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87화 (87/268)

< 87화 - 패스 >

1월 9일

드디어 신년 첫 공식 협상이 재개되었다. 하지만 다운은 그 자리에 가는 대신 글라이드와 대면을 하고 있었다.

“오늘 협상 있다지 않았어?”

“있죠. 근데 어차피 저희끼리는 협의가 끝났잖아요. 그래서 선수노조 대표들은 그대로 나가고, 우리도 구단주 연합 대표들만 나가기로 했어요.”

“누구누구?”

“양키스하고 다저스가 빅마켓 대표로, 애슬레틱스하고 파이어리츠가 스몰마켓 대표로 나갔어요.”

“대판 싸우는 척 하고 있겠구만.”

“적어도 2월 말까지는 손을 잡을수는 없으니까 계속해서 싸워야겠죠.”

그래야 스프링 트레이닝 일정을 최대한 늦출 수 있었다.

“팬들만 싫어하겠구만.”

“2월쯤부터는 FA선수들에 대한 협상은 공식적으로 풀어줄거에요. 시즌이 시작할거라는 확신은 심어줘야하니까요.”

다운의 말에 글라이드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스토브리그는 난로 앞에 딱 앉아서 담요 덮고 야구 이야기 나눠야 제 맛인데······”

“겨울에 난로도 안쓰는 사람이 무슨 난로에요.”

“말이 그렇다는거지. 그러면 넌 할 일 별로 없겠네. 한국이나 한 번 갔다 오는게 어때? 부모님 못뵌지도 꽤 되지 않았어?”

꽤 오래되긴 했다. 코로나 때문에 2년 정도, 그리고 다시 단장으로 일하느리 1년을 못봤으니까. 하지만 굳이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괜찮아요. 이제 코로나도 끝났고해서 이번 봄이나 여름쯤 해서 한 번 오신대요. 그리고 할 일이 없다니 무슨 그런 섭섭한 이야기를 하세요.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당장 쌓여있는것만해도 조니가 요청한 유망주 경기 두 개에, 미키 요청 하나, 그리고 동북부 쪽 유망주도 한 명 있고.”

“직접 보러가야하는 애들이야?”

“네. 이번 1라운더 추천이거든요. 어떻게든 보러 가야죠. 올 시즌 이벤트를 어떻게 해야할지, 어떻게하면 관중들을 끌어모을지도 회의해야하고요.”

“어려운 것들만 남았구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거고요.”

“그래서 오늘 보자고 한 이유가 뭐야?”

목적이 있어서 방문한건데 이야기가 꽤 옆으로 많이 샜다.

“지금 남는 재산 얼마나 돼요?”

다운의 말에 글라이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돈 달라고? FA 영입하고 싶어졌어? 구장에 다 박은거 알잖아?”

글라이드는 대부분의 재산을 투입해서 레이스에 들이박았다. 다운이 알기로 구단을 구매하기 위해 그가 가진 회사의 지분도 대부분 팔아넘겼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새로운 구장을 짓는데 넣었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계속해서 팬들을 위해 지원할 돈이 나와요?”

“이게 망해도 남겨먹을 돈은 있어야할거 아니냐. 안그래도 돈 없는 레이스에서 나오는 순이익을 내가 다 먹으면 레이스는 어떻게 운영해? 그래서 조금 남겨놓고 투자하고 있었지.”

“그래서 얼마 남으셨는데요?”

“원래는 1억 달러 정도 남겨놨지.”

원래는 이라는 말은 곧 이게 불어났다는거다.

“지금은요?”

“구단이 지급하는 연봉에 투자한 것으로 돌아온 것까지 합해서······”

글라이드가 챙기는 연봉은 1만 달러밖에 안된다. 그럼 남은 1억 달러로 불린 금액이라는건데······

“4억 달러 정도?”

“네?”

“뭐 가지고 있는 다른 재산 처분하면 한 5억 달러까지는 되겠네. 아 물론 집이랑 차는 빼고야.”

대체 뭘 어떻게 어디에 투자를 했길래 저런 수익이 나오는건지······ 역시 부자는 부자인 이유가 있고, 돈이 돈을 부른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었다.

“그 중에서 1억 달러 정도 뺄 생각있어요?”

“그걸로 뭐하게?”

“재단 하나 세우게요.”

“재단? 그게 왜 필요해?”

“구장 명명권 때문에요.”

다운은 신구장 이야기가 나왔을 당시 글라이드와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신구장은 외부 투자 없이 온전히 개인 돈으로 하시는거잖아요. 그러면 이름도 글라이드 필드 이렇게 하시는게 어때요?”

“됐어. 내 돈으로 하는거긴 하지만 명명권도 주요 수익중 하나인데 그걸 내가 뺏으면 안되지. 그냥 명명권 팔아.”

당시에는 추가적인 돈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재단을 만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재단을 만들어서 그걸 굴려서 매 년 구장 명명권을 사는거죠. 그러면 어스틴이 구단에 돈을 지원해주는 것도 되고, 합법적으로 구장의 이름을 살 수도 있는거잖아요. 연 1000만 달러 정도면 10년은 충분히 돌릴거고, 돈을 더 버시면 더 연장도 가능할 것 같은데. 만약 더 추가하고 싶으면 더 하셔도 되구요.”

“아무리 그래도 내가 1000만 달러를 매 년 후원하는 것 보다는 다른 기업이 더 많이 주지 않겠어?”

“그야 그렇죠.”

당장 코카콜라에서 보낸 제안만 하더라도 20년간 연 1300만 달러짜리 제안을 줬으니까. 하지만 리그의 평균적인 명명권 가격대가 1000만 달러 수준에 형성되어있는걸 생각해봤을 때, 매 년 1000만 달러짜리 계약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1000만 달러도 충분히 상위권에 들어가는 명명권 계약이에요. 구단주 이름이 들어가는 구장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뭔가 팬의 마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걸리면 이상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걸까? 글라이드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어스틴. 제니를 생각하세요. 만약에 제니에게 이런 기회가 왔다면 어떻게 했겠어요?”

생각할 것도 없다. 레이스 광팬인 제니퍼 글라이드에게 만약 자신의 이름이 구장에 박힐 기회가 생겼다면 분명 이랬을거다.

“‘뭘 생각하고 있어 이 양반아! 당연히 해야지!’ 라고 했겠지. 본인 이름이 올라가는건 부담스러워했겠지만.”

“글라이드라는 성만으로도 만족할걸요.”

제니퍼의 이야기가 나오자 글라이드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재단을 하나 만들자. 그리고 2억 달러를 우선 넣고, 20년간 2억 달러를 투입하는걸로 하자고.”

“거기에다가 약속된 지원이 끊기지 않는 이상은 계속해서 연장을 하는 조항도 넣어두죠. 자세한건 앤드류랑 이야기하시면 될 것 같아요.”

“좋아.”

떳떳하게 후원까지 해주면서 자신과 제니의 성을 신구장에 건다는 걸 떠올렸는지 글라이드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른 뒤 사라지지 않았다. 글라이드의 애뜻한 눈빛이 구단주실 한 켠에 있는 제니퍼의 사진으로 돌아가는걸 보고 슬며시 구단주실을 나왔다.

달칵!

구단주실 문을 슬며시 닫은 다운에게 리타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홍보팀 회의는?”

홍보팀에서는 연일 새로운 시즌을 위한 이벤트를 떠올리기 위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결과를 오늘 확인할 예정이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견이 너무 많은 것 같더라고요. 단장님이 가셔서 한 번 방향성을 정리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앤드류 자리에 있지?”

“네.”

“잠깐 들렀다 가자.”

글라이드와 나눴던 이야기를 러셀에게도 미리 말해주는게 좋을 것 같다.

러셀은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앤드류 바빠요?”

파티션 너머의 러셀은 화면 가득 올 시즌 예산 예정을 띄워놓고는 자고 있었다. 그의 자리에서는 자동으로 돌아가는 폰게임만이 은근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어제 밤샜답니다. 이번에 한번에 2000만 달러정도가 빠지면서 머리가 아픈 것 같더라고요.”

지난 시즌 모아둔 이익금과 이전 전까지의 모든 수익을 모아서 신구장을 건축할때 시 의회와 협의한 사항들을 시행해야했다. 신구장을 채울 비품들이나 장비들 역시 최신식으로 마련해야하기에 골머리가 아픈 것 같았다.

“으음······ 헙! 다, 단장님!”

다운과 리타의 인기척에 선잠을 자던 러셀이 깨어났다.

“잠깐 존겁니다!”

“괜찮아요. 어제 밤 샜잖아요. 얼마나 마이너스 됐습니까?”

“올 시즌 들어올 수익까지 대략적으로 계산해봤을 때, 800만 달러 정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포스트시즌을 나가서 중계권료까지 받아챙긴다면 마이너스는 더 줄어들겁니다.”

“FA 예산은 제외한거죠?”

“네. 그리고 예비 예산까지 다 뺀겁니다. 그것까지 포함하면 여유롭긴 하겠지만, 언제 어디서 돈이 나갈지 모르는데 비상금은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혹시 트레이드로 연봉이 높은 선수를 데려올수도 있고, 언제 어디서 돈이 나갈지 모르는데 비상금이 없어서는 곤란하다.

어찌됐건 1000만 달러를 넘지는 않는다. 그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운이 슬며시 웃었다.

“플러스 200만 달러로 바꿔놓으세요.”

다운의 말에 부시시하던 그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1000만 달러가 더 들어옵니까? 어디서요? 저희가 들어올 곳이 있어요?”

“올 시즌 들어오는건 아닌데, 내년 1월에 1000만 달러 들어올겁니다.”

“내년이면 혹시 명명권? 팔렸습니까?”

돈들어올 구석이 그것밖에 없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에 러셀은 곧장 출처를 유추해냈다.

“네. 구단주님이 재단 하나를 설립해서 20년간 2억 달러를 투입해주시기로 했습니다.”

“크! 역시 구단주님! 그럼 글라이드 파크나 필드, 그런게 되는겁니까?”

“아마도요. 구단주님께서 마음에드는 이름이 있으면 정하시겠죠.”

“100만 달러밖에 안주는 펩시는 드디어 안녕이네요 흐흐!”

러셀은 곧바로 1000만 달러를 추가해서 +200만 달러를 만들었다.

“흐아아아! 드디어 이게 해결되네요! 마이너스를 줄여보려고 이래저래 줄여봤는데 그것도 좀 돌려놔야겠네요.”

“너무 엑셀만 보고있지말고 좀 돌아다니세요. 그러다 건강 상해요.”

다운의 걱정에 러셀이 슬며시 웃으며 폰을 가리켰다.

“그래서 이런걸 하는거죠.”

“그게 뭔데요?”

“폰게임인데 자동사냥 돌아가는거보면 아무 생각없이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힐링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원래는 이렇게 자주하지 않았는데 게임패스를 질러놨더니 매일 접속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그런게 상술이죠.”

“근데 뭐 재미는 있으니까요. 보상도 있고요. 그래서 매일 켜는 맛이 있더군요 하하!”

“음?”

매일 접속

재미

보상

뭔가가 떠오를 것 같다.

딱!

손가락을 튕긴 다운이 리타에게 고개를 돌렸다.

“홍보팀 회의 어디서 하죠?”

“3회의실입니다.”

“고마워요 앤드류!”

머리가 휘날리도록 뛰어나간 다운은 3회의실의 문을 벌컥 열어제꼈다.

“언젯적 버블헤드야? 이러면 팬들이 더 안들어올 것 같다니까?”

“해봐야 알지! 버블헤드를 모으는 사람도 있잖아.”

“번호만 다르고 얼굴을 다 같은 쓰레기 같은 퀄리티의 버블헤드를 모아서 뭐하겠어. 그럴바에는 다른 이벤트를 더 하자니까?”

쾅!

혼란스럽던 회의실이 순간 정적에 휩쌓였다. 하지만 다운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곧바로 화이트보드로 갔다.

슥슥슥슥

Season Pass

크게 두 개의 단어를 쓴 다운이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즌권에 시즌패스 도입합시다.”

< 87화 - 패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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