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탬파에는 악마가 산다 >
조 블랜튼 정도는 얼마든지 웃으며 내줄 수 있다. 그는 사기적인 유틸리티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타격이 너무 떨어진다.
물론 블랜튼의 타격이 터질 가능성이 없는건 아니다. 금방 다운이 말했던 것 처럼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야구란 것이니까. 하지만 블랜튼을 쓸 바에는 그보다 타격이 나은 선수에게 다른 포지션을 적응시키는 것이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런 의미에서 블랜튼은 오케이.
문제는 에스코바다.
에스코바는 애슬레틱스 팜 내야수 랭킹 1위에 올라있는 선수.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더라도 이상할게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 역시 다운이 알고 있을 것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어떤 활약을 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통산 마이너리그 타율이 0.335에 타격 포텐이 터진 지난 시즌 때려낸 홈런이 24개에 달하는 만큼, 그가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안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수비를 중시하는 애슬레틱스 내부에서도 60점을 받을 정도로 수비 역시 탄탄한 선수였다.
최근 있었던 알렉시스 제퍼슨과 같은 대형 선수의 트레이드 코어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선수다. 그런데 지금 다운은 그런 선수를 고작 잭 라우틀릿지라는 유망주의 대가로 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혹시 오늘 먹어야 할 약을 못먹었다거나 그런건 아니겠지?”
[설마요. 제 정신은 아주 말끔해요. 어제 잠도 잘 잤고, 오늘 하루도 굉장히 상큼하고 좋았거든요.]
“너무 상큼해서 머리가 돌아버린건 아닐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거죠?]
“제정신인 사람이 프란을 내달라고 할 수는 없는거거든.”
포스트의 말에 다운이 낮게 웃었다.
[하하······]
갑작스런 다운의 웃음에 순간 포스트는 등골이 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설마······’
순간 에스코바와 지난 시즌 있었던 불화가 떠올랐다.
‘그걸 알고 있는건 아니겠지?’
언제나 좋지 않은 예감은 잘 들어맞는 법이다.
[지난 시즌에 에스코바에게 딜을 거셨더라고요?]
포스트는 곧장 마이크를 끄고 욕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자식!”
빌리 빈이 떠난다는 걸 들은건 지난 시즌 초반이었다.
“이번 시즌까지만 애슬레틱스에서 일하고, 다음 시즌부터는 리버풀에 갈걸세. 그러니 잘 해봐 데이브.”
빌리 빈은 존경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도 그 밑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빌리 빈이라는 사람이 애슬레틱스에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있었고, 그의 밑에 있는것만으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포스트는 단장이 된 이후로 단장보다 더 높은 사장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노력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사라진다.
그 말은 곧 자신이 승진할 수 있는 자리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빌리의 자리를 완벽히 메꿔낸 내가 아니면 애슬레틱스의 사장이 될 사람은 없어!’
다른 누군가가 오더라도 자신보다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높은 자리로 가기에는 구단주에게 어필할 거리가 부족했다.
구단의 성적, 대부분의 트레이드는 빌리 빈의 손을 거쳐갔고, 그의 업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프랜차이즈들의 강화였다. 오클랜드에서 나고 자란 선수들을 영입하고, 그들이 좋은 활약을 보인다면 적어도 지역 주민들은 확 끌어올 수 있을테니까.
프란시스 에스코바는 오클랜드에서 난 선수는 아니지만 자라온 선수는 맞았다. 그와 계약을 한 이후로 그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오클랜드에서 살아왔으니까.
‘에스코바와 싼 값에 연장계약을 체결하는게 시작이다!’
에스코바 역시 연장계약 의사가 있었다. 아직 퀴라소에 남아있는 아버지와 동생들을 성공적으로 미국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으니까. 에스코바 측에서 긍정적인 의사를 표했을때만해도 포스트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와의 계약을 시작으로 재능있는 오클랜드 출신 선수들과 연장계약을 맺으면 분명 구단주도 자신의 능력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부분에서 에스코바와의 간극이 너무 컸다. 10년 1억 달러.
못 줄 금액은 아니었지만, 구단주에게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1년차부터 130만 달러는 너무 많은거 아닌가? 그리고 6~9년차에 2000만 달러라니. 너무 큰 금액이야. 더 줄일 수는 없나?”
그러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네 실력은 고작 그 정도인가?’
하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래서 포스트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한 발을 더 나아갔다.
“10년 7000만 달러. 이게 우리 마지막 제안이야 프란. 만약 네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애슬레틱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는 보장해줄 수가 없어.”
다른 구단에서도 암암리에 써먹고 있는 말.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그 말 한마디 덕에 BA 유망주 42위, 애슬레틱스 팜 랭킹 7위, 내야수 랭킹 1위에 올라있는 에스코바와의 관계는 작살이 났다.
“데이브. 아니 단장님. 단장님이 저한테 그렇게 말하실줄은 몰랐습니다. 협박? 해보시죠. 메이저리그에 못간다고 해서 제가 고개라도 숙일 줄 알았습니까? 그럼 사람 잘못 보셨네요. 10년 1억 달러가 그렇게 비싼 제안이 아니라는거 아실거라고 생각했는데······ 애슬레틱스에 대해 고마워하던 제 마음이 단장님의 말 한 마디로 날아간겁니다. 아시겠어요? 제 남은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태업은 안하겠지만, 더 이상 애슬레틱스는 저에게 집같은 편안한 곳은 아닐겁니다.”
구단주의 압박만 아니었다면 자신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변명일 뿐이었다. 결국 에스코바를 협박한 것은 사실이니까.
“오늘 이 일은 지금까지 데이브가 저와 제 가족에게 해주셨던 것에 대한 보답으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에스코바의 마지막 정으로 인해 다행히 자신의 실패가 드러나고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금 수화기 너머에 있는 저 악마같은 다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어떻게 알았나? 혹시 프란이 말했나?”
우선은 에스코바가 얼마나 소문을 퍼트렸는지부터 알아야했다. 다운은 마치 그 걱정을 알기라도 하듯 낮게 웃었다.
[후후. 걱정마세요. 해봤자 아는 사람은 네 사람 정도일테니까요. 그리고 제가 알기로 그들 모두 이 일을 공론화 할 생각이 없습니다.]
공론화라는 말에 포스트의 몸이 움찔했다.
만약 이 일이 공론화 된다면 원하던 사장직은 물론이거니와 지금 당장 단장 자리마저 잘릴수도 있었다.
생각해봐라.
‘너 우리랑 노예계약 안하면 메이저 데뷔 안시켜준다?’라고 말하는 단장이 있는 구단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선수가 얼마나 되겠나. 선수들이 싫어하는 단장을 단장직에 앉혀놓을 사람은 또 어디에 있고?
분명 자신의 커리어가 박살날거다.
‘젠장! 젠장! 젠장!’
그때 구단주에게 잘 보여야한다는 압박에 협박만 안했더라면!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
포스트에게서 말이 들려오지 않자, 다운이 재차 말했다.
[아 물론 저는 아직 고민중입니다. 만약 데이비드가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아는 기자에게 연락할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다운은 지금 레이스라는 약소팀에 있지만, 양키스라는 제국의 단장이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다. 탬파의 저 힘없는 언론 뿐만 아니라 뉴욕 중심지의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기자들과도 일면식이 있는 사이란 말이다.
만약 다운이 그 사람들에게 소문을 퍼트리기라도 한다면?
‘끝이다.’
그땐 진짜 끝이다. 자신은 메이저리그에서 축출될 것이다.
그것 뿐이랴.
우리 돈독오른 구단주님께서 애슬레틱스의 이미지를 추락시켰다고 소송을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되면 모아온 재산도 다 날아가겠지.
포스트가 미래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이 다운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귀에 들어왔다.
[그걸 원하지 않으신다면 해야할 대답은 하나뿐일겁니다. 10초 드리면 충분하죠? 10, 9, 8, 7······]
탬파에는 악마가 산다.
[3, 2······]
아주 빌어먹을 악마가 말이다.
“딜. 딜하지.”
[좋은 딜 감사합니다. 하하!]
그리고 그 악마의 이름은 다운이다.
***
“좋은 딜 감사합니다. 하하!”
포스트와의 통화가 끝나고 고개를 들자 자신을 향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왜요?”
다운의 물음에 클라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장님은 정말······”
“악마가 따로 없었어요 진짜.”
“우리 단장님이라서 다행이지. 다른 팀 단장이었어봐. 만약 양키스하고 계속 했었으면 우리랑도 자주 만나고 계속 딜 했을텐데······”
“어우! 저는 생각도 하기 싫어.”
소름이 돋는지 미키가 떨리는 몸을 쓰다듬었다.
“사람 앞에 두고 그러는거 아닙니다.”
짐짓 서운하다는 듯이 말하는 다운을 향해 두 사람은 태세를 전환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하하! 다 단장님이 잘하시니까 하는 말이죠.”
“저희 업계에서는 악마같다는게 칭찬인거 아시면서 참~”
그 와중에 거스는 만족스럽다는듯 고개까지 끄덕였다.
“블랜튼까지 데려오다니 최곱니다 단장님 흐흐!”
블랜튼은 거스가 강력히 원하는 픽이었다. 자신이 아는 타격코치가 있는데, 블랜튼을 고친다면 사람 언저리까지는 만들수 있다는 말을 했다면서 말이다.
“너무 부담주지는 말자고요. 수비만으로도 우리 팀에는 충분히 가치 있는 선수니까요.”
“바로 빅리그에 올리실 예정입니까?”
“케빈이 원한다면 그래야죠.”
곧 트레이드 소식을 들은 캐시가 달려왔다.
“단장님! 누굴 보내신겁니까?”
개막전을 앞두고 누군가가 팀에서 나가면 시즌 구상을 완전히 갈아치워야한다. 그래서 캐시가 저렇게 달려온 것이고.
“넬슨이야 팀 케미에 악영향을 미쳐서 그렇다 쳐도 또 다른 선수가 빠지면······”
울상이 된 캐시에게 다운이 피식 웃었다.
“걱정마세요 케빈. 우리 팀 그 누구도 안빠져요. 이번에 들어온 라우틀릿지만 갈겁니다.”
“네?”
분명 팀에 영향을 줄 트레이드라고 들은 것 같은데 아직 합류도 안한 선수가 곧바로 빠진단다. 이렇게되면 개막 로스터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누구한테 소식 들었어요?”
“피트가······”
“당하셨네요.”
클라인이 자신을 놀렸다는걸 깨달은 캐시가 흉신악살과도 같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피트 이 자식······”
다운은 곧바로 클라인에게 뛰어가려는 캐시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케빈. 할 말이 있어서 부른건 맞아요.”
“피트 먼저 죽이고 오면 안되겠습니까? 그 자식 곧 퇴근할텐데.”
활활 불타는 그의 눈을 보며 다운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시죠. 로스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 감독님 마음에 걸리는게 있으면 안되니까요.”
“감사합니다.”
잠시 후 밖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캐시가 속시원한 얼굴로 단장실에 들어왔다.
“이야기를 해볼까요 단장님?”
“좋죠.”
< 104화 - 탬파에는 악마가 산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