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80화 (80/268)

< 80화 - 이것들 봐라? >

락다운이 걸리는 순간부터 선수노조에 가입된 모든 선수들은 구단 시설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일반적인 선수들은 물론이고 부상당한 선수들도 재활을 위한 구단의 시설들을 하나도 이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구단에게 이들을 지원할 이유 역시 없었으니 선수들은 모두 자비로 훈련과 재활을 감당해야했다.

다행인 점은 메이저리그 선수노조에 가입된 선수들은 이 모든 지원이 끊기지만, 마이너리거들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구단 직원들은?

당연히 출근한다. 다운 역시 출근해서 글라이드에게 협상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을 모두 말해줬다.

“그렇게 됐구만.”

“확실히 똑똑하긴 하더라고요. 우리가 노리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아마 다음 협상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다음 협상은 언젠데?”

“글쎄요. 저쪽에서 연락이 먼저 오지 않는 이상 다음 협상은 없을걸요. 저희 측에서는 그래도 선수노조가 원하는 것을 어느정도 양보해줬는데 선수노조에서는 하나도 양보를 안하려고 하니까요.”

“흐음······ 그러면 아예 시즌이 단축될수도 있겠구만?”

“글쎄요. 제가 보기에 그럴 가능성은 적을 것 같아요.”

이미 20시즌 펜데믹으로 인해서 초단기 시즌을 경험해본 선수들이다. 단축된 시즌으로 인해서 돈은 돈대로 적게 받았다. 게다가 커리어나 실력을 유지, 향상시킬수 있는 경기 역시 얼마 치르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단축시즌이 가져다주는 경기력 하락은 연봉조정에서 큰 걸림돌이 되었다. 심지어 잘한 선수들 조차도 몇 경기 치르지 않았던 성적으로 폄하받아 불이익을 받았다.

“시즌이 단축된다는 것은 그들의 커리어에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걸 뼈저리게 깨달았을거에요. 우리는 재정적으로 손해를 보고 끝이지만, 저쪽은 재정적으로, 그리고 커리어에서도 손해를 보는거니까요.”

저쪽에서도 최대한 빠르게 논의를 끝내고 다시 협상을 걸어오려고 할 것이다.

“뭐를 양보하려고 할까?”

“아마 서비스타임을 유지시키는 대신 장난질 치는걸 없애자고 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아요.”

당장 현행 6년을 고치자고 하는건 구단주 연합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만약 저게 바뀌게 되면 다음 CBA 협상시 저들의 요구사항은 최저연봉기간 2년, 연봉조정기간 3년이 될 확률이 높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결코 들어주면 안될 일이었다.

하지만 장난질을 멈춰달라는 건 어느정도 들어줄 가능성이 있었다. 6년이라는 시간은 그대로인데다가 최저연봉 기간 3년, 연봉조정기간 3년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테니까. 이렇게되면 서비스타임을 가지고 협상할 여지가 한 번 더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제는 아예 중간에 올라와도 1년을 인정해달라?”

“그것보다는 일정 시간을 기준으로 하게되겠죠. 올스타전이라던가 트레이드 마감기한이라던가.”

“그러면 똑같은 장난질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낫겠죠. 후반기에 들어온 선수들이라면 어느정도 납득도 할거고요. 시즌의 반도 못마쳤는데 한 시즌을 다 뛴 것과 같은 서비스타임을 인정해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자세한건 저쪽이 뭘 어떻게 들고나오는지를 확인해봐야 알 수 있겠구만.”

“그렇죠.”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글라이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 구장 지어지는거 보러갈 예정인데 같이 안 갈텨?”

다운은 그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고개를 저었다.

“어스틴이나 가세요. 제가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요.”

“업무 중단 아니냐?”

메이저리거들과 관련된 모든 업무들은 락다운과 함께 중단되었다. 따라서 윈터미팅, 연장계약, FA계약, 연봉조정과 같은 모든 일들은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해서 다운이 해야하는 일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스폰서 미팅해야죠.”

“아직 통과 확정 아니잖아?”

“양 측 모두 동의한 사항이라서 다른 사항들과는 상관없이 통과될거에요. 선수들도 구단에 돈이 있어야 자신들에게 줄 돈이 생긴다는걸 알거든요.”

그러다가 글라이드에게 물어봐야할 것이 생각났는지 다운이 손뼉을 쳤다.

“아!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물어볼거 있었어요.”

“뭔데?”

“저희 유니폼에 스폰서 어디 박을까요?”

“허용 범위 같은거 있어?”

“아직 러프하게만 논의됐는데 양 팔에 패치랑, 모자 양 옆이랑 헬멧에 스폰서 패치를 붙일 예정이에요.”

“이왕이면 모자는 안건들면 좋겠는데.”

“그러면 유니폼하고 헬멧만 구할까요?”

“그게 낫지. 모자는 일반적인 옷차림에서도 쓰는건데, 공식 모자에 패치가 붙으면 영 별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그러면 헬멧하고 소매에만 진행해볼게요.”

“그래. 그런데 미팅 들어온 곳은 있어?”

“몇몇 곳은 있어요. 특히나 지역 회사들 있잖아요.”

다운의 말에 글라이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나해서 말하는건데, 지역 기업을 홍보해주는게 우선이라느니 하면서 싼 값에 광고 박으려고 하는 놈들 있으면 단박에 거절해버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같은 경우는 고 일리치 구단주의 뜻에 따라 지역에 있는 쉐보레의 광고를 싼값에 해주곤 했다. 자신이 자라온 지역 경제를 떠받쳐준 회사였으니까.

그러나 글라이드는 그렇게 해줄 생각이 없었다.

“원래 그럴 생각이 없긴 했는데, 덕분에 구단주 명으로 돌릴 수 있게 됐네요.”

“그래. 내 이름 팔아서라도 절대 그런 광고는 받지마. 레이스 유니폼에 별 이상한 광고 붙는건 절대 용납 못하지.”

“오늘 미팅하는 곳들 대부분 다 싸게 노리고 온 곳인 것 같던데요?”

“어디서 왔는데?”

“레이몬드 제임스, 홈쇼핑 네트워크, 자빌 서키트, 브라이트 하우스 네트웍스, 트랜스아메리카, 퍼블릭 슈퍼마켓츠, 존스홉킨스 올 차일드 병원, 펩시······”

“얼씨구? 펩시가 있어?”

“네.”

“유니폼 스폰서도 하면서 신구장 명명권도 노리려는 모양 같네.”

“둘 중 하나라도 건지겠다는 마인드 인 것 같아요. 심지어 올랜도에 있는 회사들에서도 요청 왔어요. 아, 어스틴네 회사도 요청 넣었던데요? 받아줄까요?”

다운의 장난에 글라이드가 손을 홱홱 내저었다.

“받아주지마. 내 회사를 내 구단에서 왜 홍보해? 거기다 이제 대주주 중 한 명으로 내려앉았어. 레이스 산다고 지분 많이 내놨잖아. 이제 레이스가 내 회사야.”

“그럼 받아주지 마요?”

“돈 많이 주면 받아줘. 그나저나 지역에서 이름 좀 있는 놈들이라면 다들 왔구만? 명단 있나?”

“여기요.”

“흐음······”

스폰서를 제안한 기업들 명단을 훑어본 글라이드가 고개를 다시 들었다.

“저 중에서 존스홉킨스는 받아주도록 하자고.”

“저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존스홉킨스야 병원쪽에서는 워낙에 알아주는 곳이다. 게다가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케어한다는 것도 있으니 레이스가 지역사회에 이바지한다는 이미지 역시 줄 수 있었다.

“이미지도 그렇고, 연계해서 뭔가 계획하기도 좋잖아요.”

야구의 미래는 어린 팬들에게 있다. 어린 팬들은 부모님을 끌어들이고, 미래에도 팬으로 남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전국 단위의 환자를 받는 존스홉킨스 올 차일드는 레이스의 팬 저변을 늘릴 수 있는 최적의 기회였다. 이들과는 최대한 연계해서 뭔가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괜찮은 생각이야. 이벤트 같은것도 최대한 잡아보자고.”

“네.”

근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근데 잠시만. 그 미팅을 오늘 한 번에 다한다고?”

그의 말에 다운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세 군데 뿐이죠.”

그러면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원칙에 따라 가격은 상승한다.

“독한놈······”

***

오후 2시가 되자 레이스의 대회의실은 여러 회사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찼다.

다운은 이 자리가 단독 협상이 아니라 단체 협상 자리가 될 것이라는 공지를 사전에 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많아도 당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단체 협상이라니 젠장······”

“경매라도 하겠다는건가?”

“경매 맞습니다.”

다운은 회의실로 들어오면서 그의 말에 긍정했다.

“사실 공개 경매를 하려고 했는데요, 그렇게되면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실 분들이나 회사가 있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방식은 간단합니다. 비공개 경쟁입찰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광고 패치가 달릴 곳은 어디입니까?”

“구단주님의 의사에 따라 모자에는 패치가 부착되지 않을 예정입니다. 남은 자리는 유니폼의 양 옆이 될 예정입니다.”

“헬멧도 제외입니까?”

“아뇨. 헬멧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저희 구단주님의 의사에 따라 존스 홉킨스 올 차일드 병원에게 헬멧 스폰서에 대한 우선권을 주라고 하셨거든요. 어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곳이라 적당한 가격이면 해드리라고 하더군요. 이야기를 해보고 영 마음에 차지 않는 제안이면 이 자리 역시 풀릴 예정입니다.”

“세 자리 모두 제안을 할 수 있는건가요?”

“네. 하지만 달리는 곳은 한 군데입니다. 최대한 많은 기업들의 스폰서를 받아주라고 하셨거든요.”

“그럼 두 군데 모두 최고액 입찰을 했다면요?”

“그러면 한 군데를 포기하고, 차순위에게 돌아갑니다.”

고작해봐야 1년짜리 계약이다. 금액적으로 엄청나게 큰 차이는 나지 않을 것이다.

“금액차이가 크다면요?”

펩시에서 나온 직원이다.

“그렇다면 고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자! 더 질문 있으십니까? 없으시다면 이제 회사에 전화를 해서 적정 금액을 받아오십쇼. 시간은 30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결정된 금액을 작성한 메시지를 여기 앞에 있는 번호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존스 홉킨스에서 나오신 분은 저를 좀 보시죠.”

다운이 마이크를 놓자마자 사람들은 저마다 회사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네. 저희가 예상했던대로 경매를······”

“비공개 경쟁입찰이랍니다. 네. 네.”

다운은 존스 홉킨스에서 나온 직원과 함꼐 순식간에 시끌해진 대회의실을 나와 조용한 회의실로 들어갔다.

“존스 홉킨스 올 차일드 병원장 제이콥 파커입니다.”

“다운 정입니다.”

“저희 병원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주실줄은 몰랐네요.”

“저야말로 병원장님이 직접 오실줄은 몰랐습니다.”

“다른데는 몰라도 레이스에는 정말 스폰서 광고를 넣고싶었거든요. 저희 지역 팀이니까요!”

자세한 속사정을 들어보면 그렇게 순수한 이유는 아니었다.

‘다른 스포츠에 홍보할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싸다! 때마침 우리한테 기회를 줄 것 같으니까 꼭 잡아야 해!’

다운도 대강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다.

“하하! 그러셨군요! 저희와 마음이 맞았네요! 저희 구단주님께서 아이들을 위한 병원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어야한다고 하셨거든요. 헬멧에다가 광고를 준 이유도 그겁니다. 타자들은 언제나 공을 날리기 위해 노력하죠. 실패할때도 있고, 성공할때도 있지만 결코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이 타자들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병마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노력하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건강해져서 홈에 들어오는 그런 위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물론 그런 말은 안했다. 다운이 헬멧으로 정한 이유는 그쪽의 단가가 가장 쌀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경기 내내 노출되는 유니폼 패치보다 헬멧의 단가가 훨씬 싸다. 그러니 그걸 가지고 생색 좀 낸 것이었다.

“아······ 그런 깊은 뜻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파커는 깊이 감명받은 듯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대신에 저희 구단과 연계해서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를······”

다운은 생각해온 것들을 그에게 말했다. 레이스 구단과의 연계는 병원에도 좋은 일이었다. 다운의 제안에 파커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적당한 금액에 계약을 맺기로 한 파커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회의실을 나갔다.

그와의 회의를 마친 다운은 30분이 지난 것을 확인 하고는 서둘러 대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단장님.”

“각 구단에서 입찰한 금액 다 취합했어?”

“네.”

근데 표정이 이상했다.

“이것 좀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내민 태블릿 화면을 확인한 다운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이것들 봐라?”

< 80화 - 이것들 봐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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