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91화 (91/268)

< 91화 - 미끼를 물어븐 것이여 >

“지랄하네.”

너무 어이가 없다보니 부지불식간에 나온 단어. 다행히도 보라스는 그 뜻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헤이 다운. 그거 욕 아닙니까?”

맡은 한국인 선수들이 있었던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혹은 뉘앙스가(다른 나라 언어여도 욕은 귀신같이 알아듣는게 사람이란 생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알아채기는 했다. 눈을 가늘게 뜨는 보라스에게 다운은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요?”

“지······ R 뭐시기 하는 그 단어 말이죠.”

“아, 그거 그냥 한국에서는 감탄사로도 쓰이는 단어입니다. 워낙에 금액이 큰 탓에 놀라서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죠. 크게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신경을 써야할 것 같은 기분인데요?”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시고 정확한 조건이나 내밀어보세요. 조건 다 기재한 계약서 들고왔잖아요.”

다운의 말에 보라스가 씨익 웃었다.

“역시 다운은 말이 잘 통한다니까요.”

2024년(25살/4년차) - 1000만 달러

2025년(26살/5년차) - 1500만 달러

2026년(27살/6년차) - 2300만 달러

2027년(28살/FA 1년차) - 3000만 달러

2028년(29살/FA 2년차) - 3300만 달러/옵트아웃

2029년(30살/FA 3년차) - 3300만 달러

2030년(31살/FA 4년차) - 3300만 달러

2031년(32살/FA 5년차) - 3300만 달러

“제가 초반에는 조금 세게 불렀는데 연 3000만 달러보다는 조금 많이 쌉니다 하하!”

퍽이나.

총 8년 2억 1000만 달러짜리 계약이니 연 2625만 달러로 3000만 달러보다 싼 계약은 맞다. 게다가 보라스의 고객이 얻는 계약치고는 규모가 그리 크다고 할 수는 없는 그런 계약.

하지만 레이스에서는 있었던 적이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일 없는 그런 규모의 대형 계약이었다.

“3300만 달러면 레이스 역대 최고액 계약인건 아시죠?”

“물론입니다. 뭐 그 것 말고도 세금이 덜 나가느니 뭐 그런 장점도 설명하지 않으셔도 알고요.”

“그런데 지금 저 금액을 제안하신거고요?”

보라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합당한 금액이니까요. 지금 레이스에서 에이스 역할을 맡는 선수가 누가 있죠?”

“조나가 있죠.”

“작년 한 해 반짝한 선수잖아요. 2년을 쉬었다가 복귀한 해에 갑자기 200이닝을 던진 선수가 다음 해에 잘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주 적죠. 그래서 단장님도 1500만 달러를 보장해주고 남은 500만 달러를 옵션으로 채운것일테고요. 에디슨 포레스트? 성장의 여지가 남아있긴 하다만 고작해봐야 3선발급 실링입니다. 지금 그 위치가 딱이에요. 에릭 슈어홀츠? 이 친구 역시 선발, 불펜을 오가며 기회를 적게 받다가 갑자기 지난 시즌 레이스에 오면서 200이닝 가까이 던졌죠. 분명 두 시즌 내로 탈이 날겁니다. 오프너를 쓰는 5선발 자리는 말할 것도 없겠네요.”

선수를 띄우는걸 잘하는만큼 남을 깎아내리는 것 역시 그의 전문분야였다.

“그 모든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는 선수가 바로 리키죠. 이미 두 시즌 연속으로 200이닝을 던져줬고, 200탈삼진 이상도 기록해줬죠. 10승 이상은 물론이고요. 지난 2년간 레이스에서 더지만큼 활약해준 선수가 어디 있죠?”

“네이트가 있죠.”

“네이선 드레이크! 아주 좋은 선수죠. 하지만 유격수입니다.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타격과 수비를 가지고는 있지만 그뿐이죠. 팀의 연패를 끊고 연승을 이어나가야하는 숙명을 짊어진 팀의 에이스에게는 war이나 기록으로 남지 않는 그런 추가적인 공헌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을 고려해봤을 때 지난 2년간 더지가 끊어준 팀의 연패는 총 22회로 그 기간 던졌던 그 어떤 메이저리거보다 많은 횟수를 기록했죠.”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캐시가 시행한 오프너는 실험적인 운용이나 다름없었고, 그에 따라 패배가 잦을 수 밖에 없었죠. 리키가 잘 던진 것도 맞긴 하지만, 앞쪽 순번에서 패배가 있었던 경우가 많았던 것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저 22회를 모두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은 21시즌일 것 같네요.”

지난 시즌은 중반부터 파인트가 앞 순번으로 가서 ‘연패를 끊는’다는 전제가 성립될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리키는 더 성장해서 레이스의 에이스 자리를 거머쥘 선수죠.”

“그건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죠. 선수의 커리어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건 드링크워터만 봐도 알잖아요?”

다운이 그의 최근 실패를 떠올리자 보라스의 눈이 일순간 꿈틀거렸다. 하지만 여우는 늙었어도 여우다.

“그럼 이 자리는 더 의미 없겠군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시즌 마치고 다시 뵙도록하죠.”

이번 시즌을 마치면 연봉조정기간 1년차에 들어선다. 1년차인만큼 그리 크지는 않겠지만, 분명 보라스라면 별 희귀한 방법으로 금액을 오릴려고 노력할 것이었다. 상상만해도 골이 아파왔지만, 다운은 애써 내색하지 않은 채 웃으며 일어섰다.

“멀리 안나가겠습니다. 혹시 마음 바뀌어서 좀 더 싼 가격에 계약할 생각 있으면 연락달라고 해주세요.”

“서쪽에서 해가 뜨는 날 원하시는 계약조건을 들고 찾아뵙도록하죠.”

얼마나 많이 해본 말인지, 보라스는 절대 깎아주지 않겠다는 말을 신박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리타. 손님 나가신단다.”

리타가 보라스를 데리고 사라진 뒤 다운은 단장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준비했던 서류를 거칠게 책상에 내려놨다.

쾅!

“빌어먹을 보라스.”

드레이크만큼은 아니더라도 길고 금액이 적은 제안과 짧은 대신 금액이 좀 더 높은 제안 두 개를 준비했다. 그런데 보라스의 등장 하나만으로 그 모든 준비가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더지를 탓할수도 없었다. 더지는 프로다. 그리고 프로는 돈으로 평가받는 법. 더지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는 한 것 뿐이다.

다운은 폰을 꺼내들어서 더지에게 보낼 메시지를 작성했다.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더지는 여전히 어린 선수다. 게다가 마음도 은근히 여린 구석이 있다. 이 자리에 보라스와 같이 나오지 않은 것만봐도 알 수 있었다. 양키스 시절에는 1년 잘해놓고 보라스도 아닌 별 이상한 에이전트 손을 잡고 와서는 연 25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달라며 거들먹거리던 놈도 있었다.

그런 놈들에 비해서 대리인이 갈거라고 메시지를 보내준 더지는 양반이었다.

그리고 꼭 이런 친구들인 쓸데없이 구단과 에이전트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가 야구에 집중을 못하곤 한다.

To. 더지

헤이 리키. 비지니스는 비지니스일 뿐이고 넌 해야할 일을 한거야. 연봉으로 인한 갈등이나 신경 싸움은 나랑 보라스가 할테니까 넌 그런거에는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눈치 볼 필요도 없어. 그러니 예전처럼 편하게말해 알겠지? 나도 변함없이 대할거니까, 쓸데없이 딱딱하게 굴 필요없어. 그럼 잘 준비해서 스프링 트레이닝 때 보자.

다운이 메시지를 보낸지 10초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From. 더지

고마워요 다운.

“역시 마음이 여려.”

반응을보니 100% 눈치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반응에 다운이 씨익 미소짓고 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똑!

“들어와.”

다운의 허락에 클라인과 함께 문을 열었다.

“무슨일이죠 피트? 우리 조금 있다가 만나기로 한 거 아닙니까?”

스케줄 상 두 시간 뒤면 운영파트와 스프링 트레이닝 일정에 관하여 미팅이 있었다.

“스프링 트레이닝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서 따로 찾아왔습니다. 시간 좀 되십니까?”

“되죠. 리타 항상 마시던걸로 두 잔.”

“단장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피트는 디카페인 노 슈가 라떼 따뜻하게죠?”

리타의 말에 클라인이 슬쩍 눈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카페인이랑 설탕 들어가도 되는데······”

“안됩니다. 이번 건강검진에서 의사선생님이 카페인 줄이고 설탕도 줄이라고 했다면서요? 클라인여사님이 운동은 못시켜도 직장에서 카페인이랑 설탕만큼은 절대로 막아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아니 그래도 일을 하는데 카페인이랑 당은 조금 있어야······”

구질구질한 클라인에게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 이렇게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얼마전에 손녀 보셨다면서요? 여사님께서 손녀 결혼식 관에서 보고싶으면 계속 마시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꼬리를 내리는 건 클라인이었다.

“아 거참 알겠어. 뭐 또 이 사람은 그런 말을 리타한테까지 하고 다녔대······ 안마시면 되잖아······”

그의 말에 다운이 씨익 미소지었다.

“리타. 피트의 건강을 위해서 우리 직원들에게 내기를 걸지.”

다운은 찬장에 있던 빈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지갑에서 10달러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 그 안에 넣고 닫았다. 그런 다음 유리병을 리타에게 건넸다.

“이 유리병 출근하면 책상위에 꺼내둬.”

“이게 뭡니까?”

“오늘부터 난 매일 여기에 10달러씩 넣을거야. 직원들에게 피트가 카페인을 마시거나 당이 너무 많이 들어간 음식을 섭취하는 장면을 잡아낸다면 이 통에 든 돈을 주겠습니다. 대신 피트가 들키지 않고 내년 건강검진에서 눈에 띄게 좋은 수치가 나온다면 이 유리병에 든 돈을 모두 피트에게 드리는걸로 하죠.”

다음 건강검진은 시즌이 모두 끝나는 11월에 있을 예정. 한 달을 30일로 가정해서 9달이라고 생각해도 270일. 총 2700달러가 모이게 된다.

“뭐 대략 2700달러 정도가 모일텐데, 만약 성공하시면 3000달러 딱 채워드리겠습니다. 어때요?”

빠르게 계산을 끝낸 클라인의 눈에 의욕이 샘솟았다.

“하겠습니다! 운동해도 되죠 단장님?”

“뭐 제가 그것까지 관여할 수는 없죠.”

다른 것도 아니고 운영파트장의 건강을 위해서 3000달러 정도야.

“계속 지켜볼거에요.”

“하하! 제가 또 한다면 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어느새 리타가 주문한 음료를 들고와서 두 사람의 앞에 놓았다.

“제가 지켜볼겁니다 피트.”

운영팀, 아니 이 프런트 사무실에서 리타의 눈을 피해갈 수 있는건 없었다.

“진짜 조심해야겠네요 피트.”

“그러게말입니다 하하!”

“그나저나 무슨 일을 들고오신거에요?”

앞에 놓인 디카페인 라떼를 한 모금 홀짝인 클라인이 우유거품이 묻은 입을 조물조물 움직였다.

“클러비들 정리가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다운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걔네 또 싸웁니까?”

“네. 예전에는 그냥 신경전 정도였는데 이제는 아예 대놓고 서로 시비를 걸더군요. 제가 있는 앞에서도 말입니다.”

클라인은 입가에 묻은 우유거품을 슥 문질러 지운 뒤 말을 이었다.

“단장님께서 저번에 대책이 있다고 하셨지않습니까? 이젠 정말 그 대책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

클라인의 말에 다운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생길수도 있다는거였죠. 미끼를 던져놓긴 했는데 아직 입질이 오질 않······”

그 순간 다운의 주머니 속에서 폰이 울렸다.

우우웅~

[맷 도미닉]

스마트워치를 들어 발신자를 확인한 다운이 미소지었다.

“정정할게요. 미끼를 막 물었네요.”

< 91화 - 미끼를 물어븐 것이여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