마를 탁 쳤다.

“아! 드럭만 그 놈이 예전에 무슨 골프 행사한다고 샀다가, 행사 무산된 적 있었어! 그때 남은거구나! 그때 그렇게 필요하다고 사달라고 하더니······”

“뭐 좋게 생각하자고. 그때 사놨던게 지금은 남아있는거니까. 그게 아니었으면 목걸이에 오늘부터 하나하나 식별표 끼우고 있어야했을걸?”

유쾌한 심슨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10000개 정도면 충분한가요?”

“충분할 것 같긴한데, 일단은 추가적으로 공수할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3년 전에 거래했던 업체 내역 적어놨을거야. 찾아보고 곧바로 연락처 넘겨줄게.”

“오케이.”

“발급은 어떻게 하실겁니까?”

“카를 네가 적어놓은것처럼 예전 매표소를 활용하면 될 것 같은데?”

“하지만 그렇게 되면 프린터 2개로는 무리 아닐까요? 최대한 지연을 줄이려면 프린터도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메모리얼 데이만을 위해서 프린터를 더 사는건 낭비 중에 낭비야.”

“혹시 프린터 대여는 안됩니까?”

“알아보겠습니다.”

“만약 안된다면 두 개로 진행하세요. 어차피 우리 관중들은 모두 앱으로 티켓을 대체하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생각보다 그쪽으로 사람이 몰리지는 않을 것 같네요.”

조용히 듣고 있던 클라인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그러면 군인들은 모두 현장 발권을 하는겁니까?”

“그래야하지 않을까요? 앱에서는 저희가 군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경우에는 현장까지 왔는데도 예매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수도 있습니다.”

“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레이스의 모든 발권은 앱으로 이루어진다. 따로 자리를 빼놓지 않으면 현장발권을 위해 온 사람들은 경기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야할지도 몰랐다.

따로 자리를 빼더라도 문제였다. 만약 뺀 수만큼의 관중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대로 레이스의 손해로 이어지게 될테니까.

“앤디?”

돈에 관련된 머리는 러셀이 최고다. 이미 러셀의 머리에서는 저 관중들이 들어오지 못했을 때의 손해에 대한 계산이 끝났을 것이다.

러셀은 한치의 고민도 없이 해답을 내놨다.

“그 날 티켓을 구매하는 사람에게 50% 환불을 해주시죠. 어차피 증명과 팔찌를 받기 위해서는 찾아와야 할테고, 그 과정에서 현금을 쥐어주는겁니다.”

명쾌한 해답에 다들 다시 한 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괜찮은데? 확인하면서 50% 환불도 곧바로 해주니까”

“실제로 현금을 페이백 받으면 기분도 좋지.”

하지만 이는 더 큰 그림을 위한 러셀의 계략이었다.

“매점에서 결제하는 비율을 계산해봤는데 카드나 현금 활용하는 사람이 60%, 애플페이 같은 방법을 활용하는 사람이 40%정도 되더군요.”

“진짜 많이 올라왔네요. 제가 어릴때만해도 현금만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말이죠.”

“그건 너무 오래전이잖아 피트.”

거스의 말에 픽 웃은 다운이 러셀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겁니까?”

“의미가 있죠. 단장님은 어떤걸 쓰십니까?”

“저도 페이쓰죠. 그게 편하니까요.”

“혹시 지갑은 들고 다니십니까?”

“아뇨. 어차피 페이로 해결하면 되는데 굳이 들고다닐 필요가 없······. 아!”

러셀이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다.

“지갑이 없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현금이 생기면, 그걸 쓰려고 하겠네요.”

“그렇죠. 때마침 현금도 생겼겠다. 가계부 앱에 등록되지도 않는 그런 현금이 말이죠. 평소보다 조금 더 쓰더라도 양심의 가책이 덜할겁니다. 거기서 모자라면 페이를 추가로 쓰게 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많을텐데요?”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 날의 주 타겟층은 군인들이나 그 가족들이 아니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왜 매점 50%할인을 반대하지 않았는지 아십니까?”

그렇게 말한 러셀은 클라인을 가리켰다.

“피트.”

“음?”

“피트가 만약 매점에 갔는데 군인임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앞 계산대에, 별로 비싸지도 않은 것들을 결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하실겁니까?”

“내가 사겠지.”

“그겁니다! 50%를 할인하더라도 어차피 그들이 돈을 내는 경우는 적을겁니다. 그들에게 감사해하는 다른 사람들이 돈을 내겠죠. 흐흐!”

사람들이 돈을 쓰는 모습을 상상했는지 러셀이 낮게 웃었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그런 러셀을 보며 파트장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불손한 의도 아니야?”

“하여간 돈귀신이 어디 가겠어?”

하지만 그가 저렇게 챙기고 있기에 지금까지도 레이스가 큰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었다는걸 아는 사람들이기에 비판은 길지 않았다.

“카를.”

다운의 말에 크로포드가 곧바로 답했다.

“네 단장님!”

“메모리얼 데이에 쓸 사연은 정했어?”

“세 개 중에서 고민 중입니다.”

< 120화 - Thank you for your service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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