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23시즌 준비 >
도미닉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구장관리직원들하고 클러비들 사이에서 나오는 잡음이 완전 사라졌습니다.”
흐뭇한 표정의 클라인의 옆에서 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즉에 이렇게 했어야한다니까? 내가 한 번 싹 갈아야한다고 했잖아.”
“거스 자넨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잖아. 당장 클러비들 다 자르면? 그 자리는 어떻게 채울건데? 선수들이 불편할건 생각해야지.”
“그 정도는 버티겠지.”
투덜대는 거스의 말에 미키가 일침을 놓았다.
“그건 아버지 생각이고요. 메이저리거들에게 불만이 쌓이면 결국 선수들에게 이미지 손해를 입는건 우리 레이스잖아요.”
“키워놨더니 내편도 안들어주고 말이야······ 에잉!”
“저는 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가 거의 키웠는데요? 아버지는 맨날 선수보러 다닌다고 집에 없었잖아요.”
“돈을 벌어와야······”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운 부녀지간이다.
“해묵은 가정사는 집에 가서 푸시고. 선수들 이야기나 해봅시다.”
다운은 패드를 꺼내들며 물었다.
“캠프에 온 애들은 좀 어때요 케빈?”
어느덧 3월 초가되었고 캠프를 시작한지도 일 주일이 지났다. 이제는 캐시도 어느정도 선수들에 대한 파악이 됐을 것이다.
“좋습니다. 지난 시즌의 그 경험이 자극이 되었는지 이번 시즌에는 꼭 우승을 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합니다.”
“컨디션들은 다들 괜찮고요?”
“조금 신경쓰이는 점이 있긴한데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별다른 일은 없다니 다행이다. 그럼 이제 세부적으로 들어갈 차례다.
“알버트는 좀 어떻습니까?”
록하트가 이번 스토브리그부터 트레이드 블럭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선수 본인에게도 말해놨고, 다른 팀원들 역시 다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서머스에게 3루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졌다.
“어이없는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꾸준한 기회를 받는다면 그가 왜 타이거스에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시즌이 될 수 있을겁니다.”
캐시는 회의에서 선수에 대한 나쁜 평가를 잘 하지는 않지만 칭찬 역시 후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캐시가 저렇게 칭찬을 하다니.
“많이 잘하고 있나보네요.”
“제 생각보다 훨씬 잘하고 있습니다. 장기계약 이후에 본인도 의욕이 넘치고요. 무엇보다 티나가 철이 들었다는게 큰 것 같습니다 하하!”
“그래도 트레이드 전까지는 멜튼이 주전인거 아시죠?”
“물론입니다. 최대한 값을 높여놔야 우리 선수단 질이 더 좋아질테니까요.”
가끔 무지성으로 좋은 선수만을 요구하는 감독들이 있다. 양키스에 있을 때 겪어본 세 명의 감독들처럼 말이다.
‘이 선수만 영입하면 우승경쟁이 가능합니다!’
‘왜 영입을 안해주시는거죠?’
‘양키스에 돈이 없습니까?’
그 당시 허리띠를 졸라매야했던 사정상 그들이 원하는대로 영입해줄수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다운은 감독들과의 마찰이 심했던 기억밖에 없었다.
하지만 캐시는 그들과는 달랐다. 구단의 목표가 어디를 향해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돕고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적당한 성적까지 내준다.
그게 바로 캐시가 장기계약을 받은 이유였을 것이다.
“알버트가 괜찮다니 한 시름 놓이긴 하네요.”
“그래도 멜튼을 보낼때 차선책 하나는 마련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캠프에 온 3루수 자원들 중에서 둘을 제외하고는 마음에 드는 자원이 없어요.”
“이번에 애스트로스에서 온 에이브도 별롭니까?”
에이브러햄 트레인은 애스트로스에게서 얻어낸 3라운드 픽으로 데려온 3루수.
“애스트로스 내부에서는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는 하더군요. 근데 여기와서는 아직 그런 모습을 보여주질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적응을 못했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실수가 너무 잦아요. 제 생각에는 올 시즌에는 최대로 가도 더블 A 수준에서 머무를 것 같습니다.”
“제 의견도 같습니다 단장님. 애스트로스 놈들이 뭘 가르친건지는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겉멋만 들어서는······ 아마추어 시절의 그 반짝이던 놈이 아니더군요. 좀 더 다듬을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그러면 바로 내릴까요?”
“아뇨. 당장 내려버리는 것보다는 메이저리거들이 하는걸 보고 배우고 느끼게 하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몸값을 끌어올리려는 멜튼과 그런 멜튼의 자리를 조금이라도 일찍 빼앗고 싶어하는 알버트 사이에 있어서 그런지 요즘 눈빛이 조금 다르더군요. 조금 더 지켜보게 두면 자극을 더 세게 받을 것 같습니다.”
하위 라운드도 아니고 3라운더다. 자극만 제대로 받으면 성장할 수 있는 재능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좋아요. 그럼 일단은 남겨두도록 하자고요.”
다운은 트레인의 이름에 엑스를 치는 대신 동그라미를 쳤다.
“코디는 좀 어떻습니까?”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다운이 외부에서 데려온 선수는 아직까지 드링크워터 밖에 없었다.
“확실히 예전의 폼이 올라오는 느낌이더군요. 수비야 원래 잘하던 친구고, 타격에서도 예전의 그 모습이 조금씩 보이더군요. 얼마전에는 조나의 공도 펜스 넘겼습니다.”
파인트는 지난 시즌 그라운드 볼 비율이 무려 60%에 이를 정도로 홈런과 플라이볼을 억제하는 투수였다. 어지간한 타격감으로는 물이 오를대로 오른 파인트의 공을 담장 밖까지 넘길 수 없었다.
“이 정도면 100경기는 무조건 채울 수 있겠네요.”
드링크워터와의 계약은 1+1계약이었다. 300만 달러에다가 1000만 달러짜리 팀 옵션이 있는 계약이지만 다운은 거기에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와 만나지 못할 시 옵트아웃이라는 조건을 달아줬다.
다운의 제안을 듣고 드링크워터가 바로 제안을 수락한 건 아니었다. 그가 계약을 한건 일주일 뒤. 다른 구단에서는 그가 원하던 출장보장조항을 달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훈련하는 모습도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다른 구단에서는 의심을 떨쳐내질 못했다. 이미 2년을 말아먹은 선수를 영입하는 것도 모험인데 출장보장조항까지 달아주려는 구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레이스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저희는 100경기까지 출장을 보장해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보장된 출장횟수를 채우지 못하게 된다면 300만 달러를 더 드리는걸로 하죠.”
그 결과 드링크워터는 레이스와 사인을 하게 된 것이다.
“마이너리거들은 좀 어떻습니까?”
마이너리거라는 말에 거스가 귀를 쫑긋했다. 팜 디렉터인 그가 작년 한 해 동안 열심히 길러온 선수들이 캐시에게 평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좋더군요. 친구들이 루키같지 않아요. 특히나 지난 시즌 뽑았던 코너 재머라던가 알렉스 알마다는 정말 좋아요. 거스의 손을 거친 친구들이라 그런지 지난 시즌에 영상을 봤을 때보다 확실히 좋아졌더라고요.”
“크흠! 내가 뭘 했다고.”
손사래를 치는 거스의 입가는 계속해서 씰룩거렸다.
“제가 봤을 때 재머와 알마다는 올 시즌 빅리그 기회를 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좋네요.”
드링크워터의 영입으로 인해서 1루수인 코너 재머가 올 시즌 콜업되는건 힘들수도 있었다. 하지만 투수인 알렉스 알마다는 콜업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더지와 협상이 결렬된건 들었죠?”
다운의 말에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3000만 달러를 요구했다면서요?”
“우리는 들어줄 수 없는 요구라는걸 알텐데······”
“그만큼 우리 팀에 남을 생각이 없었다는거지.”
다들 불만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를 욕하지는 않았다. 프로라면 돈으로 평가받는다는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알마다 한 번 잘 키워보시죠. 메이저리그에서도 써먹을 수 있게요.”
“더지는 언제 보낼 생각입니까?”
“올 시즌이 끝나면 첫 연봉조정자격을 얻으니까 트레이드 시기는 24시즌 이후가 되겠네요.”
“그럼 이제 두 시즌 남았군요. 인지하고 있겠습니다.”
“조나한테도 알마다를 집중적으로 봐달라고 해놨으니까 그렇게 알고 계실면 될 것 같습니다. 라일리는요?”
라일리 제이콥스는 좌완 너클볼러로 지난 시즌 드래프트로 뽑은 선수였다.
“R.A.디키에게 이번 겨울에 특강을 받고 왔다더라고요.”
R.A.디키는 사이영상을 수상한 적 있는 고속 너클볼러로 고등학교 당시에도 제이콥스를 코칭해줬었다. 너클볼러끼리는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어서 서로 아는 정보를 아낌없이 알려준다더니, 이번에도 도우러 온 모양이다.
“지난 시즌 중에 보여줬던 모습보다 너클볼의 제구가 조금 더 좋아진 느낌이더군요.”
너클볼에 제구가 있냐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너클볼에도 제구는 존재한다. 존 근처에 지속적으로 던질 수 있는 제구력 말이다.
“지난 시즌같은 경우에는 40구 정도를 던지고 나면 너클볼에 회전이 먹히면서 제대로 구사하지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겨울 디키의 특훈을 받고 오더니 적어도 지금까지는 100구 이상씩은 던져주고 있습니다.”
“톰슨도 잘 하고 있고요?”
“제이콥스와 아주 딱 붙어다닙니다.”
톰슨은 제이콥스와는 라이벌 대학 소속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두 사람은 그리 친하지 않았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이콥스의 전담포수로 자리를 잡았더군요. 타격은 생각보다 늘지 않았는데 수비력만큼은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스케일로 따지자면 50점 정도 줄 수 있겠네요.”
드래프트된지 1년이 안되는 시간동안에 50점까지 수비력을 끌어올리는 포수라니.
“처음부터 톰슨은 수비가 주였으니까요. 그래도 계속해서 타석에서도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요.”
“안그래도 요즘 사무엘이라던가 배리, 사무엘에게 붙어서 수비와 타격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다니더군요.”
“포수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게 중요하니까요.”
그 뒤에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전반적으로 큰 문제없이 순탄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었다.
‘그럼 지금 우리 팜에 부족한 포지션이······’
투수는 넘쳐난다. 알마다와 제이콥스 이외에도 불펜으로 써먹을 선수는 충분하니까.
포수 역시 괜찮다. 윌슨과 비어만이 여전히 건재하니까. 세 번째가 좀 애매하긴한데, 캐시의 평가에 따르면 50점을 받은 톰슨이라면 적당한 땜빵 백업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트리플 A에 있는 선수도 수비력은 모자라는 건 아니니 그를 써도 괜찮고.
외야도 괜찮다. 드링크워터도 외야가 가능하고, 마이어, 비어스, 페레즈, 페리시치에 이어서 프레드 올라루스까지 콜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 큰 문제는 역시 내얀가?’
내야만큼은 여유가 없었다.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쓸만한 선수들이야 충분하다. 하지만 이들 중 하나라도 빠지게 되었을 때에, 그들을 대체할만한 자원이 없었다.
“멜튼을 보낼때 최대한 괜찮은 내야수들을 데려와야겠네요. 미키.”
“타 구단 괜찮은 내야 유망주 정보를 긁어모아오겠습니다. 기간은 어떻게 할까요?”
“우선 러프하게 정보를 긁어모아오고, 세부적인건 천천히 하도록하죠. 어차피 멜튼을 당장 보낼 생각은 없기도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스카우트 팀 앞에 있으니까요.”
스카우트 팀에게 중요한 일. 그건 역시 드래프티 관찰이다.
“자, 그럼 잠시 쉰 다음에 올 시즌 드래프티들에 대해서 알아보자고요.”
다운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가볍게 미키에게 물었다.
“올 시즌 제일 높은 OFT 점수 받은 선수가 몇 점이에요?”
“우리가 뽑을 수 있는 순번이면 한 55점 정도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60점 정도 되는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지.”
“이번 시즌 제일 기대받고 있는 친구가 65점 정도 아니었나?”
다운의 말에 다들 가볍게 한 마디씩을 던졌다.
하지만 미키에게서 돌아온 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저랑 조니가 체크해본 결과 74점짜리가 하나 있습니다.”
< 94화 - 23시즌 준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