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메이슨 스탠하우스(2) >
타겟이 정해졌으면 움직이는게 인지상정. 다운은 곧바로 미키와 거스를 데리고 로드 아일랜드로 날아갔다.
“북동부는 도저히 평가가 좋을 수가 없네 없어.”
3월의 북동부는 아직 춥다. 눈으로 덮여있는 곳도 있으니 야구를 하기에 썩 좋은 날씨라고는 할 수 없었다. 선수들의 몸은 굳어있고, 궂은 날씨로 인해서 경기 수도 따뜻한 지역에 비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에 대한 평가는 자연스레 박해질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뛰는건지······”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열심히 경기를 하고 있었다. 드래프트를 앞둔 지금 시점에서의 경기력이 중요하기에 춥다해서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저 친구인가?”
“네.”
스탠하우스에 대한 첫 인상은
“크네.”
“2미터 가까운 키니까요.”
“거기다 단단하고.”
“부상당하지 않기 위해서 엄청나게 관리를 한다더라고요.”
크고 단단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저 체구로 어떻게 그 스피드가 나오지?”
“혹시 약이라도 했나?”
합리적인 의심이다. 하지만 미키의 말에 곧 그 의심은 사라졌다.
“저 가정형편에 약을요?”
“아, 그렇네.”
안그래도 가정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다. 약물을 투입할 정도의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도 이슈는 만들고 싶지 않았을거고.
따아아악!
“휘유~ 저 친구 좋네.”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공을 본 거스는 곧바로 합격점을 때렸다.
“아빠는 너무 바로 결정하는거 아니에요?”
“타구 소리가 다르잖아. 방금 그거 커브였지? 그런데 완벽하게 걷어올렸어. 아예 기다렸다가 후려갈긴 그런 소리였단 말이야.”
“빠른 공을 못 때리면 어떡해요?”
“그런 애였다면 네가 데려오지도 않았을거고, 북동부라고는 하지만 4할이 넘어가는 타율을 기록할 수는 없었겠지.”
다운도 거스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하체가 안정적이고 스윙도 간결하네요. 자기 자신한테 파워가 있다는걸 알아서인지 최대한 간결하고 컨택에 집중하는 스윙이에요.”
“어차피 잘 맞으면 넘어가니까요.”
“그리고 빅사이즈 외야수들의 최대 단점인 부상 역시 많이 생각한 것 같네요. 스윙이 아주 부드러워요. 몸도 유연한 것 같고.”
스윙이 딱딱한 빅사이즈 외야수들은 부상에 시달리곤한다. 마치 그들이 가진 힘을 몸이 다 소화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스탠하우스의 스윙에서는 그런 딱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 부상당하지 않게 관리를 한다고 설명드렸잖아요. 그 일환으로 유연성 훈련도 계속해서 한답니다. 단단하기만 한 근육은 깨지기 마련이니까요.”
“똑똑한 친구네.”
“관리를 해야 오래 돈을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걸 아는거죠.”
“높은 공에는 조금 약한 것 같긴 하지만, 존 설정도 꽤 잘하는 것 같아 보이네.”
타자의 키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이 설정되다보니 키가 큰 스탠하우스는 다른 사람보다 존이 크다.
“아예 높은 코스와 아예 낮은 코스에는 아직까지 약점이 있어요.”
“아까 보니까 그 공에 스트라이크를 먹더라고 스윙도 안하고.”
“그게 더 낫지 않습니까?”
“훨씬 낫죠.”
괜히 익숙하지 않은 약점에 끌려다니는 스윙을 하는 선수보다는, 자기만의 존을 가지고 스윙을 할 줄 아는 선수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뒤이어 보여준 수비 역시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토켈슨 같네요.”
마치 에인절스의 마이크 토켈슨과 같은 짐승의 향기가 느껴지는 수비라고 해야하나? 그러고보니 몸도 비슷하다. 토켈슨보다 조금 더 크긴 하지만 느낌이 굉장히 비슷하다.
“그 친구도 북동부 출신 아닌가?”
“뉴저지 출신일걸요.”
“뉴저지 맞아요. 북동부의 편견을 깬 선수중 하나죠.”
“그런데 그 뒤에 또 북동부 출신 괜찮은 애가 안나왔지 않아요?”
“안나왔지. 그래서 또 지금 평가가 바닥을 치고 있는거고.”
여튼 왜 미키와 로벨이 그런 높은 점수를 줘 가면서까지 추천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보러올만도 한데 말이지······ 안그렇습니까 단장님?”
주위를 둘러봐도 세 사람을 제외한 다른 구단 관계자들은 코빼기도 안보였다.
“스카우트들이 눈이 삐었나······”
거스의 말에 다운이 몸을 울타리에 기대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건 아닐거에요. 아마 적당히 관찰하고 돌아갔을겁니다.”
“저 정도 되는 선수라면 계속해서 크로스체크를 했을 것 같은데······”
실력이 저 정도인데 가족사항이라던가 다른 부분들을 체크하지 않았을리가 없다. 분명 다른 구단들도 어느정도 그와 그의 가족들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탠하우스가 이렇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따.
“저희 구단이나 그렇죠. 다른 구단 입장에서는 너무 리스크가 큰 픽이에요. 미식축구를 같이한다는 점이 너무 리스크가 커요.”
다운의 말에 거스가 ‘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최근 NFL에 뺏긴 1라운더가 몇이나 되는지 아시죠?”
“열 명이었죠.”
2018년 애슬레틱스가 1라운드 9번인 카일러 머레이를 지명한 것을 시작으로 한동안 야구계에는 미식축구를 겸하는 선수들을 뽑는 붐이 일었었다. 하지만 이는 곧 사그라들었다.
머레이를 필두로 대학출신 네 명이 1라운드에 뽑혔는데 그들 모두 겸업을 하다가 NFL 드래프트 이후 그쪽으로 전환했다.
그 뒤로 미식축구를 겸하기 전의 고등학생을 노려보자는 식으로 여섯 명이 더 1라운드에 뽑혔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계약을 거부하고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2020년 드래프트에서 사고가 터졌다.
전체 1번 지명권을 이용해서 뽑은 선수가 야구보다는 대학 진학을 택하겠다면서 계약을 거부한 것이다.
“그건 좀 충격적이었죠. 전체 1번으로 지명을 받았는데도 계약을 거부하고 대학을 가버렸으니.”
“타이거스는 황당했을걸. 840만 달러나 되는 사이닝보너스라면 분명 잡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을테니까.”
하지만 그는 계약을 단칼에 거절했다. 타이거스에서 제발 계약을 해달라고 했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메이저리그의 자존심은 NFL을 꿈꾸는 한 어린 고졸 선수에게 짓밟혔다.
워낙에 유명했던 놈이라 이름도 기억이 난다.
“톰 래디츠였지 이름이?”
야구계가 미식축구에게 짓밟힌 바로 그 다음부터 메이저리그에는 암묵적인 권장사항이 생겼다.
“미식축구를 하는 놈은 절대 5라운드 안쪽에서 뽑지 말아라. 언제 뒤통수를 칠 지 모르니까.”
그래서 2021년과 2022년의 드래프트에서는 미식축구와 관련된 선수가 5라운드 안에 한 명을 제외하곤 없었다. 한 명이 3라운드에서 뽑혔는데, 뒤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미식축구를 포기하겠다는 확답을 듣고 나서야 3라운드에서 뽑았다고 했다.
미식축구를 겸하는 선수에 대한 야구계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워낙에 적대적이다보니 스탠하우스에 대한 관심도는 자연적으로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래디츠는 어떻게 됐는지 알아?”
그 뒤로 신기할정도로 이름이 들리지 않았다.
“야구계 전체를 물먹이고 대학가서 부상당한 뒤로 사라졌죠.”
어린 친구가 부상을 당했다는 말에도 안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것은 역시나 다운 역시 야구계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경기가 끝났다.
“자리는 잡아놨어?”
“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몰래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설마 그 자리가 밴은 아니겠지?”
거스의 질문에 미키가 살풋이 웃었다.
“우리 아빠. 아직 눈치는 빠르시단 말이지?”
거스의 미간이 팍 찌부려졌다.
“어쩐지 밴을 빌렸더라. 이왕 하는거 카페나 식당 가면 안되나? 요즘 프라이빗 한 곳도 많더만. 가족들 데리고 가서 식사 한끼 하면서 이야기하면 되겠구만.”
“그러면 애가 부담스러워해요.”
“나때는 다 그랬는데 뭘 부담이야.”
“은근히 자존심도 강한 친구라서 분명 거절할거에요. 밴에서의 자리도 만들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이렇게 하는게 탬퍼링은 아니냐면서 계속해서 거절했다고요. 우리가 1라운드에 널 뽑기에 앞서서 너에게 확인 받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하지 않았으면 이 자리도 없었을거에요.”
미키는 두 사람의 등을 밀었다.
“어서 밴으로 갑시다!”
밴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을 때, 미키의 폰이 울렸다.
“메이슨? 주차장으로 오면 검정 밴이 있을거야. 보이지? 맞아. 거기로 오면 돼.”
잠시 후 밴의 옆 문이 열렸다.
“어?”
열린 문 안에 이야기를 나눴던 미키가 아니라 다운이 나타나자 당황했는지 스탠하우스가 살짝 멈칫하는게 보였다.
살짝 굳어있는 그를 보고는 앞좌석에 타있던 미키가 뒤를 돌아보며 손짓했다.
“메이슨 어서 타!”
익숙한 얼굴과 목소리가 들려오자 스탠하우스는 굳어있던 발을 옮겨 밴에 올라탔다.
2미터에 가까운 그가 들어오자 넓직하던 밴 뒷자리가 꽉꽉 채워졌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는 듯 하던 스탠하우스는 다운이 결정권자라는걸 알아차렸는지, 다운을 향해 자기소개를 했다.
“처음뵙겠습니다. 외야수 메이슨 스탠하우스입니다.”
“반가워. 레이스 단장 정다운이야.”
단장이라는 말에 스탠하우스는 놀라서 몸을 세웠다.
쿵!
“악!”
세웠다가 천장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괜찮아?”
“쓰읍······ 네. 자주 있는 일이라······”
얼마나 키가 커야 이 넓은 밴의 천장에서 머리를 박을 수 있는건지······
“근데 진짜 단장님이세요?”
“그럼 가짜겠어? 검색해보면 바로 나올걸?”
“잠시만요.”
하란다고 또 바로 검색을 하는 스탠하우스. 다운의 얼굴이 나왔는지, 폰과 다운을 번갈아보던 그의 입이 커졌다.
“Holy moly······”
“단장이 직접온게 그렇게 충격적이야?”
“네. 드래프티 커뮤니티에서 스카우트 팀장이나 팜 디렉터, 운영 파트장까지 만나봤다는 이야기는 들었거든요.”
요즘 애들은 참 정보가 빠르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커뮤니티가 있었다니.
“혹시나 몰라서 하는 이야긴데, 우리 이야기가 어떻게 되든, 단장이 찾아왔다는건 빼줬으면 좋겠네.”
“물론이죠.”
다운은 자신의 품에 있는 녹음기를 툭툭 쳤다.
“이거 녹음됐으니까 나중에 혹여라도 정보 풀리면 너한테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다. 절대 이야기하면 안된다.”
스탠하우스는 입에 지퍼를 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좀 건설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미키가 어디까지 말했지?”
“최근 미식축구를 겸하는 선수를 선호하지 않는 트렌드지만, 레이스에서는 저를 1라운드에 뽑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어요.”
“그걸 언제 들었지?”
“4일 정도 전에요.”
“그 사이에 궁금해진거라도 있어? 혹시 있으면 내가 친절히 잘 답해줄 수 있는데.”
다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탠하우스가 물었다.
“레이스 1라운드 픽이라면 돈은 어느정도 받을 수 있나요?”
역시 돈이 가장 문제였다.
“우리가 이번에 가진 지명권은 23순위야. 올 시즌 여기에 배정된 슬롯머니는 300만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이야. 정확하게는 3,029,000 달러.”
“세전인가요?”
“세전이지. 하지만 레이스는 주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 플로리다에 위치하고 있거든. 슬롯머니 상으로 10번 지명권과 비슷한 수준의 현금을 받을 수 있을거야.”
다운의 말에 그가 이것저것을 계산해보기 시작했다. 화면을 살짝 훔쳐보니 대출할 수 있는 돈이라던가 생활비를 대략적으로 추산해놓은 것들, 그리고 심지어는 부상을 당했을 시 그에 따른 대출금를 어떻게 갚을지에 대한 것까지도 적혀있었다.
“또 물어보고 싶은건?”
“없어요.”
당장은 정말로 돈이 전부인 모양이다.
“까놓고 말하면 우리가 어떤 짓을 해도 NFL보다 많은 돈을 줄 수는 없어. 하지만 길게 봐. 미식축구는 선수생활이 짧아. 치명적인 부상이 발생할 확률도 많고, 후유증도 심한 편이지. NFL에 가지도 못하고 은퇴하는 경우도 부기지수라는건 너도 잘 알거야.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그럴 경우가 없어.”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간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NFL에 무사히 드래프트 될거라는 보장도 없지. 네가 NFL을 포기하고 우리가 널 1라운드에 지명하는걸 받아들인다면 넌 300만 달러를 곧바로 받게 되는거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스탠하우스의 눈에는 여전히 갈등이 엿보였다. 그래서 다운은 준비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돈을 벌고 계신다던데, 그분을 위해서 구장 내 식당에서 일하실 수 있는 정규직 자리를 제공해주지.”
눈이 살짝 흔들렸다. 분명히 마음이 움직였다. 여기에서 하나만 더하면 된다.
“동생들도 생각해봐. 네가 미식축구를 한다는 것 이외에도 북동부라 얼마나 무시를 당했냐? 장담컨대 탬파에 오면 그런 일은 없을거야.”
돈, 정규직, 더 좋은 환경.
3연타를 맞은 스탠하우스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저 무조건 뽑아주셔야합니다.”
다운은 내밀어진 그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너야말로 무조건 계약해야할거야.”
< 96화 - 메이슨 스탠하우스(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