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17화 (117/268)

< 117화 - 꿀맛 >

레이스에서 유튜브를 통해 비어만과의 계약을 생중계한다는 소문은 보라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보라스는 시간에 맞춰 방송에 들어갔다.

“하 참! 무슨 이런걸 생중계한다는지······”

그렇게 말하던 보라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옵트아웃 조항이 있다면 오히려 고객의 인지도를 올리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군.”

자고로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는 몸값이 높은 법이다.

“다음에 한 번 이용해봐야겠구만.”

이런건 배워야하는 법이다.

방송이 시작되고 비어만이 열심히 새 구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가 새로 들어갈 글라이드 파크는······]

말끔한 외모에 좋은 실력. 그리고 말빨까지 좋다. 이를테면 스타성이 있다는 것이다.

“쩝! 저 친구가 내 밑에 있었어야 하는데.”

아쉽지만 이미 계약은 끝났고, 앞으로 15년간은 레이스의 선수가 된 비어만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돈은 없다고 봐야했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생각인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 정도 선수면 15년에 4억 달러, 못해도 3억 달러 후반까지는 뽑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모지리들은 고작 15년 2억 5300만 달러에 계약을 마쳤다.

“에이전트가 문제인건지, 선수가 문제인건지를 모르겠구만.”

어쩌면 둘 다 문제일 수도 있다.

“너무 싼 값에 계약했어.”

보라스가 말하기가 무섭게 화면에 있는 다운이 질문을 읽었다.

[다른 유망주들에 비해 염가계약을 하게 되셨는데, 아깝지 않나요?]

딱 보라스가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다. 이제 마이크는 비어만에게 넘어갔다.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선수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돈? 좋죠. 저도 돈 좋아합니다. 커리어가 짧은 운동선수들의 특성상 벌 수 있을 때 미리 많이 벌어두는게 제일 좋으니까요. 많이 벌려면 좋은 성적을 거둔 뒤 FA시장에 나가라. 맞는 말이죠. 하지만 탬파에서는 이 금액으로도 다른 주보다 많은 돈을 실수령할 수 있답니다?]

보라스는 윙크하는 비어만을 향해 눈을 찌푸렸다.

“프로는 보이는 급, 돈이 있는 법인데 쯧쯧!”

실수령액보다는 보이는 금액이 높아야 급이 높아진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저 놈은 자기가 알아서 그 급을 낮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실수령하는 금액까지 이야기하면서 팬들에게서 ‘적은 돈으로 우리 구단에 헌신해주는 착한 선수’라는 이미지를 알아서 버렸다.

멍청하기가 그지없었다.

[게다가 저는 그것보다는 안정적인 선수생활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그리고 원 클럽 맨이 되고 싶었고요. 그래서 먼저 연장계약을 요구했습니다.]

이제보니 로맨티시스트였던 모양이다. 저런 놈들은 자신과는 성향이 맞지 않는다.

[다행히 저희 단장님께서 흔쾌히 제 요구조건을 받아주셔서 2주도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합의에까지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만족스러운건 제가 이번 계약연장의 최선두에 서게 되었다는겁니다.]

비어만이 운을 떼자 다운이 추가적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추가적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저희 레이스는 이번에 거액의 중계권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조금 더 선수들을 위해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저희 팀을 대표할 수 있는 선수들에게 하나하나 계약연장을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중이냐고요? 아닙니다. 저희는 지금처럼 저희 레이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유망주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접근해나갈 생각입니다.]

잠깐. 저러면 이상해진다.

“지금 뭐라고······?”

레이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유망주부터 차례로 하나하나 접근한단다.

“저, 저 여우 놈!”

다운의 말은 자신을 돌려 저격하는게 분명했다. 우선 모든 선수들 가운데서 비어만이 계약연장의 스타트를 끊었다. 그렇다는건 레이스에 있는 유망주 중에서 비어만이 가장 중요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다. 투수왕국인 레이스에서 투수보다는 포수가 더 키우기 힘드니까.

하지만 이 다음에도 밀려버리면? 혹은 한 번 더 밀리기라도 한다면?

‘앞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유망주들에게도 이 정도를 줬는데, 그 이상? 주고 싶어도 못줍니다.’

이미 팀 내 최고 유망주라는 드레이크와 비어만이 비슷한 수준의 계약을 맺었다. 그렇기에 레이스는 손쉽게 연봉을 방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렇게 되면 여론이나 팬들을 이용해서 구단을 압박하는 식의 방법은 사용할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실수령액이 밝혀진 지금, 레이스는 저 정도의 금액만 투자하더라도 충분한 금액을 제안했다는 이미지를 챙길 수 있게된다.

그렇게 되자 앞선 상황이 떠올랐다.

“설마 그래서······”

실수령하는 금액을 낱낱이 공개하는 비어만을 보며 바보같다고 했던 자신이 바보였다.

비어만이 한 행동 하나로 인해서 더지가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정당성이 막히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보라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빌어먹을! 혹시 우리 약점을 알아낸건가?”

더지를 손에 쥐고 있는 보라스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더지가 걸었던 조건이었다.

“저는 레이스에 남고싶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돈을 적게 받고싶은 마음은 없어요. 최대한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선수가 구단에 애정이 있으면 기본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더지는 많은 돈을 받고싶어했다.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가장 어려운 조건의 고객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라스는 자신이 있었다. 더지가 남고싶은 마음을 들키지만 않는다면 다운과의 줄다리기에서 이길 자신이 말이다.

그런데 지금 다운은 더지의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자신의 머리 위를 선점해버린 것이었다.

[모든 사항을 여러분과 공유할 수는 없겠지만, 누구에게 접촉했고, 누구와의 계약이 어떻게 되었냐 정도는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조건 역시 보라스의 목을 조르는 조건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도 더지의 계약 이야기가 나오질 않으면 자연스럽게 ‘레이스 내부에서 더지의 평가가 낮은거 아닌가?’, ‘혹시 무슨 하자가 있는건가?’라는 소문이 돌 것이다.

다른 단장이면 모르겠지만, 선수보는 눈이 좋다고 알려진 다운이라면 분명 더지의 값은 떨어질거다.

[곧바로 다른 선수와 계약 논의에 들어갈거냐고요? 글쎄요. 이제 시즌 초반이고, 벌써부터 그런 이야기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더지의 트레이드 소문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입을 다물겠습니다. 그렇다고 더지가 트레이드 될거라는건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시즌 초반부터 누군가를 트레이드 할거라는 이야기를 하는건 절대 라커룸 분위기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겁니다. 여러분도 그 정도는 예상할 수 있잖습니까? 그렇기에 입을 다물겠습니다.]

모니터 속에서 웃고 있는 다운의 눈이 마치 자신을 향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보라스의 손이 책상 위의 버튼을 눌렀다.

삐이!

알람을 받고 들어온 비서에게 보라스가 거칠게 소리쳤다.

“당장 회의 소집해!”

***

다운이 새로운 구장에서 비어만과의 연장계약을 발표한지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보라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한 번 정도 만나야하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아, 혹시 서쪽에서 해가 떴나요?”

마지막 만남에서 자신이 ‘서쪽에서 해가 뜨는 날 원하시는 계약조건을 들고 찾아뵙도록하죠.’라고 했던 것을 그대로 말하자 뿔이 났는지 보라스가 불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흠! 그런게 아니라 어차피 저에게 연락이 올거, 미리 연락을 드린거죠.]

“제가 왜 당신에게 연락할거라고 생각하시는거죠?”

[레이스 내에 있는 유망주들 중에서 리키만큼 중요한 선수가 어디있습니까. 당연히 다음 논의는 저희 아닙니까?]

그의 말에 다운이 실소를 흘렸다.

‘하여간 여우야 여우······’

분위기를 보는 듯 하면서도 다운을 옥죄고,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을 파고들려고 한다.

여기서 대답을 잘 해야한다.

에이전트들이, 그리고 구단 관계자들이 업무용으로 아이폰을 쓰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통화 녹음이 안된다는 것.

말 실수 하나만 녹음되면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이 바닥에서 통화를 녹음하는건 패시브나 다름없었다.

‘보라스도 녹음하고 있겠지.’

여기서 만약 다운이 ‘리키는 다음 순서가 아닙니다.’라고 말해버리면 보라스는 녹음본을 똑 따서 더지에게 달려가서는 ‘봐라! 얘네는 너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레이스를 뜨자!’이렇게 말할 것이다.

반대로 다운이 ‘리키는 저희가 중요하게 여기는 선수가 맞죠.’라고 말한다면, 보라스는 또 기세가 등등해져서는 ‘원하는 선수를 얻으려면 그만한 돈을 쓰셔야죠?’라며 압박을 가해올 것이다.

“좋습니다. 오셔서 이야기하시죠.”

이렇게 말하면 보라스가 무슨 말을 하던지 ‘난 너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곧바로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쳐놓은 함정 사이로 쏙 하고 빠져나가는걸 본 보라스가 순간 말을 멈췄다.

[······ 알겠습니다. 몇 시가 좋으십니까?]

“오늘 내내 괜찮습니다. 어차피 지금 탬파에 와있는거 아닙니까?”

어제 있었던 더지 등판 경기에서 보라스를 봤다는 직원들의 증언이 있었다.

“점심 딱 먹고 두 시 어떠십니까?”

[알겠습니다.]

보라스는 정확히 두 시에 단장실 앞에 도착했다.

“시간은 칼이시네요.”

“우리 시간은 돈이니까요.”

덤덤한 척 이야기하는 보라스에게 다운이 선공을 날렸다.

“리키가 저희와 계약을 하고싶다고 했나보네요.”

그렇다고 하면 순식간에 다운에게 기어야한다.

“하하! 설마요! 아까 말했던대로 드레이크와 비어만 다음에는 리키의 차례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책상 위에 올려진 저 폰에서는 자신의 폰과 마찬가지로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까와 같은 함정.

‘어지간히 쓸 패가 없나보네.’

만약 쓸 패가 많았다면 그 보라스가 저런 약은 수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운은 씨익 웃으며 다시 한 번 회피를 시전했다.

“물론이죠. 리키는 저희가 정말 아끼는 조나에 이은 차기 에이스죠. 당연히 잡고 싶습니다.”

위빙으로 한 번 피했으면 펀치를 날릴 차례다.

“하지만 앞서 계약을 맺은 두 선수보다 더 좋은 계약을 안겨줄 수는 없을 것 같다는걸 미리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운의 말에 그때까지만해도 여유를 가장하고 있던 보라스의 얼굴에 금이 갔다.

“조건에 따라 금액은 달라질 수도 있을텐데요.”

“물론 달라질 수 있죠. 하지만 두 선수에게 투자한 그 이상은 절대 투자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리키를 정말 아끼긴 하지만, 그를 아끼는 만큼 네이트와 사무엘도 아끼거든요. 여기서 저희가 리키에게 엄청난 돈을 안겨줘버리면 두 친구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일그러지는 보라스의 표정을 보는 다운의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그러니 두 선수가 맺은 정도의 계약이 아니라면 죄송하지만 리키와의 인연을 서비스 타임 이후로까지 이어가는건 힘들 것 같네요.”

할 말을 모두 끝낸 다운이 앞에 놓인 꿀물을 호로록 들이마셨다. 그리고 아직 조용히 입을 다물고 노려보는 보라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고보자는 저 표정.

꿀맛이다.

< 117화 - 꿀맛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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