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시작이 좋아 >
이번 시즌 레이스는 에인절스와의 홈 경기를 시작으로 시즌을 시작하게 될 예정이었다.
홈 개막전.
평소에도 많은 팬들이 찾아줬을 그런 경기. 하지만 오늘은 유독 트로피카나 필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표소, 이제는 인포 데스크로 간판이 바뀐 곳 앞에서 웅성이고 있었다.
“티켓 뽑아주세요!”
“이제 현물 티켓은 안합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레이스 어플과 E-티켓 사용방법 알려드릴게요!”
“티켓 코드 활성화 시키신분들은 이쪽으로 오시면 바로 입장 가능하십니다!”
이번 시즌부터 레이스는 아예 현물 티켓을 삭제했다.
“시즌권 구매자들이 많기도 하고, 핸드폰만 있으면 바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데 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티켓에 적용되는 종이값도 아낄 수 있고요. 무엇보다 암표상들을 완전히 근절할 수 있습니다. 본인인증을 받은 계정으로만 티켓을 적용하게 만들테니까요.”
“E-티켓 페이지에 본인 사진도 함께 띄워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본인확인도 될테니까요.”
“QR 코드도 적용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최초 입장 이후에는 자유롭게 코드를 찍으며 드나들 수 있도록 말이죠.”
직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다운은 맨프레드에게 들고갔다.
“우리가 먼저 전면적으로 E-티켓을 시범운영할테니 설치비를 지원해주십쇼.”
맨프레드와 사무국 역시 스마트폰을 들고다니지 않는 사람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 E-티켓이라는 것이 필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레이스에게 QR코드 게이트 및 여러 기기들의 설치비용을 지원해주었다.
“어떤 것 같아요?”
클라인이 다운의 질문에 곧바로 답했다.
“젊은 층들은 확실히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앱을 켜서 티켓을 보여주면 끝나니까요. 외부 흡연실을 갔다가 재입장할 때도 티켓을 찾을 필요없이 폰만 있으면 끝. 이보다 편할 수가 없을겁니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신분들은 불편해 하시더군요.”
“아무래도 젊은 층에 비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잘 지도해주세요.”
“클러비들까지 총 동원해서 설명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그나저나 단장님. 그거 아십니까? 벌써 18000명이 넘었답니다.”
클라인의 말에 다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즌패스가 효과가 있었나보네요.”
시즌패스는 홈 경기에 참가한 누적횟수에 따라 보상이 지급되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무조건 최대한 많은 경기에 오는 것이 이득이었다.
“스탬프에 대해서는 아직 말이 없죠?”
시즌 패스에 찍히는 스탬프는 경기를 출입할 때 찍히는걸로 끝이 아니었다. 만약 그렇게 둔다면 분명히 경기를 보지 않고 출퇴근 도장만 찍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관중들을 끌어모아 매점 등의 추가수익을 노리고 있는 다운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손해였다.
그래서 다운은 시즌패스 스탬프를 공개하면서 하나의 조건을 넣었다.
경기 시작 시 출입하면 반 개가 찍히고, 경기장을 빠져나갈 때 반 개가 찍혀서 온전한 스탬프를 이룬다. 다만 후자의 경우 경기 시작 이후 최소 1시간이 지나야만 찍혔다.
이 말은 곧 적어도 경기가 시작한 이후 트로피카나 필드에 머무는 시간이 1시간은 되어야지만 한 개의 온전한 스탬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저희가 시즌패스를 공개할 때 스탬프를 어떤 식으로 적용한다는 건 언급하지 않았잖습니까? 그래서 큰 불만은 없습니다.”
“불만이 있긴 한가보네요.”
“바로 돌아가려던 사람이 몇 있었다는군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법무팀에서도 전혀 문제없는 조항이라고 했으니 투덜대는거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을겁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다운은 밀려들어오는 팬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인데도 벌써 저렇게 몰려들다니!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흐뭇해하는 다운의 옆으로 리타가 다가왔다.
“단장님. 에인절스 선수단이 호텔에서 출발했답니다.”
오늘은 개막전이다. 그런만큼 에인절스에서도 단장이 동행했다. 그들이 머무는 호텔은 트로피카나 필드까지 고작해봐야 5분 거리다.
“가자.”
다운은 원정팀 선수들이 출입하는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예상보다 5분을 더 기다려서야 에인절스 선수단이 탄 버스가 도착했다.
“늦었네.”
“죄송합니다. 5분 정도 더 늦게 내려와도 됐을 것 같은데.”
“아냐. 교통에 문제가 있었겠지. 오늘 트로피카나 필드 근처 교통이 꽉 막혔다잖아. 아마 그것 때문일걷야. 리타 잘못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잠시 후 에인절스의 단장인 로버트 페트로비치가 버스에서 내렸다.
“어서와요 로버트. 여기는 처음이죠?”
“이렇게 두 사람이 만나는 것도 처음이죠 하하!”
로버트 페트로비치는 지난 시즌 종료 이후 에인절스의 단장이 되었다. 단장회의라던가 메시지로 안부연락(을 빙자한 찔러보기)은 자주 했지만, 이렇게 트로피카나 필드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보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다운을 따라가며 페트로비치가 말했다.
“그나저나 오는 길에 차가 많이 막히더군요. 그것도 트로피카나 필드 주차장으로 다 들어오더라고요. 레이스에는 관중이 별로 없다더니 그게 사실은 아닌 모양입니다?”
“시즌패스의 영향이 컸죠. 초반부터 스탬프를 쌓아둬야 후반에 유리할거라는걸 알고있을테니까요. 시즌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늘만큼은 오려고 할겁니다.”
“저였어도 오늘은 왔을겁니다 하하! 그런데 다운이 생각하기에 그 선물들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페트로비치 역시 관중몰이와 구단의 수익을 신경써야하는 단장이다. 그래서인지 시즌패스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에인절스도 적용해보려고 하나봐요?”
“까놓고 말해서 지금 구단들 중에서 시즌패스에 관심이 없는 단장이 있을까요? 안정적으로 시즌권을 팔아치울 수 있는데다가 추가적인 수익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좋은 수익모델인데 말이죠.”
“그럼 같이 하시지 그랬습니까?”
다운의 말에 페트로비치가 약은 미소를 띄웠다.
“다운은 확신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시즌 패스의 보상이 너무 크잖습니까?”
내년 시즌권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추가 상품까지. 안정적으로 관중을 확보할 수 있는 빅마켓 구단에서는 나가는 돈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어떤 단점들이 있는지는 확인해봐야하니까요.”
“에인절스와도 같은 빅마켓이라면 필요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팬들이 원한다면 해줘야하는게 구단 아니겠습니까? 빅마켓이라고 뒷짐지고 있다가는 메이저리그 전체의 인기가 떨어질겁니다.”
저런 마인드는 새롭게 된 단장들의 공통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의,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다시 예전 수준으로 끌어올리자.
당장에 손해가 있더라도 팬들이 원한다면 하자.
이런 마인드 말이다.
구단주들은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게 봤을때는 저런 마인드는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부터 느꼈던거지만 로버트하고는 정말 말이 잘 통할 것 같네요.”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하!”
그 뒤로도 페트로비치는 E-티켓이라던가 레이스에서 기획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물어봤다.
다운은 그 중에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알려주었다.
“미국 스포츠계에 대해서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햇병아리였네요.”
페트로비치는 단장이 되기 전에 에이전트로 일했다. 그것도 축구 쪽에서 말이다. 그러다가 연이 닿아서 MLS를 거쳐 에인절스의 단장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앞으로도 이런저런 조언 좀 자주 구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다운이 씨익 웃었다.
“등쳐먹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러자 페트로비치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그러면 제가 멍청했던거죠.”
아무래도 이 사람이 조금 더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말하면 제가 뒤통수를 못치잖습니까?”
“그러라고 그렇게 말한겁니다 하하!”
두 사람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동안 국가연주가 끝났다.
“경기부터 보실까요?”
“그러죠.”
***
- 웰컴 투 트로피카나 필드! 앤드 웰컴 23 시즌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야구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 정말 올 시즌에는 야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는데말이죠. 다행히 올 시즌에도 정상적으로 야구를 하는군요.
- 락다운이나 파업을하게되면 결국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걸 아니까 절대 그러지 않을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하!
- 오늘 트로피카나 필드에는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 그게 뭔가요?
- 지금 전광판에 나옵니다!
25000 sits Sold Out!
- 25000개의 좌석이 모두 팔렸습니다!
- 오늘 에인절스 팬들도 많이 안왔을텐데요.
- 오우! 캘리포니아에 있는 에인절스 팬들이 이 자리에 오기에는 너무 멀죠. 그리고 제가 살짝 클러비에게 물었거든요.
- 클러비에게요?
- 오늘 관중들이 너무 많이 들어오다보니 클러비들까지 총동원해서 나가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물었더니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은 사람은 딱 열 두 명이었다고 합니다.
- 그러면 우리 선수들은 24988명의 레이스 팬들 앞에서 경기를 하게 되는거군요.
- 그렇죠! 그럼 24988명의 팬들 앞에서 경기를 치르게 될 개막전 선발으으으으을! 공개합니다!
1번 - SS - 네이선 드레이크
2번 - CF - 루카스 페리시치
3번 - 3B - 멜튼 록하트
4번 - DH - 배리 브래넌
5번 - RF - 코디 드링크워터
6번 - 1B - 덕 흘로첵
7번 - LF - 패트릭 비어스
8번 - C - 사무엘 비어만
9번 - 2B - 세드릭 우드먼
선발투수 - 조나 파인트
- 오늘 선발은 역시나 조나가 맡았습니다.
- 지난 시즌 후반기 분이지만, 조나 파인트가 보여줬던 모습은 예전 그 시절의 모습과 똑같았죠. 예전의 실력을 되찾은 파인트를 넘어설 투수는 그 누구도 없을겁니다.
- 개인적으로는 더지가 반발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나온 인터뷰를 보니 더지는 정말 기쁜마음으로 인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조나 파인트가 있는데 자신이 개막전 선발인건 말이 안된다고.
- 그게 바로 파인트라는 이름이 가지는 위력인거죠. 이외에도 특이한 점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알렉스 윌슨을 대신해 비어만이 선발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 윌슨은 장염증세가 있어서 개막 시리즈에는 선발 출장이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하더군요. 생각해보세요. 매번 쭈그려 앉아있어야하는 포수가 배가 계속 아프면······
- 어우······ 생각만해도 끔찍하네요. 알렉스, 부디 쾌유하길 바랍니다. 그 외에도 마이어가 안나왔네요.
- 케빈은 오늘 훈련 도중에 담이 왔다고 합니다. 심한건 아니고 스윙할 때 조금 불편하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케빈도 나이가 이제는 좀 있다보니 조심시키는 것 같습니다. 경기 시작하네요! 파인트가 와인드업을 합니다!
파인트는 1선발로 몇 시즌을 보내왔다. 개막전 선발로 나선것 역시 네 차례나 됐다. 그러다보니 그는 개막전, 만원관중이라는 큰 무대에서도 자신만의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아웃!”
- 조나 또 삼진! 세 타자 연속 삼진! 공 10개로 1회를 끝냅니다! 역시 조나 파인트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 그런데 파인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네요.
- 조나의 모토가 뭐겠습니까? 효율적인 투구. 그게 바로 조나의 모토거든요. 범타를 당하지 않고 삼진을 당해준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 조나가 스타트를 잘 끊어줬는데 이제 야수진에서도 뭔가를 보여줬으면 좋겠는데요.
- 그렇다면 지금 나오는 저 선수가 바로 정답이죠.
[1번 타자 유격수 네이서어어어언 드레이크!]
쏟아지는 환호성 속에서 스타라도 되는 듯 손을 흔들며 타석에 들어서는 드레이크.
- 네이트의 기록 중에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 뭔가요?
- 바로 드레이크는 관중이 많은 경기일수록 잘했다는거죠. 지난 시즌을 보면 관중이 2만 명이 넘었던 경기에서는 대부분 멀티히트 이상의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심지어 그 중 하나는 항상 장타였습니다.
- 오늘 기대해봐도 되나요?
- 그래도 좋을 것 같네요.
해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력한 타격음이 울려퍼졌다.
따아아아악!
- 네이이이이이이트! 네이트의 선제 솔로 호오오옴런!
시즌 시작이 좋다.
< 106화 - 시작이 좋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