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흑막 >
며칠에 걸친 회의와 토론 끝에 결국 레이스의 중계권을 쟁취한 회사는 폭스가 되었다.
“윗선에 제가 이야기를 해봤는데, 레이스 경기만 따로 뽑아서 일정 퍼센트를 떼어주는건 힘들 것 같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1000만 달러까지는 더 높여줄 수 있다는데 혹시 그 조건은 싫으신지······”
ESPN에서는 1억 달러까지 낮춰도 절대로 구독료를 떼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결과 아웃.
NBC SN과 CBS의 제안 역시 폭스의 제안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타의 한 마디 충고가 다운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리타는 어떻게 생각해?”
“저는 구단 운영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냥 일반적인 팬의 입장에서 봤을 때 말이야. 리타도 레이스 팬 오래 해왔잖아.”
“일반적인 팬 입장에서 기존 폭스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마음이 좀 그럴 것 같습니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결국 핵심은 계약 조건에 트집을 잡아서 새로운 계약을 해낸 것이니까요. 신뢰도가 중요한 메이저리그 사업에서 이런 이미지는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들릴 바에는 폭스와 계약조건을 다르게 해서 연장계약을 맺었다는 스토리가 좋지 않을까요?”
다음날 곧바로 두 회사의 연장계약 사실이 알려졌다.
- 폭스 스포츠, 레이스와 7년간 연 1억 5000만 달러에 이르는 새로운 중계권 계약 체결.
- 폭스 “기존의 계약은 새로운 구장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레이스와 맞지 않아 재계약 결심.”
“폭스 측에서는 곧바로 공표했네요.”
“얘네는 기자회견 같은건 안하니까요.”
방송국이 기자회견을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스포츠 기자들에게 소스를 던져줘야하는 구단 관계자들에게나 필요한거지.
“단장님. 기자들 모두 모였답니다.”
“간다고 해.”
다운이 양키스 단장이었던 시절, 별 것 아닌 기자회견 내용이 완전히 왜곡되어 전달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이런 기자회견을 할때마다 다운은 늘 긴장하곤 했다.
그 모습을 몇 번 보아온 리타는 다운에게 카모마일 차를 건넸다.
“고마워.”
“별 말씀을요. 기자들에게는 10분 정도 걸릴거라고 해놨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마음을 진정시킨 다운은 기자들이 모여있는 프레스룸으로 향했다.
스포츠 기자들로 꽉 들어찬 프레스룸은 여타 다른 스몰마켓 구단들과는 다르게 대형 계약을 맺은 레이스로 인해 후끈거리고 있었다.
“대니. 너희도 이 소식 몰랐던거야?”
“맞아. 너 폭스 소속이잖아.”
“같은 폭스라도 소속이 다르잖아. 알았으면 독점기사 냈지, 내가 너희랑 이러고 있겠냐?”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나저나 이번 계약 규모 진짜 역대급이던데?”
“내가 아는 정보통들한테 들었는데, 다른 스몰마켓 구단들에서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훨씬 더 좋은 계약을 맺을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고 있더라.”
“레이스가 포문을 연건가?”
“뭐 그런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1억 5000만 달러면 투자는 어떻게 하려나? FA를 노리려나?”
“이제 레이스도 투자해야지. 할 때 됐어.”
열심히 떠들어대던 기자들은 다운이 프레스룸으로 들어오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사회자는 역시나 리타였다.
“지금부터 레이스와 폭스 스포츠의 중계권 재계약에 관한 기자회견을 실시하겠습니다. 중계권 재계약과 관련된 사항이 아닐 시 답변은 하지 않을 것이며, 정도가 심하면 추후 구단 출입이 금지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주의사항을 고지한 리타가 다운을 슬쩍 바라보았다. 다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자들이 하나 둘 손을 들었다.
그 중 한 명을 리타가 지목했다.
“ESPN의 제프리 로렌스입니다. 우선 폭스 스포츠와 새롭게 계약 연장을 맺은걸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번 계약에서 레이스 측에서 기존 계약의 헛점을 파고들었다는 이야기가 돌던데 사실인가요?”
예상했던 대로다.
자신들과의 계약이 틀어졌기에 저렇게 살짝 아쉬움을 표시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다.
“기존의 계약이 좋았다 아니다를 떠나서 저희와 폭스 스포츠 모두 이 계약이 현 세대와 동떨어져있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저희가 더 많은 돈을 받고, 제대로 된 투자를 해야지 폭스 역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걸 인지한거죠. 그래서 옛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된겁니다.”
“양측에게 모두 이득이 되는 계약이었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CBS의 조던 맥클라나한입니다. 방금 말씀 중에서 제대로 된 투자라고 하셨는데 혹시 어떤 식으로 투자를 할 생각이신지 알 수 있을까요?”
“우선은 그 돈이 지금 당장 들어오지 않는다는걸 아셔야합니다. 따라서 올 시즌에 추가적으로 뭔가를 하지는 않을겁니다. 하지만 구단주님 돈을 조금 더 뜯어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구단주님을 뜯는다는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희가 새로운 구장을 짓고 있는데, 여기서 예기치 않게 돈이 조금 더 필요하게 되었거든요. 지금 당장도 구단주님 자본 100%로 짓고있는거라 더 달라고 하기에는 죄송했죠. 하지만 이제 돈이 더 들어오게 되었으니까 대놓고 ‘구단주님! 대출 좀 더 받아오십쇼! 내년에 중계권료 들어오면 드릴게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
“하하하!”
“그리고 어떤 식으로 재투자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FA에 투자하는 일은 당장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는 지금까지 저희가 쌓아온 방향성이 너무 확고하거든요.”
“그럼 여전히 팜에 투자를 하시겠다는건가요?”
“음······ 확실히 답해드릴수는 없습니다만, 당장에는 팜과 현재 있는 선수들의 계약에 재투자를 할 생각입니다. 2년 연속 팜 랭킹 1위를 기록한데다가 5년 연속 3위 안에 들었던 팜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말 필요한 선수라면 이제 아끼지 않고 지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모두 예상을 했던 질문들이라 그런지 다운의 입에서는 거침없는 답이 나왔다.
만족스러운 답변을 이어나가고 있던 다운은 마지막 즈음에서야 암초를 만나게 되었다.
“이쯤이면 거의 다 답변을 해드린 것 같은데······ 혹시 아직도 더 듣고싶은 답이 있으신 분?”
다운의 말에 누군가가 혼자 손을 들었다.
“그쪽의 신사분.”
다운이 지목하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폭스의 대니 존스입니다.”
“뭐가 궁금하죠 대니?”
“양키스의 앤드류 켈리는 아직까지 연장계약을 하지 않으며 양키스 팬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습니다.”
“그건 저도 잘 알죠.”
“그런데 이것도 아십니까? 켈리는 단장님과 다시 함께 하고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 기회가 온다면 단장님은 켈리를 데려오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그의 말에 다운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잘못하면 탬퍼링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기자들 역시 그 부분을 감지한건지 조용해졌다.
“음······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네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렇습니다. 앤드류가 저와 함께 하고싶다는건, 제가 양키스의 단장으로 다시 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돌려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런이 워낙에 잘하고 있어서 그 가능성은 물건너갔죠.”
익살스러운 다운의 표정과 어투에 기자들의 분위기가 다시 풀어졌다.
“그리고 켈리가 좋은선수이기는 하지만 저희에게는 그에 못지않은 좋은 유격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희와 오래도록 함께하기로 했죠. 이 정도면 답변이 됐을까요?”
다운의 말에 대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답변 감사합니다.”
그의 질문을 마지막으로 리타가 기자회견의 끝을 알렸다.
“오늘 기자회견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소식과 정보가 생가면 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운은 리타와 함께 프레스룸을 빠져나왔다.
“답변 실수한거 있었나?”
“없었습니다. 잘하셨어요.”
“기자회견은 몇 번을 해도 떨리는 것 같아.”
“앞에 나가시면 잘하시면서 또 약한척 하신다.”
“약한척이 아니라 정말 약한거라니까? 진짜 꼬투리 잡힐 일 없겠지?”
“정말 없습니다. 이걸로 꼬투리 잡힐 기자가 있으면 그건 소설일뿐입니다. 바로 고소하시죠.”
하지만 늘 꼬투리는 이상한 곳에서 잡히기 마련이다.
***
기자회견이 끝난 바로 다음 날. 파생 기사 하나가 인터넷 상에 올라왔다.
- 레이스 “중계권 계약을 했지만 레이스는 현상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
내용도 별거 없었다.
레이스는 지금처럼 팜을 활용해서 유망주들을 키울 예정이고,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FA 영입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뉘앙스였다.
분명 다운이 한 말을 전달한 것이지만 기사는 마치 다운이
“엄청난 금액의 중계권 계약을 따냈지만, 우리는 지금처럼 현상을 유지할거야!”
라면서 투자를 주저하는 자린고비처럼 표현해놓았다. 그리고 무지성으로 기사를 퍼다 나르는 기자 같지도 않은 기자들로 인해서 이 기사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퍼져나갔다.
“다 내리게 시켰어?”
“법무팀과 연계해서 홍보팀에서는 이 기사를 내리고 반박기사를 낼 예정입니다. 최초 유포자는 뉘앙스에 따라 고소를 진행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처벌까지는 힘들것 같답니다.”
“그래도 고소해. 우리는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는데 감히 공격을 해? 그리고 탬파베이 스포츠 트리뷴이라고 했지? 여기는 당장 모든 기자 출입금지 시켜. 재생산 한 곳들도 모두 똑같이 대응하고.”
잔뜩 화가 난 글라이드를 중심으로 레이스는 공격적인 대응을 선언했다.
“우리 단장을, 그리고 레이스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본때를 보여줘버려.”
공격적으로 대응해주는건 고마웠다. 그만큼 글라이드가 자신을 아끼고 있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런데 어스틴.”
“음?”
“이상하지 않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최초 유포자가 탬파베이 스포츠 트리뷴이었잖아요? 그런데 트리뷴이랑 저희 사이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요. 오히려 좋은 편에 속했지. 그런데 갑자기 스탠스를 바꾼다? 이상하지 않아요?”
다운의 지적에 글라이드가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긴 하네.”
탬파베이 스포츠 트리뷴은 스포츠 뉴스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뉴스다. 탬파 근처에 있는 스포츠 팀이라고 해봤자 레이스, 라이트닝(NHL), 버커니어스(NFL)가 끝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레이스에 대한 기사를 내고, 겨울에 라이트닝과 버커니어스 기사를 내며 돌려막는게 그들의 기삿거리다.
그런데 그 중 봄, 여름, 가을을 책임지는 레이스와 척을 진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었다.
“트리뷴 사장이 자신들은 관계없다고 곧장 기사 내리고 기자를 해고하겠다고 말하긴 했습니다만······”
심슨이 말을 흐렸다.
“그러고보니 그 기자가 입사한지 얼마 안된 기자였습니다.”
“어딘가에서 사주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겠네요.”
“분명 어디선가 찔렀을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나올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며칠 뒤, 흑막이 누구였는지 밝혀졌다.
< 112화 - 흑막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