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불타오를 팀은 어디(2) >
와일드카드는 정말 빌어먹을 제도다.
누군가에게는 포스트시즌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어서 굉장히 좋은 제도로 비춰질것이다. 하지만 지구 1위를 간발의 차로 놓친, 와일드카드 상대팀과의 시즌 승리 차이가 12경기나 나는 레이스에게는 이보다 더 불합리한 경기는 없을 것이다.
“와일드카드 1순위의 메리트가 고작 홈경기 뿐이라니. 1순위 팀에 대한 메리트가 조금 더 있어야하는거 아냐?”
와일드카드 1순위 팀에 대한 처우는 분명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1선발을 쓰고 올라가야하는데 기다리고 있는 에인절스는 1선발을 아껴둔채로 우릴 맞이하잖아.”
디비전 시리즈는 와일드카드 경기 이틀 뒤에 시작한다. 와일드카드 승자와 맞붙는 에인절스 같은 경우에는 3일을 쉬고 경기를 준비하는 반면, 와일드카드를 치르는 팀들은 경기 끝나고 하루 쉬고 바로 다음 경기를 치뤄야하는 일정을 소화해야했다.
게다가 에인절스가 있는 LA는 서부지구. 에인절스의 홈에서 1, 2, 5차전이 벌어지기 때문에 겨우 주어진 휴식일에도 미리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시차적응을 완료해놓아야만 했다.
이 정도면 와일드카드 1순위 팀에게는 불이익만을 안겨줬다고 할 수 있을정도였다.
“그나마 에인절스라서 다행이지.”
에인절스는 선발진이 약하기로 유명한 팀. 1선발을 맡고있는 해리 무어조차도 다른 팀을 가면 3~4선발 정도밖에 안될거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와일드카드에서 조나를 아낄수도 있고.”
파인트보다는 레인저스를 상대로 확실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리키 더지를 선발로 출장시킬 예정이었다.
“저기 한국에서는 와일드카드 1순위 팀한테는 1승을 먼저 주고 시작하는 2선승제로 운용한다던데.”
“빌어먹을······ 이번 CBA 협상할 때 이것도 건의해주면 안됩니까?”
거스의 거친 말에 다운이 웃으며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확인했습니다. 근데 그것보다는 일단 와일드카드를 이기는게 먼저 아닐까요?”
결국 레인저스를 이겨야 에인절스를 만날 기회도 얻을수 있는거니까.
“케빈 감독님과 더지 왔습니다 단장님.”
“오케이.”
더지를 부른 이유는 별다른거 없었다.
“리키. 네가 여기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조나에게 이번 선발 기회 양보하라고 부르신거 아닙니까?”
더지는 큰 반응 없이 덤덤히 답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조나가 저보다는 에이스에 적격이니까요. 저는 신경쓰지 마세요.”
그리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내년 포스트시즌에는 꼭 실력으로······”
벌써부터 다음 시즌에 대한 다짐을 하는 더지에게 다운이 픽 웃었다.
“하하! 그게 아냐 리키. 이번 선발은 네가 될거야.”
“제가요?”
누가봐도 후반기의 에이스는 파인트였다. 그래서 더지는 내심 자신이 밀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다운과 캐시 역시 같은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을 더지에게 곧바로 전달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이런 젊은 선수에게 동기부여는 꼭 필요한 것이니까.
만약 이번 경기를 지더라도 포스트시즌 경험이 풍부한 파인트에게 경기를 맡기는 것 보다는 앞으로 레이스의 마운드를 책임져줘야할 더지에게 경험치를 조금 더 주는 것이 좋다는 것 역시 이런 결정이 내려진 이유 중 하나였다.
“조나가 중간에 잘했다고해서 올 시즌 내내 에이스로 마운드를 지켜온 널 밀쳐낼 수는 없잖아.”
“나도 그렇고 단장님도 네가 에이스로 이번 포스트시즌의 첫 경기를 맡아야한다는 것에 동의했어.”
두 사람의 지지에 덤덤했던 더지의 얼굴에 의욕과 열정이 깃들었다.
“그 결정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그가 너무 흥분하지 않도록 족쇄를 채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무 빨리 무너지게되면 교체될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제가 먼저 강판을 요청하겠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선발 출전이 어찌나 기뻤는지 더지는 나가는 순간에 다시 한 번 돌아서서 감사인사를 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숙이기까지 하는걸 보면 정말 기뻤나보다.
그 모습을 본 다운과 캐시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저 말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네요.”
***
- 디비전시리즈를 걸고 벌이는 단판승부! 과연 그 위로 올라간 팀은 어디인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정정하시죠! 저희는 레이스의 승리를 보러온겁니다. 당연히 레이스가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 하하! 하지만 벌써부터 설레발을 떨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이상하게 올 시즌 제가 예상했던 결과와는 반대의 결과가 일어난 경우도 많았고요.
- 그러면 반대로 예측해주시는건 어떠십니까? 여기 모인 만원관중도 다들 그러길 원할텐데요!
트로피카나 필드에서는 쉽사리 보기힘든 만원관중이 관중석을 가득 채웠다. 그래서 해설은 기쁜 마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 하하하! 그렇다면 오늘은 레인저스가 이길 것 같다고 예상을 해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레이스가 올라가겠네요.
-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 이러면 안되는거겠네요. 저는 레인저스가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 자, 댄이 말실수를 하기 전에 빠르게 넘어가도록하죠. 우선 오늘 경기를 할 자랑스러운 우리 레이스 선수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번 - SS - 네이선 드레이크
2번 - CF - 케빈 마이어
3번 - DH - 배리 브래넌
4번 - 1B - 세바스티안 가스파르
5번 - 3B - 멜튼 록하트
6번 - RF - 패트릭 비어스
7번 - C - 알렉스 윌슨
8번 - LF - 루카스 페리시치
9번 - 2B - 브라이언 앤더슨
- 그리고 선발 자리에는 리키 더지가 올라왔습니다! 오늘 라인업이 상당히 특이하죠?
-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선발투수가 가장 특이한데요.
- 저는 야수 쪽 라인업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더지는 올 시즌 레인저스 전에 강했기 때문에 나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페리시치가 나올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것도 선발 좌익수로 말이죠.
-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슬쩍 들었는데요. 배리가 직접 요청했다고 합니다.
- 배리가요?
- 본인의 수비범위가 좁다는건 알고 있으니까 타격에만 집중하겠다고 했다더라고요. 그게 팀에 좀 더 도움이 될거라면서 캐시 감독에게 먼저 요청했다고 합니다.
- 배리가 레이스의 어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유가 이래서군요.
- 타고난 리더죠. 팀을 위해서 뭘 해야할지를 정확히 아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이한 점은 후반기에 주로 선발출장했던 세드릭 우드먼이 아니라 브라이언 앤더슨이 선발로 출장했다는 점입니다. 혹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들은게 없으신가요?
- 죄송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네요. 하지만 조심스럽게 예상해보자면 세드릭 우드먼과 브라이언 앤더슨의 성향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사실 수비 자체는 두 선수 다 큰 차이는 없거든요. 차이가 있다면 우드먼의 어깨가 더 좋다는 정도인데, 2루수에게는 정확도가 더 중요한 법이거든요. 앤더슨의 송구가 워낙에 정확해서 그렇게 차이나지는 않을겁니다.
- 그럼 두 선수의 차이는 뭔가요?
- 스피드와 작전수행능력이죠. 캐시 감독의 최대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캐시의 최대 장점이라······ 투수운용 아닐까요?
- 비슷한데 조금 결이 다릅니다. 올 시즌 레이스의 경기들이 보통 시원시원한 경기들이 많았죠. 그래서 가려진감이 없잖아 있는데 캐시 감독의 최대 장점은 수비와 투수력을 바탕으로 한 1점 승부입니다. 점수를 쥐어짜고 그 점수를 지키는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죠. 흔히들 말하는 빅볼 보다는 스몰볼에 조금 더 특화된 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사이에서도 선수를 교체하지 않고 질질끌다가 망하는 등의 단점도 있지만, 필요한 한 점을 따내고 그걸 정말로 잘 지키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 수준의 감독으로 평가받는거죠.
- 브라이언 앤더슨이 그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라는거군요.
- 맞습니다. 앤더슨은 한 점 승부에서 필수적인 스피드와 출루율을 고루 갖춘 타자입니다. 게다가 모든 포지션에서의 수비가 가능해서 그라운드 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자리를 곧바로 메울 수 있죠.
- 그렇다면 나중에 투입하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 미리 예열을 시켜놓은 선수를 다른 곳에 투입하는게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 저는 처음 딱 이 라인업을 봤을 때 외야에 투입 가능한 자원을 모두 써서 그 쪽에 공백이 생겼을 때 대처가 미흡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들으니까 또 일리가 있어보이네요.
- 외야에 공백이 생긴다면, 물론 그러면 안되겠지만, 흘로첵이나 브래넌 역시 외야 커버가 가능하니까요.
- 레이스의 라인업이 흥미로웠던만큼 레인저스의 라인업 역시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레인저스는 좌완인 더지를 상대하기 위해서 라인업에 좌타자를 한 명도 넣지 않는 극단적인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 레인저스 주전급에는 좌타자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라인업에서 빠졌습니다. 그리고 우타자 네 명, 스위치 히터 다섯 명으로 라인업을 짰습니다.
- 기존에 있던 좌타 주전들이 더지를 상대한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죠. 유일하게 레인저스가 더지를 상대로 이겼던 경기가 바로 좌타 주전들이 빠졌던 경기였습니다. 지금 보시면 그 경기에 나왔던 라인업에서 타자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거든요.
- 과연 리키가 이 라인업을 이번에는 격파할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가 되겠네요. 자 이제 경기 준비 끝났습니다. 함께 경기를 보시죠.
“플레이 볼!”
심판의 콜과 함께 더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지는 오른발을 뒤로 빼며 파인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리키. 큰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게 뭔지알아?”
파인트는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빅게임피쳐. 그런 그의 조언이라면 새겨들을만 했다.
“알려주세요.”
“바로 이 경기가 중요하지 않은 경기라고 생각하는거야. 몸에 힘을 빼고 대충 던져. 절대 몸에 힘이 들어가거나 특별한 경기라는 생각을 해선 안돼. 그러면 그럴수록 네 공은 맞아나갈거야.”
파인트가 왜 그런말을 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폐쇄된 트로피카나 필드에서의 만원관중. 에이스가 있었던 지난 시즌, 그리고 14,381명이 왔었던 지난 포스트 시즌 등판에서 겪었던 압박감과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 느껴졌다.
우우우웅!
관중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웅웅 울렸지만 집중한 더지의 귀에는 그런 소리따위 들리지 않았다.
‘명심해. 오늘 경기는 정말 특별하지 않은, 져도 괜찮은 경기야.’
져도 괜찮은 경기가 어디있겠냐만은 그렇게라도 최면을 걸어야 팔에 들어간 이 힘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것 같았다.
파아아앙!
윌슨의 미트가 내는 경쾌한 소리에 이어 심판의 우렁찬 목소리가 필드에 울렸다.
“스트으으라잌!”
< 74화 - 불타오를 팀은 어디(2) > 끝