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최고의 제안을 찾아라 >
나름 회심의 카드였음에도 다운의 표정이 전혀 변화가 없자 급해진 건 토비였다.
“혹시 남아있어도 되겠습니까?”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토비는 추가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권한까지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제안은 남은 방송국들의 제안이 모두 끝난 뒤 들어오겠지.’
다른 방송국들의 제안을 요구한 뒤 그걸 뛰어넘는 제안을 요구할게 분명했다.
“그러시죠.”
어떻게든 자극을 받아 제안하는 금액이 높아지면 레이스에게는 이득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다음 순서는 CBS.
“CBS에서는 어떤 조건을 제안했죠?”
다운의 질문에 멜린다는 대답 대신 맞질문을 던졌다.
“혹시 앞서 ESPN에서 얼마를 제안했는지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녀의 질문에 다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조건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금액만이라면 가능합니다.”
금액을 말하지 말라는 조항은 없었다. 오히려 ESPN에서는 자신들이 제안한 금액을 말해서 알아서 나가떨어지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기에 다운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ESPN에서는 1억 3000만 달러 20년짜리 딜을 제안했습니다.”
다운의 말에 순간적으로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포기하십니까?”
본사에서 스포츠 쪽에 지원하는 규모만 따지자면 CBS는 ESPN, 폭스, NBC SN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다운이 저런 제안을 한 것이고.
하지만 멜린다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그 제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저희도 분명 단장님이 꽤 혹할만한 제안 정도는 던질 수 있으니까요.”
“그럼 들어보도록 하죠.”
“저희 CBS는 분명 저 정도의 금액을 제안하지는 못합니다. 저희가 제안할 수 있는건 연 1억 1500만 달러가 최고가입니다.”
“금액만으로 따지자면 ESPN쪽으로 기우는게 사실이긴 하네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 조건은 ESPN과 상당히 다릅니다. 세세한 조항은 알 수 없지만, ESPN에서는 분명 이것저것 조건을 붙였을겁니다. 하지만 저희 측에서는 그런 조건을 최대한 걸지 않겠습니다.”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는 않네요. ESPN 측에서 조건을 걸기는 했지만, 저희에게도 도움이 되는 조건이었거든요.”
이것만이라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조건은 꽤나 흥미로웠다.
“그리고 계약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겠습니다.”
“호오······?”
2000년만 하더라도 10년 2억 5000만 달러의 계약이 역대 최고액의 계약이었다. 그 계약을 현재의 금액가치로 환산하면 6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듯 10년 전의 100달러와 지금의 100달러가 가지는 가치는 다르다.
지금 당장에야 1억 3000만 달러의 금액이 커 보이겠지만, 20년이 지나면. 아니 10년 만 지나도 이 금액은 헐값의 계약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ESPN의 20년 1억 3000만 달러짜리 딜은 어떻게 보면 가장 싼 계약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CBS가 내건 조건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3년이 지난 뒤에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계약으로 다른 어떤 방송국과도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물론 그 때의 높아진 화폐가치가 적용된 채로 말이다.
“대신 3년 뒤에 저희가 다시 5년 연 1억 6000만 달러의 제안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세요. 만약 다른 방송국에서 이 제안 이상의 금액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저희와 무조건 연장계약을 하는 조건으로 말이죠.”
저것 역시 나쁜 조건은 아니다. 5년이라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1억 6000만 달러 이상의 제안이 나올 시에만 강제적으로 연장이 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자신들이 최고액의 제안일 경우에만 강제적으로 연장이 되는 것이니까 레이스에게는 결코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그 조건은 상당히 마음에 드네요.”
다운이 만족스럽다는듯 웃자 멜린다도 마음이 놓인다는 듯이 웃었다.
“다행이네요.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한 제안이었거든요.”
“추가로 하실 제안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ESPN과는 다르게 CBS에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 딜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뒤에 있을 제안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건 장담드릴 수가 없는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희가 어떤 제안을 했는지에 대해서 다른 구단들에게 말해주기만 한다면 말이죠.”
다운이 만약 그렇게 해준다면 CBS는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들에게 ‘우리는 이 정도로 메이저리그에 투자할 생각이 있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기존 방송국들과의 연장을 생각하고 있을수도 있는 다른 구단들이 ‘CBS 제안도 한 번 들어볼 만 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하여간 여우들만 모였어.’
뭐 그 정도는 못해줄 건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이 저 정도의 제안을 한 건 사실이니까.
“알겠습니다.”
다운의 대답에 멜린다는 미소와 함께 구단을 떠날 수 있었다.
앞선 두 방송사와는 다르게 NBC SN의 제안은 간단했다.
“저희는 30년간 연 1억 4500만 달러를 제안합니다.”
ESPN보다 더 높은 제안가가 나왔다.
자이언츠, 애슬레틱스, 컵스, 화이트삭스, 필리스, 메츠까지. 여러 구단들의 독점중계를 맡고 있는 NBC SN이니만큼 저 정도의 금액은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여기에도 조건은 있었다.
“클리닝 타임을 허용된 최대로 활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방송국은 광고를 파는 회사다. 그런 회사에게 클리닝타임은 커다란 돈줄과도 같았다.
“고려해보도록 하죠.”
마지막으로 폭스의 차례가 되었다.
채프먼은 다운이 들어오자마자 물었다.
“앞선 제안들 좀 들을 수 있겠습니까?”
“금액만이라도 괜찮죠?”
“네.”
“1억 3000만 달러, 1억 1500만 달러, 1억 4500만 달러가 나왔습니다.”
“미팅에 들어간 순서대로인가요?”
“네.”
“ESPN에서는 20년 정도를 걸었을거고, CBS는 최대한 기간을 짧게 했겠네요. NBC에서도 저정도 금액을 뽑으려면 20년, 혹은 그 이상을 걸었을수도 있고요.”
다른 구단들의 딜을 모두 꿰뚫어보는 채프먼의 말에 다운은 내심 놀랐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처음과 같은 미소만이 떠올라 있을 뿐이었다.
“폭스의 제안은 어떻습니까?”
“이게 원래 저희 조건이었습니다.”
다운은 채프먼이 내민 계약서를 받아들었다.
계약형태 : 프리시즌, 정규시즌 독점 중계권 및 포스트시즌 중계권
계약기간 : 2024년부터 2038년까지 15년
계약금 : 연 1억 3000만 달러
ESPN과 비슷한 제안이다. 다만 기간이 5년 짧고 특약사항이 없었다.
‘괜찮은 제안이긴 한데······’
금액에서는 NBC를, 기간에서는 CBS를 따라가못하는 가장 애매한 제안이다.
“그런데 이게 원래 조건이었다고요?”
“네.”
“그렇다는건 새로운 제안이 있다는 말이겠죠?”
채프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7년간 연 1억 5000만 달러를 제안합니다.”
기간은 낮추고 금액은 더 늘어났다. 그것도 최고액으로.
“단,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 저희에게 최우선 협상권 및 다른 방송국의 제안 중 기간과 금액을 공유하는 조건입니다.”
나쁘지 않다. 다른 방송국들의 제안을 듣고 그 이상의 제안을 하기 위한 장치였으니까. ESPN과 같은 특약사항이 아니라 기간과 금액 정도로 그친 것도 꽤 마음에 들었고.
“괜찮네요. 그럼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운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ESPN의 토비와 만났다.
“뒤에 있었던 제안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역시나 그는 자신의 제안이 노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제안들이 어땠는지를 요구했다.
다른 방송국들의 제안을 들은 토비는 새로운제안을 건넸다.
“20년 동안 연 1억 6500만 달러를 제안합니다. 다만 특약사항들은 물론이고, 레이스 앱 내 배너의 광고권을 저희가 가지는 조건입니다.”
미팅이 끝난 뒤 다운은 방송국들의 제안을 모아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글라이드, 클라인, 러셀, 심슨이 있었다.
“고생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단장님.”
“별말씀을요. 사실 뭐 큰 고생도 없었어요. 워낙에 다들 좋은 제안을 들고와서요. 서로 눈치보면서 좋은 제안들을 건네는데 제가 굳이 뭐 할 필요도 없더라고요.”
다운의 말에 러셀의 눈이 빛났다.
“좋은 제안들이 있었나봅니다?”
고개를 끄덕인 다운이 네 방송국의 제안을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어떤게 가장 좋아 보이세요?”
다운의 질문에 글라이드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흐음······ 금액적으로는 ESPN측이 확실히 좋아보이기는 하는데······”
20년이라는 기간이 있지만 1억 6500만 달러가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사람인 이상 그 제안이 가장 끌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이 제안에 찬성할 것 같았던 러셀은 반대였다.
“저는 반댑니다. 구단주님. 20년은 깁니다. 저희 구단의 성장세라면 20년 뒤에는 1억 6500만 달러가 아까울 정도의 크기가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당장의 금액에 혹해서 저런 제안을 받으면 분명 후회할겁니다. 게다가 ESPN+앱. 저것도 문젭니다. 저희가 시청률에 따른 로열티를 나눠받는게 아니라면 분명 실제 구장을 찾아주는 관중 수에 영향을 미칠겁니다. 그리고 스탬프 반 개? 그건 더 말도 안되는 일이죠. 지금은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람들이 한 두번 놓쳐도 ‘ESPN+에서 반개라도 받아놔야지.’라고 생각하게 되는순간 끝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스트리밍으로 바뀌고 있다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정연한 러셀의 반대에 글라이드는 물론이고 다운과 클라인, 심슨마저도 의외라는 듯이 바라봤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그야······”
“누가봐도 돈에 미쳐있는 사람이 최고액 제안을 거절하니까 이상해서요.”
“당장은 최고액이지만 길게보면 절대 고액이 아니니까요.”
“그럼 에디. 자네는 어떤 제안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는 CBS의 제안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3년이라는 기간이면 저희가 신구장으로 간 뒤 어느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을겁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더 좋은 제안을 따낼 수 있을거고요.”
“만약 성공을 못한다면 악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군.”
글라이드의 말에 러셀이 웃었다.
“구단주님도 그렇고 저희 단장님이라면 절대 레이스가 망하도록 놔두지 않을겁니다. 당장 저희 선수단이나 팜만 보더라도 3년 내에 망하기 힘들기도 하고요.”
“그럼 앤디는 CBS에 한 표. 피트 자네는?”
“비슷한 이유로 저는 폭스에 한 표를 주고 싶습니다. 높은 금액에 7년이라는 꽤 짧은 기간까지. 게다가 다른 조항도 없고, 지금까지 저희와 잘 지내왔던 사이인만큼 케어도 잘해주겠죠.”
글라이드는 마지막으로 마케팅 파트장인 심슨에게 눈을 돌렸다.
“브래드?”
“저는 ESPN에 한 표 던집니다.”
의외의 발언을 한 심슨에게 다들 놀랐다.
“앞선 두 사람이 관중수가 감소할거라며 반대했는데도?”
“네. 관중수와 그에 따른 실물수익 감소는 저희가 얻는 것에 비해 정말 자그마한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자그마한 손해라니.”
러셀의 투덜거림에 심슨이 검지를 세워 흔들었다.
“ESPN과 디즈니가 가지는 명성을 생각해야돼. 그들이 가지는 영향력은 저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저희 레이스의 경기를 보게 만들어 줄겁니다.”
“파이를 키우자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3인치 짜리 피자 대부분을 먹는 것보다는 18인치 피자 한 조각을 먹는게 더 배부르니까요. 그리고 스트리밍으로 야구를 보는 사람과 직접 야구를 보러오는 고객 풀이 다르다는 것도 생각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야구를 보러 와서도 스트리밍을 함께 보는 사람도 있죠.”
“결국 보러올 사람은 온다는건가?”
“맞습니다. 다만 스탬프는 조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즌패스의 메리트를 너무 깎아먹거든요. 그리고 만약 ESPN과의 계약을 하려면 무조건 레이스 시청자들의 수에 따른 일정 수익을 분배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받는 금액을 낮춰서라도요?”
“네. 1억 달러는 지키는 선에서 수익비율을 분배받을수만 있다면, 저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제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슨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NBC는 아무도 지지안한 것 같은데. NBC 지지하면 구단주님이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다운의 농담에 글라이드가 피식 웃었다. 다운은 그와 마주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구단주님이 선택하시는 그대로를 따라가겠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그게 되게 만드는 게 제 역할이니까요.”
다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글라이드가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레이스는······”
< 111화 - 최고의 제안을 찾아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