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집안단속 >
클러비는 눈치가 빨라야한다. 선수들이 원하는 바를 캐치하고, 그 이상을 해내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자리가 클러비라는 자리였으니까.
“어, 어······?”
곧바로 무릎을 꿇은 알베르토를 본 롭은 일단 엉거주춤하면서도 같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만큼은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흐음······”
두 사람의 행동에 다운은 흥미롭다는 듯이 턱을 쓸었다.
“그래야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러면서 슬쩍 도미닉을 바라보는걸 눈치챘는지 알베르토는 곧바로 도미닉에게 눈길을 돌렸다.
“뉴욕에서 혼자 오신겁니까?”
순식간에 이 자리에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린 알베르토에게 도미닉이 계속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새로 자리를 채울 클러비들을 소개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과 다른게 뭐지?”
“저는 세인트피터스버그의 토박이로 28년을 살아왔습니다. 클러비를 한지는 3년밖에 안됐지만, 지난 10년간 이 주변에서 해보지 않은 일이 없죠. 그래서 필요한 인재만 말해주신다면 원하시는 조건에 맞는 사람을 확실하게 데려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뉴욕과는 다르게 클러비들끼리의 라인도 끈끈하지는 않으실겁니다. 탬파베이 지역 여기저기서 일해오면서 만들어 놓은 저만의 라인으로 그 부분을 채워드릴 수 있습니다.”
눈치빠르게 자신의 쓸모를 증명한 알베르토와는 다르게 롭은 여전히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저래가지고 헤드는 어떻게 한거지?’
다운의 의문을 읽기라도 하듯 리타가 슬며시 귓속말을 했다.
“롭은 지역에서 돈이 좀 있는 유지 집안 막냅니다.”
“돈 있는데 왜 여기서 일해?”
“돈 좀 있는 유지집안이지, 돈이 많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자식이 넷이라 자신에게 가는 유산도 별로 없을거고요.”
돈은 좀 있지만 많지는 않고, 주변에 부하들을 거느릴 수준은 되는 것 같다.
“애초에 여기 오게 된 것도 친하게 지내는 동생들의 추천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그 패거리가 다 장악한거고?”
“네.”
어떤 그림인지 대강 이해가 된다.
‘그러니 눈치가 저 모양이구만?’
동생들 사이에서는 눈치 볼 필요가 없었을테니 눈치를 안봤을거고, 메이저리거들에게는 기가막히게 기었을 것이다. 전형적인 강약약강.
“롭 모글리씨?”
도미닉의 말에 롭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네, 네?”
“죄송하지만 레이스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요.”
“네?”
되묻는 그에게 도미닉은 안경을 치켜올렸다.
“말을 못 알아들으시는것 같은데 ······ 해고라는 말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롭이 몸을 세우고 버럭 대들었다.
“그, 그런게 어디있습니까? 제가 여기서 몇 년을 헌신을······”
“고작 2년이죠.”
“그래도 제 밑의 동생들을 이끌며 구단에 도움······”
“은 커녕 내분을 조장하고, 구단 내에서 파벌을 만드려고 했지. 여기까지만 하면 큰 문제는 없었을거야. 하지만 그 싸움에 구단의 직원들까지 끌어들인건 클러비로 실격이야.”
“하, 하지만 다른 직원들도 저희가 맞다고 생각해서······”
롭의 말에 인자하던 도미닉의 얼굴이 흉신악살과 같이 일그러졌다.
“클러비가 편을 가르는게 맞아? 그리고 너희가 맞다고? 클러비는 그림자 같은 존재야! 우리가 구단에서 전면으로 나오는 경우는 절대 없어야돼. 왜냐? 그럴 경우는 스포츠가 아니라 사회면에 날만한 사건이 실릴 때 뿐이거든. 그게 아니라면 우리 이름이 나와서는 안돼. 그건 네가 일을 더럽게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거든. 그런데 프런트에서 말이 나올정도로 파벌을 만들어 싸워? 하!”
도미닉의 묵직한 말에 롭의 꼿꼿하던 고개가 점점 수그러들었다. 이쯤 설명했으면 됐다. 어차피 나갈사람이다. 더 이상의 설명을 붙일 수고를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리타에게 퇴직금은 받아가시면 되고 네가 이끄는 패거리 역시 다 나가게 될거다.”
“따라오시죠.”
넋이 나간듯한 표정을 지은 롭은 리타에게 잡혀 밖으로 끌려나갔다.
“자 그리고 알베르토.”
“네, 넵!”
롭과는 다르게 알베르토는 확실히 눈치가 빠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그를보며 다운이 웃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넵!”
다운은 그의 눈을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네가 눈치빠르다는건 알겠어. 옆에 있는 맷도 네가 쓸만하다고 생각하는 눈치이기도 하고.”
“가, 감사합니다!”
밝아지던 알베르토의 얼굴은 뒤이은 다운의 말에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야. 네가 눈치가 빠르다고는해도 롭과 함께 우리 클러비들, 나아가서는 프런트에서 내분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레이스에 피해를 입힌 가해자라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아.”
“하지만······”
변명을 해보려던 알베르토는 곧바로 입을 닫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다운의 말이 맞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결국 무슨 말을 해도 자신은 롭의 패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와 반대대는 패거리를 이끌고 신경전을 해댄 것이었고. 다운의 말을 인정한 그가 아까와는 다르게 겸허한 자세로 말했다.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단장님.”
“어떻게 책임을 지실 생각이죠?”
“제가 책임지고 나가겠습니다.”
“흐음?”
원래 다운은 그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줄 생각이었다.
1. 그를 뺀 모든 직원 해고
2. 그 밑에 있는 직원들은 남기고 알베르토만 해고
1번을 택하면 도미닉이 적응할때까지만 옆에 붙여둔 뒤 내년 재계약 시즌에 자를 생각이었다.
2번을 택하면?
혹시 그 마음씨에 감복해 살려준다?
그런 선택지 따위는 없을 예정이었다. 워낙에 클리셰 같은 내용이라 눈치빠른 알베르토가 그 방법을 택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에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으며 살려달라고 말했던 알베르토라면 전자를 택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다운이 말하기도 전에 그가 먼저 움직였다. 그것도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말이다.
“아까는 살려달라며?”
“그랬죠.”
“설마 ‘절 빼고 다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하면 선처라도 해줄 줄 안건 아니지?”
알베르토는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요. 저는 제가 눈치가 꽤 빠른 편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단장님의 눈치를 보니 저를 남겨주실 분이 아닙니다.”
눈치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힌다. 아무것도 말한게 없는데 저걸 눈치채다니.
“하지만 남은 친구들을 정말 죄가 없습니다. 제가 헤드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롭의 패거리가 싫은 놈들, 롭의 패거리에게 밀려난 놈들, 롭에게 실적을 빼앗긴 놈들이 모이고 모인게 저희 원정팀 클러비들입니다. 일 잘하는 친구들도 정말 많고, 갑자기 잘리게되면 생계가 곤란한 친구도 있습니다.”
“그러면 너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이 주변에서 꽤 발이 넓습니다. 어딜 가도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능력이나 자신감이 있는 놈이 왜 클러비를 하고 있는거지?”
“메이저리그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팀에서 좋아하는 선수를 보고, 친하게 지내고 어울리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만큼 매력적인 일이 어디 흔하겠습니까?”
없을거다.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들 중에서는 클러비가 꿈인 친구들도 있었다. 클러비는 계약직에 불과하지만 쓸모가 있으면 잘 자르지도 않는 편이다. 어차피 이들에게 주어지는 연봉은 기본시급 정도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는 것에 따라 어지간한 직장인 이상의 연봉을 받을수도 있고, 도미닉처럼 연차가 쌓이고 인정을 받으면 정규직으로도 전환이 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팬에게, 그것도 공부와는 담을 쌓은 친구들에게 이보다 좋은 직장이 있을까?
“그러면 네가 도와준다던 이야기는? 거짓말이 되는거 아닌가?”
“그럴수는 없죠. 새 클러비들을 뽑고, 라인을 연결시키는건 제가 다른 직장을 구하더라도 무조건 해드리겠습니다. 지금이야 좋지 않은 일로 여기 오게 되었지만, 저 알베르토. 신용 있는 남자입니다!”
어느새 다시 돌아온 리타가 다운의 귀에 속삭였다.
“지난 3년간 알베르토가 프런트에서 지키지 못한 약속은 없습니다.”
리타가 저렇게 말할정도면 믿을만하겠지.
“좋아.”
넌 예정대로 해고야.
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다운의 어깨에 도미닉의 손이 내려앉았다.
“잠깐 둘이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단장님?”
다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리타가 알베르토를 데리고 단장실 밖으로 사라졌다.
문이 닫히자마자 다운은 도미닉에게 말했다.
“저 놈이 마음에 드시나보네요.”
도미닉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네. 마치 내 어릴 적 있었던 일을 보는 것 같거든.”
“맷의 어릴적이라니······ 너무 과대평가 하시는거 아니에요?”
“전혀 아니야. 나도 딱 저런 경우가 있었거든.”
“맷이요?”
“내가 오리올스에서 있을때 스토리를 말해준 적 있나?”
“양키스로 올 때 말하시는건가요?”
“아니. 오리올스에서 일한지 7년 쯤 됐을 때 일이야.”
그때의 일이라면 다운은 알지 못했다.
“갈등이 있었어. 똑같은 이유였지. 홈팀과 원정팀 클럽하우스 간의 대립. 사실 이건 어느 구단이나 똑같이 존재하는 내용이거든. 하지만 오리올스에서는 이게 꽤나 심했어.”
“레이스보다요?”
“훨씬 심했지. 그 당시 원정 팀 클러비들이 돈을 받고 오리올스 선수들의 티핑이라던가 컨디션 같은걸 팔아넘길 정도였으니까.”
“미친······”
“물론 처음에는 그 정도가 아니었어. 그 당시에 난 오리올스 홈 팀 헤드였고, 롭처럼 나만의 패거리도 있었지.”
“양키스에 남기고 온 사단 말이에요?”
“맞아. 근데 말이 좋아서 사단이지 결국 그거나 패거리나 똑같다는거 알잖아? 당시에는 워낙에 어려서 괜찮은 사람들만 내 패거리에 넣지 않았거든. 그 다음은 알겠지?”
뻔한 내용일거다. 몇몇 패거리들이 원정팀 클러비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졌고, 그로 인해서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겠지.
“해결은 어떻게 했는데요?”
“다 쳐냈지. 결국 원인제공은 우리 패거리가 한게 맞으니까. 내 패거리에 있던 친구들은 물론이고 티핑을 제공했던 원정팀 클러비까지도 다 잘렸어.”
“맷은 남았을거고요.”
“난 일을 잘했으니까.”
그러니까 알베르토는 도미닉의 어린 시절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도미닉의 패거리에게 당했던 그 사람들과 같은 처지였다.
“하지만 그 일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박혀있어. ‘그때 내가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은 사람만 내 패거리에 받았더라면?’ 이런 생각들이 끊이질 않더군.”
“그 당시의 그들에 대한 속죄인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만약 한 번 기회를 줬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거지.”
“알베르토까지도요?”
“알베르토까지도. 1년 정도는 써먹어봐도 되지 않을까 싶거든.”
그의 말에 다운은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클러비 전권은 맷에게 주려고 했어요. 그러니 맷이 원하는대로 하시죠. 다만 앞으로는 절대 클러비들 사이에서 갈등이 없도록 해주세요.”
다운의 말에 도미닉이 슬며시 웃었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이지.”
< 93화 - 집안단속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