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난 언제나 진심이야 >
다운이 오기전까지만해도 채드윅은 꽤 화가 났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모닝커피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는
“레이스에서 계약을 깬답니다!”
라는 소리를 해대서 하루의 시작이 망가졌다.
헐레벌떡 출근해 본사와 회의에 들어가니
“대체 일을 어떻게 하면 계약이 저지경인지도 모르고, 또 계약이 깨질것에 대한 대비도 안했던건가?”
라며 욕을 얻어먹었다.
성질대로라면 ‘그게 왜 내 탓인데?’라고 들이받았을것이지만, 훌륭한 직장인인 채드윅이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가이드만 정해주시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본사에서 받은 최대 한도는 연 7000만 달러. 거기에 채드윅의 개인 재량으로 3000만 달러까지의 자율권이 주어졌다.
‘말이 자율권이지······’
어지간하면 이 돈은 지키라는 말이다. 만약 이 돈을 까먹게 되면 채드윅의 능력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할거다.
하지만 채드윅은 자신이 있었다. 43살이라는 나름 어린 나이에 폭스 마이애미 지사장이 된 것은 운이 아닌 실력이 있기 때문이었으니까.
가이드까지 받은 채드윅은 비장한 마음으로 다운을 맞았다.
“자 그럼 우선 저희 폭스사가 제안할 수 있는 한도에 대해 이야기를······”
채드윅이 거래의 밑밥을 깔기 위해 움직이자 곧바로 다운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깐만요. 그 전에 제가 먼저 이야기를 하죠. 저희 레이스에서는 최소 연간 1억 달러를 원합니다. 그 이하의 제안이라면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그 순간 채드윅은 눈 앞에 있는 이 젊은 단장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자식!’
다운이 이렇게 나올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ESPN과 NBCSN의 존재.
ESPN은 디즈니가 보유하고 있는 스포츠 중계 채널, 그리고 NBCSN은 NBC가 소유한 스포츠 중계 채널이다.
컨텐츠의 중요성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 요즘 시대에, 호시탐탐 새로운 중계권을 노리고 있는 하이에나들이기도 했다.
“하하, 다운. 요즘 거액의 계약을 자주 보셔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혹시 저희가 예전에 맺은 계약이 얼마짜리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알죠. 3500만 달러짜리 염가계약을 맺었죠. 심지어 트로피카나 필드를 사용하는 이상 적어도 2027년까지는 폭스에서 임의로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이 담긴 노예 계약을 말이죠.”
“노예 계약이라는 말은 조금 심한 것 같네요. 제가 당시에는 결정권자가 아니었지만, 알아본 바에 의하면 레이스에게 누구보다 좋은 제안을 내밀었던게 우리 폭스인걸로 아는데요.”
살짝 폭스쪽으로 추가 기울어지려는 찰나에 다운이 한 발 물러섰다.
“노예 계약이라는 말은 심했다는걸 인정합니다. 지금이야 보기 좋지 않은 조항이지만, 당시에 폭스가 저희에게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했던 것도, 저희 레이스가 그 조건을 기쁘게 받아들였던 것도 모두 사실이니까요. 그러니 이렇게 폭스에게 먼저 찾아온거 아니겠습니까? 고마운 마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직접 찾아오는 일도 없었을겁니다 하하!”
정중해보이는 발언이지만 그 뜻을 해석하자면
노예 계약이라해서 미안하다. 그때는 우리도 잘 받아들였으니까. 뭐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안 될 것 같은데? 좋은 조건 안 주면 다른 데 간다?
이런 뜻이었다.
한 발을 물러나더니 두 걸음을 쑥 하고 들어왔다.
“뭐 어찌됐던 저희 레이스에서 원하는 조건은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그 조건이 얼마나 들어주기 힘든 조건인지도 알고계시겠네요. 가장 최근에 맺어진 계약이 2021년 말린스가 맺은 7년간 연 5000만 달러짜리 딜이었죠?”
“그리고 타이거스가 맺은 7년 연 7300만 달러짜리 딜 역시 있었죠.”
둘 다 폭스 스포츠와 맺은 계약들이다.
“그렇다면 저희 측에서 제안할 금액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 같은데요?”
5000만 달러 이상 7300만 달러 이하. 채드윅의 말은 이 사이의 금액이 제안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다운의 해석은 달랐다.
“그렇다면 폭스에서도 73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할 생각이 있다는 말이군요?”
다운의 말에 채드윅의 이마에 살짝 힘줄이 섰다.
“그게 어떻게 그런 의미가 되는거죠?”
“혹시 야구에 관심이 없으십니까?”
“아뇨. 저는 항상 야구에 관심이 있죠. 그레서 레이스가 지난 시즌 양키스에 이어 AL 동부지구 2위를 했다는 것도 알고있고요.”
“중부지구에는 관심이 없으신가보네요.”
“중부지구 1위는 가디언스였고, 그 뒤를 화이트삭스, 로얄스, 트윈스, 타이거스 순이였죠. 근데 갑자기 이건 왜 물어보시는거죠?”
“혹시 타이거스의 시난 시즌 성적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시나 싶어서 물어봤습니다. 저희 팀은 매 년 포스트시즌을 나가고 있는 강팀이고, 타이거스는 아직도 리빌딩을 마치지 못하고 최하위권에서 빌빌대고 있죠. 말린스 역시 하위권에서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건 마찬가지고요. 그럼에도 두 팀이 저희보다 많은 돈을 받아야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팀의 순위에 따라 중계권료가 정해지지 않는다는건 아시잖습니까. 순위는 일시적이죠.”
“하지만 저희는 근 5년간 좋은 성적을 내왔고요.”
“그마저도 일시적일 수 있죠.”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요? 거기다 포스트시즌이 확장되는 이번 시즌부터 중계권료의 가치는 더 상승할텐데요? 앞선 중계권료 협상들에는 이 것에 대한 금액은 포함되지 않았을텐데요?”
이 부분에서는 다운의 말이 맞았다. 포스트시즌 경기 수가 늘어나는 이번시즌부터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팀들의 중계권은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중계권료에는 마켓 사이즈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려던 채드윅의 입이 멈췄다.
‘잠깐.’
올드탬파만, 힐스버러만, 맥케이만, 뉴탬파만을 포함한 탬파베이 광역권은 결코 마켓 사이즈가 작은 지역이 아니었다. 탬파를 중심으로 주변의 위성도시나 교외지역을 합치면 근 430만에 이르는, 미국 내에서도 20위 안에 들어가는 대도시권 중 하나가 바로 탬파베이였다.
심지어 바로 옆에는 또 다른 20위권 대도시권인 올랜도가 위치해 있었다.
그런 곳에 위치한 레이스가 기를 못펴는 이유는 하나였다.
트로피카나 필드의 빌어먹을 위치
오직 이 이유 하나만으로 레이스의 마켓은 다른 스몰마켓 못지않게 줄어들었다. 이걸 뒷받침하는 증거가 바로 시청률에 있었다.
레이스 경기의 TV 시청률은 폭스가 중계하든 여타 다른 팀의 시청률보다 월등히 잘나왔다.
생각해봐라.
매 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브래넌이나 파인트와 같은 슈퍼스타, 드레이크나 더지같은 슈퍼루키들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레이스다. 광역권 야구 팬들이 이 팀을 응원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빌어먹을 트로피카나 필드의 교통만 뺀다면 말이다.
그런데 내년에 레이스가 교통이 원활한 탬파 시내의 글라이드 파크로 위치를 옮기게 된다면?
과연 그때도 마켓 사이즈가 작다고 할 수 있을까?
채드윅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다운은 입꼬리가 올라간채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신 말에 모순이 있다는건 눈치채셨나보네요?"
입을 꾹 닫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채드윅을 보고 다운이 말을 이었다.
“저희 마켓 사이즈가 그렇게 작은건 아니라는건 깨달으셨을거라 믿습니다.”
“인구가 전부는 아닙니다만······”
“인구수가 마켓 사이즈를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죠. 하지만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도 힘들죠. 그리고 스포츠 마켓 사이즈를 조사한 사이트를 봐도 저희 탬파는 4대 스포츠 구단이 위치하고 있는 69개의 도시 중에서 13위에 랭크되어있습니다. 이는 15위인 디트로이트나 18위인 마이애미보다 높은 순위죠. 만약 저희의 구장 문제만 해결이 된다면 분명 마켓사이즈는 더 커질겁니다.”
“하지만 구장을 옮긴다고 해서 팬들이 올거라고 확신하시는건 금물 아닙니까?”
“무조건 더 많이 오실겁니다. 이번 시즌 초반만 봐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적극적으로 도입한 시즌 패스 덕에 홈 5연전 중에서 만원 관중이 네 차례, 남은 한 번 역시 23,544명이 들어오면서 경기장을 가득 채워줬습니다.”
다운은 항상 들고다니는 태블릿을 꺼내, 미리 준비한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이번에 전면 E-티켓으로 전환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요. 올 시즌 저희 구장에 와주신 관중들 중에서 세인트피터스버그 주민은 고작해봐야 23%에 불과했습니다. 그 말이 뭘 뜻하겠습니까? 나머지 77%의 관중들은 빌어먹을 하워드-프랭클린 다리를 건너서 왔다는 걸 뜻하죠. 물론 시즌 초반의 효과라는걸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다운은 태블릿 화면에 있는 하워드-프랭클린 다리를 찍으며 말했다.
“이 빌어먹을 다리가 없는 이버시티, 글라이드 파크로 우리 레이스가 보금자리를 옮긴다면 분명 팬들은 더 편하게 구장을 찾을 수 있을것이라는 것.”
통계와 자료에 근거하여 이 정도는 받아야겠다는데, 채드윅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다운이 들고 온 저 근거들을 논파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 래서 얼마를 원하시는겁니까?”
“아까 처음에 말하지 않았나요?”
분명 다운이 처음에 말하긴 했다. 1억 달러를 줄 생각이 아니라면 자리에서 일어나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1억 달러는 들어드리기 힘든 제안입니다. 아시잖습니까? 1억 달러를 넘는 계약을 가진 팀들을 보세요. 다저스, 에인절스, 양키스, 화이트삭스, 레드삭스, 컵스. 모두 엄청난 팬덤을 가진 전국구 구단들입니다. 게다가 이 중에서 구단 지분을 넘기지 않은 팀은 단 하나도 없고요.”
“압니다. 지분이 포함되지 않은 딜 중에서 가장 금액이 높은 딜이 브레이브스의 8600만 달러 20년짜리 딜이었죠.”
다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채드윅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럼 그렇지! 역시 1억 달러는 무리란걸 알고 있었던거야!’
적당한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 첫 가격을 높여 부르는 것이야 이쪽 업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럼 저희도 그 수준으로 낮춰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채드윅이 다시 한 번 밑밥을 깔려는 찰나, 다운이 입을 열었다.
“근데 그거 아십니까?”
“네?”
“저 딜이 2008년에 있었던 딜이라는걸?”
채드윅의 등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스포츠 팬 마켓 사이즈는 고작 60만 명 밖에 차이나지 않는 애틀란타가 15년 전에 맺은 20년짜리 계약 금액이 8600만 달러입니다. 그럼 15년이 지난 지금 저는 어떤 수준의 계약을 원할까요?”
채드윅은 등에 흐르는 땀을 무시하고는 다운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인간은 진심이다!’
다운은 진짜로 연 1억 달러를 원하고 있었다.
< 108화 - 난 언제나 진심이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