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지랄하네 >
CBA로 인해서 선수와의 이야기가 풀리자마자 다운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선수들과의 연장계약 논의였다.
대상은
알버트 서머스
리키 더지
조나 파인트
에릭 슈어홀츠
에디슨 포레스트
짐 토머슨
사무엘 비어만
덕 흘로첵
세드릭 우드먼
패트릭 비어스
넬슨 페레즈
총 11명이었다.
이 중에서 이제 막 데뷔를 한 비어만, 흘로첵, 우드먼, 비어스, 페레즈, 포레스트, 슈어홀츠에게 한 제안은 이들이 구단과 연장계약을 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제안.
남은 4명의 선수들이 레이스에게는 중요했다.
우선 서머스와의 협상은 진행된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곳에 오래 있고싶어하는 서머스의 의지와 그의 잠재력을 믿은 다운의 의사가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금액적인 부분에서 조금 차이가 있긴 했다.
다운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티나가 한 곳에 머물 수 있다는 것과 더불어 한 가지를 더 제안했다.
“티나를 포함해 우리 팀원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공부를 봐주도록하지.”
구단 프런트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학력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직접 공부를 봐준다는 말을 싫어할 부모는 없었다.
“대강 봐주지 않을까요?”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추가로 돈을 지급할 예정이고,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까지 줄 예정인데 대강 봐주는 직원이 있을거라고 생각해?”
결국 다운이 준비해온 것에 서머스는 홀라당 넘어갔다. 서머스는 10년 7000만 달러, 최대 1억 5000만 달러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계약에 사인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단장님!”
“내가 할 소리야 알버트. 제발 우리 10년간만 건강하자.”
“그 뒤로는 건강하지 말자는 이야깁니까?”
“그렇게 해석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건강하게 계속 오래오래 가자는거지.”
그 다음으로 좋은 소식을 전달한 것은 짐 토머슨이었다.
토머슨은 양키스에서 넘어올 때만해도 2년 600만 달러짜리 계약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계약은 1년 300만 달러.
“네가 우완 전향이라는 꿈을 살려주지 않았다면 난 은퇴할 생각이었어. 네 덕분에 이렇게 선수생활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게 된거야. 그러니 적당히 챙겨줘.”
“죽고싶어 짐?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알아서 잘, 아무거나.’라는거 알잖아?”
험악해지는 다운의 표정을 보고서 토머슨은 ‘아무거나’라는 말이 다운의 발작버튼이라는걸 상기해냈다.
“기간 금액 딱 말해. 그래야지 협상을 이어나가지.”
“음······ 일단 35살까지는 뛸 생각이라 최소 3년 계약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금액은······ 그래도 최소 500만 달러? 내가 아직 그 정도까지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나에 대한 보답으로 줄이지말고 네가 정말로 선수생활동안 받아보고 싶었던 금액 선이 얼마야?”
다운의 말에 토머슨이 슬며시 말했다.
“1000만 달러.”
불펜으로 1000만 달러 이상을 받는건 A급 불펜이라는 의미였다.
“좋아. 오래는 못해도 올 시즌 1000만 달러. 그리고 이후 2년간 500만 달러로 총 2000만 달러. 그리고 그 뒤 3년간 팀 옵션 300만 달러. 어때?”
순식간에 최대 6년이 된 계약기간. 계약 마지막 해에는 38세 시즌이 된다.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계약. 하지만 다운에게는 생각이 다 있었다.
‘지금까지 고생한 왼팔과는 다르게 오른팔은 아직 쌩쌩해. 이제 고작 1년 썼으니까. 적어도 6년은 쌩쌩하게 활동해줄거야.’
손상이 거의 없는 20대 초반의 야구선수의 오른팔 힘줄의 상태를 보는 것 같다는 병원에서의 검진결과 역시 다운의 생각에 한 표를 보태주었다.
개인적으로 원했던 1000만 달러도 맞춰줌과 동시에 다음해부터는 500만 달러로 맞춘다.
게다가 원래 올 시즌 연봉이 300만 달러로 책정되어있었으니 1000만 달러가 아니라 다운의 입장에서는 700만 달러가 추가되는것이었다.
“어때?”
“그렇게 해준다면 나야 너무 좋지.”
그렇게 원하던 1000만 달러라는 금액에 다운에게 의리를 지킬 수 있는 500만 달러의 연봉, 그리고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3년 연장까지. 토머슨에게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토머슨 역시 오래 걸리지 않아 새 계약서에 사인했다.
남은건 팀의 두 에이스들.
먼저 합의가 된건 파인트였다.
“크게 안바랄게요. 이미 벌만큼 번거 아시잖아요. 5년 8000만 달러 정도면 만족해요.”
다운을 워낙에 잘 알고 있었기에 파인트는 정확히 원하는 바를 말했다.
“5년 6000만 달러로 하자. 우리 탬파에서는 세금 덜 떼는거 알잖아.”
“덜 떼기야 하죠. 하지만 상징적인 금액이라는게 있잖아요? 1억 달러도 아니고 8000만 달러로 낮춰놨는데 여기서 더 까겠다고 하시면 안돼죠.”
“에이전트도 안끼고 왔길래 적당한 금액에 서명해주나 싶었더니······”
“누구 옆에서 보고 배운게 많거든요.”
“6500만 달러.”
“7800만 달러.”
“7000만 달러.”
“7700만 달러.”
“나는 500씩 올리는데 200만, 100만 달러만 까는건 좀 너무한 거 아냐?”
“싫으면 마시던가요?”
결국 이 줄다리기 끝에 파인트는 레이스와 5년 7500만 달러, 거기에 매 시즌 5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추가로 삽입한 계약에 합의했다.
“앞으로 다시는 너랑 계약합의 안한다.”
“재밌었으면서 왜 그래요.”
“재밌긴 개뿔. 500만 달러를 깎아놨더니 500만 달러를 더 가져가는 놈이라니······ 그것도 매 시즌······”
“뭐 그만큼의 활약을 못하면 결국 못가져가는거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내가 널 아는데 분명 넌 저 500만 달러를 다 가져갈걸?”
“자신 있으니까 넣은 조항이죠.”
작년 겨울 쇼케이스 때와는 확연히 다른,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다운이 피식 웃었다.
“그래, 제발 다 가져가라.”
500만 달러를 다 가져가려면 매 년 2점대의 방어율, 200개 이상의 탈삼진, 15승 이상, 180이닝 이상을 달성해야한다.
파인트가 그 조건을 매번 달성해준다면 2000만 달러의 연봉이 그리 아깝지는 않을 것이었다.
세 건의 연장계약이 모두 완료되자 러셀이 찾아와 앓는소리를 했다.
“단장님. 진짜 더는 안됩니다. 진짜 허리 졸라매야돼요.”
“괜찮아요. 이번 포스트시즌부터는 분배금이 높아지니까.”
“하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이 확정은 아니지 않습니까?”
“시즌권 구매자들이 늘면서 이 정도까지는 충분히 커버 가능해졌잖아요?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하게되면 유보금이 줄어들겠지만 이 정도 계약까지는 괜찮을거라 생각했는데.”
시즌권 구매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예상되는 매점 수익이란던가 추가적인 예산이 기대됐다.
“지금까지는 괜찮죠. 하지만 더 늘어나면 진짜 적자입니다 적자!”
“알겠어요. 더 안할게요. 어차피 리키하고만 이야기하면 끝나요.”
“그럼 다행이고요.”
올 시즌 최저연봉 3년차 시즌을 맞이하는 더지가 수령할 금액은 많아봐야 100만 달러. 다운이 조금 더 챙겨준다고 해봤자 150만 달러 선이 될 확률이 높았다. 혹여 그가 장기계약에 계약하더라도 드레이크의 3년차 510만 달러를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더지가 올해 잘했다고해도, 공수에서 8.3 War를 기록한 드레이크에 비해서 5.1 War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510만 달러를 넘길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많아봐야 300만 달러 수준일겁니다.”
정말로 그 정도일줄 알았다.
보라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만해도 말이다.
“단장님 스캇 보라스가 찾아왔습니다.”
“보라스가? 왜? 그 사람이랑 내가 만날 이유가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보라스의 고객과 자신은 연관성이 없었다.
“단장님과 약속이 잡혀있답니다. 그것도 두 시에.”
리타의 말에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하니 두 시까지 고작해야 10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운이 기억하기로는 두 시에는 다른 미팅이 계획되어있었다.
바로 리키 더지와의 연장계약 미팅이 말이다.
“설마······”
우우웅!
그때 다운의 폰이 울렸다. 더지의 메세지였다. [오늘은 제 에이전트만 보내겠습니다 단장님.] 이라는 무미건조한 문장.
아무리 생각해도 그 설마가 맞는 것 같았다.
“하하! 이제 이 프런트 사무실을 보는것도 올 시즌이 마지막이겠군요!”
“스캇. 여기 온 이유가 뭐죠?”
“저 말입니까? 아직 못 들으셨나보군요. 제가 바로 리키 더지의 새 에이전트. 즉, 대리인입니다.”
능글능글한 저 얼굴을 보고있자니 벌써부터 속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하아······ 일단 들어오세요. 6번 회의실 비워놨지?”
“네.”
“6번 회의실로 가시죠.”
다운의 말에 보라스가 눈을 빛냈다.
“더지를 맞이하는데 단장실이 아니라 6번 회의실이라······ 단장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겠네요.”
“단장실은 제 개인적인 공간이니만큼 최대한 거기서 일 이야기는 자제하려고 하는겁니다만?”
“그곳에서 계약을 맺은 사례도 있었죠.”
“당연히 마지막 계약서는 단장실 가서 하죠. 하지만 그 전의 협의는 대부분 회의실에서 이루어집니다. 레이스는 그렇게 돌아가는 조직이죠. 그게 싫으시다면 나가시는것도 말리진 않겠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리키에게는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텐데요?”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단장실이 아니라 회의실로 안내해 기분이 상해버린 스캇 보라스가 협의를 거절하고 나갔다고 해야죠.”
“제가 이렇게 행동하는것도 협상의 일환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리키는 받아들일겁니다.”
“그럼 리키가 진실을 알아주길 바라는 수 밖에는 없겠네요.”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신경전이 오갔다. 다운은 6번 회의실 문을 열고는 물었다.
“그래서 들어오실겁니까 가실겁니까?”
“하하! 말이 그렇다는거지 당연히 들어가야죠!”
회의실에 들어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앉았다.
“언제부터 리키의 에이전트가 된겁니까?”
다운이 알기로 더지는 다른 대형 에이전시인 옥타곤 소속이었다. 이는 지난 시즌 종료 후 소속 선수들의 정보를 업데이트 할때까지만해도 유효했던 사항.
“애리조나에서 저희가 만났던 날 있지 않습니까?”
“있었죠.”
“알고보니 저희는 그 날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더군요.”
이제 막 계약을 맺은 시점에서 애리조나로 넘어왔다는거다.
“뭐 어찌됐던 결국 서로 같은 입장 아니겠습니까? 저는 리키를 데려왔고, 정은 코디를 데려갔으니 말이죠.”
“코디는 원래도 당신과 계약을 해지하려는 생각이었죠.”
“리키도 원래 저와 계약을 하려던 생각이었고요.”
한발짝도 밀리지 않는 신경전 속에서 보라스가 먼저 요구사항을 내밀었다.
“리키와 연장계약을 하려고 부르신거죠? 그럼 저희 측 조건을 말하겠습니다. 팀에서 에이스를 맡고있는 이제 3년차를 맞이하는 젊은선수라는 점에서 리키가 가진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미사여구를 붙일까 싶었다.
“그 잠재력을 바탕으로 저희 측에서는 최소 연 3000만 달러를 원하는 바입니다.”
말도 안되는 그의 제안에 다운의 입이 비틀어졌다.
“지랄하네.”
< 90화 - 지랄하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