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78화 (78/268)

< 78화 - 다운의 겨울은 시즌보다 바쁘다 >

CBA는 Collective Bargain Agreement 의 준말로, 구단주 연합과 선수노조 사이에서 체결된 단체 협약을 뜻한다.

미국 프로스포츠는 연방이나 주에서 지정하는 노동법에 의거해서 돌아가는게 아니다. 그보다는 해당 단체 내의 고용주와 노동자들 간의 협약을 우선한다는 방침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구단주 연합과 선수노조가 단체협약을 맺는 것이고, 이 내용에 따라 선수의 신분이라던가(FA, 혹은 서비스타임 등) 수익분배 비율이 결정되곤 했다.

혹여 둘 사이의 협상이 전혀 진전되지 않으면 구단주 연합 주도의 직장폐쇄나 선수노조 주도의 파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파업과 직장폐쇄는 총 여덟차례 있었다. 지난 시즌 역시 직장폐쇄나 파업으로 이어질 뻔 했으나, 극적으로 1년 현행제도 연장이 결정되면서 올 겨울로 이렇게 미뤄지게 된 것이다.

“아니 애초에 구단주 연합이잖아요. 그러면 구단주가 가야죠. 제가 거길 왜 가요?”

“대리인 내세워도 되잖아. 난 정말 팬으로 남고 싶다니까? 거기 가서 개싸움은 하고싶지 않아.”

“저도 개싸움은 싫은데요.”

다운의 말에 글라이드가 씨익 웃었다.

“그럼 네가 구단주 하던가.”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는 어떻게 넘어설수가 없다.

“하······ 이번에는 진짜 일 한 번 날 것 같은데.”

리그 중단은 결국 양 측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지난 해에는 어물쩡거리며 1년 연장을 하게 되었던 것이고.

이를 다르게 해석한다면 1년이라는 시간동안 서로에 대한 앙금이 더 쌓였다고도 할 수 있었다.

“이번에 주요 쟁점이 뭐라디?”

“언제는 알고싶지 않다면서요.”

“어떤 점에서 싸울지 팬심으로 알고싶다는거지.”

“그러면 같이 가시는 건 어때요?”

물귀신 작전을 펼쳐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다른 팬들처럼 기사로 확인하마.”

“쳇!”

얄짤없이 가야하는 모양이다.

***

메이저리그 구단주 연합과 선수노조와의 만남은 12월 1일 이루어졌다.

“신분 확인 하겠습니다.”

“레이스 구단주 어스틴 글라이드의 대리인으로 참석한 다운 정입니다.”

“위임장 부탁드립니다.”

“여기요.”

자리가 자리이다보니 얼굴을 알더라도 검사는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다행인 점은, 이렇게 대리인을 보낸 것이 글라이드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넌 또 왜 왔냐?”

“제가 묻고싶은 말인데요?”

대런 역시 아버지를 대신해 대리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우리 구단주님은 이런 알력다툼에 참가하기보다는 그냥 메이저리그 팬으로 남고싶으시단다.”

“로맨티시스트이시네요.”

“이 시대에 남은 유일한 로맨티시스트지. 그러는 너는?”

위임장을 다시 챙긴 대런이 어깨를 으쓱했다.

“앞으로 구단주가 하는 일도 배워야하니까 제가 가라고해서 왔죠. 단장이니까 구단의 입장에서 조금 더 생각할 수도 있고요.”

다운에게는 다행이었다. 꿈에서도 보기 싫은 할 스타인브레너 놈 보다는 대런이 훨씬 나았으니까.

그리고 아는 얼굴이 있다는 것도 나름 다행이었다.

“배리. 조나.”

브래넌과 파인트는 이번 협상에서 현역선수단 대표 5인에 포함되면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

브래넌이야 워낙에 인지도가 뛰어난 선수기에 참가를 하게 되었고, 파인트는 과거의 최고 투수가 마이너리그에서 최근 어린 선수들의 고민을 많이 들었다는 이유로 합류하게 되었다고 했다.

“넌 여기 무슨 일이야?”

“그러게요. 다운이 왜 여기······”

“우리 구단주님께서 이런거는 귀찮으시단다.”

다들 글라이드를 만나본적이 있었기에 다운의 말이 뭘 뜻하는지를 알아먹었다.

“구단주님이라면 그럴만하죠.”

“우리 구단주님이라면야······”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들에게 다운은 은근한 말투로 물었다.

“혹시 오늘 선수노조 의견 좀 강하냐?”

“그냥 뭐 일단······ 읍읍!”

브래넌은 다운의 말에 대답하려는 파인트의 입을 막은 뒤 씨익 웃었다.

“들어가서 들어. 어차피 대략은 예상하고 있잖아?”

“너무 시작부터 날 세우는거 아냐?”

불만스런 다운의 말에도 브래넌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권익은 우리가 지켜야하거든. 안에서 보자고. 조나 넌 인마······!”

브래넌은 파인트에게 헤드락을 시전하며 선수노조에게 마련된 자리로 사라졌다.

“우리도 들어가죠.”

“그래.”

다운과 대런을 제외한 28개 구단에서는 모두 구단주들이 직접 참석했다. 아무래도 선수노조의 요구를 처음으로 듣는 자리기에 그들도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발걸음을 옮긴 것이었다.

“선수노조측 먼저 발언하겠습니다.”

중재자 역할로 온 사무국의 맨프레드가 선수노조 대표의 발언을 허락했다.

선수노조의 대표로 선정된 다섯 명 중 가장 말빨이 좋다고 알려진 브래넌이 역시나 마이크를 잡았다. 물론 브래넌의 부리부리한 외모 역시 한 몫했을테지만.

“탬파베이 레이스 소속 배리 브래넌입니다.”

안녕들 하시냐 등의 미사여구 뒤에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풀어놨다.

“우선 저희도 그렇고 구단주님들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사항부터 먼저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초장부터 싸울 생각은 아닌지 브래넌은 유한 말투로 합의안들을 늘어놓았다.

“내셔널리그의 지명타자 도입에 대해 반대하시는 분들 혹시 계십니까? 손 들어보시겠어요?”

브래넌의 말에 손을 드는 사람은 적어도 이곳 회의실 안에는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메이저리그가 하락세에 있다는 걸 모르는 멍청이는 없었다.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투수 타석이 얼마나 공격의 흐름을 끊어먹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명타자가 도입되었을 때의 공격력이 더 많은 시청자들을 불러일으킬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견이 없었다.

선수측 역시 마찬가지. 선수들 입장에서는 15개 구단에서 일자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타격은 좋으나 수비가 부족한 선수들이 취직할 수 있는 곳이 15군데나 더 늘어나는 것이니까.

이를 본 브래넌이 웃었다.

“다행이네요. 덕분에 머리가 깨지도록 외웠던 지명타자 제도의 장점은 곧바로 잊어버려도 되겠군요. 그리고 다음 쟁점은 저희 메이저리그에서도 다른 스포츠들과 같이 유니폼에 스폰서를 부착하자는겁니다.”

구단들도, 그리고 선수들 역시 20년을 휩쓸었던 단축시즌의 여파로 가난하다.

이런 상황에서 스폰서 없는 깨끗한 유니폼?

그딴건 중요하지 않았다. 확충할 수 있는 재원이 있다면 하나라도 더 끌어와야만했다.

“물론 여기에 선수들의 퍼포먼스에 방해될 수 있는 부위에는 최대한 부착을 하지 않는 등의 협의는 필요합니다만, 스폰서 유치라는 대전제에 반대하시는 분들은 없으시죠?”

이 역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외에도 ‘투수들의 이물질 방지를 위해 실밥이 조금 더 두터운 공의 도입.’이라던가 ‘포스트시즌 참가 팀의 확대.’ 등의 안건들이 양 측의 시원스런 동의와 함께 가결되었다.

“이제 남은건 반대가 격렬하겠군요.”

조용하던 구단주 연합쪽 사람들이 자세를 달리했다. 그걸 목격한 맨프레드가 손을 들었다.

“발언하시고 싶으신 분이 계시더라도 우선 선수노조 측의 의견을 주욱 들어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발언은 그 이후에 해주시죠.”

구단주 연합에서 흐름을 끊어먹을 것을 염려한 맨프레드는 그들을 한 번 제지한 뒤 브래넌에게 눈빛으로 계속하라는 신호를 주었다.

“감사합니다 커미셔너님. 그럼 발언하겠습니다. 저희 선수들이 원하는건 다음과 같습니다.”

브래넌의 말에 선수노조측 직원이 마우스를 움직여 화면을 띄웠다.

1. 서비스타임 6년에서 5년으로 축소.

2. 사치세 한도(샐러리캡) 상향.

3. 드래프트 추첨제 도입.

4. 과도한 탱킹에 대한 페널티 부여.

5. 확장된 포스트시즌에 따른 선수들의 수익 배분 증가.

“선수들이 활약하는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건 저희도 알고 있고 여러분도 알고 있을겁니다. 앞으로도 점점 많은 어린 선수들이 더 어린나이에 활약하게 되겠죠. 그리고 저희는 그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활약에 걸맞는 돈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현행 제도상 아무리 빨리 FA를 얻는다고해도 26세가 한계입니다. 마이너수업이라던가 구단의 서비스타임 관리에 걸리면 그보다 더 늦어지겠죠. 우리는 이 구조를 조금이라도 늦춰줄 것을 요구합니다. 물론 당장에 시행하자는건 아닙니다. 23년 드래프트되는 선수들부터 시작해서······”

브래넌이 열심히 말하는 중에 대런이 중얼거렸다.

“어휘선택이 그래도 유하네요.”

장난질이 아니라 서비스타임 관리라는 고급스런 표현이라니.

“처음부터 싸우고 싶지는 않다는거겠지. 저거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아?”

“아쉽긴한데 저쪽에서 양보하는게 뭐냐에 따라 받아줄 수도 있을 것 같긴하네요.”

다운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요즘 추세 자체가 장기계약을 이르게 체결하는 것이었다. 연봉조정 3년차가 삭제되면 구단 입장에서는 기존에 3년차에서 FA로 될 때 올려줬던 금액보다 더 낮은 금액을 제안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서비스타임 조정을 써먹게 되면 6년까지 보유할 수 있는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부분에서 양보를 받는다면 허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사치세가 사라지면 좋겠지만 많은 구단들이 이것에 대해서는 반대할걸 압니다. 그렇기에 사치세를 지금보다 5000만 달러 상향할 것을 요구합니다.”

“NPB에서 하는것과 같이 1라운드 드래프트에 대한 추첨제를 도입해야합니다. 그렇게된다면 상위라운드 픽을 얻기 위한 구단들의 고의 탱킹이 사라질겁니다.”

“과도한 탱킹 역시 문제입니다. 예전의 내츠, 그리고 애스트로스가 했던 것을 보고 이제 수많은 구단들이 탱킹을 합니다. 지난 시즌을 보시죠. 100패 이상을 한 팀이 네 팀이나됩니다. 구단주 여러분들은 미래를 얻는다고 이야기하겠습니다만, 과연 100패나 하는 팀을 응원하려고 하는 팀이 있을까요? 오히려 팬들이 떨어나가지 않겠습니까?”

“포스트시즌 참가팀이 늘어나게되면 그 수익 역시 증가하겠죠. 현행 제도에서 구단들이 입장료, 상품 판매, 수익공유 등을 통해 포스트시즌 진출 시 얻을 수 있는 금액은 평균적으로 8000만 달러 선입니다. 다음 단계로 진출할수록 그 수익 역시 늘어나겠죠. 하지만 그 중에서 선수단이 가져갈 수 있는 금액은 많아봐야 3000만 달러 선입니다. 저희 선수들 입장에서는 포스트시즌은 팀의 명예를 위한 연장근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선수 본인의 명예를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습니다만, 그걸 감안해서라도 선수들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너무 적습니다. 적어도 선수단에게 수익의 절반까지는 공유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요구사항들을 모두 말한 뒤 짧은 휴식이 주어졌다.

“쉽지 않겠네.”

“쉬울거라 생각하셨어요?”

“당연히 아니지. 그래도 저쪽의 요구사항 중에서 무리가 너무 많아.”

여기서 받아들일 수 있는건 포스트시즌 중계권 수익배분밖에는 없었다.

프런트 직원들조차도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을 받아가는 마당에,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수익의 절반 정도를 가져갈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나머지 안건들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치세 한도 상향은 스몰마켓 구단들이 반대할 것이다. 5000만 달러가 늘어나면 기뻐할 팀은 빅마켓 밖에 없다. 스몰마켓에게 2억 1000만 달러의 페이롤은 아주 널널한 수준이었다.

당장 레이스만해도 올 시즌 선수단 전체 페이롤이 7000만 달러가 조금 안된다. 그런데 여기서 5000만 달러를 더 늘려달라?

“누구 좋으라고?”

이런 소리가 터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드래프트 추첨은 또 다른 이유로 불만이 터져나올거다.

요즘처럼 드래프티들이 메이저리거로 완성되는 시기가 짧아지고 있는 시기에 스몰마켓 팀들이 노릴 수 있는거라고는 탱킹으로 인한 좋은 유망주 수급밖에는 없었다.

여기에 빅마켓 팀들까지 끼어들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거지만, 어디까지나 이 또한 구단을 운영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쉽게 말하면 피고용인들이 고용인의 의사결정이 마음에 안든다고 달려드는 것과 크게 다를게 없었다.

“표정이 좋지 않네 다들.”

“발언권만 주어지면 달려들기 시작할걸요.”

아니나다를까 휴식시간이 끝난 뒤 발언권이 주어진 구단주 연합 측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78화 - 다운의 겨울은 시즌보다 바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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