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99화 (99/268)

< 99화 - 탬파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3) >

숨이 턱 막힌다.

바텐더도 놀랐는지 빈 잔에 술을 따라주던 손길이 멈칫한다.

팅~

버크먼이 잔을 쳐 계속해서 따르라는 표시를 했다.

“잠깐만요! 암이라면서요! 술을 그렇게 마셔도 돼요?”

“원한다면 치료해줄 병원을 찾을수는 있는데 이미 전이될대로 전이돼서 완벽한 치료는 불가능할거라더라. 뭐해 피터. 계속 따라줘.”

쪼르륵

잔에 따라지는 위스키를 보고있는 버크먼에게 다운이 역정을 냈다.

“그래도 치료는 해봐야죠! 아니 일단 그 확진낸 사람 돌팔이 아니에요?”

“24년지기 절친이자 내 주치의가 한 말이야.”

“마이크가요?”

“그래. 병원에서도 같은 진단 받았고. 방법이 없다는데 뭐 어쩌겠냐. 먹고싶은거 잔뜩먹고, 하고싶은거 하다가 가려고 생각중이지.”

기억을 되돌려보니 대략 한 9개월 정도 전부터 회사를 정리하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버크먼이 없더라도 회사가 돌아가는 구조로 말이다. 하지만 버크먼의 꿈이 단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다운은, 그것이 단장으로 부임하더라도 회사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했다.

“9개월 전이에요?”

다른 수식어가 없어도 버크먼은 그것이 진단을 받은 날짜라는걸 묻는다는걸 알았다. 버크먼은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큭큭! 근데 마이크 이 놈 약간 돌팔이인 것 같긴 해. 9개월 전에도 나한테 6개월 남았다고 했거든? 근데 얼마 전에도 6개월 정도 남았다고 하더라고.”

“병세가 악화된건 없대요?”

“없대. 하고싶은대로 사니까 오히려 스트레스도 안 받고, 더 건강이 좋아지는 느낌이야. 하하!”

그 뒤로 병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해봤자 바뀌는게 없다는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일거다.

“내가 아까 하고 싶은거 잔뜩 하다가 간다고 했지?”

“그랬죠.”

“근데 단장직은 못하게 되겠더라. 그게 정말 내 꿈이었는데 말이야.”

앞에 놓은 잔을 한 번 더 비운 그가 살짝은 알딸딸한 눈으로 다운을 바라봤다.

“내가 너한테 단장제안이 왔을 때 왜 보내줬겠어? 너 같이 선수보는 눈 좋고, 협상력도 있고, 적당히 뻔뻔한 일 잘하는 에이전트를 내가? 왜? 넌 인마. 내 꿈을 대신 해주고 있는거야. 네가 지금 욕하고 힘들어하는 그 자리는 내가 하고 싶어도 못하는 자리라고. 지금은 힘들지만 미래의 너 조차도 가지지 못할 자리일 수 있어. 그런데 다른 사람의 눈치 때문에 네가 해보고싶은 것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우울해 있기만 할거냐? 정다운이 언제부터 그렇게 남의 눈치를 보는 놈이었어? 조나 파인트 내 앞에 데려다놓고 ‘얘는 된다. 무조건 얘 우리가 맡아야한다! 지원해줄 수 있을만큼 지원해주자!’라고 말하던 패기 넘치던 애송이 에이전트는 어디간거야?”

“그때는 애송이라······”

“지금도 애송이잖아. 애송이 단장. 애송이는 뭘 해도 돼. 그 당시에야 욕을 들어먹겠지. ‘애송이가 하는 짓이 다 그렇지!’라면서. 하지만 나중에 그 모든 것은 결과로 평가받을거야. 네가 아무것도 안하면, 정말로 엿같은 단장이라는 평가를 받겠지. 하지만 네가 뭔가를 열심히 하면, 어디에선가 싹이 터서 네 평가를 달리만들어줄거다. 할 수 있을 때 네가 하고싶은 걸 해. 지금이 아니면 못할지도 모르잖아. 그 매력적인 직업을 가지고 남의 눈치 때문에, 네 생각도 모르는 팬들의 평가 때문에 아무것도 안하고 우울하게 보내는건 아니라고 본다.”

다시 한 잔을 비운 버크먼이 다운의 등을 두드렸다.

“다운. 네가 해야한다고 믿는 일이면 끝까지 밀어붙여. 자신을 믿고 굳게 밀고 나가. 그러면 평가는 몇 년 뒤의 팬들이, 그리고 몇 년 뒤의 너 자신이 해줄거야.”

***

“만약 해리가 없었다면 양키스에서 저는 축 쳐진채 지냈을거에요.”

꿈을 안고 들어간 양키스에서 그렇게 지원을받지 못할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

리빌딩의 성공? 재계약?

그것도 의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버크먼의 저 말이 없었다면 의욕이 없는 다운은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해리는 제가 단장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은인이나 다를바 없어요. 만약 해리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전 제대로 된 성과도 못내고 스타인브레너가 시키는대로 선수 방출이나 시키다가, 같이 손잡고 방출당했겠죠. 선수들을 발굴해내지 못했으니 당연히 지금과 같은 평가도 받지 못했을거고 잊혀졌을겁니다.”

다운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패닝턴이 붉어진 눈으로 물었다.

“그 버크먼이라는 분은 어떻게 되셨어요?”

“1년 정도 건강하게 하고싶은대로 하고 사시다가,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서 돌아가셨어요.”

“유감이에요.”

“괜찮아요. 이미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여튼 그 뒤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팀을 바꿔나가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도록 리빌딩이라는 목표를 딱 정해두고 뚝심있게 밀고나갔죠.”

“그게 지금의 양키스였던거네요.”

“지금의 양키스는 대런이 마무리한거고, 저는 그 기반만 다진거죠.”

“결국 다운이 없었다면 대런이 그렇게 마음편하게 팀을 만들지는 못했을거잖아요.”

패닝턴의 말에 다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제가 생각한 팀은 아니니까요. 제가 해임된 이후의 양키스는 알 바 아닙니다. 지금의 레이스가 제 팀이죠.”

양키스는 다른 사람의 손을 탔지만, 레이스는 온전히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다운은 양키스 선수단보다 레이스 선수단에게 더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스칼렛도 팀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겠다는 목표를 정했다면, 다른 사람의 눈치따윈 보지말고 더 과감하게 행동하세요. 결국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의 팬들이나 스칼렛이 하는게 아니라 시간이 지난 다음의 팬들과 스칼렛이 해줄테니까요.”

진심어린 다운의 말에 패닝턴이 살풋이 웃었다.

“조언 고마워요. 꼭 그렇게 할게요.”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네요.”

“너무 큰 도움이 됐어요. 저한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대런이랑 친분이 있다면서요?”

“친분이 있는 정도지 대런은 ‘그런거에 신경쓴다고? 아직 여유롭구만?’이랬을걸요?”

저 대사와 더불에 대런이 어떤 표정과 행동을 할지가 눈 앞에 선했다.

“하하! 전형적인 대런이네요.”

“말투부터 표정까지 완전 똑같았던것 같은데?”

“배우 하셔도 되겠는걸요?”

대런을 돌려까다보니 어느새 공항에 거의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 승객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잠시 후 탬파 국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좌석벨트를 매주시고 창문 커튼은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좌석 등받이와 테이블, 발받침을 원래 위치로 해주시고, 꺼내 놓으신 짐들은 다시 선반과 좌석 아래에 놓아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왔네요.”

“저야말로 재밌었어요. 다운이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인줄 알았다면 더 빨리 친해졌을텐데 말이죠.”

패닝턴은 너무 이르게 헤어지게 되는 것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비행기가 착륙한 뒤 다운에게 물었다.

“혹시 저녁에 바쁘세요?”

“단장의 일상이 어떤지는 아시잖아요? 가서 팀을 업그레이드 할 건덕지가 있는지 찾아 헤매겠죠?”

“저녁식사라도 하실래요?”

“대런이랑 식사약속 있는거 아니었어요?”

“대런이나 저나 집안 사정 때문에 만나기만 하는거지 밥 먹을 생각은 없는걸요? 아마 커피 한 잔 하고 헤어질 것 같은데······”

“아쉽지만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네요. 저희 캠프가 탬파에 있는게 아니라서요.”

레이스의 스프링 트레이닝은 탬파에서 2시간 정도 더 가야 있는 포트 샬럿에 위치했다.

“잠깐 프런트에 들러서 회의하고 또 바로 포트 샬럿에 가야하거든요.”

“그럼 나중에 원정 오시면 저녁 같이 하시는 건······”

“그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번 시즌 저희랑 경기가······”

일정을 찾아본 다운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저희 홈에서 먼저 경기가 있네요. 제가 저녁 한 끼 대접하겠습니다.”

다운의 말에 패닝턴이 눈을 반짝였다.

“그거 무르기 없기에요!”

“하하! 직접 온 단장을 대접하는 것도 단장의 의무 중 하나인데 제가 어떻게 무르겠습니까?”

다운의 말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패닝턴의 얼굴에 심통이 들어찼다. 하지만 그녀도 단장은 단장인지 곧 표정을 가다듬었다.

“5월 12일 딱 적어놨어요. 그러니 일 빼놓으세요.”

“하하! 그럴게요.”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어느새 옆에 다가온 미키가 다운의 옆에 들러붙었다.

“모르는 척 안해도 되겠는데요?”

저렇게 알아서 사라져주는데 모르는 척을 할 필요가 있나 싶긴하다.

“그래도 공항 나갈때까지는 조심하자고. 같은 비행기에서 내렸다는걸 걸리면 우리가 왜 갔는지 유추해내기 너무 쉬우니까.”

“차는 어떻게 할까요?”

“두 분이서 타고 오세요. 저는 택시타고 갈테니까.”

“알겠습니다.”

다운은 두 사람과 헤어진 뒤 택시에 올랐다.

“트로피카나 필드로 가주세요.”

택시에 오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대런이다.

“어 대런. 무슨 일이야.”

[다운. 사람을 화나게 하는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거 알아요?]

“그거 내가 가르쳐준거잖아. 첫 번째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 그래서 그렇게 할 말만 하시고 폰을 꺼두신거였구나. 내가 그걸 몰랐네?]

이제 보니 부재중 전화도 다섯 통이 와 있었고 메시지 역시 미친듯이 와있었다.

“어유······ 무슨 이렇게 보냈어.”

[아니 그래서 그 정보는 어디서 얻었냐니까요?]

“탬파 오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스칼렛이었어. 비행기어서 답 못했던거고.”

[젠장할! 그렇게 말해주면 되는걸!]

“이륙한다고 폰 끄라는데 어떡하냐. 거 미안하게 됐다.”

[······ 전혀 미안한 말투가 아닌데요?]

“들켰냐?”

수화기가 멀어지고 잠깐 욕설이 들렸던 것 같다.

[스칼렛은요?]

“공항에서 헤어졌지. 근데 소개팅이라니. 네 취향 아니잖아. 너 약간 근육 취향이었잖아.”

[집에서 하라는데 만나긴 해야죠.]

“너도 참 힘들게 산다.”

다운의 말에 대런의 목소리가 순간 바뀌었다.

[그거 아시면 일 하나 하지 않을래요?]

은근히 자신을 꼬시는 듯한 목소리. 이럴때마다 대런은 꼭 재미있는 일거리를 들고오곤 했다.

다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나 지금 택시 안이야.”

[언제 시간돼요?]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니 세 시를 살짝 지나가고 있었다.

“세 시 반에 프런트 회의있어.”

[지금 홈에 남아있을 프런트는 재무 쪽이랑 구장, 그리고 마케팅 쪽일테니까······ 대략 여섯 시 정도면 마치겠네요.]

“그리고 곧바로 포트 샬럿으로 쏠 예정이지.”

[도착해서 저녁먹고 숙소 들어가면······ 적당히 열 시쯤 다시 전화할게요. 그때쯤 괜찮죠?]

“네가 어떤 패를 들고왔냐에 따라 다르겠지?”

다운이 결국 대런을 미워할 수 없는건 함께한 세월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야 유망주 필요하지 않아요? 특히 서머스 대안을 맡아줄 3루 쪽 유망주가 부족한 걸로 아는데······]

대런 이 요망한 놈.

“10시에 보자.”

< 99화 - 탬파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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