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언제 시작할까? >
[잭 라우틀릿지가 레이스로 갈거에요.]
잭 라우틀릿지.
2년차 우완투수로 선발로 전환한 지난 2년간 10승 이상, 3점대 방어율을 지킨 나쁘지 않은 투수다. 구속이 90마일 초반대에 불과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평균 이상의 제구력과 다양한 구종을 이용해서 선발이 약한 팀에서는 프런트라인까지 맡을 수 있는 선수까지는 성장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투수였다.
문제는 그가 다운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투수라는 사실이다.
“너 나한테는 3루가 가능한 내야 백업이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잖아.”
[그랬죠.]
“그런데 투수를 내민다고?”
[나쁜 투수는 아니잖아요.]
“나쁜 투수는 아니지. 우리 팀에 더 좋은 평가를 줄 수 있는 투수들이 많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다운의 말에 대런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장난하지 말고 빨리 원래 제안 불어.”
이런 쓰잘데기 없는 제안을 들고왔을 대런이 아니다. 예상대로 그가 다른 걸 들고나왔다.
[제가 얼마전에 모종의 경로를 이용해서 정보를 하나 얻었거든요. 어떤 정보인지 빨리 물어봐요.]
“어떤 정보인데.”
[애슬레틱스가 잭 라우틀릿지를 원한다는 그런 정보죠.]
“애슬레틱스가?”
애슬레틱스가 갑자기 잭 라우틀릿지를 원한다?
그 이유가 뭘까?
애슬레틱스는 이번 시즌 다시 한 번 리빌딩 버튼을 눌렀다. 돈이 없는 스몰마켓 팀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는 리빌딩 버튼을 말이다.
‘이번 트레이드 시장에서 주전 1루수인 케이시 애덤과 3루수인 케이시 콜먼. 주전 중견수인 안토니오 바레시, 1선발인 세드릭 서머빌까지 다 내놨지?’
저 넷을 제외하고도 트레이드 시장에 원하는 유망주를 받을 수 있을만한 선수들을 모조리 내놨다. 그 결과 수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선수들이 애슬레틱스에 들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선수들이 있었다.
“설마 케이시 콜먼을 데려오라는건 아니겠지?”
콜먼은 굉장한 선수다.
강력한 어깨와 4년 연속 AL 골드글러브 3루수 부문을 내주지 않은 최강의 수비력까지 갖췄으니까. 록하트가 아무리 수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도 항상 3루를 틀어막고 있는 콜먼 때문에 단 한 번도 골드글러브를 따낸 적이 없었다.
거기다 매 시즌 2할 중반대에 20홈런 이상을 노릴 수 있는 장타력까지. 심지어는 30홈런을 넘긴 시즌도 있었다.
록하트에서 타격을 조금 덜어내고, 그만큼 수비를 강화한 그런 느낌을 주는 선수라고 생각하면 아마 정확할거다.
게다가 굉장히 워크에식이 좋은 선수로 알려져 있어서 라커룸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되는 선수였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3루수이니만큼 라우틀릿지 말고 또 다른 선수를 원할 가능성이 크지만, 콜먼 정도의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면 그 정도 출혈은 감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걔 FA까지 1년 남았잖아.”
FA까지 딱 1년이 남았다는게 문제다.
다운이 필요한건 록하트가 떠날 자리를 메워줄 수 있는 선수가 아니라 서머스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더 나아가 서머스가 제 역할을 못할 때에는 그 자리를 빼앗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선수였다.
“게다가 연봉도 비싸고.”
올 시즌 연봉조정 마지막 해를 맞이한 그의 연봉은 2150만 달러.
빅 마켓 기준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연봉일 수 있다. 하지만 스몰마켓에게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아마 이 때문에 애슬레틱스에서도 그를 처리하려고 하는 것일테고.
[알죠. 제가 설마 콜먼을 제안하려고 왔겠어요? 양키스라면 몰라도 레이스는 콜먼을 소화하기는 힘들잖아요.]
“······ 방금 그 말투 뭔가 굉장히 기분 나쁜데?”
[하하! 기분탓이에요 기분탓!]
“그래서 네가 제안하는 선수는?”
[프란시스 에스코바.]
대런이 내뱉은 이름에 다운은 깜짝 놀라서 뉘었던 몸을 바로했다.
“잠깐. 애슬레틱스에서 프란시스 에스코바를 풀었다고?”
프란시스 에스코바는 애슬레틱스 팜 랭킹 7위, 내야수 랭킹 1위에 올라있는 애슬레틱스 최고의 내야 유망주다.
그런 선수를 풀었다고?
애슬레틱스가?
[정확히 말해서 아직까지 푼건 아니에요.]
“그럼 그렇지. 포스트가 머리에 총이라도 맞지 않은 이상 그를 풀 리가 있나.”
[근데 풀 확률이 높아요.]
“이유는?”
[프란시스 에스코바 측에서 애슬레틱스를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요. 에스코바가 오클랜드 출신이 아닌건 아시죠?]
“알지. 우리 지역 출신이잖아.”
정확히는 퀴라소 출신으로, 지금 레이스가 머물고 있는 포트 샬럿에 어린 나이에 넘어와 모든 교육을 받고,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 선수였다.
[그래서 항상 말린스나 레이스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왔다는거에요. 그런데 지난 시즌에 붐! 일이 터진거죠.]
“무슨 일인데?”
[빌리가 최근 유망주를 대하는 트렌드를 쫓아가려고 시도해봤던 모양이에요.]
최근 유망주를 대하는 트렌드라면 역시 커리어의 극 초반에 장기계약을 맺는 것이다.
[문제는 이 장기계약을 제안하면서 너무 노예계약을 내밀었다는거에요.]
“어느 정도 수준을 내밀었길래?”
[아지 시몬스 수준이요.]
“세상에······”
아지 시몬스는 브레이브스가 애지중지하는 2루수로 22살의 나이에 7년 3500만 달러, 거기다 2년간 팀 옵션 500만 달러를 더해 9년 총 4500만 달러라는 노예계약을 체결했다.
“시몬스는 사정이 있었잖아.”
처음에는 모두들 브레이브스가 약점을 잡았을 것이라며 욕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시몬스는 네덜란드령 퀴라소 출신으로, 최근 베네수엘라 출신 난민들이 계속해서 들어와 치안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에 속했다.
가족들이 아직 퀴라소에서 생활하는 시몬스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구단에 ‘가족들을 지킬 수 있는 정도의 돈’을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많은 돈은 요구하지 않았다.
시몬스는 수많은 선배 메이저리거들의 사례를 보며 ‘고액연봉자의 가족은 언제나 몸값을 노린 납치위험에 노출되어있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브레이브스는 그가 원하는 적정선을 제안했고, 시몬스가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문제는 시몬스와 에스코바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는거죠. 시몬스의 가족들은 퀴라소에서 계속해서 머무는 것을 원했고, 에스코바의 가족들은 그곳을 탈출하길 원했거든요.]
이름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에스코바는 어린 시절 퀴라소로 넘어간 베네수엘라 출신 난민의 자식이었다.
생각을 해보자.
무법지대에서 간신히 넘어왔는데 거기도 무법지대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다. 아닌 사람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무법지대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생각 아래에는 ‘여기서도 수틀리면······’이라는 무의식이 깔려있을거다. 그런 사람들을 수없이 봐왔던 에스코바가 퀴라소의 치안을 신뢰할까?
당연히 못할거다.
‘나라도 못할 것 같네. 돈 좀 벌면 미국으로 가족들 다 불러서 살고싶겠지.’
주변 인간관계에 따라 많은 돈을 원할수도, 아닐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봤을 때, 그에게 시몬스 급의 계약을 내민것은 큰 실책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대?”
[어떻게 되긴요. 파토났죠. 제가 또 에스코바 에이전트랑 좀 알고있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양키스의 단장이 되면 좋은점이 저거다. 돈이 있는 구단의 단장인걸 아니까 에이전트들이 너도나도 찾아와서는 슬쩍 정보를 흘린다.
‘레이스도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하는데······’
과연 언제쯤이나 가능할런지 모르겠다.
[에스코바 측에서 먼저 요청을 한거라 싸질줄은 예상했대요. 그렇다고 에스코바가 엄청나게 많은 금액을 생각한 것도 아니었고요.]
“정확한 금액도 알아?”
[에스코바 측에서는 대략 10년 1억 달러 정도를 원했더라고요.]
“많은 금액은 아니네.”
에스코바가 메이저리그에서 보여준 건 없다. 하지만 연 1000만 달러 정도의 활약? 충분히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가 보여준 실링이라면 수비만으로도 그 정도의 가치는 해줄테니까.
“애슬레틱스에서는 얼마나 제안했대?”
[5000만 달러요.]
“10년?”
[네. 생각했던 것의 정확히 반을 제안한거죠. 물론 첫 제안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맞춰나가려고 했죠. 그래서 제안 금액이 점점 올라와서 7000만 달러까지 올라왔대요. 근데 여기서 애슬레틱스가, 정확히는 데이비드 포스트가 조금 양아치 짓을 했어요.]
양아치 짓이라는 말에 다운이 농담조로 던졌다.
“혹시 계약 안하면 메이저리그 데뷔 늦어질수도 있다고 한거야?”
[어?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그게 맞아버렸다. 다운이 말도 안된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진짜 그런 말을 했다고?”
[네.]
“그걸 빌리가 안 말렸고? 아니 애초에 빌리는 중간에 어디로 가고 거길 데이비드 포스트가 맡았대?”
[지금 빌리가 어디있는지 생각을 해봐요.]
“아······”
빌리 빈은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오클랜드와의 오랜 동행을 끝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레드삭스의 구단주이자 리버풀 FC의 구단주인 존 헨리가 그를 리버풀의 경영 사장으로 앉힌 것이었다.
[당시 빌리는 계속된 존 헨리의 제안에 마음이 거의 넘어갔을 때라서 데이비드 포스트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슬슬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기 시작하고 있었대요. 그래서 첫 제안 이후에 4월의 두 번째 제안, 6월의 세 번째 제안, 8월의 마지막 제안은 모두 포스트가 담당했고요.]
“그리고 거기서 포스트가 똥을 싸질렀던거구만.”
[홧김에 나온 말이라는걸 서로 알고는 있었대요. 에스코바는 계속된 협상에도 1억 달러에서 한 푼도 깎지 않으려고 했으니까요.]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구단측에서는 세 차례나 금액을 올려서 제안을 했는데, 선수측에서는 먼저 연장계약을 제안해놓고도 1억 달러에서 꼼짝도 안하니 단장 입장에서는 화가 났을수도 있다.
하지만 단장이라면, 정말 그와 연장계약을 할 생각이 있다면, 홧김에라도 ‘계약 못하면 메이저리그 데뷔는 힘들 줄 알아!’라는 말은 했으면 안됐다.
[그 뒤로는······]
“뻔한 이야기겠네. 마음이 상할대로 상해서 서로 엄청나게 틀어졌겠지.”
[다른 정보통을 통해 들은건데, 에스코바도 열받아서는 ‘내가 애슬레틱스에서 데뷔하면 절대 최선을 다해 뛰지 않겠다!’라고 질렀다더라고요.]
“휘유~ 개판이네.”
[애슬레틱스에서도 일이 상당히 꼬였다는걸 눈치챘지만 포스트에게는 어떤 제재도 가해지지 않았어요.]
그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드가 다른 일은 은근히 잘하니까.”
[은근히가 아니죠. 아주 잘하죠.]
빌리 빈이라는 거물의 뒤를 이어서 큰 잡음없이 단장직을 수행한다는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포스트는 성공적으로 빌리 빈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어지간히 일을 해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여튼 두 사람 사이에서 그 뒤로 엄청난 신경전이 있었고, 그건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죠. 사과하고 함께 나아갈 수도 있긴 하겠지만······]
“쉽지 않겠지. 포스트의 머리 속에는 항상 ‘애슬레틱스에서는 최선을 다해 뛰지 않겠다.’고 말한 에스코바의 말이 멤돌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지난 시즌 데뷔 예정이라던 에스코바가 한 차례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던 것일수도 있다.
“재미있네.”
메이저리그란 알면 알수록 참 재미있는 동네다.
[이 정도 정보면 충분하죠?]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언제 딜 시작할까?”
< 101화 - 언제 시작할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