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On Air >
그 날 저녁부터 이상한 제목의 기사가 돌았다.
- 레이스 사무엘 비어만과 15년 2억 5300만 달러에 연장계약 예정
기사 제목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계약이면 계약이고, 예상이면 예상이지 계약 예정은 뭐야?”
“계약을 유튜브에서 생중계로 한다던데?”
“생중계로? 볼게 있으려나?”
“난 재밌을 것 같은데? 계약 과정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걸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 거기다 Q&A도 한다잖아.”
“Q&A는 좀 끌리네.”
“뭐 물어보게?”
“어린 나이에 큰 돈을 벌게 된 비어만의 반응이나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잖아.”
레이스에서 선언한 새로운, 그리고 특이한 시도에 레이스뿐만 아니라 관심이 동한 전세계의 메이저리그 팬들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
똑똑
여느때처럼 노크와 함께 리타가 들어왔다.
“단장님. 라이브 1시간 전입니다.”
리타의 말에 다운은 재킷을 챙겨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가있습니다.”
“하여간 사람들 참······”
오늘 계약 라이브 방송은 구단주실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것도 새 구장에서 말이다.
원래는 보통 계약이 이루어지는 단장실, 혹은 회의실, 프레스 룸, 일반 팬들이 자주 볼 수 없는 라커룸에서 계약을 하자는 의견까지도 나왔다.
하지만
“사무엘에게 직접 스태츄를 전달하고 싶어. 그리고 내 소장품들도 자랑 좀 하고.”
“아니 주문 넣은지 얼마 안됐다면서요? 그게 벌써 나왔어요?”
“돈 갈아넣으면 다 돼.”
“아······”
구단주님의 강력한 어필. 그리고
“단장님 나쁘지 않은 생각 같습니다. 구단주님이 가진 저 스태츄들이나 피규어들이 결국 우리 시즌패스에 들어갈 예정이잖습니까? 특히 요즘 따로 상품제작을 해서 팔아달라는 요청도 많이 오는 추세라 홍보 한 번 정도 해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심슨의 조언까지 곁들어지면서 결국 계약 및 방송 장소는 구단주실이 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견이 더 나왔다.
“구단주님. 저번에 신 구장 프런트는 모두 완공됐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러셀의 말에 글라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런트는 거의 끝났지. 진척상황 보고받았지?”
“네. 프런트 쪽은 내부공사랑 인테리어까지 끝났고, 남은건 라커룸, 관중석, 지붕, 경기장 잔디 정도랍니다. 프런트 사무실 같은 경우는 냄새만 좀 빠지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라더군요.”
“그러면 새 구장의 구단주실에서 계약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알기로 거기 구단주실이 훨씬 넓고, 바깥도 잘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구장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도 있고요.”
“소개도 같이 하자는거지?”
“네. 단장님이 아닌 사무엘이 그 소개를 해주면 나름 의미있지 않겠습니까?”
러셀의 제안에 글라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구만. 네 생각은 어때?”
“구단주실의 인테리어는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인테리어까지 끝났다고 했으니까, 지금 있는 가구들을 바로 옮기는겁니다. 그 정도는 클러비들만 동원해도 금세 끝낼 수 있습니다.”
“계약 중에 공사 소음이 들어갈수도 있는데 그 부분은요?”
“공사를 늦춰달라고 요청하기는 힘드니 계약을 하는 시간과 방송시간을 공사가 쉬는 점심시간에 하는겁니다. 혹시 모르니까 넉넉하게 점심시간도 30분 정도 더 추가해주는걸로 하시면 어떨까요?”
그렇게 결국 비어만의 계약은 경기가 없는 휴식일에 새 구장에서 진행되기로 결정되었다.
“새 구장이라는 말에 다들 구경가고 싶은거죠. 구단주님과 단장님을 제외하고는 아직 가본 사람이 없잖아요.”
“리타도 기대돼?”
“당연하죠.”
리타가 기대된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기대 할 줄 몰랐다는 표정인데요?”
“그야 몰랐으니까?”
“저도 사람입니다.”
“앞으로는 주의하도록할게.”
뭔가 뾰로통함이 느껴지는 얼굴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반응에 피식 웃은 다운이 리타에게 턱짓했다.
“안 갈거야?”
다운의 말에 리타는 ‘저도 가도 되나요?’라고 물어보는 대신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와 같은 사무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가시죠.”
아직 11시라 그런지 이버시티에 있는 글라이드 파크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0분 정도 걸렸나?”
“정확히 33분 걸렸습니다.”
“이러면 전부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겠네.”
다운은 프런트 사무실의 인테리어가 끝나면 미리 사무실을 옮기는 작업을 할까 고민중이었다. 트로피카나 필드가 낡고 오래된만큼 프런트 사무실도 낡고 좁은 편이었다.
직원들도 그런 곳에서 일하는 것 보다는 넓고 쾌적한 새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좋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가는 시간이 너무 길다. 홍보파트나 재정파트 같은 경우는 상관없지만, 운영파트라던가 현장에서 선수들을 서포트하는 파트들은 모두 트로피카나필드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경기가 있을때마다 출퇴근하기도 힘들테니······’
그래도 몇몇 파트들이 옮기면 남은 파트 직원들이 조금 더 넓직하게 사무실을 쓸 수 있을테니 그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프런트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가자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크로포드가 뛰어나왔다.
“오셨습니까 단장님!”
“도착한건 어떻게 알았어?”
크로포드의 시선이 슬그머니 리타에게로 이동했다.
“알 것 같네.”
씨익 웃은 다운은 크로포드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가보자! 세팅은?”
“대략적으로 완료된 상황입니다. 단장님 들어가고 조명이라던가 마이크만 한 번 더 체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사무엘은?”
“이미 와있습니다.”
“벌써?”
다운은 비어만과 그의 에이전트에게 방송 시작 30분 정도만 먼저 와 있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도착한지 30분은 됐을겁니다.”
“그렇게 일찍 왔다고?”
“네. 오늘 의욕 만땅이던데요?”
크로포드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글라이드 파크는 29,216명이 들어올 수 있는 신식 돔 구장으로 지하에는 지하수를 이용한 발전 보조시설이 있어······”
대기실(로 쓰고있는 회의실) 가운데에 서서는 그가 설명해야하는 부분을 열정적으로 읽고 설명하고 있었다.
“뭐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 사무엘?”
다운의 목소리에 비어만과 그의 에이전트인 앤더슨의 고개가 돌아갔다.
“새로운 구장이잖아요! 빌어먹을 트로피카나 필드가 아니라 새 구장요 다운! 비가 와도 외야 천장에서 물이 새지도 않고, 냉방도 잘 되고, 좁고 낡은 라커룸이랑 더그아웃하고도 이별할 수 있게 만들어준 그 새구장이요!”
팬들도 트로피카나 필드를 싫어하고, 프런트도 저 구장을 싫어한다. 하지만 트로피카나 필드를 제일 혐오하는건 역시 선수들이었다.
“저희를 구원해줄 구장인데 최고로 멋지게 소개할겁니다!”
“그, 그래. 열심히 해라.”
비어만을 토닥여준 다운은 앤더슨에게로 몸을 돌렸다.
“오늘 서명할 계약서 원본입니다. 다시 한 번 체크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쟤 예상 질문지는 다 확인하고 저러는거죠?”
앤더슨은 못말린다는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그랬다면 제가 이렇게 불안해하고있지는 않겠죠?”
“그래도 뭐 사무엘이 논란을 만들어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으니까요.”
“저도 그것만 믿고 냅두는 중입니다. 잠시만요 계약서 좀 다시 확인해볼게요.”
계약서를 확인하는 그를 두고 다시 크로포드에게로 갔다.
“아, 잘오셨습니다 단장님. 핀 마이크 세팅해드릴게요. 자······ 말씀해보시겠어요?”
“아아.”
“닐. 마이크 소리 좀 키워줘. 단장님은 계속 그대로 평소 말하는 음량으로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됐습니다! 그리고 저기 앉아주시겠어요? 조명 세팅을 저희가 해놓긴 했는데, 그래도 단장님에게 맞추는게 좋으니까요.”
다운에게 한 소리 들은 날 이후로 한층 의욕적이게 된 크로포드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그가 시키는 것에 맞춰 이런저런 세팅을 끝내자 비어만과 앤더슨이 앞에 끌려와 앉았다.
“계약서 확인 끝났습니다.”
“문제없죠?”
“네.”
“그리고 저희가 미리 합의한대로······”
“이행하겠습니다. 걱정마시죠.”
방송시작 10분 전. 공사 소리가 멈춘 것을 확인한 크로포드가 방송을 켰다.
“화면 송출되는거야?”
“아뇨. 소리랑 화면은 안들어갑니다. 10분 뒤에 켜겠다고 미리 방을 파놓은겁니다.”
“채팅 막 올라오는데?”
“저희도 경기 전에 관중들 미리 들어와있잖아요? 그거랑 비슷한거에요.”
궁금한 것이 많을 나이인 글라이드에게 친절히 설명해주는 리타의 옆에서 크로포드가 주의사항들을 읊었다.
“우선 계약에 앞서서 사무엘이 구장 소개를 할겁니다.”
“맡겨만 주십쇼!”
“그리고 그 설명이 끝나면 계약서 작성에 바로 들어갈겁니다. 그때까지 두 분은 계약서를 다시 검토하는 척을 하고 계시던가 하면 됩니다. 계약을 마치면 뒤에 있는 그 테이블에서 이 앞에 테이블로 옮겨 앉으실겁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스태츄를 언박싱하고 증정할겁니다. 함께 사진도 찍으실거고요.”
“미리 언박싱하면 안되나요?”
비어만의 질문에 글라이드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검지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러면 자네의 생생한 표정이 안담기잖나.”
비어만은 얼굴을 팍 굳혔다.
“그럼 제가 이렇게 얼굴 굳히고 최대한 참아봐야겠네요.”
“그럴 수 없을걸?”
“그건 대봐야 아는거죠.”
눈에서 불꽃을 튀기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크로포드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게 끝나면 이제 Q&A를 할겁니다. 구단주님과 단장님도 여기 그대로 계실 예정이지만 사무엘에 관련된 질문이 아니면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간이 됐다.
“모두 조용! 이제 화면하고 소리 나갑니다!”
옆에 있는 태블릿으로 자신들의 얼굴이 나오는걸 확인한 다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레이스 팬 여러분. 레이스의 단장인 다운입니다.”
다운을 필두로 글라이드, 비어만 앤더슨까지 자신을 소개했다.
네 사람의 소개에 채팅창은 읽을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아니 대체 몇 명이나 보는거야?’
시청자 수를 의미하는 란에 무려 24만이라는 숫자가 떠있었다.
‘미친······’
그런데 크로포드는 이 정도의 화력을 예상했는지 태블릿에 뭔가를 적어서 들어올렸다.
[어디냐는 질문 들어왔습니다. 사무엘 자연스럽게 구장 소개.]
그의 메시지를 읽은 비어만이 고개를 끄덕이고 준비해온대로 구장을 소개했다.
“여기가 어디냐면 바로 저희 새 구장입니다! 이버 시티의 그 구장이냐고요? 네 맞습니다! 드디어 그 빌어먹을 트로피카나 필드를 벗어나서 새 집에 오게 되는거죠!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제가 여기 이 구장에서 최초로 계약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방 구석구석으로 유도한 비어만은 이제 긴장이 풀렸는지 더욱 유창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가 어디냐고요? 옆에 스태츄들 보이시죠? 어디겠습니까? 당연히 저희 구단주님 사무실이죠. 정말 영광스럽게도 이번 계약에서 구단주님이 저한테도 스태츄 하나 만들어주신다고 하셔서 하나 받기로 했습니다 하하! 두 분은 뭐하시고 혼자 떠드냐고요? 제 계약서 최종 검토해야죠.”
열심히 떠드는 사이 계약서를 다시 확인하는 척이 끝났다. 다운과 앤더슨은 이보다 더 프로페셔널 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과 몸짓 목소리로 동시에 입을 열었다.
“문제 없네요.”
“그럼 계약하시죠.”
다운은 준비해뒀던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원래 사인하는데 만년필 같은건 쓰지 않은지 오래됐다. 그럼에도 이렇게 만년필을 들고나온건 온전히 글라이드의 의견이었다.
“그래도 계약하는데 만년필은 있어야지! 내가 사줄테니까 그대로 샘한테 줘버려!”
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장면을 만족시켜줘야한다나 뭐라나.
다운에게서 만년필은 받아든 비어만이 멋들어지게 계약서에 사인을 해나갔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장님.”
“나보다는 구단주님한테 잘해야지. 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사람이잖아.”
“하하!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구단주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계약서를 들고 사진 한 방. 그리고 스태츄를 언박싱하고 입을 떡 벌리는 모습까지 보여준 비어만은 흐르는 침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자 지금부터 1시간 동안 비어만에 대한 Q&A를 진행하겠습니다. 질문을 써주시면 저희가 채팅을 보고 골라서 읽어드립니다. 연관되지 않은 질문은 읽어드리지 않으니 참고 바랍니다.”
다운의 말에 채팅창이 또 한 번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 다운은 하나의 질문을 잡아냈다. 그것도 원하던 질문을 말이다.
“처음부터 센 질문이 들어왔네요.”
다운은 너스레를 떨며 말을 시작했다.
“다른 유망주들에 비해 염가계약을 하게 되셨는데, 아깝지 않나요?”
< 116화 - On Air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