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전쟁터로 >
Vs 에인절스 홈 2연승
Vs 화이트삭스 홈 2승 1패
Vs 오리올스 원정 3연승
레이스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스타트를 하며 23시즌을 시작했다.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은 바로 홈 5연전 기간 동안 만원관중이 네 차례. 그리고 남은 한 번 역시 23,544명이 들어오면서 팬들이 경기장은 가득히 채워줬다는 것이다.
“흐흐흐흐흐흐!”
덕분에 러셀의 입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웃음을 흘리는 러셀의 옆으로 다운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지나갔다.
“으으으으······”
“왜 그러십니까 단장님.”
“어제 과음을 했더니······”
머리를 감싸는 다운의 옆에서 리타가 숙취해소제를 내밀었다.
“고마워 리타.”
숙취해소제를 쭈욱 들이킨 다운이 러셀에게 물었다.
“무슨 좋은일있어 앤디?”
“흐흐흐! 이렇게 팀이 잘나가는데 기분이 좋지 알을리가 있나요! 그나저나 단장님 어디 가십니까?”
다운은 평소 구단에 머물때는 작게 TB가 새겨진 V넥 티셔츠를 주로 입었다.
하지만 어디 외부에 미팅이나 일정이 잡혀있을때는 언제나 깔끔하게 셔츠를 챙겨입었다.
그리고 오늘 다운은 셔츠차림을 하고 있었다.
“폭스.”
다운의 말에 러셀의 눈이 커졌다.
“결과 나왔답니까?”
다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러셀이 양팔을 쭈욱 뻗었다.
“만세! 드디어 우리 레이스에도 돈이 들어오는구나!”
“제대로 이야기를 해봐야하니까 너무 기대하고 있지는 말고.”
다운의 말에 러셀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을 흘겼다.
“단장님이 폭스한테 밀리는 계약을 한다고요? 허참······ 탬파베이에 서식하는 악마라는 소문이 자자한데, 고작 폭스에 밀리겠습니까? 말도 안되는 헛소리 하지 마시고 돈 많이 벌어오십쇼.”
다운은 러셀의 응원아닌 응원을 받으며 구단을 나섰다.
폭스 스포츠 플로리다 지부는 마이애미 옆에 있는 포트 로더레일에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마이애미로 날아간 다운은 예약된 렌터카에 몸을 실었다. 폭스로 차를 몰아가는 길에 다운은 이번 일을 도와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덕분에 일이 잘 풀렸네요. 고마워요 수잔.”
[별말씀을요. 다 돈 받고 하는 일인걸요.]
폭스 스포츠와 레이스 사이의 중계권 계약은 2010년에 체결되었다. 그 당시 맺어진 계약은 15년간 총 5억 2500만 달러(연 3500만 달러) 15년 계약이 오는 2024년에 끝날 예정이었다.
“2023년 스타트도 좋고, 다음 시즌에 새 구장으로 이동하면 분명 더 팬들이 몰릴거란 말이지······ 거기다 우리 경기를 보는 팬들도 꽤 많고······”
레이스는 경기장까지 가는 환경이 거지같아서 관중이 많이 오질 않는다. 그러다보니 돈도 못 버는 것이고.
하지만 레이스라는 팀의 분위기가 좋고 팀의 성적도 좋다보니 TV나 온라인상으로 지켜보는 팬들은 꽤 많은 편이었다.
2008년 당시 월드시리즈 진출과 함께 2009년 아쉬운 3위, 2010년 지구우승을 통해 늘어난 팬 덕에 폭스와도 꽤 괜찮은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문제는 다운이 생각하기에 이 계약은 전혀 괜찮은 계약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양키스하고 비교하는건 미안하지만, 너무 싸.”
가장 많은 돈을 받는 다저스는 연 2억 3900만 달러를 받는다. 그 다음이 1억 3800만 달러의 에인절스, 그 다음이 1억 2000만 달러를 받는 양키스였다.
다운도 글로벌 인기구단인 저 세 팀 만큼 많은 돈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들의 중계권 계약에는 구단 지분을 넘기는 대가가 포함되어있었으니까.
글라이드는 자신의 지분을 나누길 원하지 않았고, 따라서 다운이 노려볼 수 있는 최고의 계약은 지분이 포함되지 않은 최고액 계약인 브레이브스의 8900만 달러짜리 계약이었다.
“2008년에 맺어진 계약이었으니까 우리는 이것보다 더 많이 따내야돼.”
폭스 스포츠는 자선기업이 아니다. 그들에게 많은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는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했다.
그래서 다운은 2010년 폭스와 레이스가 맺었던 계약을 다시 검토했다.
그런데 거기서 뭔가가 나왔다.
“어? 트로피카나 필드?”
계약서에 있는 모든 조항에 ‘트로피카나 필드’에 있는 레이스라는 것이 언급되어있었다.
그리고 다운이 알지못했던 하나의 사실.
- 탬파베이 레이스가 트로피카나 필드(혹은 그 자리에서 개 보수 될 구장)에 계속해서 머무는 동안 폭스 스포츠는 매 년 계약 연장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 양측의 계약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팀이 트로피카나 필드와 계약한 2027년까지는 임의로 연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 때 폭스는 기존에 지불하던 중계권료를 지불한다.
“이런 미친!”
저 조항이 있는 이상 폭스는 큰 손해 없이 계속해서 연장을 할 수 있게 되는것이다. 심지어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3500만 달러를 받고 계속해서 중계권을 넘겨야한다. 2027년까지 말이다.
“대체 어떤 미친 놈이 이런 계약을 한거지?”
그래서 다운은 이 계약을 맺을 당시 레이스에 있었던 사람을 찾았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계약을 한겁니까?”
“그 당시에는 레이스라는 약팀과 계약을 하고싶어하는 팀이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레이스는 AL 동부에서도 강팀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2008년의 월드시리즈 진출도, 뒤이은 2년간의 선전도 모두 일시적인 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거든요. 그래서 당시에는 팬도 없었습니다. TV로 보는 사람? 없었죠. 곧 약팀이 될게 뻔히 보이는 스몰마켓팀을 새롭게 응원할 바에는 양키스를 응원하는게 속편했으니까요. 당시 저희에게 들어온 최고액 제안이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얼마였는데요?”
“연 2000만 달러짜리 20년 계약. 그게 전부였습니다.”
2010년이라고는 하지만 연 2000만 달러는 심하게 후려친 가격이었다. 심지어 20년짜리 계약에 말이다.
“당시 저희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 팀은 언젠가 올라갈거라는 확신이 말이죠. 당장에는 2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을 수 있지만, 미래를 위해서라면 조금 더 좋은 계약을, 그게 안된다면 더 짧은 계약을 맺어야한다는데 모든 구성원들이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폭스가 들어왔습니다.”
‘연 3500만 달러에 15년 계약을 하자. 거기에 계속해서 트로피카나 필드를 쓸 경우에는 우리와 계속해서 연장하는 조건으로. 우리가 손해볼 수도 있으니까 최대 2027년까지는 우리에게 우선권을 줘. 어때?’
“다른 어떤 방송사보다 좋은 조항에 팀옵션 2년까지. 우리 팀이 정말 잘된다면 트로피카나 필드를 벗어나 새 구장에 갈 것이고,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트로피카나 필드를 쓰더라도 최고의 계약조건을 제시한 폭스라면 계약을 더 후려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보기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조항이었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해준 덕분에 다운이 활용할 여지가 하나 더 생겼다.
“수잔. 우리는 이번 시즌이 끝난 뒤, 구장을 옮길겁니다. 그런데 이 계약이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나요?”
글라이드의 소개로 오게 된 수잔은 며칠간 계약서를 검토한 뒤 글라이드와 다운의 앞에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레이스가 다른 구장으로 이동하게되면 이 계약 조건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레이스는 새로운 계약을 맺을 수 있을겁니다.”
“1년이 남았더라도요?”
“네. 계약의 주체가 ‘트로피카나 필드를 홈 구장으로 쓰는 탬파베이 레이스.’기 때문에 이버시티에 들어설 글라이드 파크를 홈 구장으로 사용하는 탬파베이 레이스는 폭스와 계약을 이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파기해도 된다는거죠.”
“네.”
그게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었다. 덕분에 과음을 했지만 기분만큼은 좋았다.
“폭스 측에서는 뭐래요?”
오늘 일어나자마자 수잔은 곧바로 폭스에 선전포고를 날렸다.
- 이러이러한 사항에 의거하여 레이스와 폭스 스포츠 사이의 계약은 이번 시즌 종료 후 만료될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 세월 폭스와 오래도록 함께해온 사이, 그리고 급격하게 진전된 구장 이전이 아니었다면 남아있을 1년의 계약기간을 고려해서 귀사에게 협상 우선권을 드립니다.
라고 말이다.
다운의 질문에 수잔이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후후. 당연히 난리가 났죠. 그러니 다운을 오늘 바로 만나고 싶다고 한거고요.]
만약 협상 당사자가 아직까지 폭스에 남아있다면, 징계를 받지 않을까?
[여튼 협상 잘 하시고요. 잘 되면······]
“밥 한끼 사드릴까요?”
[돈으로 주세요. 다음에는 이런 계약서 검토 말고 수임료 센걸로다가요.]
“어스틴하고 말해볼게요. 다음에 봐요.”
폭스 스포츠에 도착한 다운은 다시 한 번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렸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오늘 회의가 잡혀있어서요.”
그러면서 다운은 명함을 건넸다.
Tampa Bay Rays G.M.이라고 박혀있는 것을 본 직원이 곧바로 전화를 들었다.
“지금 레이스 단장님이 오셨는데요. 오늘 일정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신 분······ 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그는 다운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담당자가 곧바로 내려온다고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로비 저쪽 소파에 앉아서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운은 그의 말에 따라 로비에 비치된 소파에 몸을 뉘였다.
“흐으으으······”
곧 폭스와 엄청난 신경전을 벌여야할테니 몸의 긴장을 풀어놔야한다. 그러면서도 머리는 빠릿하게 돌렸다.
‘폭스는 과연 발목을 잡고 늘어질까, 아니면 최대한 쿨하게 새로운 계약을 제안할까?’
사실 그들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던 상관없다. 다운이, 그리고 레이스가 원하는 수준의 계약에 이르지 못한다면 둘 다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운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가 로비 저편에서 헐레벌떡 뛰어왔다.
“레이스 후욱! 단장 후욱! 님?”
다운은 힘겹게 숨을 고르는 그에게 상큼한 미소를 날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이스 단장 다운 정입니다. 다운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다운은 거칠게 숨을 고르는 그에게 말을 덧붙였다.
“아, 숨 마저 고르고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그 정도 여유는 있으니까요.”
손을 들어 감사를 표한 그가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인사했다.
“후우······ 감사합니다. 저는 폭스 스포츠의 플로리다 지사장 저스틴 채드윅입니다. 저스틴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단장이 직접 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쪽에서도 내밀 수 있는 가장 큰 패가 나왔다.
악수를 하는데 채드윅의 손이 슬쩍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손에 힘이 좀 들어가신 것 같은데요?”
다운의 말에 그가 웃으며 답했다.
“그런 것 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요?”
“저야 선수들하고 캐치볼을 할 정도로 운동은 하니까요. 그나저나 이제 슬슬 손에 힘을 풀어주시는건 어떻습니까?”
다운의 말에 그가 손에서 힘을 풀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대에서 레이스가 보낸 선전포고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본사와 엄청난 회의를 해야만했죠. 게다가 선전포고를 받은 그 날 바로 단장님이 직접 오시기까지······ 제가 얼마나 스트레스 받았는지를 생각하신다면 이 정도 화풀이는 넘어가주실거라 생각하는데······”
“그건 폭스가 어떤 제안을 가져오냐에 따라 달렸죠?”
다운의 말에 그가 웃으며 앞장섰다.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겠군요. 이쪽으로 가실까요?”
전쟁터를 향해 말이다.
< 107화 - 전쟁터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