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탬파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2) >
“저는 다운하고 다르게 시작부터 욕먹고 있잖아요.”
“조엘 마치 문제 때문에요?”
“네.”
패닝턴은 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팀의 오랜 프랜차이즈였던 조엘 마치가 은퇴했다. 문제는 그가 디백스와 아름답게 이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가, 혹은 디백스가 좋을때나 나쁠때나, 지난 16년 동안 저를 응원해주신 디백스 팬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오늘로 물러납니다. 디백스 여러분께 우승을 안겨주겠다는 다짐을 실현시키지 못한 채로 이렇게 은퇴하게 되어서 너무 아쉽습니다.”
의례적인 말로 은퇴 기자회견을 시작한 그는 곧 눈물과 함께 폭탄을 터트렸다.
“크흡! 저는 제가 더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팀에서는 이제 제가 뛸 자리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구단에서는 트레이드를 하겠다고 했는데, 저에게는 언제나 디백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될 바에는 은퇴를 하겠다고 한것이고요.”
“누가 그 은퇴를 종용했죠?”
“새로온 단장님이 그랬습니다.”
2022년, 즉 36세 시즌에 디백스 타선에서 유일하게 20홈런을 넘긴데다가 2할 중후반의 타율을 유지해주고 있는 1루수. 심지어 23 시즌부터는 내셔널리그에도 지명타자가 도입될 예정이라 지명타자 자리에는 그를 넣으면 될 것이라고 팬들은 예상하고 있었다.
연 2800만 달러라는 금액의 계약이 아직 3년이나 남아있었으니까 그가 은퇴할 것이라는 선택지는 팬들의 머리에는 없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은퇴라니.
팀을 위해 16년간 헌신한 프랜차이즈 스타의 눈물의 은퇴에 모든 비난의 화살은 이 사태를 만들어낸 신임 단장, 스칼렛 패닝턴에게 돌아갔다.
“저는 제 선택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마치의 최근 5년간의 성적을 생각해보면 그는 완연한 하락세에 접어든 선수였고, 원하는 팀이 있을 때 재빨리 해치워야하는 그런 선수였거든요. 연 2800만 달러라는 금액은 저희에게는 너무 부담되는 금액이기도 했고요. 조엘을 시작으로 다른 고액 연봉자들도 처리하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이렇게 어그러지니까 너무 소심해지게 되더라고요.”
변명하듯이 이야기하는 페닝턴에게 다운은 그러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요 패닝턴 양.”
“스칼렛이라고 불러주실래요?”
“그러죠 스칼렛. 그를 보낸 이유가 뭐였어요?”
“리빌딩을 위해서죠.”
패닝턴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다운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저는 스칼렛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팬들은 싫어하더라고요?”
“팬들이 원하는대로만 하는 사람이 단장이었다면, 굳이 돈을 줘가면서까지 단장을 둬야할 이유가 없죠. 그럴거면 공개적으로 투표를 해서 팬들의 의사를 묻는것과 다를게 없으니까요.”
신랄한 다운의 말에 패닝턴의 고개가 더욱 가라앉았다.
“저라면······ 우선 팀을 위해 헌신해준 마치에게 ‘이런 엔딩을 만들어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시에 저희 팀의 방향에 대해 제시를 해줬을겁니다. 디백스가 있는 NL 서부에는 다저스와 자이언츠라는 강팀이 있죠. 그리고 최근 급부상하기 시작한 파드레스도 있고요. 디백스가 어정쩡한 스탠스로 리툴링을 노리기에는 그 세 개의 산이 너무 크죠. 리툴링을 하면 당장에 투자를 하는 것 같아보일수도 있지만, 그건 의미없는 투자가 될겁니다. 이 기간동안에 아낀 돈을 어디에 투자했는지, 그리고 후일을 위해 얼마나 아껴놨는지를 어느정도 공개를 하면서 팬들에게 기대감을 버리지 않도록 했겠죠.”
“미끼를 계속해서 눈앞에 흔들면서 시간을 버는거네요.”
“그렇죠. 괜찮은 유망주가 나오거나, 다저스, 자이언츠, 파드레스 중에서 침체기를 겪는 팀이 나오면 곧바로 참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놓는다고하면 팬들도 어느정도 납득을 했을겁니다.”
“그럼 제 대처가 잘못됐었던거네요.”
“네.”
단호해 보일수도 있지만 다운은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만 듣고싶으셨으면 다른 일을 하시다가 차기 구단주가 되어서 열심히 돈을 써서 구단을 지원했으면 됐을겁니다. 아니면 스타인브레너가 저에게 그랬던것처럼 욕받이 한 명을 세워놓는것도 나쁘지 않았을거고요.”
당하는 입장에서야 기분이 나빴지만, 만약 자신이 대런의 아버지였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았다. 물론 양심상 미리 말해주는 선에서 말이다.
“그건 싫었어요······”
“원하는 사람은 많았을텐데요.”
선수들을 내보내야하는 의무를 가진 단장자리라고 할지라도 메이저리그의 팬이라면 단장이라는 이 매력적인 자리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저희 집안은 북동부에 있는 어떤 집안이랑 달라서 사람을 부품처럼 취급하는 그런 집안이 아니거든요.”
“그건 괜찮네요.”
다운은 페닝턴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예전의 일을 꺼내주기로 했다.
“제가 예전에 처음 단장이 되었을 때 말이죠. 저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어요.”
“진짜요?”
“당연하죠. 스칼렛은 예비 욕받이들에게 어떤 일들을 해야하는지 알려줬다고 했잖아요? 저는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를 모른채 단장이 됐어요. ‘내가 양키스의 단장이 되었다고!’이러면서 좋아만 하고 있었죠.”
“지원도 빵빵하게 받을 줄 알았겠네요?”
“당연하죠. 양키스잖아요! 지원 제대로 받고, 에이전시에서 길러온 안목으로 선수들을 잘 뽑아 키우면 양키스의 성공시대를 열어낼 수 있겠다 싶었죠. 프리드먼이나 앱스타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양키스 지분도 좀 받을 수 있으면 더할나위 없었을거고요.”
“꿈에 부풀어있었겠네요.”
“누구나 소년이던 시절이 있는 법이니까요.”
다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꿈에 부풀어있던 와중에 구단주가 절 부르더라고요. 그리고 ‘쟤네 다 쳐내!’라고하는데 어찌나 억장이 무너지던지······ 양키스 팬덤이 그냥 팬덤인가요? 하나하나 쳐낼때마다 욕은 또 오지게 들어먹습니다. 진짜 그때는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니까요?”
과장된 다운의 표정에 패닝턴이 풋하고 웃었다.
“저하고 상황이 너무 다른데요? 그래도 저는 제가 리빌딩을 해야겠다고 결심한거니까요.”
“그러니 마음 굳게 먹으세요. 그 길은 스칼렛이 직접 택한거잖아요. 팬들의 시선에 하나하나 신경쓰다보면 결국 스칼렛은 이도저도 아닌 단장으로 남을거에요. 그리고 스칼렛이 있는 동안 디백스는 갈 길을 잃어버리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몇 시즌을 날려버리게 되겠죠. 그러니 마음 굳게 먹고 하려고 했던 그대로 쭈욱 밀고 나가요. 그게 단장이 할 일입니다.”
“만약 잘 안되면 어떡하죠?”
“저희 일이라는게 금방 결과가 드러나는게 아니잖아요? 양키스 재임 당시 제 별명이 뭐였는지 아시잖아요.”
Down Jung
“당시 모든 사람들이 저보고 양키스를 수렁에 빠트린 악마라고 했어요. 저는 그저 제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어떻죠?”
“양키스의 과도한 페이롤을 깎아내고 앤드류 켈리를 비롯한 수많은 유망주들을 발굴해내 2022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반을 만들어낸 단장.”
낯부끄럽긴 하지만, 틀린말은 하나도 없었다. 당시 다운이 발굴해낸 선수들이 없었다면? 페이롤을 리셋시켜놓지 않았다면?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의 영광은 없었을수도, 그게 아니더라도 미뤄졌을 확률이 높았다.
“당장은 욕을 많이 들어먹을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단장이 마음을 굳게 먹지 못한다면 디백스는 더 힘들어질거에요. 스칼렛이 생각하기에 이게 꼭 해야하는 일이라면 자신을 믿고 굳게 밀고 나가세요. 그러면 평가는 몇 년 뒤의 팬들이, 그리고 몇 년 뒤의 나 자신이 해줄겁니다.”
다운의 말에 패닝턴이 감동받았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거 지금 생각한 말 아니죠?”
그녀의 말에 다운이 웃었다.
“하하! 글쎄요?”
***
다운이 이제 막 양키스 단장에 부임했을 때, 다운은 우울함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 Down Jung Out!
- 양키스의 암세포 GM 정은 나가라!
- 꼴지만 하는 팀은 양키스가 아니다!
그 시절에는 어딜 가나 자신을 욕하는 글을 만나볼 수 있었고, 누굴 만나도 욕을 먹을 시절이었다.
그러면서도 프런트에 가서는 또 아무렇지 않은 척, 강한 척을 해야만 했다. 양키스라는 공룡구단 내부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물어뜯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마음 터 놓고 이야기할 사람조차 없었다. 이제 막 뉴욕에 온지 3개월 지난 사람에게 누가 있었겠는가.
‘이래서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는건가?’
돌이켜보면 그 시절만큼 정다운이라는 사람이 우울했던 적이 없었다.
다행이라면 만날 사람이 한 명은 있었다는 점이다. 다운이 에이전시에 재직할 당시 대표이자 사수였던 해리 버크먼이 말이다.
“단장이 이렇게 에이전트랑 같이 밥 먹어도 돼?”
“어차피 욕만 들어먹는 단장인데 욕 하나 추가된다고 달라질게 있겠어요?”
“너 누구야? 내가 알던 자신감 넘치던 재수없는 정다운은 어디갔어?”
“그 정다운은 죽었어요.”
술을 들이키는 다운을 보며 버크먼이 눈살을 찌푸렸다.
“······ 요즘 많이 힘드냐?”
“더럽게 힘들죠. 세상 사람들이 다 제 적 같아요.”
“구단주가 지원은? 안해줘?”
“해줬으면 이렇게 있겠습니까? 무슨 바지사장도 아니고, 할 수 있는거라고는 방출 밖에 없어요. 드래프트도 스카우트 파벌별로 기회 줘야하는거 알아요? 참나. 무슨 내 맘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어! 이럴 줄 알았으면 계속 에이전트 하는건데······”
버크먼은 많은 말을 하는 대신 다운의 옆에서 같이 잔을 기울이며 푸념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술이 어느정도 올라왔을 때 쯤 그가 다운에게 말했다.
“다운.”
“왜요.”
“난 네가 부럽다.”
“갑자기요?”
“내 꿈이 단장이었다는건 알잖아?”
“알죠. 근데 잘 안돼서 에이전시를 시작했고, 지금은 잘 됐잖아요.”
버크먼이 대표로 있는 HB 에이전시는 작지만 내실있는 그런 에이전시다. 대중에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협상력도 준수해서 선수들 사이에서는 나름 알짜배기 에이전시로 입소문이 퍼져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일이 끊이지 않았다.
“단장 제안 받은적 있었잖아요.”
버크먼이 에이전시를 연지 2년 쯤 됐을 때, 그는 단장직을 제안받은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따라와준 에이전트들과 고객들을 버릴수는 없었기에 버크먼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회사도 안정되고 커졌으니까 이제 대표직 넘겨주고 단장 하시면 되잖아요. 양키스 놈들처럼 욕받이 시키려는거 아니면 다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요.”
다운의 말에 버크먼은 알듯모를듯한 미소와 함께 잔을 비웠다.
“6개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간이 버크먼의 입에서 나왔다.
“6개월요?”
다운의 되물음에 바텐더가 채워놓은 잔을 다시금 비웠다.
“크으······ 6개월 남았단다.”
회사 재정이? 계약이? 뭐가?
순간 취기에 휩쌓인 다운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 와중에도 가장 유력한, 그리고 쎄한 기분이 드는 단어만큼은 외면하려고 했다.
“······ 뭐가요?”
어느덧 차분해진 다운의 목소리 아래로 버크먼의 목소리가 깔렸다.
“췌장암 4기란다.”
< 98화 - 탬파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